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 사건 사고 요약표 | |
<colcolor=#000000,#dcdcdc> 발생일 | 1960년 4월 27일 |
유형 | 조종사 과실(비행 규정 미비), 설계 결함, 결빙 |
발생 위치 |
스베르들롭스크주 콜초보 공항 |
기종 | Il-18A |
운영사 | 아에로플로트 |
기체 등록번호 | USSR-75648 |
출발지 |
스베르들롭스크주 콜초보 공항 |
도착지 |
스베르들롭스크주 콜초보 공항 |
탑승인원 | 승무원: 5명 |
사망자 | 승무원: 1명 |
생존자 | 승무원: 4명 |
1. 개요
1960년 4월 27일, 아에로플로트 소속 Il-18이 훈련 비행 중 추락한 사고.2. 사고기
Il-18A는 꼬리 번호 75648(공장 번호 188000402, 일련번호 004-02)번으로 1958년 노동의 깃발 공장 공장에서 생산된 후, 민간 항공대 본부로 이전되었다. 10월 6일, 비행기는 울리야놉스크 민간 항공 훈련 센터에 이전되었고 이듬해 9월 10일 민간 항공대의 우랄 항공부의 120번째 항공 비행대에 전속되었다. 추락 당시 이 여객기는 총 390시간의 비행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3. 사고 전개
사고 당시 비행기는 조종사 V. D. 로바노프가 조종 중이었다. 당시 교관은 120번째 항공 비행대의 대행 사령관이자 최초의 여자 터보프롭 조종사 L. M. 울라노프였고 항해사 A. V. 자고르스키, 항공 기관사 I. I. 쿠즈네초프, 무선 통신수 I. M. 코르민이 훈련에 참가 중이었다.훈련 내용은 커튼을 친 상태에서 OSP 및 SP-50 시스템을 사용하여 접근을 수행하는, 즉 전적으로 계기판으로만 접근하는 훈련이었다. 당시 하늘은 하한이 250m인 적란운으로 뒤덮였고 가시거리는 6km였으며 적당한 7m/s의 북풍이 불었다.
승무원은 2번의 착륙으로 4번의 접근을 성공적으로 완료한 상태였다. 76°의 착륙 코스에서 5번째 접근을 수행하고 있던 승무원은 계획에 따라 착륙 비콘 DPRM과 BPRM 위를 날았고 BPRM에 접근하는 동안 고도가 100m일 때 울라노프가 커튼을 열라는 명령을 내렸다. 또한 조종사 로바노프의 명령에 따라 플랩이 착륙 위치인 40도까지 확장되었다.
70-80m 고도에서 260km/h의 속도로 30°정도로 하강하던 Il-18은 BPRM 위로 날아 활주로에 접근했다. 그러나 지상에서 30m 떨어진 곳에서 비행기는 갑자기 예기치 않게 하강 각도가 높아지면서 콘크리트 바닥에 기어를 부딪히게 된다. 충격 후 Il-18은 조금 더 날다가 활주로에 부딪히며 브레이크 시스템에 고장나게 되었고 또 다시 8-10m 상승한 후 세 번째로 활주로에 충돌하면서 오른쪽으로 미끄러지면서 현지 시각 21시 39분에 추락했다. 비행기에 화재가 발생하여 항공 기관사 쿠즈네초프가 사망했고 나머지는 멍과 화상, 가벼운 상처를 입고 탈출했다.
4. 사고 원인
처음에는 조종사 로바노프가 밤에 착륙 접근하는 동안 조종 기술 오류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사고 위원회에 따르면 실수로 접근하던 중 착륙 지점을 늦게 잡았고 조종사는 실수를 바로잡기 위해 잘못된 조치를 취했다. 사고 전 접근 중 엔진 2번과 3번을 공회전 상태로 나두어 두 개의 엔진만 제대로 작동되었고 설치된 1000kg 대신 600kg의 밸러스트 안정탱크를 뒷쪽 트렁크에 실어 무게 중심이 뒤로 쏠리게 되었다. 또한 위원회는 울라노바의 수동적 행동과 로바노프의 Il-18에서의 짧은 비행 시간을 사고의 원인으로 지목했다.위원회는 구름에 결빙이 관찰되었고 항공기가 가파른 하강에서 나왔을 때 과도한 제어 하중이 발생했다는 승무원의 의견을 무시했다.그러나 8개월 후인 12월 26일에 훈련 비행을 수행 중이던 Il-18A가 울리야놉스크 근처에 추락해 17명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게 되고 두 사고를 재조사 한 결과 원인은 실제로 항공기의 설계 결함이었다. 승강타와 플랩 확장 허용 각도에 대한 비행 운영 매뉴얼의 오류로 인해 플랩이 40° 각도로 확장되었을 때 안정판에 결빙이 발생하면 안정판의 흐름이 중단되고 엘리베이터가 급강하에서 회복하기에 충분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조종사들이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