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05 16:50:45

FC 인테르 투르쿠/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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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시즌 2023 /리그 · 2024 /리그
더비 매치 파일:투룬 팔로세우라 로고.svg 투룬 더비
구단 시설 베리타스 스타디온
관련 인물 스테판 호칸스 · 역대 감독
기타 투르쿠 · 베이카우스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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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FC 인테르 투르쿠의 탄생

1990년, 스테판 호칸스(Stefan Håkans)의 아들 패트릭 호칸스(Patrik Håkans)와 그의 친구들은 축구를 계속 이어갈 팀을 찾고 있었다. 소년들은 Turku Nappulaliiga Linna 지역 축구 동아리에서 뛰었고, 그들의 홈구장은 학교 옆의 모래밭이었다. 하지만 팀은 모집을 종료하게 되었고, 소년들이 나이가 들면서 동아리를 바꿔야 했다.

당시 투르쿠의 축구 클럽인 TPS와 ÅIFK는 소년들에게 적합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소년들은 계속해서 축구를 하고자 했다. 결국 스테판 호칸스는 자신의 독특한 방식으로 말했다. "새 클럽을 찾는 것이 그렇게 어렵다면 우리가 만들어보자". 그리하여 1990년, 아이들의 부모들이 모여 투르쿠에 새로운 축구 클럽을 설립한다.

1.1. 구단명

구단 설립 후,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구단명이었다. 가장 무난한 이름인 'FC 투르쿠'는 매력적인 옵션으로 보였지만, 당시 투르쿠에서 활동하던 FC 투르쿠-82라는 팀이 있었다. 그래서 전 세계에서 모델을 찾았고, 구단명을 FC 인테르 투르쿠로 정하게된다.

1.2. 엠블럼

구단 창단 직후인 1990년 여름, 이탈리아에서 FIFA 월드컵이 열렸다. 대회에서 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의 스타였던 로저 밀러는 투르쿠의 어린 선수들을 매료시켰다. 당시 카메룬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를 본떠 인테르 투르쿠의 엠블럼을 정하게 된다. 소년들은 엠블럼을 직접 스케치했다. 로고의 파란색과 검은색은 소년들이, 빨간색은 디자이너의 제안으로 그려넣었다. 바깥쪽의 글씨는 클럽의 가치, 두개의 언어[1]및 국제성을 상징한다.

2. 역대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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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인테르 투르쿠 역대 리그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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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리그 순위
1992 4 III 디비시오나 6
1993 3 II 디비시오나 2
1994 2 위쾨넨 3
1995 2 위쾨넨 1
1996 1 베이카우스리가 6
1997 1 베이카우스리가 10
1998 2 위쾨넨 3
1999 1 베이카우스리가 5
2000 1 베이카우스리가 7
2001 1 베이카우스리가 5
2002 1 베이카우스리가 5
2003 1 베이카우스리가 7
2004 1 베이카우스리가 4
2005 1 베이카우스리가 5
2006 1 베이카우스리가 10
2007 1 베이카우스리가 9
2008 1 베이카우스리가 1
2009 1 베이카우스리가 5
2010 1 베이카우스리가 6
2011 1 베이카우스리가 2
2012 1 베이카우스리가 2
2013 1 베이카우스리가 9
2014 1 베이카우스리가 10
2015 1 베이카우스리가 4
2016 1 베이카우스리가 11
2017 1 베이카우스리가 9
2018 1 베이카우스리가 7
2019 1 베이카우스리가 2
2020 1 베이카우스리가 2
2021 1 베이카우스리가 3
2022 1 베이카우스리가 5
2023 1 베이카우스리가 6
2024 1 베이카우스리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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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1993 1994 1995 1996
1997 1998 1999 2000 2001
2002 2003 2004 2005 2006
2007 2008 2009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2019 2020 2021
2022 2023 2024 2025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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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1990 시즌

클럽이 창립된 연도이다.

