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color=#fff><colbgcolor=#0047a0> 창씨명 | 케이탄 케이산(桂丹景燦) |
이명 | 계추림(桂秋林)[1], 계선화(桂善化) |
본관 | 수안 계씨[2] |
출생 | 1912년[3] 2월 17일 |
평안북도 선천군 군산면 대목리 (현 평안북도 선천군 장공리) | |
사망 | 미상 |
미상 | |
상훈 | 건국훈장 애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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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 202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1912년 2월 17일 평안북도 선천군 군산면 대목리(현 선천군 장공리)에서 독립유공자인 아버지 계창림과 어머니 평산 신씨(1896 ~ ?)[4] 사이에서 1남 1녀 중 외아들로 태어났다.어릴 적 만주로 이주하여 농업에 종사하다가 1933년 4월 만주국 봉천성 관전현(寬甸縣) 제3구(第三區) 우모오촌(牛毛塢村)[5]에 거주하면서 조선혁명군에 가입하였으며, 참사(參士)로서 관전현과 환인현(桓仁縣)[6] 두 현을 넘나들면서 독립운동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했다. 그 해 8월 27일[7] 밤에는 전에 조선혁명군의 총기를 탈취했다가 근래 항일 반만군(反滿軍)으로 전향한 관전현 이차성구(裡岔城溝)[8]의 중국인 12명을 습격하여 러시아식 장총 9정과 탄환 150발, 아편 등을 빼앗고 이틀간 인질로 잡아 300원을 모금하였다.#
1934년 9월 23일[9]에는 무기 탈취를 위해 만주국 경찰관이 탄 자동차 3대를 습격하였으나 곧 경찰의 지원대가 뒤따르자 도주하여 몸을 숨겼다. 그러나 결국 1936년 5월 체포되었으며, 그 해 6월 15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강도 및 살인미수 혐의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202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