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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제 이름은 긴다이치 코스케, 변변찮은 남잡니다.
<백일홍 나무 아래> 에서
金田一 耕助(킨다이치 코우스케.キンダイチ コウスケ)<백일홍 나무 아래> 에서
일본의 추리소설 작가인 요코미조 세이시가 창작해낸 탐정. 이 긴다이치 코스케를 주인공으로 하는 본격 추리 소설의 작품군을 일컬어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라 한다. 일본의 초창기 명탐정 중 하나로, 아케치 코고로와 함께 인기면에서 장수하고 있다.
이름의 모티브는 일본의 저명한 언어학자이자 아이누 언어의 권위자인 긴다이치 교스케(金田一 京助, 1882–1971)의 이름에서 따와 京을 耕으로 바꾸어 지금의 이름으로 만들어졌다. 풍채는 유명한 극작가인 기쿠타 가즈오(菊田 一夫)를 모델로 했으며, 버릇인 머리 긁는 행동은 요코미조 세이시의 버릇에서 좀더 강하게 묘사하였다. 그리고 곰돌이 푸로 유명한 A. A. 밀른의 유일한 추리 장편 [빨강집의 수수께끼 The Red House Mystery]에 아마추어 탐정역으로 나오는 방랑 청년 앤토니 길링검이 모델이라고 한다.
1913년 도후쿠 지방 출생. 부모님을 비롯해 친인척이 없었던 그는 19세에 홀로 미국에 건너간 후 알게 된 구보 긴조(久保銀造)의 지원으로 탐정 생활을 시작한다.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을 거치면서 장년이 되어 돌아와, 친구인 가자마 슌로쿠(風間俊六)와 그 애인의 도움을 받는 등 의식주는 타인에게 맡기고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어려운 사건들을 경찰의 수사를 바탕으로 추리해 해결하는 게 주요 골자.
마지막 사건인 병원 고개의 목매달아 죽은 이의 집이 종결된 이후, 지인들에게 쌓아 놓은 재산을 기부하고 로스앤젤레스로 떠났다가, 2년 후에 돌아와 일본에서 여생을 보낸 것으로 되어 있다. 작가라서 그런지 용케도 경찰이 못 찾았다는 사실을 당당히 술회한다.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는 여기서 끝나지만, 이후 소년탐정 김전일의 주인공 긴다이치 하지메의 외할아버지라는 설정이 확립되면서 최소 1남 1녀[1]의 자식과 손자에 손녀까지 본 할아버지가 된다.[2]
2. 인물 상세
2.1. 인상착의
신장체중이 각각 약 163.6cm와 약 52.5kg의 왜소한 체구다. 동아시아 전통 척관법으로는 5척 4촌의 키에 14관의 체중을 지녔다. 손자인 긴다이치 하지메 역시 170cm, 58kg으로 체격이 작은 편이다. 1950년대 일본인 성인남성 평균키는 160.3cm이고 1990년대 17세 남성 평균키는 170cm라서 둘 다 일본인 기준으로 작은 키는 아니다. 다만 코스케의 손녀이자 하지메의 사촌동생인 긴다이치 후미는 170cm에 가까운 장신이다.왜소한 체구에 까치집 같은 더벅머리와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이목구비를 갖춘, 볼품 없다는 평가를 받는 인상을 가진 남성. 여왕벌 대문 아래의 여자에서의 묘사에 따르면, 본인조차 이것만큼은 불만이라고 한다.
기본 복장은 기모노에 하카마이며, 주로 하오리를 상의 외투로 입는다. 밀짚모자나 중절모를 즐겨 쓰고, 때가 탈 정도로 오래 신은 버선과 나막신을 신는다. 겨울에는 상하의를 모두 덮는 인버네스 코트를 둘러쓰듯 입는다. 이에 대하여, 박쥐와 민달팽이에서는 "느낌이 흡사 박쥐와 같았다."고 지적하고 있으며 때로는 양복을 입기도 하지만 굳이 일식정장을 고집하는 이유는, 중국풍 쥘부채 부인에서의 도도로키 경부가 빈약한 영업사원 같다는 평을 하기도 했거니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혹평을 듣기 때문인 듯 하다. 에도가와 란포의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아케치 코고로도 초창기에는 비슷한 옷매무새라, 작가인 요코미조 세이시도 고민이었다고 한다. 잇슨보시에서 빈틈 없는 멋쟁이에 재주꾼이 되고 나서야 계속 해볼만 하다고 느꼈다고 술회했다.
50세가 된 병원 고개의 목매달아 죽은 이의 집에서도 겉모습은 36-37세 정도로 묘사된다. 혼진 살인사건[3]과 같이 전쟁 전에 일어난 사건을 제외하고는 줄곧 유지되는 셈이다.