2.2. 1992 시즌

  • 리그: III 디비시오나(4부)
  • 순위: 6위
  • 수오멘 컵: 참가하지 않음.
  • 감독: 안데르스 롬베르그
  • 최다 득점: 레이요 펠코넨(17골)
클럽의 인원이 계속해서 증가하며, 스테판 호칸스는 리그에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스포츠 파크 위쪽의 조그마한 축구장을 홈구장으로 삼고 경기를 치렀다. 첫 시즌은 6위를 기록했다.

2.3. 1993 시즌

  • 리그: II 디비시오나(3부)
  • 순위: 2위
  • 수오멘 컵: 1라운드 진출
  • 감독: 티모 싱코넨
  • 최다 득점: 테로 포르스(20골)
인테르 투르쿠는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TuTo라는 팀을 대신하여 3부 리그로 진출하게 된다. 이때부터 팀은 프로 구단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세 명의 브라질 선수도 영입했다.[2] 그러나 이번 시즌 가장 큰 영입 테로 포르스(Tero Forss)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인해 시즌이 끝나기 훨씬 전에 2부 리그로의 승격이 확정되었다.

2.4. 1994 시즌

  • 리그: 위쾨넨(2부)
  • 순위: 3위
  • 수오멘 컵: 6라운드 진출
  • 감독: 티모 싱코넨
  • 최다 득점: 테로 포르스, 사물리 린델뢰프(12골)
  • 평균 관중 수: 546명
  • 최고 관중 수: 1128명[3]
인테르 투르쿠는 1부 리그 승격을 목표로 정했다. 하지만 선수 영입에 난항을 겪었고, 결국 리그 3위를 기록하며 승격을 달성하지 못했다. 하지만 연고지인 투르쿠에서 FC 인테르 투르쿠의 인기가 상승하였으며, 포니스투스와의 경기에서는 1000명이 넘는 관중이 입장했다. 인테르는 시즌 동안 기술적이고 공격적인 경기를 펼쳤는데, 이는 여전히 클럽의 트레이드마크이다.

2.5. 1995 시즌

  • 리그: 위쾨넨(2부)
  • 순위: 1위
  • 수오멘 컵: 준결승 진출
  • 감독: 하누 파텔로
  • 최다 득점: 테로 포르스(16골)
  • 평균 관중 수: 661명
  • 최고 관중 수: 1,502명[4]
아쉽게 승격에 실패했던 인테르는 올해도 베이카우스리가로의 승격을 목표로 삼았고, 1부 경력이 있는 선수를 대거 영입하였다. 그 결과로 인테르는 공격적인 플레이를 보여주었고, 시즌이 종료되기 몇 라운드 전에 승격을 확정했다. 공격수인 포르스, 린델뢰프, 카르빈넨을 주축으로 공격을 전개하였고 왈레니우스, 폴렉, 로비오는 상대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냈다. 수오멘 컵에서는 준결승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둔다.

2.6. 1996 시즌

  • 리그: 베이카우스리가(1부)
  • 순위: 6위
  • 수오멘 컵: 8라운드 진출
  • 감독: 하누 파텔로
  • 최다 득점: 테로 포르스, 리 이삭(7골)
  • 평균 관중 수: 2,470명
  • 최고 관중 수: 8,200명[5]
베이카우스리가에서의 첫 시즌. A대표팀 경험을 바탕으로 스웨덴에서 오랫동안 프로로 활약한 에르카 페태얘(Erkka Petäjä), 페테리 빌야넨(Petteri Viljanen), 야니 매엔패(Jani Mäenpää), 야니 케울라(Jani Keula) 등 굵직한 선수들로 팀을 강화했다. 인테르는 개막 10경기 무패를 달성하며 시즌을 훌륭하게 시작했고, 핀란드에서 이름을 알리게 된다. 이제 투르쿠에는 두 개의 강팀이 존재하게 된다.[6] 이러한 성적에 힘입어 관중 수는 작년 대비 4배 이상 증가하였으며, 연막탄과 조명탄은 더욱 뜨거운 분위기를 형성했다.
투룬 팔로세우라와의 3차전 경기에서 종료 30분전에 리 이삭(Lee Issac)이 결승골을 넣었고, 인테르 팬들은 깃발을 흔들며 함성과 불꽃으로 골을 축하했다. 투룬 더비 첫 승리의 순간이였다. 관람석의 열기는 이전의 인테르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수준이였다. 인테르는 6위로 시즌을 마감하였지만, FC 인테르 투르쿠의 저력을 마음껏 보여준 시즌이였다. 주전 공격수인 사물리 린델뢰프는 올해의 신인으로 선정되었다.

