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Bye Bye Belgium은 RTBF의 La Une에서 2006년에 방영된 플란데런이 독립을 선언한 상태에서 국왕이 출국한 상황을 가정한 가상의 뉴스특보 프로그램이다.[1] 이 프로그램은 20시 15분의 정규방송 프로그램인 Question à La Une이라는 프로그램을 빌려 시작했다. 초반부터 가짜 티를 내긴 했지만 어쨌든 뉴스특보 형태로 나가야 했기 때문에 편성표는 정규방송으로 예정됐을 것이다.이미 가짜 임이 밝혀진 지 한참 지난 지금 시점에서 보면 플란데런이 독립을 선언한 상황 자체는 허구이긴 하지만 그것과 관련된 내용을 제외한 나머지는 대부분 사실이기 때문에 프랑스어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은 벨기에를 이해하기 위해 볼만한 부분이 꽤 있다. 해당 프로그램이 방영된 해는 기네스북에 오른 정치위기가 일어나기 4년 전이었다.
2. 배경
1960년대 남북부 경제력 역전과 지속된 언어갈등으로 1980년대에 오늘날과 같은 지역과 공동체 정부가 만들어졌다. 꾸준한 개헌으로 연방정부의 권한은 축소되어왔으나, 경제력이 괜찮은 북부 지역(브뤼셀 제외)은 보수정당을 선호하는 현상이, 경제력이 좋지 못한 남부 지역은 진보정당을 선호하는 현상이 지속되자 북부지역에서는 북부지역이 낸 세금이 연방정부의 예산이 되어 남부지역으로 빠져나가며 그 중 일부는 비리로 새어나가고 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독립해야한다는 강성 민족주의자들의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 2003년 총선에서는 극우정당인 플람스 연합(현 플람스의 이익)의 의석이 이전 보다 많은 18석을 획득한 상태였다.3. 내용
[2]플란데런이 일방적으로 독립을 결정했다는 것을 특보로 알리면서 시작된다. 당시 국왕이었던 알베르 2세는 해당 결정에 동의할 수 없다는 의사를 표했다고 하는데 출국했다고 한다. 목적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뉴스 진행자는 플란데런에 있는 RTBF 기자를 연결하며 독립에 기뻐하는 분위기를 전한다. 나뮈르에 있는 기자는 현재 왈롱 의회는 조용하며 이미 독립에 동의할 다수는 왈롱정치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언급한다. 이후 몇분 뒤 긴급회의가 있을 것이라는 소식을 전한다. 바로 다음에 왈롱의회 의장의 인터뷰가 나오는데 전화를 끊더니 플란데런이 독립을 선언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언급한다. RTBF 보도/스포츠 부문 이사와의 인터뷰 이후 바리케이드로 경계가 막혀 북부 지방으로 트램이 지나가지 못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후에도 계속 플란데런의 독립을 가정한 인터뷰가 계속 나온다. 인터뷰 당사자들은 대체로 독립을 어이없어한다. 방송 30분 57초 쯤부터 진행자가 픽션이라고 처음 언급하기 시작한다. 이후 잊을 만하면 픽션이라고 언급한다. 각종 인터뷰나 정치인 회의장면 등이 끝난 이후에 북부지역을 연결하니 여기는 축제 분위기며 얼마 지나지 않아 주민투표를 실시할 것이라고 한다.[3] 브뤼셀에 연결된 기자에 의하면 1. 왈롱과 함께 독립, 2, 플란데런의 제안대로 브뤼셀이 플란데런돠 독립하는 것. 3. 브뤼셀 스스로 주변국과 논의하며 결정한다는 브뤼셀 독립 시나리오에 대해 언급한다. 이후 브뤼셀 자반템 공항이 플란데런에 있어 출입국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내용이 나오고 정치인들의 회의 장면도 나온다. 1시간 10분 쯤에는 독립할 것인지 다른 나라에 속할 것인지 왈롱과 함께 남을 것인지를 결정할 것이라는 독일어 공동체 총리의 입장이 나온다. 플란데런이 독립됐다는 사실을 알리자 그런 일은 있어서는 안된다며 넋이 나간 브뤼셀 주민 그리고 카탈루냐에서 플란데런 독립에 기뻐하는 내용도 나온다. 브뤼셀 궁전에 다시 연결했을 때는 벨기에 깃발을 든 연합 지지자들이 모였다는 소식을 전한다 그러면서 기자들 중 처음으로 픽션이라는 것을 언급한다. 방송 종료 전에는 보도/스포츠부문 이사가 여러가지 방식을 고민했지만 경각심을 주기 위해 이렇게 현실적인 픽션이라는 방식을 선택했다고 하며 프로그램이 끝나면 관련된 주제의 토론이 준비돼있다는 것을 알리고 토론장을 통해 간략하게 소개한 다음 진행자의 종료멘트로 프로그램을 마친다.
