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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선거 후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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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총평2. 울산광역시교육감3. 더불어민주당4. 국민의힘5. 진보당6. 우리공화당7. 무소속

1. 총평

전체적으로 군수와 도의원 보궐선거를 치른 창녕군을 빼고는 전체적으로 투표율이 매우 낮았다. 창녕군의 경우 재보궐이라고 해도 단체장 잔여 임기가 3년이나 되고, 선거 흥행 요소가 있었기 때문에 매우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그 외 지역에서는 양측 정치 고관심층과 지역 조직표를 제외하고는 나머지 유권자들이 투표를 대체적으로 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규모가 역대 재보궐 중에 가장 적었을 뿐더러 유력 후보들이 나오지 않았고, 선거일 당시 전국적으로 내린 비로 인해 유권자들의 발길이 적었던 점이 컸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당력이 집중되었던 청주시의회를 여당 우세로 재편하는데 성공하고 포항시의회와 구미시의회 선거에서 무난한 승리를 거뒀다. 다만 울산 남구의원 선거에서의 패배와 전주시 을에서의 낮은 득표율로 인해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받게되었다. ###

더불어민주당은 적절히 만족한 분위기다. 비록 당력이 집중되었던 청주시의회 선거에서 패해서 우위를 빼앗겼지만, 보수 우세의 울산 남구의회 선거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진보당은 전주시 을에서 민주당계 무소속 후보를 누르며 국회의원 의석을 확보했으며, 울산에선 천창수 교육감을 지지하던 노동계 및 진보 세력들과의 연계 역시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로써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선전할 기회를 잡게 되었다.

2. 울산광역시교육감

전임자였던 노옥희 전 교육감의 지역 평판이 꽤나 좋았던 데다, 선거법 위반 등 별다른 귀책 사유도 없었던지라[1] 상대적으로 선거 판세가 노 전 교육감에 대한 추모 분위기에 가까웠다. 때문인지 노 전 교육감의 배우자이자 마찬가지로 교육계에 몸 담아왔던 진보 성향의 천창수 후보가 보수 성향의 김주홍 후보를 상대하면서 관내 모든 자치구·군에서 승리하면서 낙승을 거두었다.

특히 각각 현대자동차 울산공장과 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이 있는 북구동구[2]에선 무려 71%와 69%를 득표하면서 천 후보가 김 후보를 더블 스코어 이상으로 꺾었으며, 보수 성향이 강한 중구, 남구, 울주군에서조차 천 후보가 10%p 이상 앞섰다. 천창수 당선자는 "당신이 꿈꾸던 학교를 내가 만들겠다"며 고인의 교육철학을 계승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
반면, 김주홍 후보는 보수 진영 단일 후보로 출마해서 교육감 선거에 두 번, 그것도 두 번 모두 10%p 이상 격차로 낙선을 하는 불명예를 갖게 되었다. 이로 인해 보수 측에선 다른 후보를 찾아야 될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3. 더불어민주당

대부분의 지역에서 2022년 당시보다 득표율을 높이는 성과를 올렸다. 특히 울산 남구의회 선거는 울산 중에서도 보수가 우세한 텃밭 지역이었기에 승리하게 된 것은 예상 밖의 성과였다. 그리고 비록 같은 영남권 내에서 보수의 아성을 넘지는 못했으나 구미시 도의원 선거에서는 35%, 창녕군 도의원 선거에서는 25% 가까이 받으면서 선전했다. 즉, 보수 텃밭인 영남권에서 나름 유의미한 성과를 이루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창녕군수 선거에서는 10%를 겨우 넘는데 그쳐 도의원 선거에 비해 절반에 그쳤고, 청주시의회 선거도 민주당계 후보의 탈당 등으로 인해 결국 패하게 되었으며[3], 군산시의회 선거 역시 의외로 어려운 승부를 한 것이 아쉬운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4] 민주당적으로 출마한 후보들의 결과가 청주와 울산에서 엇갈리면서 이것이 내년에 치를 예정인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어떻게 작용할지도 관건이 되었다.