2.7. 1997 시즌

  • 리그: 베이카우스리가(1부)
  • 순위: 10위
  • 수오멘 컵: 준결승 진출
  • 감독: 하누 파텔로→토미 얄로
  • 최다 득점: 테로 포르스(6골)
  • 평균 관중 수: 1,560명
  • 최고 관중 수: 3,196명[7]
베이카우스리가에서의 두 번째 시즌은 좋지 못했다. 선수들의 연이은 부상으로 인해 결국 인테르는 꼴지로 시즌을 마무리한다. 2부 리그로 돌아간다는 것은 당시 핀란드 축구판에서 새로운 도전장을 내밀던 클럽에게는 큰 좌절이었다. 클럽은 앞으로 더욱 겸손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2.8. 1998 시즌

  • 리그: 위쾨넨(2부)
  • 순위: 3위
  • 수오멘 컵: 7라운드 진출
  • 감독: 토미 얄로→스티븐 폴랙
  • 최다 득점: 사물리 린델뢰프(9골)
  • 평균 관중 수: 916명
  • 최고 관중 수: 3,244명[8]
목표는 1부 리그 복귀였다. 선수들은 클럽에 대한 충성심을 유지했다. 하지만 위쾨넨에서 플레이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많은 팀이 인테르를 상대로 열심히 경기를 펼쳤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인테르는 마침내 1부 리그에 복귀를 확정짓게된다. 스티븐 폴랙은 남은 시즌 동안 토미 얄로를 대신하여 선수 겸 코치로 활동하며 큰 성과를 거두었다. 평균 관객수는 916명으로, 2부 리그 중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높았다. 1부 리그에서의 뛰어난 활약으로 인해 인테르는 충실한 팬들을 많이 확보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특히 2부 리그 원정 경기임에도 많은 인테르 팬들이 팀을 응원하는 모습은 팀의 인기를 실감나게 했다.

2.9. 1999 시즌

  • 리그: 베이카우스리가(1부)
  • 순위: 5위
  • 수오멘 컵: 6라운드 진출
  • 감독: 티모 아스콜린
  • 최다 득점: 리차드 테베리오(9골)
  • 평균 관중 수: 1,398명
  • 최고 관중 수: 2,889명[9]
지난 번의 도전을 교훈삼아 올해부터는 1부 리그에 오랫동안 남는 클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티모 아스콜린이 새로운 감독으로 고용되었다. 인테르는 스웨덴 시장을 집중적으로 공략했고, 그곳에서 영입한 무명선수 요아킴 옌센(Joakim Jensen)과 리차드 테베리오(Richard Teberio)가 대박을 터트린다.
테베리오는 리그 첫 시즌에 9골을 넣었고, 요아킴 옌센이 수비를 훌륭하게 이끌었다. 이로써 인테르는 클럽 역대 최고 리그 순위인 5위로 마무리했다. 이 시즌부터 새로운 서포터즈인 울트라보이즈(Ultraboyz)가 쿠피타[10]의 홈경기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2.10. 2000 시즌

