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14 07:07:57

검선도

1. 개요2. 상세3. 역사4. 특징
4.1. 시합
4.1.1. 판정제
4.2. 연무4.3. 참선4.4. 봉술4.5. 결론
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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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검선도(劍禪道)는 대한검도회의 창립자 중 한 사람인 서정학(徐廷學, 1917-2005) 9단이 1997년 1월 창시한 무도 단체다.

2. 상세

창시자의 호 '창암(暢巖)'에서 따와서 '창암류 검선도'라고도 부른다. 검도를 수련하면서 익히고 깨우친 검리에 바탕을 두며, 선(禪)을 정신 수양으로서 도입하였다고 한다.
코로나 시기에 사무 업무가 인천으로 이전하였다. 창암회, 검림수련회, 인천수련회, 청주수련장에서 교육하고 있다.

검선도 카페
검선일여 카페

3. 역사

1996년 12월 10일 한국검선도 본원이 개원되었고, 1997년 1월 28일 무도단체로 창립됐다.

검도가 근본적으로 일본 무도이기 때문에 이를 안타깝게 생각해 협회 내부에서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했지만 이에 대한 반발이 만만치 않아 그냥 따로 무도 단체를 새롭게 창립했다고 한다. 이러한 역사 때문에 검선도는 해동검도 같은 다른 무술과는 다르다는 독자성을 강조하기보다는, 검선도 역시 크게 '검술'의 영역에 포함되는 하나의 '검술 유파'로서 의식한다.

초대 회장 서정학은 2005년 사망했고, 아들 서민석이 총사의 자리를 이었다.

4. 특징

4.1. 시합

검선도는 기본적으로 검도와 유사하나 격자부위가 더 많고 다양하다.또 검도에서는 사장된 아래에서 위로 올려치는 방식의 격자법 및 사선으로 내려긋는 격자법 등이 허용된다.
이는 매우 다양한 공격을 유도할수 있는 뛰어난 기준이라 생각된다.

4.1.1. 판정제

검선도는 검도의 한판제와 달리 점수제를 채택했다. 머리ㆍ허리ㆍ목(찌름/베기)은 각각 2점, 손목ㆍ어깨ㆍ허벅지는 1점씩이며 합계 3점 이상이 되면 승리한다. 다시말해 손목 득점을 두 번이나 하여 검도였으면 끝났을 상황이라도, 머리 한 방을 허용하면 동점이 될 수 있다는 것.

이는 진검이라고 가정했을 때 베이면 즉사하는 부분은 2점으로, 그렇지 않은 부분은 1점으로 책정한 것이다. 검도와 다른방식으로 검리에 맞는 다양한 공격을 이끌어낼수 있다는것이 검선도의 장점이라 할수있다.

4.2. 연무

기술면에 있어서 검도의 본을 빼버리고[1] 서정학이 정리한 '염상이합도' 라는 검술을 수련체계에 넣었다.

염상이합도는 가상의 적과 상황을 상정하여 혼자 연무하는 것인데, 거합도와 외형적으로 비슷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세세히 보면 보법, 발도 시 행하는 기술들, 좌우손을 바꾸며 베는 파지법, 베는 부위 등 많은 부분들이 전혀 다르다. 정좌하는 일이 잦았던 일본과는 문화나 시대적 상황이 다름을 고려하여 거합도와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서서 연무한다

서로 합을 맞추는 쿠미타치도 새롭게 짰다. 검도의 형(型)이 유급자, 유단자 구분없이 7가지만 있는데 비해 검선도의 형은 수련자의 레벨에 맞추어 유급자용 5개, 유단자용 5개로 나누어 편성했다.

4.3. 참선

또한 기술적인 부분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면을 중시하여 참선을 도입하였다. 창시자 서정학 9단의 무도 기원이 일본의 검도라는 점과 선(禪) 수련도 딱히 왜색과 한국색을 구별하기가 용이하지 않다는 점을 들어 비판하는 여론이 있는데, 말이 비판이지 사실상 억지에 가까운 트집잡기에 불과하다. 이미 구한말이면 조선에서 수련이 가능했던 전통 무기술은 국궁밖에 남지 않았며, 그러한 상황은 현대 대한민국에서도 사실상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2]

4.4. 봉술

서정학이 검도 수련을 바탕으로 정립한 단봉술과 쌍봉술을 2012년 3월 부터 사범강습회에서 창암봉술이라는 이름으로 교습한다. 서민석 총사는 창암봉술의 보존과 발전을 위해 뜻을 같이하는 후학들과 함께 2022년 1월 15일에 창암봉술보존회를 창립하였다. 서민석 총사는 검선도와 창암봉술보존회를 분리해서 지도하며 창암봉술보존회의 수련체계를 정립해나갈 예정이다.

4.5. 결론

검선도는 검도 항목에서 볼 수 있는 현재 검도에 대한 비판점을 받아들여 개선을 추구한 수련체계라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론 검선도가 한국색을 크게 내세우지 않는다는 점에서 딱히 한국적인 검도라기보다는 왜색만 배제시키고 공통된 검리를 발전시킨 성향이 크다고 평하기도 한다.

5. 기타

월단(단증 남발)이나 단기 지도자연수가 일절 없기로도 유명하다. 검선도 창립 초기에 많은 해동검도, 합기도 사범들이 단기 지도자연수를 받으려고 찾아왔다가 백띠부터 매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말에 고개를 휘휘 젓고 돌아갔다고 한다. 극 초기에는 검도 단증만은 검선도 단으로도 인정해줬지만, 지금은 그런 거 없다. 서민석은 단기연수나 월단으로 인한 사범육성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절대 서두르지 않고 어디까지나 원칙적으로 해결해 나간다는 방침을 확고히 했다. 이는 검선도의 전파보다는 창암류 검선도의 맥을 잇는 것을 중요시하는 검선도 내 고단자 사범들의 인식과 함께 검선도의 보급이 더딘 이유이기도 하다.

다만 지닌 가치에 비해 홍보가 덜한 감이 있어 진입장벽을 높인다는 점이 문제라면 문제일 것이다.


[1] 대한검도회가 까였던 것이 전통무예라고 선전하면서 승단 심사에 대일본제국형 대도 7본과 소도 3본을 본다는 점이었다.[2] 현재 한국에서 전승, 내지는 수련 가능한 무기술은 위에 언급한 국궁을 빼면 전부 창작 내지는 복원무술이거나 중국무술, 검도와 같이 타국으로부터 유래된 것들뿐이며, 근래에 들어 서양 검술 복원, 훈련 단체인 ARMA칼리 아르니스 등이 전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