4. 프로그램이 다룬 문제들
상세하게 다루진 않았지만 간략하게 다룬 문제들은 아래와 같다.- 플람스 운동과 왈롱 운동 그리고 벨기에의 지역갈등
- 플란데런의 민족주의자들(극우 포함)
- 언어경계와 언어시설
- BHV 문제
- 벨기에의 부채
5. 논란
당시 아래의 논란을 불러왔다. 재평가를 받은 지금도 아래의 논란 자체가 없어진 것은 아니다.- 경각심을 주기 위해 사실이 아닌 거짓을 보도해도 되는가?
- 플란데런 민족주의자들을 희화화한 것이 아니냐?(플란데런 측 주장)
- 몰래 카메라 형태로 민족주의자들의 식사 장면을 내보냈는데 그 중 극우 인사가 있다. 극단주의자의 발언 자체를 허용하지 않는 보도원칙(cordon sanitaire)을 어긴 게 아니냐?
-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라지만 이 프로그램 때문에 네덜란드어권을 자극해서 민족주의자들의 의석이 늘어난 게 아니냐?
6. 실패한 옥의 티?
가짜 임을 보이기 위해 방송 처음부터 우스꽝스러운 그림을 채널로고 자리에 붙여놓았고 이것은 아마도 픽션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넣어 은은하게 가짜 티를 냈지만 시청자들은 그것을 방송사고라고 판단할 정도로 내용이 진짜 같아서 문의 및 항의전화가 빗발쳤다고 알려져 있다. 내용을 보면 플란데런 정치인과 민족주의자의 인터뷰라거나 왈롱 정치인 인터뷰 그리고 RTBF 보도/스포츠 부문 이사[4]까지 등장한데다 시청자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전화번호까지 걸어놓았기 때문에 진짜로 착각하기 좋았다. 29분 33초 쯤에 초반에 문구로 나갔던 이것은 아마도 픽션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가 하단 자막으로 나간다. 30분 57초 쯤 돼서야 진행자가 픽션이라고 처음 언급한다. 그 전까지는 TV뉴스 혹은 뉴스특보라고 했다. 35분이 되면 아예 이것은 픽션입니다라는 자막이 나간다. 이 프로그램은 100분 정도인데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적어도 약 31분간 패닉상태였다고 짐작할 수 있다. 자막이 나간 뒤에도 마지막에 나오는 군인이 낙하하다가 레이어스 타워가 부서지는 어설픈 CG를 제외하면 눈을 의심할 정도로 진지한 내용은 계속 이어졌다.사전녹화분은 정치인과 시민들이 연기자가 아니다보니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일부 있긴 했으나[5], 대체로 진지한 자세로 임했기 때문에 티가 많이나는 수준은 아니며 기자와 뉴스 진행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지하게 임했기 때문에 거짓이라고 쉽게 생각할 정도는 아니다.
7. 당시 반응
정치권에서는 한 목소리로 RTBF가 무책임하다고 비판했다.방송 당일 프랑스어 공동체 시청각부 장관은 장폴 필리포 대표를 소환할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위의 페이크 다큐멘터리가 방송에 나간 다음 날인 2006년 12월 14일의 프랑스 2 20시 뉴스에서 관련 내용을 다뤘다. 바로 아래에 있는 영상의 6분 30초부터 보면 된다.
