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6 11:06:28

구마모토 성

일본 3대 명성
오사카 성 구마모토 성 나고야 성
오사카부 오사카시 구마모토현 구마모토시 아이치현 나고야시
※: 나고야성 대신 히메지 성이나 히코네 성을 꼽기도 한다.
<colbgcolor=#BE0529><colcolor=#fff> 구마모토 성
[ruby(熊, ruby=くま)][ruby(本, ruby=もと)][ruby(城, ruby=じょう)] | Kumamoto Castle
파일:Kumamoto_Castle.png
형태 <colbgcolor=#fff,#2d2f34>, 궁전
건설 1469년 (분메이 원년)
가토 기요마사
폐성 1874년 (메이지 7년)
주소 구마모토현 구마모토시 주오구 혼마루 1-1

1. 개요2. 역사3. 재손상4. 구조5. 찾아가는 길6. 대중매체에서7. 여담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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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어 안내 페이지

일본 규슈 구마모토현 구마모토시 주오구에 위치한 . 일본 3대 성[1]으로 알려져 있다. 성의 역사를 설명한 단락에서 서술된 것처럼 성의 주요 시설은 후대에 복원한 건물로 고전 건축물을 기대하고 들어갔다가 크게 실망할수도 있다. 별칭은 '은행성(銀杏城)'. 농성전(籠城戰)을 대비해서 그 열매가 식량이 될 수 있는 은행나무를 성내에 많이 심어서 붙여진 별명이다.

한국인들에게는 가토 기요마사가 쌓은 성으로 유명하지만, 일본에서는 세이난 전쟁의 무대로 유명하다. 구마모토 성 내부에 있는 박물관의 유물 중 상당수가 서남 전쟁에 쓰인 것들이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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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토 기요마사가 임진왜란에 참전하면서 얻은 축성술을 바탕으로 만든 성으로 알려져 있지만, 완전히 새로 지은 성은 아니다. 무로마치 막부 중기인 15세기 중엽에 히고국(肥後国)의 수호직을 맡고 있던 이데타 히데노부(出田秀信)에 의하여 '지바 성(千葉城)'이란 이름으로 축성되었다. 이후 이데타 씨가 몰락하면서 여러 번 주인이 바뀌는 과정에서 '구마모토 성'으로 이름도 바뀌게 되었다. 이때는 한자가 '隈本'으로 약간 달랐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 전역을 통일한 뒤인 1591년 가토 기요마사가 구마모토로 전봉하게 된다. 기요마사는 기존의 구마모토 성 주변 구릉 일대에 성벽을 두르게 하였고, 이때 구마모토의 한자를 지금의 '熊本'으로 고치도록 하였다. 특히 임진왜란 참전 후 축성의 달인이 되어[2] 돌아온 후부터는 울산성 전투 당시 식량과 식수 부족에 고생한 경험을 살려, 식용 가능한 토란 줄기[3]로 만든 다다미를 짜고 성벽에는 조롱박으로 도배를 했고, 은행나무와 소나무를 심었다. 심지어 성의 밧줄과 흑벽에 넣는 짚에도 토란줄기를 사용했으며, 흙바닥에도 토란 등의 작물을 심었다. 식수 부족을 막기 위해 성 안에 우물도 120개나 팠다.[4]