2.2. 언동
사건의 핵심에 다가가거나 의외의 사실을 알았을 때에는 더벅머리를 맹렬히 긁어대는 버릇이 있다. 이 머리를 긁는 버릇은 그의 손자인 김전일도 똑같이 물려받는다. 그런데 머리를 긁을 때 악마가 와서 피리를 분다의 화족 가문 아가씨가 보인 반응처럼 주위에서 기겁할 정도로 비듬이 후두둑 떨어진다. 비듬이 만들어지기 쉬운 두피라는 듯.[4] 또한 휘파람을 불거나 비슷한 입 모양을 하기도 한다. 이렇게 번뜩이는 순간에는, 그놈의 흥분 탓에, 사람 참 없어 보이게 평소엔 문제가 없는 말까지 더듬는다는 단점이 있다.사건만 만나면 또랑또랑한 눈도, 평소에는 졸린 듯 반쯤 감겨 흐리멍텅하다는 인상을 준다. 사건이 끝나면 관계자의 이후의 삶에 대한 걱정 등으로 침울해져,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훌쩍 여행을 떠나버리는 일이 잦다. 이때문에 주위에서 끊임없이 사건을 들고 찾아오는 역설적인 일이 벌어지는데, 악마의 공놀이 노래에서 이소카와 쇼지로(磁川常二郞) 경부가 휴가를 보내고 있는 곳에서 과거에 일어난 사건 이야기를 할 때의 반응이 "이런, 싫어요. 제가 무슨 사건의 망자도 아니고." 인 것을 보면, 본인은 산적한 사건에서 단 한 순간이라도 벗어나 있기를 원하는 것 같다. 생애를 보면 정말 무지막지하게 바쁘게 사니까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사람을 끌어들이는 화술로, 경찰이 아무리 진술을 확보하려 동분서주해도 못 얻는 정보조차 이끌어내곤 한다. 젊은 이들과 대화할 때에는 그들의 나잇대에 맞는 어휘를 구사하기도 하니, 꽤 개방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범인이나 관계자의 행위가 있기까지의 과정을 살핀 끝에 괴로운 얼굴을 하며 손수건을 꼭 쥐거나, 연민의 정이 담긴 말로 다독인다. 단, 그 동기나 취한 행동이 명백하게 인간의 도리에 어긋나고 사회에 반할 경우에는 매우 신랄한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는다.'다.
2.3. 취미와 기호
가면무도회에서 드러나듯, 영화나 회화 감상이 취미다. 악마의 입술 백과에서처럼 의리로 작품을 소장하기도 한다. 영화는 학생 시절부터 모미지 데루코(紅葉照子)의 팬이었다.(안개 산장). 징집 후에 나온 영화마저 섭렵할 정도로 오토리 지요코(鳳千代子)의 열성적인 팬이기도 하다. 가부키에도 심취해 있는데, 카부키 배우인 사노가와 쓰루노스케(佐野川鶴之助)와의 인연으로 그가 후원하고 있는 <두루미회丹頂会>에 들기도 하였으며, 그와 연락이 끊기고 나서도 "엔간히 봐두지 않으면 성이 차지 않는다."고 할 정도다. 흥이 돋으면 카부키 대사를 흥얼거리기도 한다.스포츠는 서투른데, 가면무도회에서도 언급되듯이, 골프 약속이 들어오자 "운동을 못하는 몸치"라며 난색을 표한다. 그러나 토후쿠 지방 출신 답게 스키는 잘 타며,[5] 노젓기가 탁월하여 보트도 잘 몬다.
골초라 재떨이가 항상 수북하며, Peace와 HOPE를 자주 피운다. 태평양전쟁 전에는 Cherry였다. 미국에 체류 중이던 20대 때는 우연히 마약에 빠져 보호·감찰 대상이 된 적도 있다. 쿠보 긴조의 주의를 받고 끊게 되었지만, "마약도 별 것 아니야"하고 큰 소리를 치는 객기를 부린 바가 있다.
술은 일부러 찾아 마시는 정도는 아니나 못 마시는 것도 아니다. 이소카와 경부와의 식사 자리에서 맥주 두세 병을 마시거나, 큰 병을 연거푸 비워내기도 한다. 사건 해결 후에는 김 빠진 맥주를 들이키는데, 이 편이 자극이 덜하기 때문이라고. 그러면서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하거나 해결 후에 엿본 범인들의 악랄함에 초연해지기도 한다. 때로는 취하여 알딸딸한 상태를 유지하고자, 집에서 나 홀로 위스키를 즐기기도 한다. 자주 가는 클럽으로는, 흑백에 나온 '클럽 Three-X', 병원 고개의 목매달아 죽은 이의 집에서 보이는, 동창인 가자마 슌로쿠의 애인이 운영하는 '클럽 KKK'가 있다.
