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14 15:36:26

21세기 모노리스

1. 소개2. 뮤직비디오

1. 소개

1996년에 발표된 015B의 6집 "The Sixth Sense"의 수록곡.

015B의 6집 "The Sixth Sense"는 대중음악치곤 꽤나 진지하고 무거운 주제들을 다룬 음반이었는데 그중 대표곡이라 할만한 곡이 바로 이곡이었다. 6집은 무거운 주제에도 불구하고 1996년이라는 시점이 21세기로 향하는 세기말이라는 특수성 때문이었는지 26만 장이나 팔리는 기염을 토했다.

다만 당시 앨범 발매 시기가 음반시장 최전성기의 마지막 무렵이었다는 점, 015B의 3집과 4집은 100만 장, 5집은 50만 장을 넘긴 앨범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6집의 흥행은 실패에 가까웠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장호일의 언급에 따르면 "몇 억 원이나 되는" 뮤직비디오 제작비 덕에 역대 앨범 중 6집이 본인들에게 들어오는 돈이 가장 많았다고 한다. 실제로 6집 활동 당시 주로 전파를 탔던 곡은 앨범 전체의 분위기와는 다소 동떨어진 '콩깍지', '나의 옛친구' 등이었다.

6집의 음악성을 대표하는 노래가 바로 21세기 모노리스다.

앨범 속지에 reference movie라고 해서 영감을 받은 영화들에 대해 언급했는데 그 중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가 있다. 21세기 모노리스라는 제목도 당연히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에서 등장하는 모노리스에서 따온 것으로 보인다. 그외에 블레이드 러너, 베를린 천사의 시, 세븐, 캘리포니아 등의 이름이 보인다.

보컬은 신경필이라고 되어있으나, 실은 윤종신이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1].

뮤직비디오도 화제가 되었는데 당시로서는 한국 뮤직비디오 역사상 최대 제작비(3억 원)를 들인 작품으로 SF영화를 연상시키는 블록버스터급 뮤직비디오라는 수식어가 달려 있었다. 뮤직비디오 감독은 훗날 한반도의 공룡 시리즈와 냉장고 나라 코코몽, 영화 유령(1999)과 내츄럴 시티(2003)을 제작하기도 한 민병천.



당시 보도된 촬영현장 모습. 자막에는 촬영현장이 '고산 기지창'으로 나오는데, 수도권 전철 5호선고덕차량사업소다. 뮤직비디오에서 역으로 진입할 때의 선로가 하단에 불이 들어오면서 SF적인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이게 실상은 차량사업소의 정비고 선로라서 그렇다. 차량 하부를 점검하기 위해서는 선로 아래에서 불을 밝혀야 하기 때문. 뮤직비디오에서 열차에서 사람이 내리는 장면도 잘 보면 전동차인 것을 알 수 있다.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일어나면서 일각에선 시대를 앞서본 노래라고 평가했다.

2. 뮤직비디오

21세기 모노리스 (21st Century Monolith) - 015B (1996년)
벤치위의 노신사 아무 말없이
담배에 불을 붙이고는 지친 몸을 쉬네요
시들어진 꽃들을 어루만지며 세상을 이긴 승리자에 탄식을 하고
흐릿해진 하늘을 보며 어린 시절 꿈들은 한숨이 되가고
끝도 없이 이어만지는 폭풍우의 계절은 눈물을 뿌리네
(간주)
역사라고 불렀죠 파괴를 믿고 화폐를 믿고
과학이란 종교를 믿었는데
누구를 탓할까요 버려진 낙원 신은 더 이상 기다리지 않는답니다.
위대했던 인류의 꿈은 자신의 관을 직접 만들어만 갔고
끝도 없이 올려간 탑은 예정된 싸움 속에 무너져 버리죠
天·地·人 三極의 道가 무너졌다
서기 2032년
지구는 자원고갈, 식량부족, 그리고 각종 사이보그(B2) 범죄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구와 환경이 비슷한 A-4 혹성에 인류의 미래를 건 Dream City를 건설하게 되었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수많은 노동자들이 징집되었고, 행성간 노동조절위원회는 7년 동안의 건설 노동에 지친 1차 파견 노동자를 귀환시키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미 지구는 핵전쟁의 위기로 치닫고 있는데…

뮤직비디오의 줄거리는 A-4 행성[2]에서 7년간 일하다가 지구로 돌아오는 남자와 그런 그를 기다리는 아내와 딸이 서로 재회를 고대하지만 그들을 둘러싼 상황은 동북아 전쟁 위기, 국제정세 악화, 제 3차 세계적 전쟁 위기 등으로 점점 험악해진다. 그리고...