구마모토 성을 쌓는 데 동원된 사람 중에는 가토 기요마사가 납치한 조선인들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실제로 구마모토 성의 기와는 조선식에 가깝다. 사진 그리고 지금도 구마모토 현의 구마모토 시에는 울산정역(우루산마치역)이 있는데, 울산인들이 이 지역에 정착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가토 기요마사가 열과 성을 다해 지은 구마모토 성은 그의 아들 가토 타다히로 시절에 가이에키 크리로 중앙정부에 성과 영지를 뱉어내야 했고, 이후 호소카와 타다오키의 아들 호소카와 타다토시가 이봉되어 들어온다. 현재 남아있는 성은 가토 기요마사가 개축한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라 후에 들어온 호소카와 가문에 의해 10년에 걸쳐 80곳을 수리한 것이다. 1623년에 큰 지진으로 천수각과 건물이 무너졌고, 7년 뒤에 호소카와 타다토시가 성에 들어왔을 때는 천장에서 빗물이 새고 성벽이 무너진 채 방치된 상태였다. 구마모토 지역은 지진이 빈번한 곳이라 그 뒤로도 8차례의 대지진을 겪었고, 그때마다 성주들은 막대한 돈을 들여 수리를 했다. 특히 1854년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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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
전쟁을 대비해 쌓은 난공불락의 요새였지만 정작 태평성대가 이어져서 수백년간 전쟁을 겪지 않았다. 그러나 1877년부터 서남전쟁이 시작하고 나서야 가토가 심혈을 기울였던 요새는 제대로 그 위력을 발휘했다. 가고시마사이고 다카모리는 메이지 정부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키자 정부군이 진압하러 나섰지만 패배하고 구마모토 성으로 퇴각하면서 농성전을 펼쳤다. 정부군은 구마모토 성에서 무려 57일간 농성을 벌였고 사이고 다카모리의 군대는 성 안으로는 한발짝도 들어가보지도 못하고 퇴각했다. 이때 사이고 다카모리는 "나는 관군에게 진 것이 아니다. 세이쇼(가토 기요마사의 '清正'의 음독) 공에게 진 것이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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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구마모토 성 전투 당시 정부군과 사쓰마군의 배치.jpg
공성전 당시 정부군과 사쓰마군의 배치 상황을 담은 지도

그리고 전투 3일 전에 원인 불명의 화재가 발생, 대, 소천수각을 비롯한 저택 등 혼마루의 건물들이 불에 타서 소실되었다. 이후 1889년에는 또 한 차례 대지진으로 성은 크게 파손되었고, 60개였던 야구라(방어용 탑 櫓)은 이때 4분의 3이 무너졌다. 그러나 거의 보수하지 않고 방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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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년 당시 천수각의 복원 사진

1927년에 들어서야 우토 야구라가 복원되었고, 전후인 1950년대부터 전국적으로 성의 복원 활동이 일어나자 이 흐름에 맞춰 구마모토 성도 본격적으로 복원이 시작되었다. 지금의 대부분은 이때의 복원 작업으로 성을 거의 새로 지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천수각도 1960년에 철근 콘크리트로 외형만 복원한 사실상 현대 건축으로 내부는 건축 당시의 모습을 느낄 수 없는 일반적인 전시관으로 조성되어 있다.

현존하는 우토 야구라(宇土櫓)(제3의 천수각이라고 불리운다) 등의 야구라(櫓)와 성문, 담 13동은 국가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성터는 '구마모토 성터'로서 국가 특별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천수각의 각 내부 중 구마모토 시립 구마모토 박물관의 분관에 전시관이 있다. 대형 주차장에서 천수각 방향으로 올라가는 길의 돌벽을 살펴보면 구멍이나 땜질이 되어있는 부분이 보인다. 서남 전쟁 당시의 총탄에 의한 흔적이라고 하는데 진위는 불명.

3. 재손상

2016년 4월 14일 구마모토 전역에서 발생한 규모 6.8과 규모 7.3의 지진으로 인해 성곽이 일부 붕괴되고 성 전체에서 먼지 구름이 치솟는 모습이 발견되었다. 또한 16일 새벽에 발생한 지진으로 구마모토 성의 주요 망루인 '히가시주하치켄야구라(東十八間櫓)'와 '기타주하치켄야구라(北十八間櫓)'가 완전히 붕괴되었다. 이들은 모두 국가 중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건축물이다. 현재 피해 상황이 정확하게 어느 정도인지 조사에 들어간 단계는 아니지만, 심각할 경우 완전 복구에 최대 20년 정도가 걸릴 수도 있다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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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각은 버텨냈으나 떨어져 나간 기와와 돌담 복구에 3년, 무너진 성벽과 망루 등 성 전체를 복구하는데는 20년이 걸린다는 보도가 나왔다. 복구에 사용되는 사업비는 적어도 600억엔이 넘을 것으로 보고있다. 전체적인 피해 상황은 구글 어스에서 3차원 모델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2020년 9월에 내부 공사가 완료하였으며, 2021년 3월에 전면 재개장을 가진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21년 3월의 1차 재개장까지만 이루어지고 4월로 예정되었던 2차 재개장 및 그 이후의 모든 관람이 중단되었다. 구마모토 성 관람안내 페이지

2023년 들어 코로나의 기세가 꺾이면서 일반 관람이 재개된 상황이다. 천수각은 복구 과정을 마치고 완전히 재개장했다. 차후 있을지 모를 지진에 대비하기 위해 현대적인 건축기술을 접목한 추가적인 보강을 해둔 상태이다.[5] 다만 곳곳에 손상된 석축이 아직 남아 있어, 안전을 위해 관람로가 제한되어 있다.

