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르타뉴 공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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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FFFF><colcolor=#000000> 브르타뉴 공작 게레흐 Guérech | ||
이름 | 게레흐(Guérech) | |
출생 | 933년 잉글랜드 왕국 | |
사망 | 988년 브르타뉴 공국 낭트 | |
재위 | 브르타뉴 공국의 공작 | |
981년 ~ 988년 | ||
아버지 | 알란 2세 | |
어머니 | 유디트 | |
형제 | 호엘 1세 | |
배우자 | 아렘부르가 | |
자녀 | 알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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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르타뉴 공국의 공작.2. 행적
933년경 잉글랜드 왕국에서 망명 생활하던 알란 2세가 유디트라는 이름의 정부와의 사이에서 낳은 사생아다. 친형제로 호엘 1세가 있었다. 그는 오를레앙 인근의 생브누아쉬르루아르 수도원에서 자랐고, 성직 훈련을 받았다. 981년 형이자 브르타뉴 공작 호엘 1세에 의해 낭트의 주교로 선출되었고, 투르로 가서 대주교로부터 성직을 받으려 했다. 그러나 게레흐가 투르를 향해 여행을 떠난 동안, 갈루론(Galuron)이라는 인물이 렌 백작 코난 1세의 지시에 따라 호엘 1세를 암살했다. 게레흐는 이 소식을 접하자 곧바로 낭트 주교직을 포기하고 낭트로 귀환한 뒤 브르타뉴 공작에 선임되었다.이후 형을 죽인 코난 1세와 대적하는 한편, 982년 푸아티에 백작 기욤 2세와 동맹을 채결하고, 아버지 알란 2세가 획득한 루아르 강 남쪽의 모쥬, 티파우즈, 에르보쥬의 영유권을 인정받았다. 983년 서프랑크 왕국의 국왕 로테르를 알현하고 경의를 표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앙주 백작 조프루아 1세에게 가로막혔고, 조프루아 1세는 그를 포로로 잡아둔 뒤 자신으로부터 낭트의 영유권을 수여받았다는 걸 인정하고 자기의 가신이 되라고 요구했다. 그는 이 요구에 따르겠다고 밝히고 결국 풀려났다. 한편, 그의 아내 아렘부르가는 앙세니에 요새를 건설했다.
988년, 게레흐가 사망했다. 낭트 연대기에 따르면, 렌 백작 코난 1세는 그가 앙주 백작과 연합해 자기를 대적할 것을 두려워해 게레흐의 주치의이자 르동 수도원장이기도 한 헤로이쿠스를 설득해 그를 독살하도록 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 기록의 진위는 불분명하다. 사후 르동의 생소베르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사후 어린 아들 알란이 낭트 백작을 맡았지만 2년만인 990년에 병사했고, 렌 백작 코난 1세가 낭트를 접수한 뒤 브르타뉴 공작에 선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