  • 리그: 베이카우스리가(1부)
  • 순위: 7위
  • 수오멘 컵: 준결승 진출
  • 감독: 티모 아스콜린
  • 최다 득점: 리차드 테베리오(14골)
  • 평균 관중 수: 1,645명
  • 최고 관중 수: 3,008명[11]
좋은 시즌을 보내고 성공적인 선수 모집을 마친 후 높은 기대를 갖고 있었다. 2000년 베이카우스리가의 최연소 선수는 인테르의 아리 뉘만(Ari Nyman)이였다.[12] 또한 보카 주니어스에서 디에고 마라도나와 함께 뛰었으며 아르헨티나 리그 경기에 250회 이상 출전한 라울 페랄타(Raul Peralta)도 인테르 소속으로 뛰었지만, 시즌 중반 부상을 입어 아르헨티나로 돌아갔다. 리그에서는 7위를 거두며 강등을 면했다.
여담으로 투룬 더비 3경기 전승을 거두었을 때, 서포터즈 울트라보이즈는 경기 중에 횃불과 연기를 피우며 성대한 파티를 열었고 분위기는 마치 유럽 5대 리그 같았다고 한다.

2.11. 2001 시즌

  • 리그: 베이카우스리가(1부)
  • 순위: 5위
  • 수오멘 컵: 준결승 진출
  • 감독: 페르티 룬델
  • 최다 득점: 리차드 테베리오(13골)
  • 평균 관중 수: 2,207명
  • 최고 관중 수: 3,816명[13]
인테르는 베사 란타넨(Vesa Rantanen), 유망주 마티아스 린드스트룀(Mathias Lindström), 뛰어난 실력을 갖춘 아르헨티나 출신 디에고 코르파체(Diego Corpache)를 영입했다. 2군 선수들도 다수 콜업했다. 시즌은 순조롭게 시작되었고, 5라운드에서 첫 패배를 당했다. 하지만 인테르는 시즌 중반부터 다소 부진한 플레이를 펼치며 최종 순위는 5위가 됐다.
그럼에도 이번 시즌에서 주목할 점은 관중 수가 늘었다는 것과 2군 선수들이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KuPS와의 시즌 첫 경기에서는 3,816명의 관중이 모였으며, 전체 시즌의 평균 관중 수는 2,207명이었다. 미코 하르야네(Mikko Harjanne), 라미 살로마(Rami Salomaa), 마르쿠스 시니살로(Markus Sinisalo), 발테르 락소넨(Valtter Laaksonen)이 성공적인 1군 데뷔를 했다.

2.12. 2002 시즌

  • 리그: 베이카우스리가(1부)
  • 순위: 6위
  • 수오멘 컵: 8강 진출
  • 감독: 페르티 룬델
  • 최다 득점: 리차드 테베리오(11골)
  • 평균 관중 수: 2,285명
  • 최고 관중 수: 3,505명[14]
인테르는 시즌을 앞두고 다시 많은 기대를 받았지만 또다시 중위권에 그치고 말았다. 시즌 전 네덜란드 전지훈련은 성공적이었고, Uusi Lahti Cup에서는 지역 라이벌 TPS를 4-0으로 이겼다. 이러한 기대와는 다르게 인테르는 리그에서 12경기 연속 무승부를 기록하는 등 승리와는 거리가 멀었다. 득점력을 강화하고자 아르헨티나에서 스트라이커 다니엘 바잔 베라(Daniel Bazan Vera)를 영입했지만, 도움이 되지 못했다.
하지만 젊은 선수들의 성장 가능성을 볼 수 있었다. 아리 뉘만(Ari Nyman), 마티아스 린드스트룀(Mathias Lindström)이 주요 유망주였다. 이들은 다양한 상을 수상했다.
수오멘 컵에서는 8강에 진출하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시즌이 끝난 후 베사 란타넨(Vesa Rantanen), 가비 플로레스(Gaby Flores), 테무 비흐틸래(Teemu Vihtilä), 야니 메릴래이넨(Jani Meriläinen), 1993년부터 인테르에서 뛰었던 페트리 라흐토넨(Petri "Pedro" Lehtonen)이 이적하게 된다다. 새로운 베리타스 스타디온 건설 작업도 시즌이 끝날 무렵 시작되었다.