4.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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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시대 당시의 성내와 주변 마을을 재현한 건축 모형

서남전쟁 때 불탄 이후로 꾸준히 복원되어 왔다. 천수각이 복원된 이후 성의 주요 건물들이 차례로 다시 들어섰고, 2009년에는 혼마루 어전까지 복원되었다. 최근에 복원된 어전에서는 옛 정취를 느낄 수 없지만 거실인 오오히로마나 접견실로 쓰였던 쇼쿤노마(昭君之間) 등은 관람할만하다. 앞으로도 망루와 성문, 성벽 등을 꾸준히 다시 세울 계획이지만 향후 40년은 지나야 옛 모습으로 완전히 복원될 것으로 보인다. 니노마루와 산노마루 지역에는 광장과 박물관, 미술관 등이 들어서 있다. 산노마루 북서쪽에는 호소카와 교부 저택을 이축해 놓았다.

5. 찾아가는 길

JR 구마모토역에서 접근하려면 역 앞에서 구마모토 시영 전차를 타고 구마모토죠·시야쿠쇼마에역(구마모토 성·시청 앞역)에서 내린다. 입장료는 500엔. 이 외에도 성 바로 앞에서 내려주는 버스와, 성 내에서 운행하는 셔틀 버스 등이 있으니 유용하게 이용하면 좋다.

대다수 버스의 종점인 구마모토 사쿠라마치 버스터미널에서는 도보로 5분 ~ 10분만 걸으면 갈 수 있다.

6. 대중매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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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일본침몰을 원작으로 한, 2006년 개봉한 영화 일본침몰만화 일본침몰에서는 인근 아소산의 대규모 분화로 인해 날아오는 화산탄에 직격으로 맞아 파괴된다.

7. 여담

  • 구마모토현 구마모토시 출신의 야구선수 무라카미 무네타카는 2019년부터 1홈런 당 일정액을 복구비로 지원하고 있다. 복구완료 예정시기인 2037년까지 자신이 현역으로 야구를 하고 있는 한 지원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깨끗한 구마모토 성을 보고 싶고, 다시 원상태로 복구되는 것에 의해, 많은 관광객이 구마모토 성에 발길을 옮겨 주시면 좋겠다고 인터뷰하기도. #
  • 명탐정 코난 명탐정 코난 X파일 시즌3 37화 불과 물의 미스터리 투어 (구마모토 편)에 나온다.

8. 관련 문서



[1] 구마모토 성, 오사카 성, 나머지 하나는 히메지 성을 꼽는 곳도 있고, 나고야 성을 꼽는 곳도 있다.[2] 실제로 이후 구마모토 성에서 보여준 기요마사의 축성 형태는 에도 후기 병학자들에게 아예 '기요마사류(清正流)'란 이름으로 독자적인 양식으로 인정받기에 이른다.[3] 가마쿠라 시대부터 일본에서 야전 전투 식량으로 많이 썼다. '이모가라나와(芋がら縄)'라고 해서 토란 줄기를 잘라 된장으로 조린 후 말려서 노끈처럼 엮은 것. 허리에 감고 다니다가 노끈 대용으로도 쓰고 숙영지에서 끓이면 즉석 된장국이 되니 이걸 먹었다. 국내에는 이게 고구마 줄기로 잘못 알려져있는데 과거 KBS 역사스페셜에서 울산성 전투를 다루며 고구마 줄기라고 잘못 알린 탓이다.[4] 이렇게 공성전에 대비하여 식수의 고갈을 막기 위한 방책으로 우물을 파 두는 건 다른 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고구려평양으로 천도해서 쌓았던 대성산성에서도 전설에는 99개의 연못이 있었다는데 발굴 조사 결과 전설의 2배에 달하는 170개연못이 확인되었다고.[5] 천수각 안으로 진입하면 하중을 추가적으로 지탱하는 강철프레임과 석축이 무너질 시 내부로 쏟아지지 않도록 철망을 세워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