식생활은 1인식이므로 간편식으로 때우는 경우가 많다. "메밀 국수 한 그릇으로도 족하다."고 말하는 소식가이지만, 생각이 많아지면 반주를 곁들여 평소보다 많이 먹기도 한다. 이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장면이 도도로키 경부와의 식사 장면이다. 아래는 긴다이치 코스케의 식단인데, 하는 양을 보면 아침은 가볍게 먹고 점심과 저녁을 잘 먹는 서양식 유풍을 볼 수 있다.
- 아침
주식 : 토스트, 우유, 삶은 달걀
부식 : 샐러드, 과일, 아스파라거스 통조림 등
점심과 저녁은 주로 긴자의 음식점에서 해결하며, 일식과 중화요리를 즐긴다.
2.4. 주거 및 사무소
①삼각빌딩 꼭대기교바시 뒤편[6]에 위치. 모양 자체가 삼각형이라 삼각빌딩이다. 쇼와 21년/1946 생환 직후, 백일홍 아래에서, 옥문도, 도르레 우물은 왜 삐걱거리나 등의 사건을 해결하고, 탐정사무소 겸 주거용으로 매입. 23년/1948에 다시 사무소로 이용한 정황이 있지만, 주거지는 확실히 옮겼다.
②쇼게쓰松月 별채
3개월 만에 삼각빌딩 꼭대기 방을 매각하고 난 뒤, 중등보통학교 시절 친구인 가자마 슌로쿠의 애인인 오세쓰(おせつ)가 오모리의 야마노테에서 운영하고 있는 일식 음식점 겸 여관인 쇼게쓰의 4.5첩(약 2.24평) 별채에 기숙한다. 31년/1956까지 사무소 겸 자택으로 사용하고 있다.
③미도리가오카 아파트(綠ヵ丘莊)
일본의 아파트는 2-3층 규모의 층당 4-5호실을 갖춘 공동주택이다. 주로 莊을 붙인다. 세타가야구世田谷区 미도리가오카 소재. 독화살과 검은 날개의 연으로 2층 계단 옆방에 전입. 쇼와 32년/1957 이후로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 이후 개축하여 미도리가오카 맨션[7]이 되지만, 그 시공사가 친구인 가자마 슌로쿠의 회사인 가자마건설이라, 지인 특권으로 2층 입구에 살게 된다.
2.5. 수사법
인간관계에 중점을 두고 수사한다. 혼진 살인사건에서 언급된 것처럼, 기본적인 물증 수색은 경찰이 다 하므로, 결과를 토대로 논리적으로 검증하여 유추하는 것을 방법으로 삼고 있다. 틀림없는 진상에 도달하기까지 수사관들에게도 방향성을 전해놓지 않기에 그 사이에 희생자가 늘곤 하며, 때가 늦어 범인이 모든 범행을 마치고 자결에 이르거나 홀연히 사라지기도 한다. 도도로키 경부는 간혹 이해가 안 가는 그의 작태를 두고 "긴다이치 식 인도주의"라고 비꼰다.그는 수사 과정에선 경찰에 적극 협조하지만, 해결 직후 범인의 인도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임하지 않는다.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것이 그의 본분이기 때문이다. 서생 기질 탓에, 진상이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어도 범인이 죽으면 죽는대로 죗값을 받았다고 여긴다.
어떻게 보면 사건에 개입하는 이유는 그 해결 및 확대 방지보다는 본인의 호기심 충족에 더 가까운데, 사건이 파국에 치닫고 모든게 자연적으로 정리된 다음에야 슬금슬금 나와서 "사실 저는 모든걸 다 알고있었습니다만..." 하며 뒷북을 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몸이 둔한 그도 청소년 문고판에서는 주행 중인 트럭의 짐칸에 매달려 잠입 수사를 진행하기도 하였으며, 마대에 넣어졌을 때는 칼로 이를 찢어 탈출하기도 한다. 설정 충돌은 아닌 것이, 사각지대에서 습격해오는 범인에 대한 대처가 실로 기민하며, 석전을 통해 구사일생 하기도 하는 모습을 가면무도회 등에서 보여주기 때문이다. 가면무도회가 쇼와 35년/1960 8월의 일이므로, 나이가 40 언저리이니 중년에 들어섰을 무렵이다. 겸손도 심하면 기만이다.
