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1960년 엘살바도르 쿠데타 이후 군부 인사들에 의해 창당된 내셔널리즘 정당으로, 1960~70년대에 장기집권을 이룩했으나, 80년대 이후에는 몰락하여 군소정당으로 존속하고 있다.2. 역사
1960년 엘살바도르 쿠데타로 호세 마리아 레무스 대통령이 축출된 이후[1], 군부는 잠시 집단지도체제로 국가를 운영하다가 1961년에 훌리오 아달베르토 리베라의 주도하에 국민연합당을 창당했다.창당 1년 뒤인 1962년에 치러진 대선은 모든 야당이 금지된 상태에서 국민연합당의 훌리오 아달베르토 리베라 후보가 단독 출마한 상태로 치러졌고, 리베라는 100%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리베라는 5년 단임의 임기만 채우고 물러나겠다고 공언했고, 실제로 그 약속을 지켜 1967년 대선에 출마하지 않고, 기독교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후보의 출마도 허용했다.
그렇게 국민연합당은 1967년, 1972년, 1977년에 각기 다른 후보를 공천하여 당선시킴으로써 장기집권을 이어갔는데, 겉으로만 보면 다당제 선거를 통한 장기집권인데다, 5년 단임의 임기가 지켜지므로 민주적인 것 같았지만, 실상은 돌려막기로 독재 의혹을 불식시킨 것에 불과했다.
당시 국민연합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된 대통령들은 모두 리베라와 마찬가지로 군부 출신인데다, 선거 과정에서 온갖 부정을 일삼으며 야당 후보의 당선을 저지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에게 실탄까지 발포하여 학살을 자행하면서 억지로 정권을 유지했다.
또한 1969년에 국민연합당 정권이 온두라스를 선제 공격하면서 벌인 축구전쟁이 100시간이라는 짧은 시간만에 막대한 피해를 내고 무승부로 끝나서, 선빵을 때리고도 얻은 게 없었기에 국민연합당 집권기 내내 엘살바도르의 경제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결국 20년에 가까운 국민연합당 정권은 1979년에 소장파 장교들의 쿠데타로 막을 내렸고, 이로써 국민연합당은 거대여당으로서의 위세를 상실했다.
이후 소장파 군부는 군사혁명정부(JRG)를 구성하고 미국의 지지까지 받으며 토지개혁을 추진하여 민심을 얻으려 했으나, 그들 역시 시위 진압에 실탄 사용을 주저하지 않는 건 마찬가지였기에
정부군과 극좌 무장단체 파라분도 마르티 국민해방전선(FMLN) 간의 내전이 한창이던 1984년에 치러진 대선에 국민연합당은 다시 대선후보를 공천하며 재집권을 노렸다.
그러나 해당 선거에서 국민연합당 후보 프란시스코 호세 게레로는 60~70년대에 라이벌이었던 기독교민주당 후보 호세 나폴레온 두아르테는 물론이고, 로베르토 도뷔송이 이끄는 극우 정당 민족주의공화동맹(ARENA)에도 밀려 1차 투표 3위를 기록하며 광탈했다.
그리고 1989년 대선에서 ARENA가 중도우파 성향의 알프레도 크리스티아니를 공천하고 이전보다 온건한 공약을 내세워 집권한 후, 크리스티아니 정권이 FMLN과의 평화 협상을 통해 내전을 종식시키는 업적까지 새우면서, 국민연합당이 설 자리는 더욱 줄어들었다.
이로써 최소한의 명분과 지지 기반마저 잃어버린 국민연합당은 완전히 군소정당으로 전락하여 대선에서는 한자릿수 득표율을 얻고, 총선에서도 한자릿수 의석만을 얻으며 연명하는 상태가 되었다.
현재 국민연합당은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이 이끄는 여당인 새로운 생각과 함께 범여권에 속해있지만, 의석수가 한자릿수라서 존재감은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