2.13. 2003 시즌

  • 리그: 베이카우스리가(1부)
  • 순위: 7위
  • 수오멘 컵: 준결승 진출
  • 감독: 카리 비르타넨
  • 최다 득점: 아리스티데스 페르토트, 루시아노 알바레스(12골)
  • 평균 관중 수: 2,520명
  • 최고 관중 수: 6,211명[15]
리그 시작을 불과 2주 앞둔 시점에서 페르티 룬델은 건강상의 이유로 감독 자리에서 물러났다. 따라서 B팀 VG-62의 감독이였던 카리 비르타넨(Kari Virtanen)이 지휘봉을 맡게 된다.
시즌은 다소 불안정하게 시작되었다. 개막전에 새로운 베리타스 스타디온에서 열린 홈 경기에서 0-2로 패했다. 첫 승리는 9라운드만에 나왔다.[16] 이후 인테르는 5경기 무패를 기록하기도 했다. 23라운드 요케리트와의 경기에서 인테르는 후반 70분에도 여전히 2골 뒤진 상황이었다. 그러나 71분 알바레스의 골과 후반 83, 85분 페르토트의 멀티골로 경기를 가져오며 강등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아리스티데스 페르토트(Aristides Pertot)와 루시아노 알바레스(Luciano Alvarez)는 12골을 기록하며 리그 공동 3위를 기록했다. 베리타스 스타디온에서 열린 개막전에는 6,211명의 관중이 들어오며 늘어난 인기를 실감케 했다.

2.14. 2004 시즌

  • 리그: 베이카우스리가(1부)
  • 순위: 4위
  • 수오멘 컵: 5라운드 진출
  • 감독: 카리 비르타넨
  • 최다 득점: 리차드 테베리오, 아리스티데스 페르토트(6골)
  • 평균 관중 수: 3,492명
  • 최고 관중 수: 7,144명[17]
1998년 월드컵에 출전한 마르셀 마호브(Marcel Mahouve), 라이언 보타(Ryan Botha), 카메룬의 유망주 세르지 응갈(Serge N’Gal)이 새로 합류했다. 예년과 달리 인테르는 시즌 내내 꾸준한 실력으로 경기를 펼쳤다. 좋은 경기력에 힘입어 베리타스 스타디온의 최다 관중 기록도 8월 19일 TPS와의 경기에서 세워졌다. 인테르는 시즌 동안 재미있고 효율적인 경기를 펼쳤고, 리그에서 4위를 기록하게 되었다.
UEFA 인터토토컵 출전권도 얻었다. 관중 평균 신기록(3,492명)은 투르쿠가 핀란드의 축구 수도라는 증거이기도 했다.

2.15. 2005 시즌

  • 리그: 베이카우스리가(1부)
  • 순위: 5위
  • 수오멘 컵: 5라운드 진출
  • 감독: 카리 비르타넨
  • 최다 득점: 세르지 응갈(9골)
  • 평균 관중 수: 3,005명
  • 최고 관중 수: 5,259명[18]
2005년은 클럽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해였다. 경험 많은 선수 대신 유망한 젊은 선수들을 영입한다. 코치진과 서포터들도 처음에는 두려움으로 시즌을 시작했다. 왜냐하면 유망주 미카 일로(Miikka Ilo), 토미 페트레스쿠(Tomi Petrescu), 프린스 오토(Prince Oto), 마틴 무툼바(Martin Mutumba)가 마르셀 마호브(Marcel Mahouve)를 포함한 주전 선수들의 빈 자리를 채울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테르의 젊은 선수들은 팀이 짜임새 있는 경기를 펼치는 동시에 공격적인 축구를 구사하며 모든 의심이 헛된 것임을 증명했다. 시즌 초부터 팀은 리그 상위권에 위치했다.
리그가 3경기 남았을 때, 인테르는 준우승을 노릴 수 있는 상황이였다. 그러나 젊은 팀의 기세가 끝까지 이어지지 못하면서 남은 3경기에서 2패 1무를 기록하며 5위에 그쳤다. 물론 5위는 처음에는 실망스러워 보였지만, 젊고 경험이 부족한 팀으로서는 훌륭한 성과였다. 또한 인테르는 투룬 더비에서 우위를 점하며 강팀의 면모를 보여줬다. 인테르의 좋은 성적 덕분에 팀 주장 디에고 코르파체(Diego Corpache)는 베이카우스리가 최고의 수비수로 선정되었다.
2005년 시즌은 또한 유럽 대항전에 대한 꿈을 이루었습니다. 팀은 공격적인 플레이를 펼쳤고, 그 덕분에 팀은 인터토토컵 2라운드에 진출했다.
2005년은 인테르 역사상 중요한 한 시대를 마감한 해이기도 하다. 팀의 오랜 아이콘인 사물리 린델뢰프(Samuli Lindelöf)가 부상으로 시즌아웃 되어 클럽을 떠났다. 린델뢰프 외에도 아르티데스 페르토트(Aristides Pertot), 세르지 응갈(Serge N'Gal), 사미 사네부오리(Sami Sanevuori)와 같은 선수들이 시즌이 끝날 때 클럽을 떠났다.

