최근 수정 시각 : 2024-01-20 07:01:32

후지모토 교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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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후지모토 교타로
([ruby(藤本, ruby=ふじもと)] [ruby(京太郎, ruby=きょうたろう)])
출생 1986년 6월 23일 ([age(1986-06-23)]세)
오사카부 오사카시 스미노에구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권투 전적 23전 21승 2패 (13KO)
입식 전적 28전 21승 7패 (11KO)
체격 183cm / 102kg / 186cm
주요 타이틀 2009 K-1 헤비급 토너먼트 우승
K-1 2대 헤비급 챔피언
WBC 아시아 헤비급 챔피언
OPBF 헤비급 챔피언
WBO 아시아 태평양 헤비급 챔피언
기타 2009 K-1 Japan GP 후쿠오카 헤비급 토너먼트 준우승
K-1 헤비급 타이틀 방어 1회
OPBF 헤비급 타이틀 방어 4회
WBO 아시아 태평양 헤비급 타이틀 방어 3회
SNS
파일:X Corp 아이콘(블랙).svg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1. 개요2. 전적3. 커리어
3.1. 아마추어3.2. K-1
4. 프로레슬링5. 권투6. K-1 복귀7. 파이팅 스타일8. 평가

[clearfix]

1. 개요

일본킥복싱 선수, 권투 선수.

2. 전적

※ 입식격투기
※ 권투
  • 주요 승: 마이클 오도넬, 김재찬, 아파 타투푸, 클라렌스 틸만, 차운시 웰리버, 파브리스 오렝, 피터 오켈로, 타케하라 코타츠(2), 이시다 노부히로(2), 데이비드 라데프, 데이비드 토레스 가르시아, 나단 맥케이, 아담 러브록, 윌리 나시오, 헤르만 에네페셀, 렌달 레이먼트, 아론 러셀, 수탓 칼라렉(2)
  • 주요 패: 솔로몬 하모노 , 다니엘 뒤부아

3. 커리어

3.1. 아마추어

2007년 5월 3일 제18회 전일본 신가라데 챔피언십 (K-2 GRAND PRIX) 헤비급 (+75 ㎏) 토너먼트에서 우승했다.

3.2. K-1

2007년 K-1 Tryouts Young Japan GP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같은 해 K-1 서울 GP에서는 한국의 씨름 선수 출신 김경석[1]을 2라운드 KO로 꺾었다. 2008년 K-1 요코하마 GP에서는 마이티 모를 꺾었는데 이 경기에서 교타로는 등까지 돌려가며 도망가는 모습을 보여 야유를 받았다. 당시 교타로는 모의 사이즈와 파워를 의식한 듯 절대 성급하게 들어가지 않고, 사이드 스탭으로 붕붕훅을 유도하며 집요할 정도로 로우킥만 찼다. 거의 본야스키 vs 최홍만 전이 생각날 정도. 결국 연장 4라운드에서 모는 로우킥 데미지 누적으로 다리의 힘이 풀리며 주저앉았고, 여기서 일어서지 못하며 KO패를 당했다. 모는 당시 5연패 중이긴 했지만 본야스키와 최홍만 등을 이긴 강한 파이터였기 때문에 이때부터 교타로는 무사시를 잇는 차세대 강자로 인식되었다. 다만, 얍삽하다는 인상을 강하게 주어 안티들에게도 제대로 눈도장을 찍었다. 이후 2008년 후쿠오카 GP에서는 1회전에서 무사시, 2회전에서 사토 타쿠미를 꺾고 결승에 진출했지만 결승전에서는 극진공수도 세계 챔피언 출신인 브라질의 에베이튼 테세이라에게 판정패했다.

2009년 요코하마 GP에서는 멜빈 만호프에게 펀치 세례로 찜질을 당할 거라는 예상과 다르게 카운터 펀치로 KO승을 거두고, 결승에서 구칸 사키와 접전을 펼친 끝에 판정승을 거두며 K-1 헤비급 타이틀을 획득했다. 그 후 K-1 월드 그랑프리 16강전에서는 러시아의 루슬란 카라예프에게 패했다.

