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비르타넨 Toni Wirtanen | |
<colbgcolor=#83749F><colcolor=#fff> 본명 | 토니 유하나 비르타넨 Toni Juhana Wirtanen |
출생 | 1975년 4월 4일 ([age(1975-04-04)]세) |
핀란드 패이얘트해메 지역 헤이놀라 | |
국적 | 핀란드 |
직업 | 음악가, 작가, 작곡가 |
소속 | (1991~현재) |
신체 | 183cm |
활동 기간 | 1991년 – 현재 |
포지션 | 기타, 보컬 |
장르 | 펑크 록, 하드 록, 얼터너티브 록, 뉴 메탈 |
데뷔 | |
1995년 앨범 Attack Of A.L. People | |
링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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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밴드 Apulanta의 보컬 겸 기타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핀란드의 음악가이다. The Voice Of Finland 시즌에도 여러 차례 출연한 바 있으며, 핀란드에서 열리는 대회인 UMK[1]에도 심사위원으로 임한 적 있다.2. 생애
출신지는 헤이놀라였으나, 토니의 가족은 그가 1살도 채 되지 않았을 무렵 살로로 이주했다. 10살도 채 되지 않은 나이일 적 티비에서 W.A.S.P.의 I Wanna Be Somebody 뮤비를 보게 되었고, 그때부터 음악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2] 이후 그가 12살이었을 적 아버지가 뇌출혈로 사망하였고,[3] 어머니가 원했던 대로 출신지인 헤이놀라로 다시 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살로의 친구들 여럿과 헤어지게 되었으며, 그의 어머니의 말로는 이 과정에서 노래 부르는 것과 비행기를 좋아하는 활기 넘치는 소년이었던 토니가 급격히 어두워지게 되었다고 한다.학창시절은 헤이놀라에 위치한 뤼세온마키 중학교에서 보냈다. 91년, 16살 쯤이 되었을 때, 안티 라우탈라[4]와 만나 밴드를 결성하기로 한다. 몇 개월 뒤 안티를 통해 안티의 동급생이자 친구였던 시페 산타푸키를 Giants of Rock[5]에서 만나게 되었고, 10일 뒤 셋이서 헤이놀라의 한 고아원에서 드럼을 훔쳐 얻은 뒤 시페를 영입하게 된다. 92년 교환학생이었던 맨디 게이너를 베이스로 영입한 뒤 한 장의 EP 앨범을 녹음했으며, 맨디가 미국으로 돌아가자 그녀의 호스트패밀리였던 투카 테모넨을 영입하게 된다.
3. 디스코그래피
3.1. Apulanta
- Attack of the A.L. People (1995)
- Ehjä (1996)
- Kolme (1997)
- Aivan kuin kaikki muutkin (1998)
- Plastik (2000)
- Heinola 10 (2001)
- Hiekka (2002)
- Kiila (2005)
- Eikä vielä ole edes ilta (2007)
- Kuutio (kuinka aurinko voitettiin) (2008)
- Kaikki kolmesta pahasta (2012)
- Kunnes siitä tuli totta (2015)
- Sielun kaltainen tuote (2022)
4. 여담
- 상당한 밀덕이자 역덕인 것으로 보인다. 카렐리안 여단의 Kymi Jäger 대대에서 대전차병으로 복무하였으며, 준부사관 계급으로 명예 제대, 이후 예비군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2015년과 2016년엔 영어 도서 'Finland At War' 시리즈[6]에 공동 저자로서 참여하였다.
- W.A.S.P.와 미스피츠의 열성팬이다. W.A.S.P.는 음반과 포스터를 모을 정도로 좋아하며[7][8], 미스피츠는 언더그라운드 밴드였던 시절부터 꾸준히 커버하고 언급할 정도로 좋아했으며, 97년의 공연을 보러 간 영상[9]도 남아있다.
- 영화나 TV 프로그램에도 카메오 등으로 출연한 적이 많다. 본인이 소속된 밴드 Apulanta의 전기 영화는 물론, 핀란드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Pitkä Kuuma Kesä나 밴드 전 멤버이자 현재 영화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는 투카 테모넨의 영화에서도 우정출연으로 모습을 드러내었다.
- 음악과 마찬가지로 미술에도 큰 관심이 있었으나, 종종 분노에 차 자신이 그린 그림을 모조리 찢거나 파괴하여 남겨진 것은 거의 없다고 한다.
- 학교의 교환학생이자 밴드의 멤버였던 맨디를 짝사랑했다고 한다. 가끔씩 자전거 뒷자리에 맨디를 태우고 교회가 위치한 마을[10]부터 연습실까지를 돌았다고... 하지만 그때 토니는 이미 여자친구가 있었다.
[1] Uuden Musiikin Kilpailu, 새로운 음악을 위한 경연이라는 뜻,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 출전할 대표 가수를 선정하는 경연 프로그램이다.[2] 98년 출간된 아풀란타의 자서전 격인 Maalin Alta(페인트 아래에서라는 뜻, 밴드의 곡 가사에서 따왔다.)에서 직접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내가 10살도 채 되지 않았을 적 티비에서 W.A.S.P.의 I Wanna Be Somebody를 본 이후부터, 음악은 내게 유일한 출구가 되어주었다. 나는 불타는 것, 연기가 자욱하게 나는 것과 피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때 처음으로 이것이 쩌는 록앤롤 음악이라는 걸 깨달았다."[3] 아버지가 죽어가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았다고 한다. 하교 후 집으로 돌아오자 뇌출혈을 앓던 아버지가 발작하는 것을 보았으며, 먼저 구급차를 부른 뒤 일하러 나간 어머니와 통화했다고. 어머니가 집에 도착할 때까지 패닉 상태였기 때문에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말했다. 병원에 실려간 아버지는 식물인간이 되어 상태가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의사와의 합의 하에 인공호흡기를 제거하여 아버지를 보내주었다고 한다.[4] 77년생이므로 토니보다 두 살 어리다. 아풀란타의 초기 멤버(기타, 보컬)이자 리더였으며 현재는 포스트 펑크 밴드인 Silent Scream의 리더가 되었다.[5] 92년까지 해멘린나에서 열렸던 록 페스티벌.[6] 겨울전쟁에 대해 저술한 책과 계속전쟁에 대해 저술한 책, 총 두 권으로 이루어져 있다.[7] 심지어 89년 초등학교의 수학여행에서도 The Headless Children 카세트 테이프를 샀다고 한다.[8] 또 W.A.S.P.의 프론트맨인 블래키 롤리스를 보며 록 뮤지션의 꿈을 키웠다고.[9] 무려 백스테이지에서 미스피츠의 베이시스트인 제리 온리에게 직접 질문을 던지기까지 했다.[10] 도시의 중심지인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