남자는 무사히 도착해 기차에서 내리고, 플랫폼에서 아내와 딸을 발견하고 재회의 기쁨을 누리려 할 때 그 순간 핵폭탄이 떨어지고 모두 몰살당한다라는 내용이다.

극의 중반에 이르면 열차의 운전사인 여성이 자살용 앰플을 보는 장면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이 인물은 추후 결과를 알고 있는 것으로 짐작되며 그것을 알고도 열차를 서울에 착륙시킨다. 비디오 초반에 신문을 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신문 1면에 나온 기사가 중국핵무기를 사용할 것임을 경고했다는 뉴스가 있는 것으로 보아 종반부에 핵을 한국에 쏜 나라는 중국임을 알 수있다.

사실 이들의 비극적 운명은 이미 초반부에 예고되어 있었다. 초반부에 나오는 뉴스를 잘 들어보면 귀환하는 노동자들이 탄 기차가 도착하는 역의 이름이 스틱스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저승으로 가는 강의 이름이란걸 생각하면...

묘하게 이 뮤직비디오에서 A-4와 지구를 잇는 교통수단은 기차다. 게다가 조종석은 보잉 747...

영상미나 연출은 지금봐도 낡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다만 CG 파트는 잘 만든 CG 그래픽 수준이며 실사같다는 느낌은 없다. 물론 이것은 시기상 CG영상의 태동기였기에 기술적인 한계로 봐야 할 것이다. 참고로 1996년은 게임기로 치면 PS1이 나오던 시기였다.

015B 본인은 등장하지만 2초도 안되는 짧은 분량이며, 노래를 부르거나 연주하는 장면은 일절 나오지 않는다. 참고로 015B 멤버 옆에 있던 여성은 당시 인터뷰를 위해 촬영장을 방문했다가 즉석에서 캐스팅된 케이스.

이 뮤직비디오는 이후 민병천 감독이 데뷔작으로 제작중이던 SF영화 회중도시에도 이미지를 따올 예정이었다. 아마 뮤직비디오 만을 위해 3억이라는 거액을 들인 것이 조금 부담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쉽게도 회중도시는 결국 개봉되지 못했으며, 이후 1999년 작 유령이 스크린 데뷔작이 되었다.

이후 같은 감독에 의해 제작된 스페이스 에이의 주홍글씨 뮤직비디오와 세계관이 이어진다. 실제로 21세기 모노리스에서 뉴스를 통해 나온 장면이나 내부 조종석 장면 등이 그대로 사용되었다. 주홍글씨의 시간적 배경은 1년 뒤인 2033년. 21세기 모노리스에서는 배경설정 정도로만 언급된 사이보그 B2를 소재로 한 내용이다. 다만 이쪽은 21세기 모노리스만큼 영상미가 뛰어나진 않으며, 오히려 조잡한 느낌이라 같은 감독이 만든게 맞는지 의심될 정도. 거기다 블레이드 러너와 공각기동대를 노골적으로 따라한 장면이 많아 논란이 되기도 했다.

후에 제작된 같은 감독의 작품인 내츄럴 시티와도 여러모로 겹치는 설정들이 있다. 사이보그들의 존재와 사이보그들의 탈출로 인해 발생한 문제, 과거에 핵전쟁이 있었다는 점으로 인해 이 뮤직비디오가 내츄럴 시티의 프리퀄이 아닌가 추정하는 이도 있다. 내츄럴 시티는 2080년대가 시간적 배경이므로 21세기 모노리스 & 주홍글씨로부터 약 4~50년 정도 미래라는 설정이 된다. 어쩌면 전술했던 회중도시의 컨셉이나 설정을 계승한 작품이 내츄럴 시티였을 수도 있겠다. 둘 다 제목에 도시가 들어가기도 하니 말이다. 다만 내츄럴 시티는 다른 제작사로 옮긴 후 만든 영화이다보니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공식적으로 이어진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1] 이 당시 윤종신은 015B가 이전까지 속해있었던 대영A/V에 남아있었고, 015B는 6집을 LG미디어를 통해서 냈다. 이 때문에 윤종신이 본명 대신 가명을 썼다고 한다.[2] 뮤직비디오에는 혹성으로 표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