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지균의 주요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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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상 | |||||
제28회 (1990년) | → | 제29회 (1991년) | → | 제30회 (1992년) | |
장길수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 → | 곽지균 (젊은 날의 초상) | → | 김호선 (사의 찬미) | |
각색상 | |||||
제29회 (1991년) | → | 제30회 (1992년) | → | 제31회 (1993년) | |
이문웅 하명중 (혼자도는 바람개비) | → | 곽지균 (걸어서 하늘까지) | → | 정지영 공수영 조영철 심승보 (하얀전쟁) | |
본명 | 곽정균(郭楨均) |
출생 | 1954년 11월 10일 |
사망 | 2010년 5월 25일[1] (향년 55세) |
대전광역시 서구 둔산동 | |
학력 | 서울예술전문대학 영화학 |
직업 | 영화 감독 |
데뷔 | 1986년 영화 '겨울 나그네' |
1. 소개
한국의 영화 감독.2. 커리어
1980년 영화 깃발 없는 기수의 조감독으로 영화계에 뛰어든다. 감독 데뷔는 1986년 겨울나그네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이 작품으로 대종상 영화제 신인감독상을 수상했다. 이후 꾸준히 연출을 하면서 1987년 두 여자의 집, 1991년 젊은 날의 초상, 그 후로도 오랫동안, 상처 등을 만들며 나름 80~90년대에 상당한 인지도를 쌓으며, 충무로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자리 잡았다.2000년 김래원, 배두나 주연의 청춘, 6년 뒤인 2006년에 개봉한 지현우, 임정은 주연의 사랑하니까, 괜찮아가 흥행에 연달아 실패하며, 내리막길을 걸었고, 2009년 은퇴했다고 한다.
3. 사망
2010년 자택에서 연탄가스를 피워 자살하였다는 소식이 뒤늦게 알려졌다. 부패된 냄새가 심하다는 아파트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쳐서 경비원이 112에 신고했고 구조대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온 결과 심하게 부패된 상태로 발견됐다. 향년 55세.# 2009년 방자전의 조감독이 한 호텔방에서 목숨을 끊은 것이 알려지고 난 이후 또 한 번의 충격을 안겼다.자신의 노트북에 '잠들기 전에 가야할 먼 길'이라는 제목의 자서전 형식의 유서를 남겼다.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았다고 알려졌으며, 유서에는 "일이 없어 괴롭고 힘들다."는 내용이 적혀있었다고 한다. 생활고도 겪었다고 한다. 청춘과 사랑하니까, 괜찮아의 실패 때문에 우울증이 더 심해졌다고. 특히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최측근에 따르면, "평소 외롭다는 말을 자주 했다. 좋아하는 영화도 만들 상황이 못 됐고, 가족이 있던 것도 아니어서 그의 생활고나 우울증을 돌봐줄 사람도 없었다."고... 마지막 영화가 흥행에 실패한 이후, 프로듀서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과의 연락을 끊었다고 한다. 2009년까지 충무로 제작사를 찾아다니며 투자 문제 등을 부탁한다는 사실만 종종 들었다고 한다. 휴대전화도 없었던지라, 곽지균과 연락을 주고 받는 지인 숫자가 손에 꼽았다고 한다. 결국 영화 일을 접고, 대전에 내려간 뒤로는 자택인 아파트에서 칩거 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의 형수(형인 곽종갑의 부인)는 "요즘 같은 시대에 핸드폰도 없고 아무것도 가지고 다니지 않고 입지도 않던 그런 사람이었다. 시인 천상병같은 삶을 살았다"고 그를 회상했다.
4. 연출작 일람
- 1986년 겨울나그네 - 데뷔작
- 1987년 두 여자의 집
- 1989년 그후로도 오랫동안
- 1989년 상처
- 1991년 젊은 날의 초상
- 1992년 이혼하지 않은 여자
- 1994년 장미의 나날
- 1997년 깊은 슬픔
- 2000년 청춘
- 2006년 사랑하니까, 괜찮아 - 유작
[1] 이 날은 그의 시신이 발견된 날짜로 경찰은 부패 상태가 심했던 걸 감안하면 실제로는 5월 10일 전후로 추정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