2.16. 2006 시즌

  • 리그: 베이카우스리가(1부)
  • 순위: 10위
  • 수오멘 컵: 8라운드 진출
  • 감독: 카리 비르타넨→레네 판 에크
  • 최다 득점: 발테르 락소넨(10골)
  • 평균 관중 수: 2,683명
  • 최고 관중 수: 5,828명[19]

2.17. 2007 시즌

  • 리그: 베이카우스리가(1부)
  • 순위: 9위
  • 수오멘 컵: 8라운드 진출
  • 감독: 욥 드라흐츠마
  • 최다 득점: 도미닉 차토(6골)
  • 평균 관중 수: 2,807명
  • 최고 관중 수: 4,294명[20]

2.18. 2008 시즌

  • 리그: 베이카우스리가(1부)
  • 순위: 1위
  • 수오멘 컵: 우승
  • 감독: 욥 드라흐츠마
  • 최다 득점: 미카 오얄라(8골)
  • 평균 관중 수: 4,432명
  • 최고 관중 수: 8,437명[21]

2.19. 2009 시즌

  • 리그: 베이카우스리가(1부)
  • 순위: 5위
  • 수오멘 컵: 우승
  • 감독: 욥 드라흐츠마
  • 최다 득점: 티모 푸루홀름(11골)
  • 평균 관중 수: 2,359명
  • 최고 관중 수: 6,042명[22]

2.20. 2010 시즌

  • 리그: 베이카우스리가(1부)
  • 순위: 6위
  • 수오멘 컵: 7라운드 진출
  • 감독: 욥 드라흐츠마
  • 최다 득점: 헨리 라흐토넨(11골)
  • 평균 관중 수: 1,853명
  • 최고 관중 수: 6,056명[23]

2.21. 2011 시즌

  • 리그: 베이카우스리가(1부)
  • 순위: 2위
  • 수오멘 컵: 6라운드 진출
  • 감독: 욥 드라흐츠마
  • 최다 득점: 티모 푸루홀름(22골)
  • 평균 관중 수: 2,224명
  • 최고 관중 수: 7,287명[24]

2.22. 2012 시즌

  • 리그: 베이카우스리가(1부)
  • 순위: 2위
  • 수오멘 컵: 7라운드 진출
  • 감독: 욥 드라흐츠마
  • 최다 득점: 이라클리 시르빌라제(17골)
  • 평균 관중 수: 2,332명
  • 최고 관중 수: 6,659명[25]

2.23. 2013 시즌

  • 리그: 베이카우스리가(1부)
  • 순위: 9위
  • 수오멘 컵: 5라운드 진출
  • 감독: 욥 드라흐츠마
  • 최다 득점: 이라클리 시르빌라제(9골)
  • 평균 관중 수: 1,691명
  • 최고 관중 수: 5,763명[26]

2.24. 2014 시즌

  • 리그: 베이카우스리가(1부)
  • 순위: 9위
  • 수오멘 컵: 준우승
  • 감독: 욥 드라흐츠마
  • 최다 득점: 이라클리 시르빌라제(9골)
  • 평균 관중 수: 1,785명
  • 최고 관중 수: 5,063명[27]

