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독일 대통령 선거 Die Reichspräsidentenwahl 191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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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율 | 89.6% | ||||||||
선거 결과 | |||||||||
후보 | 에베르트 | 포사도프스키 | |||||||
득표율 | |||||||||
73.1% | 12.9% | ||||||||
득표수 | 277표 | 49표 | |||||||
당선인 | |||||||||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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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바이마르 공화국에서 최초로 실시된 대통령 선거이다. 직접 선거를 규정한 바이마르헌법은 1919년 8월 11일까지 제정되지않아 의회에서 대통령 선거를 진행했다.2. 결과
1932년 독일국 대통령 선거 | ||||||
기호 | 후보명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순위 | 당선여부 |
1 | 프리드리히 에베르트 | | 277표 | 73.1% | 1 | 당선 |
2 | 포사도프스키베 | | 49표 | 12.9% | 2 | 낙선 |
3 | 필리프 샤이데만 | | 1 | 0.3% | 3 | 낙선 |
4 | 마티아스 에르츠베르거 | | 1 | 0.3% | 3 | 낙선 |
당시 흑적황연합을 이루고 있던 프리드리히 에베르트가 73.1%로 당선되었다.
프리드리히 에베르트는 필리프 샤이데만이 대통령직 보단 총리가 되어주길 원했지만 샤이데만은 이를 거부하며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결과는 단 1표만 얻으며 낙선했고 이후 프리드리히 에베르트에 의해 총리직을 맡았다.
하지만 샤이데만은 베르사유 조약을 거부하며 독일 내에 위기를 바로잡지 못했고 1919년 6월, 협상국의 최후통첩으로 인해 조약에 책임지고 사퇴했다.
이후 프리드리히 에베르트는 1925년 임기중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