이듬해인 2010년에는 K-1 헤비급 타이틀 방어전에서 피터 아츠를 무려 KO로 이기는 이변을 일으켰다. 경기 내용을 보면 아츠는 치고 빠지는 로킥과 엇박자 투원투에 말려들어 안면 펀치를 계속 허용하다가 다운되었는데 헤비급 타이틀 매치였기 때문에 체중 상한선이 존재했고, 늘 무제한급으로 싸우던 아츠가 95kg에 맞춰 감량한 것에 무리가 온 것이 아닌가 생각하는 팬들도 많았다. 그러나 세미 슐트무사시등의 파이터들로 인해 오픈웨이트는 결국 피지컬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격투기 팬들도 깨닫고 있던 시절이었고, 복싱같은 체급제를 도입한다면 교타로는 라이트 헤비급 세계 최강자가 될 거라며 이 경기를 통해 고평가를 받게 된다. 실제로 구칸 사키가 후에 글로리 라이트 헤비급 챔피언이 된 이후에 교타로의 복싱 전향을 아쉬워하는 팬들도 많았다.

타이틀 보유자 자격으로 K-1 월드 그랑프리에 진출했는데, 하필이면 첫 상대가 무관의 제왕 제롬 르 밴너였다. 2라운드 막바지에 교타로가 다소 몰리다가 공이 울려 살아났고, 3라운드에는 밴너가 교타로의 복싱 스킬에 말리며 엄청난 안면 타격을 허용하며 KO패 직전까지 몰렸지만 공이 울려 살았다. 이후 0-1로 연장이 선언되었다. 연장이 선언되자 밴너는 링을 이탈했고 교타로가 8강에 진출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산넘어 산이라고 제롬 르 밴너를 넘고 나니 세미 슐트가 그를 가로막았다. 대진표를 추첨할 때 세미 슐트가 자신의 상대로 결정되자 낙담하는 표정을 짓는 것이 카메라에 잡혔을 정도. 이 추첨식 때 교타로의 실시간 표정 변화는 짬처리 혹은 폭탄 돌리기라는 짤방으로 유행하기까지 했었다. 결국 여기서 판정패로 리타이어.

이후 K-1 다이너마이트에서 게가드 무사시와 대결했다. 놀랍게도 세미 슐트와 경기한지 단 20일밖에 되지 않는 짧은 텀에 경기가 잡혔다. 전반적으로 무사시가 교타로에게 말려들어가는 듯한 전개로 무난한 판정승이 예상되었으나, 20일이라는 짧은 텀 탓에 제 컨디션이 아니었는지 집중력이 풀린 듯한 모습을 보이다가 3라운드에 다운을 빼앗겨 판정패를 당하고 말았다.

게가드 무사시에게 패한 것을 마지막으로 복싱으로 전향했다.

4. 프로레슬링

2011년 K-1의 경영난이 심화되자 교타로는 프로레슬링 전향을 선언했다. 원래부터 프로레슬링에 관심이 있었던 것인지 2010년, 나카무라 신스케신일본 프로레슬링에서 이벤트 경기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그게 인연이 되었는지 2011년 동년 6월, 후나키 마사카즈를 상대로 프로레슬링에 데뷔했다.

5. 권투

타니카와 PD가 이후 K-1 경기 일정에 대해 상의하려고 했지만 교타로는 "타니카와라는 자는 누구인고? 나는 그런 사람은 알지 못한다네."라며 그를 무시했고, 복싱으로 전향했다.[2] 이 때 K-1 측에서 파이트머니 미지불이 있었음을 폭로하였고, 겨우 20일 밖에 안되는 텀을 두고 게가드 무사시와 경기를 시킨 것에 대해 좋지 않은 듯 한 감정을 가진 듯 한 발언을 했다.

K-1 정상급 아웃파이터들이 대개 그러하듯 호불호가 확 갈려서 복싱 전향을 했을 때 국내 팬들에게도 좋은 의미/안좋은 의미 둘 다로 주목받았었다.

주로 안티들에게 복서로써의 복싱 실력이 검증이 안됐다고 까였었다. 이시다 노부히로와의 2차전에서 발생한 판정승 논란도 그렇지만, 동태평양 헤비급 챔피언 결정전에서 솔로몬 하모노에게 KO패를 했을 때 국내의 안티들은 교타로의 복싱 실력은 킥 견제가 전제되는 킥복싱에서나 먹히는 수준일 뿐이라며 강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파일:교타로KO패.jpg

그런데 이후 단 1패도 하지 않고, 14연승을 기록했다.