4. 국민의힘

텃밭인 경북의 광역과 기초의회 및 창녕군 도의원 선거에서 무난하게 이겼고, 청주시의회 선거에서도 이겨 시의회 과반을 달성하기는 했으나 울산 남구의회 선거에서는 민주당에게 예상 밖의 패배를 당했다. # 특히 보수에 친화적인 영남지역에 전임자[5]가 별다른 귀책 사유도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민주당에게 빼앗긴 점이 뼈아프다.[6] 또한 압승한 지역이기는 하지만 포항시의회 선거에서는 자당 소속이었던 무소속 후보와의 대결에서 58%의 득표로 그다지 큰 득표로 당선되지는 못했다.[7]
한편 호남 지역 두 곳은 선거비 반액 보전 선인 10%를 넘지 못하였는데, 군산과 전주는 지난 8회 지방선거 당시 각각 13%와 15%대를 기록하면서 나름 선전했던 것과 비교하면 득표율 측면에서 고전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재보궐 당시 전라북도 지역의 후보 공천에 힘을 뺀 모습을 보여준 부분이 악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5. 진보당

투표율이 낮아 조직력이 강력한 진보당에게 선거가 유리하게 흘러갔고 천신만고 끝에 모든 동에서 압승을 거두면서 3년만에 다시 원내로 복귀하게 되었다.[8] 이로써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원외정당으로의 전락이란 위기를 극복하며 기초단체장과 광역의원/기초의원, 국회의원까지도 확보한 정당이 되면서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전망이 밝아졌다.

6. 우리공화당

청주시 나 선거구에 후보를 냈으나 예상대로 2%가 채 안 되는 미미한 득표율을 보이며 존재감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

7. 무소속

일단 호남은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한 임정엽 전 완주군수와 김호서 전 전북도의원이 서로 갈등만 하다가 강성희 후보에게 각개격파를 당하면서 기초의원 출마 경력만 있는 후보에게 밀리는 굴욕을 겪게 된다. 특히 김호서 후보는 안해욱 후보에게도 밀리는 굴욕을 겪게 되었다. 게다가 이 두 후보는 당의 무공천 방안을 수용하지 않고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강행한지라 김영종 전 구청장의 사례처럼 영구 복당 금지 처분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로 인해 과거 호남 정치권의 터줏대감이었던 난닝구의 세가 사실상 몰락했다는 게 증명되었다. 박지원은 아예 대놓고 임정엽을 지원했고, 완산구에서 정치를 해왔던 호남 토호 세력들도 모두 임정엽을 지원했는데도 7%p란 적지 않은 격차로 낙선했기 때문이다.
청주는 무소속 후보인 정우철 후보가 아예 그야말로 변명의 여지가 없는 트롤링을 저질러버렸다. 물론 청주시의회 후보로 출마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음주운전 전과가 있었던 것도 영향이 있었겠지만, 무소속 후보가 표를 잠식하지 않았다면 아슬아슬하게 앞설 수 있었다. 특히 정우철 후보는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는 치명적인 결점이 있기에 더더욱 그렇다. 결국 정우철은 정치 생명이 사실상 끝났고, 영구 복당 금지 처분도 거의 기정사실화 되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영남은 후보별로 엇갈렸는데 일단 창녕군수가 된 성낙인 후보나 비록 졌지만 40%대로 선전한 이상도 후보는 그래도 상황이 좋지만, 한정우 후보는 낙선을 한데다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집행유예를 받았기에 정치 생명에 치명상을 입게 되었다.

[1] 딱히 알려진 기저질환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심장마비돌연사했다.[2] 노 전 교육감은 동구에 있는 현대공고와 명덕여중에서 오랫동안 수학교사로 지냈으며, 18대 총선 당시 동구 지역구에 출마했었다. 일반사회교사인 천창수 역시 울산 지역을 중심으로 교사 생활을 하며 전국사회교사모임 회장까지 지냈다.[3] 다만 여기는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음주운전 전과도 발목을 잡았다.[4] 다만 청주와 군산에서 맞붙은 무소속 후보들이 모두 민주당계 후보였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5] 의회 개원 1주일 만에 대동맥 파열로 급사.[6] 특히 이 지역구는 2인 선거구인데 10개월 전 지방선거 결과 1, 2위가 모두가 국민의힘 소속이었던 지역이다. 이 당시 3위 낙선자가 최덕종이었다.[7] 단 포항시의회 쪽은 맞붙은 무소속 후보도 국민의힘에서 활동하다 탈당한 사람이라는 걸 감안하면 텃밭임에도 힘을 쓰지 못했다고 평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8] 전북 기준으로 진보정당에서 국회의원 당선자는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강동원이 유일했다. 그 와중에도 강동원은 참여계로 진보정당보다는 민주당계 정당과 유사한 행보를 보였고 실제로 당선 후 약 1년 뒤에 탈당하여 민주당으로 돌아갔다. 사실상 전북에서의 첫 진보성향 국회의원이 나왔다 해도 무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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