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06 08:45:43

강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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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강연중.jpg
출생 1919년 10월 11일
경상남도 진주군 사봉면 부계리[1]
(現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부계리)
사망 2000년 4월 15일
서울특별시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본관 진주 강씨[2]
서훈 대통령표창 수훈
건국훈장 애족장 수훈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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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받았다.

2. 생애

1919년 10월 11일 경상남도 진주군(현 진주시) 사봉면 부계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41년경 일본 관서공업학교 야간부에 재학했다. 그러던 중 정덕수, 조성인(趙成寅) 등과 함께 일제의 민족차별로부터 한민족을 구원할 길은 오직 독립 뿐이라는 데 뜻을 모으고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맹세했다. 그들은 중일전쟁의 장기화로 피폐해진 일제를 상대로 미, 영, 소가 참전하게 되면 일제의 패망은 필연적일 것이라고 판단하고 이때를 이용해 일제히 봉기하여 독립을 달성하기로 했다.

그는 이후로 동지 포섭에 힘썼고, 1941년 8월에 장덕수 등과 함께 비밀결사 조선독립청년당(朝鮮獨立靑年黨)을 결성하고 당칙 및 부서와 행동 강령을 정했다. 또한 하부조직으로서 대판내 우유배달클럽 및 신문배달클럽과 유도(酉島) 제2공업학교, 관서공업학교, 대판공업학교 등에 학생클럽을 결성했다. 그러나 1941년 10월 조선독립청년당 조직이 발각되면서 경찰에 체포되었고, 1942년 8월 31일 오사카 지방지판소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8.15 광복으로 조국이 해방되자 귀환하여 서울에서 평범하게 지내다가 2000년 4월 15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83년 강연중에게 대통령표창을 수여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수여했다. 그리고 2000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 진주 강씨 집성촌이다.[2] 박사공파-진원군 창귀(昌貴)파 26세손 중(中) 신(信) 원(遠) 항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