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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마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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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조직폭력배 두목
종로
구마적
신마적
쌍칼
본정
하야시
서대문
김기환
왕십리
김남산
마포
정춘식
<colbgcolor=#000,#050505><colcolor=#fff> 구마적
舊馬賊
파일:사본_-종로3파전.png
왼쪽 아래에 있는 그림. 히스토리 채널에 나온 구마적 삽화.
본명 고시형 (高時亨)[1]
창씨개명 타카야마 이사오 (高山勲)
별명 구마적
출생 1907년~1910년?
일본 제국 도치기현
사망 1960년대 (추정) (향년 49세~63세 사이)
대한민국
국적
[[대한민국|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신체 182cm, 112kg
직업 조직폭력배

1. 개요2. 생애3. 루머4. 여담5. 대중 매체에서

[clearfix]

1. 개요

일제강점기 시기의 조직폭력배. 고희경이란 말은 김두한의 회고담 <노변야화>에서 김두한의 발음이 잘 들리지 않은 것에서 와전 된 것으로 당시 기록을 보면 고시형으로 나와있다.[2]

2. 생애

도치기현에서 출생했다.

그의 어린시절에 대한 얘기는 전혀 알려진 바 없다. 다만, 조직폭력배가 되기 전에는 자동차 정비소에서 일했다는 설이 있다. 김두한과 그의 동료 김동회의 회고에 의하면, 6척/30관(182cm/112kg)에 달하는 거구에 머리는 보통 사람의 두 세 배 가까이 컸다고 한다. 게다가 누가봐도 악당으로 보일만큼 굉장히 험상궂고 무서운 용모였다고 한다. 또한 힘이 하도 세서 한 손으로 작은 자동차를 들던 사람[3]이었다는 말도 김두한이 했었다.

당시 1세대 건달들의 공통된 증언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그의 무시무시한 괴력이다. 택시의 뒷채 부분을 들쳐올리고, 손으로 차돌을 내리쳐 빠개고, 동전을 휘어버리거나 잣을 열매 껍질 째 으깨는 등 믿기지 않는 괴력을 구사했다. 이 엄청난 괴력으로 사람을 보릿자루 던지듯 내동댕이를 쳤고, 게다가 해골을 박살낼만큼 무시무시한 박치기 실력을 자랑했다. 이 압도적인 싸움실력 덕분에 그의 밑으로 점점 한주먹하는 건달무리들이 모이기 시작하였고, 이를 계기로 그는 우미관의 기도부장[4]이 되며 종로에서 세력을 확장해나가며 그 위용을 떨쳤다.

실제 그의 성격은 야인시대에서 나름 점잖게 묘사된 것과는 180도 다르게 매우 난폭했다고 한다. 실제로 그는 건달생활을 시작하며 승승장구 하다보니 거만의 극에 달해 있었고, 종로에서 시장 상인들을 상대로 보호비 목적의 상납금을 내키는데로 갈취했고, 부하들을 상습적으로 폭행하며 부하들에게도 조직의 상납금 요구를 해왔다. 이때 당시 구마적의 부하였던 정춘식과 김남산은 구마적의 횡포에 따로 독립했다고 전해진다.

고시형이 마적이라 불리게 된 것은 힘이 무척이나 장사라서 마적이라 불렸다는 설도 있고, 마적단처럼 온갖 횡포와 잔혹한 짓을 서슴치 않고 해대서 마적이라는 설이 있다. 그런 그가 구마적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당시 YMCA 학생주먹패의 새로운 보스로 등장한 엄동옥과 팔씨름 승부를 한 끝에 자신이 패배하였지만, 고시형이 나이가 더 많아 주먹패들 간의 예우로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면서 마적은 구마적, 엄동옥은 신마적으로 불렸다.

이때부터 YMCA의 신마적 엄동옥과 서대문의 철권 김기환과 함께 경성 일대에서 공포스러운 존재이자 제왕으로 군림해 나갔다. 이때 김기환이 순사부장 폭행사건으로 수배가 떨어져 도피하게 되었고 김기환의 심복이였던 김두한이 그의 뒤를 이어가며 점점 자신만의 세력을 키우며 고시형의 자리를 넘보고 있었다. 이때 김두한의 나이는 고작 만 17세. 고시형은 29살이었다.[5]

고시형에게 도전할 명분을 찾던 김두한은 때마침 자신의 부하 두명이 고시형에게 얻어맞고 입원을 하게 되었고, 이때다 싶어 김두한은 그를 도발하며 밤늦은 시간 대한극장 뒷골목에서 승부를 겨룬다. 당시 김두한의 담력을 알 수 있는데, 김두한이 따라오라고 할때 구마적이 어이없어 하며 무시하려 하자 천하의 주먹이라 불리던 구마적에게 "형님이 여기 부하들 다 보는데서 나한테 두들겨 맞으면 가오 상해서 안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사람들 안 보게 극장 뒤로 따라 나오셔서 나랑 얘기합시다."라고 도발했다고 한다. 그러자 화가 난 구마적이 진짜로 김두한을 따라 대한극장 뒤로 갔고, 김두한에게 얻어맞고 쓰러져 두목 자리를 빼앗겼다.

