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르타뉴 공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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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FFFF><colcolor=#000000> 브르타뉴 공작 아르튀르 2세 드 브르타뉴 Arthur II de Bretagne | ||
이름 | 아르튀르(Arthur) | |
출생 | 1261년 7월 25일 브르타뉴 공국 낭트 | |
사망 | 1312년 8월 27일 브르타뉴 공국 릴르 성 | |
지위 | 브르타뉴 공작 | |
1305년 ~ 1312년 | ||
아버지 | 브르타뉴 공작 장 2세 | |
어머니 | 잉글랜드의 베아트리스 | |
형제 | 장, 마리, 피에르, 블랑슈, 엘레오노르 | |
배우자 | 마리 드 리모주, 드뢰의 욜랑드 | |
자녀 | 장 3세, 기 7세, 피에르, 장 드 몽포르, 베아트릭스, 잔, 알릭스, 블랑슈, 마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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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브르타뉴 공국의 공작.2. 생애
1261년 7월 25일 브르타뉴 공국의 중심지인 낭트에서 출생했다. 아버지는 브르타뉴 공작 장 2세이고, 어머니는 잉글랜드 국왕 헨리 3세의 딸인 잉글랜드의 베아트리스였다. 형제로 장[1], 마리[2], 피에르[3], 블랑슈[4], 엘레오노르[5]가 있었다.1275년 리모주 자작 기 6세 드 리모주와 부르고뉴의 마르그리트[6]의 딸인 마리 드 리모주와 결혼해 아내의 이름으로 리모주 자작이 되었으며, 1305년 11월 18일 아버지가 리옹에서 벌어진 낙상 사고로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사망한 뒤 브르타뉴 공작이 되었다. 이후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1세로부터 리치먼드 백작위와 영지를 부친으로부터 물려받는 것을 인정받았다.
아버지 장 2세는 1302년에 작성한 유언장에서 십자군 원정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자금으로 30,000 리브르를 조달한다고 명시했다. 그는 이 유언장을 집행해 십자군에 참여해야 했지만, 남동생인 장이 스코틀랜드에서 에드워드 1세를 따라 전쟁을 치르는 중이라서 그가 돌아오면 십자군 원정을 떠나겠다고 밝혔다. 이후에는 건강이 나빠졌기에 집자군에 참여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렇게 십자군 원정을 미루던 1308년, 생말로의 부르주아들이 프랑스 왕국 북부의 도시들의 예를 따라 코뮌을 형성하려고 봉기했다. 이에 1308년 9월 22일 코탕탱의 집행관이 파견한 특사가 생말로에 들어와서 그들이 자치권을 누리게 해주겠다고 약속해 봉기를 중단하도록 했다.
한편, 아르튀르 2세는 사망 시 성직자가 부과하는 부과금, 결혼식 행사를 놓고 브르타뉴 공작과 교회가 오랜 갈등을 겪던 걸 종식하고 성직자들의 권리를 인정했다. 또한 십일조는 전적으로 허용되지만, 사제의 여행을 위해 8 디나르를 제공해야 하는 의무는 "가난한 사람", 즉 동산 가치가 30솔 미만인 사람들에게 적용되지 않도록 했다. 이 합의는 1309년 6월 27일 플로에르멜에서 열린 공의회에서 그와 교황 클레멘스 5세의 협의 결과 이뤄졌다.
아르튀르 2세는 1312년 8월 27일 릴르 성에서 사망했다. 그의 심장은 플로에르멜의 카르멜회 수도원에 안장되었고, 유해는 반의 코르들리에 성당에 안장되었다. 그의 석관은 프랑스 혁명 시기에 파괴되었다. 사후 장남 장 3세 드 브르타뉴가 브르타뉴 공작이 되었다.
3. 가족
- 마리 드 리모주(1260 ~ 1290): 리모주 자작 기 6세 드 리모주와 부르고뉴의 마르그리트의 딸.
- 장 3세(1286 ~ 1341): 브르타뉴 공작.
- 기 7세 드 리모주(1287 ~ 1331): 팡티에브르 백작 및 리모주 자작.
- 피에르(1289 ~ 1313): 아베네스 영주.
- 욜랑드 드 드뢰(1269 ~ 1322): 드뢰 백작 로베르 4세 드 드뢰의 딸. 스코틀랜드 국왕 알락산다르 3세의 미망인.
- 장 드 몽포르(1294 ~ 1345): 몽포르 백작. 이복 조카인 잔 드 팡티에브르를 상대로 브르타뉴 공작위 계승 전쟁을 벌였다. 브르타뉴 공작 장 4세 드 브르타뉴의 아버지.
- 베아트릭스 드 몽포르(1295 ~ 1384): 헤데 여성 영주. 1315년 라발 영주이자 비트레 남작인 기 10세 드 라발과 결혼.
- 잔 드 몽포르(1296 ~ 1364): 말 백작인 로베르 드 플란데런의 부인.
- 알릭스(1297 ~ 1377): 방돔 백작 부샤르 6세의 부인.
- 블랑슈(1300년 7월 18일): 출생 직후 사망.
- 마리(1302 ~ 1371): 푸아시 수녀.
[1] 1266 ~ 1334, 리치먼드 백작[2] 1268 ~ 1339, 생폴 백작 기 4세 드 샤티옹의 부인[3] 1269 ~ 1314, 1294년까지 레옹 자작을 맡았지만, 말을 지나치게 많이 구입하다가 너무 많은 빚을 져서 레옹 자작령 형 아르튀르 2세에게 팔았다. 이후 아버지와 함께 플란데런 전쟁에 참여했다.[4] 1270 ~ 1327, 아르투아 백작 로베르 2세 다르투아의 아들인 필리프 다르투아의 부인, 아르투아 백작령을 놓고 고모 마호트와 대립했고, 프랑스 국왕 필리프 6세에게 추방된 뒤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의 편을 들어서 백년전쟁에 참여한 로베르 3세 다르투아의 어머니.[5] 1275 ~ 1342, 퐁트브로의 제16대 수녀원장[6] 부르고뉴 공작 위그 4세의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