솔로몬 하모노와 리매치를 갖지는 못했지만 이후 윌리 나시오를 이겨 동태평양 타이틀을 획득하고, 3차례의 방어에 성공했다.

2019년 2월의 인터뷰에선 앤서니 조슈아를 상대로 타이틀에 도전하고 싶다고 밝혔으나 큰 반향은 없었다.

그러나 교타로의 입장에선 다행히도 12월 21일에 다니엘 뒤부아를 상대로 WBC 타이틀 전의 기회를 얻었다.[3] 아시아인 사상 최초로 헤비급 세계 타이틀에 도전하게 되었으나 뒤부아의 벽돌같은 잽에 농락당하며 커리어 사상 두번째 KO패를 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이 경기를 끝으로 복싱에서 은퇴하고 다시 K-1에 복귀했다.

6. K-1 복귀

2021년 3월 28일 지츠카타 코스케를 상대로 K-1 복귀전을 치렀다. 결과는 2라운드 KO승. 같은 해 9월 20일에는 K-1 크루저급 챔피언인 시나 카리미안을 상대로 연장까지 가는 경기 끝에 스플릿 판정패했다. 2023년 3월 12일 이시이 사토시를 상대로 심판 만장일치 판정승을 거뒀다.

7. 파이팅 스타일

극단적인 아웃 복싱을 구사하는 킥복서이다. 깔끔한 카운터 한방을 노리며 경기를 운영하는 사와야시키 준이치나 클린치를 이용한 더티 복싱을 구사하는 무사시와 달리, 트리키한 테크니션이다. K-1에서 활동하는 동안 단 한번도 KO로 패한 적이 없다.

8. 평가

사타케 마사아키, 무사시의 뒤를 이어 활약한 K-1의 마지막 일본인 에이스이자 역대 동양인 입식격투기 최강자.

다만 하필이면 K-1 데뷔 시기에 무사시와 마사토로 대변되는 자국 스타 선수에 대한 판정 특혜 논란이 대단히 심할 때라 같은 아웃복서인 사와야시키 준이치와 더불어 비난을 많이 받았다. 거기에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패션 테러리스트급의 괴악한 패션 센스[4]가 더욱 어그로를 끌어 수많은 안티를 양성했다.

그러나 무사시나 마사토와 달리 판정 특혜는 받지 못했다는 점에서 도매금으로 비난받은 건 억울하기도 할 듯하다.


[1] 김민수 vs 김경석의 그 김경석이다.[2] 미스터 샤크 김민수와 심판 와다 료카쿠 사이의 트러블 건도 그렇지만 일본 격투계는 프로레슬링과 긴밀한 접점이 있고, 이는 입식격투기 단체인 K-1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타니카와는 이 때 본래 자기네 단체에서 활동하는 킥복서였던 교타로를 섭외하려 했던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복싱으로 다시 전향하는데 이러한 것들이 영향을 주었을 지도 모른다.[3] 다만, 알리나 타이슨 등이 보유했던 그 헤비급 타이틀은 아니고 WBC 실버 챔피언쉽이라고 하는 중간급 타이틀이다. 잠정 챔피언과 유사한 느낌이긴 하나, WBA가 잠정 챔피언 타이틀을 정규 챔피언의 존재 유무랑 상관없이 수여하고, 타이틀전도 정규 챔피언쉽과 별개로 치르게 하면서 WBC 역시 이와 비슷한 타이틀을 만들어낸게 실버 챔피언쉽이다. 하지만 잠정 챔피언처럼 정규 챔피언이 공석일 때 타이틀을 수여받거나 챔피언 복귀시 타이틀에 도전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 있진 않아 급은 상대적으로 낮은 편. 하지만 마이너 복싱 단체의 월드 챔피언쉽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위상이다.[4]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수시로 바꾸는 헤어스타일과 헤어칼라는 한번도 정상인 적이 없었으며, 경기용 트렁크도 당나귀 꼬리가 달린 것을 입는 등 평범하지 않은 것만 고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