8. 재평가
당시에는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 특히 2010년 이후의 상황이 암울하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이 재평가되어 현재 벨기에 프랑스어권 내에서는 비판하는 목소리는 방영당시 만큼 크지는 않다.방송한 지 10년 뒤 2016년에 19시 30분 뉴스에서 이 일을 다시 다뤘다 당시 앵커를 담당했던 프랑수아 드브리고드는 당시 상황을 "정신병 걸린 것 같은 상황(schizophrénique)"이라고 회고했다. 전문가 인터뷰도 덧붙여 다뤘는데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방영당시보다는 비판을 덜받고 있다고 한다.
현재 플란데런의 분위기가 2006년보다 훨씬 험악해진 탓에 이 페이크 다큐멘터리는 꾸준히 재평가 받고 있다.
9. 이후
2007년 7월 4일 해당 프로그램으로 인해 CSA로부터 경고를 받았다.2010년도에 N-VA가 부상하면서 기네스북에 오른 벨기에의 정치 위기가 발생했다. 이후에도 불안정한 벨기에의 정치상황이 계속되었고 2025년에는 플란데런 민족주의자인 바르트 더베버르가 총리가 되어 벨기에의 독립이 전혀 가능성이 없는 상태는 아니게 되었다. 바로 다음 인터뷰를 통해 벨기에의 부채와 문화재의 분할문제가 언급된다.
2017년에 카탈루냐가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포했는데 이 프로그램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았는지 방송 15년 후 인터뷰에서 이 사건을 언급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플란데런이 일방적으로 독립을 선언한 적은 없다.
해당 프로그램을 진행한 프랑수아 드브리고드는 1997년부터 2024년 11월까지 27년간 La Une의 저녁뉴스를 진행했던 간판앵커였다. 건강문제나 외압에 의한 하차는 아니고 본인의 의사로 결정한 것이다. 이유는 긴 싸움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느껴서라고 한다. RTBF를 그만둔 것은 아니고 원래 좋아하는 음악이나 문화 프로그램 담당 진행자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10. 제작비화
아이디어는 필리프 뒤티욀 PD가 제안했다고 한다. 당시 플란데런의 독립에 대해 가볍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충격요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듯하다. 제작기간은 2~3개월 정도라고 하며 비밀리에 추진했다고 한다. 인터뷰에 응한 정치인들에게는 플란데런의 독립을 가정한 상황이라고 안내하고 진행했다고는 하는데 알렉산더르 더크로 전 총리의 아버지인 헤르만 더크로가 해당 방송이 나가고 난 뒤 이런 방송에 내 인터뷰가 나간다고 통보하지 않았다라고 불쾌감을 표한 것을 보면 비밀리에 추진하기 위해 제대로 안내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프로젝트 성격상 별도의 코드명으로 불렀는데 코드명이 카린과 르베카였다. 당시 진행자였던 프랑수아 드브리고드는 프로젝트가 마음에 들어서 수락했고 다음에 비슷한 것을 한다는 제안을 받으면 하겠다고 했다.11. 참고 자료
- 15 ans après Bye-bye Belgium : les coulisses d’une émission toujours controversée - RTBF
- Bye Bye Belgium: en 2006, le docu-fiction de la RTBF créait un électrochoc - RTBF
[1] 생방송으로 진행됐지만 페이크 다큐멘터리로 자주 언급된다.[2] 이 영상은 RTBF의 기록물 보관소인 sonuma에 있는 Bye bye Belgium을 공식 보관소 유튜브가 가져온 것이다.[3] 임시수도에 대한 언급도 한다.[4] RTBF의 조직구조를 보면 최고 경영자는 Administrateur général인데 밑에 각부문의 directeur général을 두고 있다. 해당 프로그램에 세부 부문이 적혀있진 않았지만 보도/스포츠 부문 이사로 보인다.[5] 왈롱의회의 불이 다 꺼져있다거나 브뤼셀 유럽의회, 집행위원회 등이 수상할 정도로 조용하긴 했으나 비록 벨기에의 의원이긴 하지만 유럽의회 의원 인터뷰 자체는 진행되었고 왈롱의회도 의장이 촬영에 협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