2.25. 2015 시즌

  • 리그: 베이카우스리가(1부)
  • 순위: 4위
  • 수오멘 컵: 준우승
  • 감독: 욥 드라흐츠마
  • 최다 득점: 요니 아호, 기 그나부유(6골)
  • 평균 관중 수: 2,439명
  • 최고 관중 수: 3,892명[28]

2.26. 2016 시즌

  • 리그: 베이카우스리가(1부)
  • 순위: 11위
  • 수오멘 컵: 6라운드 진출
  • 감독: 욥 드라흐츠마→야미 발레니우스→셰프키 쿠치
  • 최다 득점: 은야지 쿠치(16골)
  • 평균 관중 수: 2,255명
  • 최고 관중 수: 4,043명[29]

2.27. 2017 시즌

  • 리그: 베이카우스리가(1부)
  • 순위: 9위
  • 수오멘 컵: 8강 진출
  • 감독: 셰프키 쿠치→파브리치오 피카레타
  • 최다 득점: 벤야민 캘만, 티모 푸루홀름(9골)
  • 평균 관중 수: 2,235명
  • 최고 관중 수: 3,512명[30]

2.28. 2018 시즌

  • 리그: 베이카우스리가(1부)
  • 순위: 7위
  • 수오멘 컵: 우승
  • 감독: 파브리치오 피카레타→존 앨런
  • 최다 득점: 티모 푸루홀름(9골)
  • 평균 관중 수: 1,954명
  • 최고 관중 수: 5,525명[31]

2.29. 2019 시즌

  • 리그: 베이카우스리가(1부)
  • 순위: 2위
  • 수오멘 컵: 준결승 진출
  • 감독: 호세 리베이로
  • 최다 득점: 필립 발렌칙(16골)
  • 평균 관중 수: 3,243명
  • 최고 관중 수: 9,125명[32]

2.30. 2020 시즌

  • 리그: 베이카우스리가(1부)
  • 순위: 2위
  • 감독: 호세 리베이로

2.31. 2021 시즌

  • 리그: 베이카우스리가(1부)
  • 순위: 3위
  • 감독: 호세 리베이로

2.32. 2022 시즌

  • 리그: 베이카우스리가(1부)
  • 순위: 5위
  • 감독: 미겔 그라우→라미로 무뇨스

2.33. 202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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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그: 베이카우스리가(1부)
  • 순위: 6위
  • 수오멘 컵: 6라운드 진출
  • 감독: 야르코 비스

2.34. 202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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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핀란드어스웨덴어. 연고지인 투르쿠는 핀란드어로 Turku, 스웨덴어로 Åbo이며, 두 가지 표기가 모두 로고에 적혀있다.[2] 니카(미드필더), 마르셀루(올라운더), 파비오(스트라이커).[3] vs. 포니스투스[4] vs. 라흐덴 레이파스[5] vs. 투룬 팔로세우라[6] FC 인테르 투르쿠투룬 팔로세우라. 두 팀은 투룬 더비를 형성한다.[7] vs. 투룬 팔로세우라[8] vs. 아틀란티스[9] vs. FC 요케리트[10] 당시 인테르의 홈구장[11] vs. 투룬 팔로세우라[12] 16세의 선수로, 탐페레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데뷔전을 치렀다.[13] vs. 쿠오피온 팔로세우라[14] vs. HJK 헬싱키[15] vs. 투룬 팔로세우라[16] FC 야스 1 : 2 인테르[17] vs. 투룬 팔로세우라[18] vs. 투룬 팔로세우라[19] vs. 투룬 팔로세우라[20] vs. 투룬 팔로세우라[21] vs. FC 라티[22] vs. 투룬 팔로세우라[23] vs. 투룬 팔로세우라[24] vs. 투룬 팔로세우라[25] vs. 투룬 팔로세우라[26] vs. 투룬 팔로세우라[27] vs. 투룬 팔로세우라[28] vs. SJK 세이내요키[29] vs. HJK 헬싱키[30] vs. HJK 헬싱키[31] vs. 투룬 팔로세우라[32] vs. 쿠오피온 팔로세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