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F 피오렌티나 관련 문서 | ||||
{{{#!wiki style="margin:0 -10px -5px" {{{#E31F16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231F20,#FFF | <colbgcolor=#5a318c> 정보 | <colbgcolor=#fff> 산하 스포츠단 | ACF 피오렌티나 · ACF 피오렌티나 펨미닐레 · ACF 피오렌티나 프리마베라 | |
선수단 | ACF 피오렌티나 선수단 · ACF 피오렌티나 선수단 (간략) | |||
역사와 문화 | 역사 | 역사 · 유니폼 | ||
역대 시즌 | 2022-23 · 2023-24 (리그) · 2024-25 (리그) | |||
우승 기록 | 1부 | 1955-56 · 1968-69 | ||
2부 | 1930-31 · 1938-39 · 1993-94 | |||
코파 이탈리아 | 1939-40 · 1960-61 · 1965-66 · 1974-75 · 1995-96 · 2000-01 | |||
수페르코파 이탈리아나 | 1996 | |||
UEFA 컵위너스컵 | 1960-61 | |||
미트로파컵 | 1966 | |||
관련 인물 | ACF 피오렌티나 초대~50대 감독 · ACF 피오렌티나 51대~ 감독 ACF 피오렌티나 명예의 전당 | |||
응원가 | Canzone Viola | |||
구단 시설 | 홈 구장 | 스타디오 아르테미오 프랑키 | ||
훈련 시설 | 비올라 파크 | |||
기타 | 연고지 |
| |
ACF 피오렌티나 프리마베라 | |
ACF Fiorentina Primavera | |
<colbgcolor=#5A318C><colcolor=#fff> 정식 명칭 | Associazione Calcio Firenze e Associazione Fiorentina S.p.A. Primavera |
별칭 | 비올라 (Viola)[1] 질리아티 (Gigliati)[2] |
약칭 | FIO |
창단 | 1926년 8월 29일([age(1926-08-29)]주년)[3] |
소속 리그 | 프리마베라 1 (Primavera 1) |
연고지 | 피렌체 |
홈구장 | 스타디오 코무날레 피에로 토리니 (Stadio Comunale Piero Torrini) |
라이벌 | - 데르비 델 아펜니노 {{{#!wiki style="display: inline; background-color: currentcolor; padding: 3px 3px; border-radius: 2px; font-size: 0.8em"[4] |
구단주 |
로코 B. 코미소 (Rocco B. Comisso)[5] |
단장 |
조 바론 (Joe Barone) |
감독 |
다니엘레 갈로파 (Daniele Galloppa) |
우승 기록 | |
프리마베라 1 (3회) | 1970-71, 1979-80, 1982-83 |
1. 개요
1. 개요
ACF 피오렌티나의 유소년 구단. 많은 피오렌티나의 유망주가 1군에 데뷔하기 전에 이곳에서 약 1~3년간 경험을 쌓는다.[1] 이탈리아어로 보라색, 보랏빛을 뜻한다.[2] 이탈리아어로 '백합으로 장식한' 이라는 뜻으로 Gigliato의 남성 복수형이다. 피렌체 시의 문장을 보면 붉은 문양이 있는데 이 문양이 백합이며 피오렌티나의 로고에도 들어가 있다.[3] #[4] 정식 더비 매치가 존재하는 볼로냐보다 사이가 훨씬 더 안 좋으며 세계 곳곳에 있는 유벤투스 굿즈 상점이 피오렌티나 소속 도시인 피렌체에서는 없을 정도다.[5] 코미소는 세리에 A 구단 중 잠재성이 높은 곳을 인수하고 싶다는 꿈이 있었다고 한다. 처음엔 AC 밀란을 인수하려 했으나 실패했고 그 후에 피오렌티나를 인수하는데 성공했다. 여담으로 세리에 A 구단을 인수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가 본인이 유벤티노라 그런 것인데 피오렌티나와 유벤투스의 관계를 생각하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원래 구단주는 델라 발레 형제로 17년 동안 피오렌티나를 이끌었지만 2018-19 시즌 피오렌티나의 실망스러운 성적과 서포터들의 사퇴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구단을 팔았다. 2년 전에도 구단을 팔겠다면서 성명 발표를 했지만 너무 높은 기준을 세워 아무도 사려고 나타나지도 않아 2년간 피오렌티나는 딱히 투자를 받지 못했다. 때문에 선수단의 질이 떨어졌고 중위권 감독인 스테파노 피올리의 한계에 이른 전술이 시너지를 이뤄 강등권 사투를 벌인 암흑기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