드라마 야인시대와는 달리, 고시형은 김두한의 발길질에 면상과 미간을 걷어차여 단 두방만에 간단히 제압 당했다. 김두한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잽히면 죽으니까" 발차기로 재빨리 제압했다고 한다. 거구이던 김두한보다도 월등히 큰 덩치에 힘이 어마어마했기 때문에 힘싸움으로 가지 않고 당시 김두한이 당시 잘 쓰던 공격인 드롭킥으로 속전속결로 제압한 듯. 본인 회고에서 보듯이 고시형의 힘은 김두한도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강했다는 걸 알 수 있다.[6]

김두한과의 대결에서 패배한 고시형은 종로를 떠났고, 그 이후로 그의 소식은 더이상 알 수 없게 된다.

3. 루머

  • 인터넷에 실제 구마적의 사진이라며 돌아다니는 사진이 두 장이 있다.
    파일:external/cfs5.blog.daum.net/4694c51f60607&filename=3.%EA%B5%AC%EB%A7%88%EC%A0%81.jpg파일:이원조 선생.jpg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둘 다 아니며 실존인물 구마적의 사진은 현재 알려져 있지 않다. 우선 첫 번째 사진의 경우, 애니타운 매니저 최피디의 친구 아버지 사진이며,[7] 두 번째 사진 속 주인공은 이육사 시인의 동생인 문학평론가 이원조다. 첫 번째 사진의 경우 구마적이 역기를 한 손으로 들어올릴 만큼 힘이 장사였다는 사실만 알려졌었는데 사진상에서 역기를 한 손으로 들고 있기 때문에 구마적으로 잘못 알려진 것이다. 여담으로 위에 나온 삽화는 첫 번째에 있는 사진을 참고해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 위에 언급한대로 구마적은 김두한에게 패배 후 자취를 감추었고 그의 향후 행보에 대해서 여러가지 설들이 있다. 종로를 떠난뒤 만주로 가서 조직생활을 이어갔다는 얘기도 있고, 해방직후 종로로 돌아와 김두한이 있는 대한노총에 들어가 일을 맡아하며 원로 주먹 대우를 받다가 1960년도 경에 병으로 사망했다는 설이 있다. 당연히 이 설들은 신빙성이 제로에 가깝다.

4. 여담

  • 야인시대에서는 하야시를 비롯한 야쿠자들과 교류를 하며 원만한 모습을 보였지만, 실제로 그는 조선 상인들을 상대로 야쿠자들보다 더한 갈취를 해왔으며 특히 주점들에 외상을 밥먹듯 하여 몇몇 상인들이 고소를 한 사건도 존재한다.

5. 대중 매체에서

5.1. 드라마 야인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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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영화 장군의 아들

장군의 아들 1편에서도 구마적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야인시대의 구마적과 비교하면 그냥 공기에 가까워서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야인시대에선 엄동욱에게 신마적의 호칭을 준 건 구마적이지만 여기서는 마적을 꺾은 엄동욱이 얻은 호칭에 가깝다. 일단 생긴 것도 뭔가 호탕한 성격과는 거리가 먼 평범한 아저씨인데다 여기서는 김두한과는 접점이 전혀 없고 신마적과의 대결에서 매우 어설프게 싸우다 패배하여 퇴장한다.

대신 1편의 중간보스급인 무사시라는 인물이 야인시대의 구마적의 위치와 비슷하다.

5.3. 영화 구마적



[1] 한 때 고희경이라고 알려졌지만 당시 기록을 보면 고시형으로 나온다. 김두한도 생전에 "구마적 그 사람이 고씨였단 말이오."라고 증언한 적이 있다.[2] 사상에 관한 정보(경찰서장), 경종고비 제1721호의 1, 1942.04.07 16쪽, 同年2月19日自宅において被疑者金斗漢の紹介により其親分俗称旧馬賊こと高時亨(京)改め高山勲を知り、前掲両名に対する如き好言を述べて獲得し : 동년 2월19일 자기 집에서 피의자 김두한의 소개로 그의 두목인 속칭 마적(馬賊), 곧 고시형(高時亨, 京)을 알게 되어 위의 두 사람에게 한 것과 같은 감언으로 획득하였다.[3] 한 손으로 자동차를 들고 다른 손으로 담배를 피웠다고 했다.[4] 극장의 보안, 치안을 담당하는 총책임자.[5] 하지만 김두한은 1969년의 회고에서 "구마적은 나보다 7살 정도 많은 선배였고 당시 25살인가 26살이었다."라고 말한 바 있어서 저거보다 어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김두한은 한국 나이 18살이었다.[6] 드라마에서도 김두한 vs 구마적의 싸움은 구마적의 얼굴을 향한 김두한의 발차기가 결정타로 들어가면서 끝났다.[7]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