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년도의 성공적인 흥행과 함께, 운영에 자신감을 얻은 기업들이 대거 참가하는데 힘입어 참가팀이 8팀으로 늘어나게 되었다. 할렐루야, 유공, 럭키 금성, 대우등 프로 5팀과 포철, 국민은행, 한일은행 실업 3팀이 참가가 결정되었다. 상금도 대폭 늘어 전년도에 비해 무려 1억 4천만원이 늘어난 3억원으로 결정되었다. 우승팀은 1억원, 2위팀은 7,500만원, 3위팀은 5,000만원 정도였다. 특히 선수단의 규모도에 있어서도, 해외 선수들의 국내복귀와 외국인 선수의 영입등이 이어지며 그 질과 양이 대폭 개선되었다. 또한 관중을 불러오기 위해 경품 제공량도 원년의 1억 3천만원에서 3억 5천만원 가량으로 크게 늘리게 되었다. 리그 명칭에도 변화가 있었는데, 외래어 사용이 심하다는 정부의 지적으로 인해 수퍼리그라는 명칭 대신 축구대제전이라는 말을 쓰도록 체육부가 지시한 사건이 있었다. 하지만 사실상 언론이나 대중들에게는 축구대제전과 수퍼리그라는 2개의 말이 병용되었다.
리그 방식도 바뀌어서 전후기로 리그를 나누기로 결정하였다. 전기와 후기별로, 더블리그를 치르고, 전기 리그 우승팀과 후기 리그 우승팀이 챔피언 결정전을 치르는 형태였다. 주말에 2경기를 치르는 것 또한 폐지하고 전체 56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또한 승점제도 또한 손질하였는데, 승리시 3점, 득점 무승부시 2점, 무득점 무승부시 1점 등으로 계산 방식을 바꿨다. 득점에 비중을 둠으로 골 러시를 유도하려는 의도였다.
원년에 이어 프로축구의 열기를 이어가려 했지만, 관중의 관심은 오히려 원년에 비해 떨어졌다. 문제점은 연고 정착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있었다. 도시연고제가 아니었으며, 각 도시를 순회하면서 경기를 치른다는 방식은 일회성으로는 효과가 좋을지 몰랐으나, 장기적으로 볼때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프로야구의 예를 보면, 철저하게 연고지 정착을 목표로 기업들을 불러왔기에 상당히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의 언론의 논조도 프로축구의 문제점은 연고정착의 미진함에 있다고 지적할 정도였다. 원년에는 가려져 있었던 문제점이 출범 두번째 해에 드러남에 따라 협회는 홈앤드어웨이 방식을 도입하고, 프로팀들의 운영난을 도와줄 목적으로 드래프트 제도의 도입을 검토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