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10 Миль Ми-10 | |
Mi-10K | |
1965년 파리 에어쇼에 전시된 Mi-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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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Mi-10은 1962년에 Mi-6를 기반으로 밀 설계국에서 개발한 대형 수송 헬리콥터로, NATO 코드명은 하크(Harke). 1960년에 원형기인 V-10(В-10)이 비행했다. 라파일 I. 카프릴란(Рафаил Иванович Капрэлян : 1909~1984)이 조종한 원형기는 이즈델니예 60(Изделие 60 / 제품 60호)이라는 암호명으로 제작되었고 등장 후 몇 년 동안은 서방측에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다.2. 제원
형식 : 대형 수송 헬리콥터개발 및 제작 : 모스크바 밀 헬리콥터 공장(Московский вертолётный завод им. М.Л. Миля)
초도비행 : 1960년 6월 15일
생산 시기 : 1964년~1969년
운용 시기 : 1963년~2009년
승무원 : 4~5명 (기장, 부기장, 기관사, 항법사, 기술병) + 28명
전장 : 32.86 m / 전고 : 7.80 m
중량 : 27,100 kg ~ 43,700 kg
로터 직경 : 35 m
로터 회전면적 : 962 m2
동체 높이 : 3.75 m
동력 : 솔로비예프 D-25V 터보샤프트 엔진 (5,500 hp) 2기
화물 탑재량 : 15톤 이상
최대속도 : 235 km/h
순항속도 : 180 km/h
항속거리 : 650 km
상승고도 : 3,000 m
생산수 : 44대
3. 특징
Mi-10는 5500축마력을 발휘하는 솔로비예프 D-25V(Соловьев Д-25В) 터보샤프트 엔진을 2기 장비하고 있으며, 착륙장치가 짧은 Mi-10K와 길게 만들어진 Mi-10R 두 종류가 주로 생산되었다. 이 헬리콥터는 거대한 크기 때문에 조종석에서 주변을 모두 살피기가 불가능해서 후방 동체 아래에 전방을 향해 외부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으며 승무원도 동체 하부의 관측창을 통해서 착륙시 장애물을 피하고 랜딩기어 응축장치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게끔 되어 있다.원판 Mi-6의 부품을 대거 사용했기에, 휘슬링 현상 역시 똑같이 난다.
4. 추락 사고
1961년 5월, 카잔에서 모스크바로 비행하던 04101호기가 추락했다. 승무원들은 사소보(Сасово) 상공을 통과할 때 메인 기어박스에서 오일 압력이 자꾸 떨어지는 증상을 발견했고, 테스트 파일럿 표트르 A. 아누프리예프(Петр Андреевич Ануфриев)는 비상착륙하기 좋은 지면을 찾았다. 그러는 동안 오일 압력이 제로로 떨어졌고, 완만하게 하강하던 기체는 지면에 충돌해 300 m 이상이나 미끄러지다가 전복되어 불이 붙었다. 추락 현장에서 부기장 바실리 P. 미하일류크(Василий Пилиппович Михайлюк)와 기관사 T. M. 아루인(Т. М. Аруин), 기술병 A. A. 미슬롭스키(А. А. Мысловский)는 즉사했고, 기장은 숨은 붙어있었으나 다음날 아침 병원에서 사망했다. 기적적으로 경미한 부상만을 입은 항법사 세르게이 I. 클레피코프(Сергей Иванович Клепиков)만이 탈출할 수 있었다.즉각 참사 현장에 Mi-4로 날아온 조사반은 사고 원인을 파악하는 과정에서 메인 기어박스에 윤활유를 공급해주는 오일 펌프의 고장으로 인해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을 확인했다. 안일하게 Mi-6의 부품을 그대로 쓴 절약이 불러일으킨 인재였던 것이다. 사실 이는 이 기종이 Mi-6의 파생형이다 보니, 부품을 쓸데없이 다르게 만들기 보다는 차라리 공유하도록 만드는 것이 이 기종을 같이 쓸 군대의 보급에 차질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으로서 단순히 절약하다가 화를 부른 것으로만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애초에 사회주의이면서 준 군국주의인 소련에서, 온 나라가 최고로 중요시하는 군대의 보급이 설계자들의 발목을 잡은 이상 이 부분을 개량할 마땅한 방법이 없어져 버렸기도 하고.
5. 공개
시제 2호기에 해당하는 04102호기는 04101호기가 겪었던 사고의 교훈을 받아들여 오일 펌프가 보강되고 기어박스도 재설계되었다. 1961년 7월 9일에 2호기는 소련 공군의 날을 기념하는 퍼레이드 비행에서 처음으로 일반 시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부 기관지 프라우다는 "세계에서 가장 큰 헬리콥터가 모스크바 광장 위를 날았다"고 보도했다. 이 헬리콥터는 공군과 해군 장교들, 그리고 아에로플로트의 간부들이 모인 투시노 비행장의 게스트 스탠드 앞에서 또다시 시범 비행을 보였다. 9월 23일에 2호기는 15,103kg의 화물을 매달고 고도 2,200m까지 상승하는 FAI 세계 기록을 세웠으며, 같은 날 15톤의 화물을 싣고 2,326 m까지 상승해 오전에 세운 기록은 스스로 갱신했다.1965년 파리 에어쇼에서 처음 서방 대중에게도 선보여졌다. 그런데 이날 서방 국가들은 단체로 재수가 옴 붙었다고 할 수 있는 게, Mi-10이 최초로 서방에 대중 공개된 1965년 파리 에어쇼에서 함께 보내진 An-22가 착륙한 지 두 시간도 안돼서 B-58 한 기가 착륙 중 추락사고로 완파 전소당하며 시원하게 날아갔으며, 조종사 순직에 승무원 2명 중상의 피해를 당했다.# 덤으로 이 날 이탈리아 공군도 전투기 한 대와 시험 조종사 한 명을 파리 에어쇼에서 똑같이 착륙 도중 사고로 잃었다.##
6. 각종 테스트
공군에서 평가 시험을 받는 동안, Mi-10은 다양한 크기와 무게의 화물을 공수하게 된다. 군용 트럭과 장갑차 같은 군장비는 물론이고, 버스나 유조 트럭 같은 민간 차량도 쉽게 실어나르는 능력을 보였다. 철도 레일이나 컨테이너 같은 화물도 슬링하여 운반했는데, 이런 대형 화물은 비행하는 도중 상당히 큰 공기저항을 일으켜 속도와 기동을 제한했다. 특히 주목할만한 화물은 아무런 부대 설비없이 산 중턱까지 지질학 연구실을 들어 옮기는 것이었다.평가 시험의 마지막 단계는 엔진을 끄고 회전관성으로 돌아가는 로터를 이용해 착륙하는 오토 로테이션 실험이었다. Mi-10의 시험은 매우 집중적으로 진행되어 대부분 1964년 초에 완료될 수 있었다.
7. 파생형
- V-10 (В-10) : Mi-10의 프로토타입
- Mi-10K (Ми-10К Кран) : 동체 아래에 곤돌라를 갖춘 스카이 크레인. 랜딩기어를 짧게 만든 형식이다. 1기가 아직 현역이라고는 하나 Mi-26에 밀렸는지 딱히 비행하고 있지는 않다.
- Mi-10R (Ми-10Р) : 표준 생산형
- Mi-10PP (Ми-10ПП) : 전자전 헬리콥터
- Mi-10RVK (Ми-10РВК) : 중거리 지대지 미사일 수송기
- Mi-10UPL (Ми-10УПЛ) : 야전 실험실 수송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