원체 기본 착장이 저런 일식 정장이라, 1)짙은 남색 깃이 눈에 띄는 셔츠+개버딘 원단 바지(중국풍 쥘부채 부인)나 2)화려한 알로하 셔츠+회색 바지+베레모 유형 헌팅캡+열대거북 무늬 테를 가진 안경[8] 차림이면 그것 자체로 변장한 효과를 보인다. 하오리 없이 단복과 하카마만 입고 길거리 점술가로 분했을 때는, 주위에서 "꽤 그럴듯 하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공을 들일 때도 있다. 즉, 필요하다면 분장도 잘 하는 탐정인 것이다.
2.6. 소지품
現 도쿄 23구 밖으로 출장을 갈 때는 보스턴백이나 가방을 들고 다닌다. 트렁크백 이미지가 강하지만, 이는 이시카와 코지 주연의 영화 단독 설정이다. 생환 직후인 백일홍 나무 아래에서는 잡화가 들어 있었으며, 확대경·종이칼이나 소형 재단가위·얇은 장갑·소형 손전등이 주요 구성이다. 때에 따라서는 총격전에 대비한 방탄복을 넣기도 한다.기념할 만한 첫 등장인 혼진 살인사건이나 흑묘정 살인사건, 그리고 병원 고개의 목매달아 죽은 이의 집에서는 등나무 또는 벚나무로 만든 지팡이를 짚고 다닌다.
2.7. 인간관계
가면무도회에 따르면, 양친은 탐정을 하기 전에 세상을 뜬 것 같다.위에도 언급한 바 있는 구보 긴조는, 굴지의 실업가로, 그를 만난 것도 사업 상의 이유로 외유를 미국으로 갔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일어난 사건을 약관의 그가 해결해내는 것을 감명 깊게 보고는 지원을 하기에 이른다. 학업부터 귀국과 탐정사무소까지의 초기 생활은 이 사람 덕. 애초에 서적화 된 일본 내 첫 사건인 혼진 살인사건 때, 긴다이치 코스케는 사건이 발생한 후에 그의 호출을 받아 등장했다.
전후에는 동창인 가자마 슌로쿠와의 재회를 통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받게 된다. 전쟁 전의 구보 긴조의 역할을 물려 받은 인물인데, 본인보다는 정부인 '쇼게츠'의 주인 오세쓰의 도움이 더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그녀는 연하임에도 불구하고 손윗누이 같은 면모를 보이는데, 주로 긴다이치 코스케의 생활 전반을 돌봐주기 때문이다.
또 다른 후원자로는 신몬 기타로(神門貴太郞)가 있다. 이외에는 가끔 금전적으로 긴다이치의 편의를 봐주는 미도리가오카 아파트의 관리인인 야마자키(山崎) 부부가 있다.
경찰에게서는 신뢰를 받고 있다. 그중엔 '경시청의 능구렁이'라는 별명을 가진 토도로키 경부와 공사 모두 친밀하며, '오카야마현경의 능구렁이' 이소카와 경부와도 사건 관계로 만나면 지원을 아끼지 않는 오랜 동료 관계에 있다. 이밖에도 간혹 등장하는 이들 가운데 토도로키 경부의 부하인 아라이(新井) 형사, 미도리가오카 아파트를 관할로 둔 미도리가오카 경찰서의 시마다(島田) 경부보, 전기 작가 Y의 집이 관할에 포함되어 있는 세이조(成城) 경찰서의 야마카와(山川) 경부보 등이 그의 실력을 높게 평가한다.
한 때 껄렁패 같았던 다몬 슈(多門修)[9]는, 호기심이 왕성한 탓에 오해를 사 무고를 당할 뻔 했던 것을 그가 구해준 이후로, 때때로 긴다이치 코스케의 조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고향 후배이자 <신닛포샤新日保社>의 사회부 기자인 우쓰기 신스케(宇律木愼助)[10]도, 다몬 슈와 마찬가지로 그를 도와주는 사람 중 하나다.
2.8. 기타
TBS 테레비판 드라마 한정으로 추리가 막혀서 잘 풀리지 않을 때 물구나무를 서는 버릇이 있다는 설정이 있다. 특수전대 데카레인저의 에나리 센이치가 추리를 하거나 뭔가 생각할 일이 있을 때 물구나무를 서는 버릇이 있다는 설정은 여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것으로 보인다. 이 물구나무 서기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추리가 막힌다 싶으면 꼭 나오는지라, 드라마판에서는 긴다이치의 이 버릇을 잘 아는 히요리 경부 등의 몇몇 지인들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을 종종 식겁하게 하곤 한다.참고로 이 물구나무서기는 담당 배우 후루야 잇코가 제안한 것으로, 긴다이치가 복잡한 사건을 해결할 때 전혀 상관 없는 일을 하던 도중 문득 추리가 풀리게 되는 상황에서 뭔가 독특한 연출이 있으면 좋겠다고 해서 추가된 연출이라고 한다. 기타 연주나 지혜의 고리 풀기 등등 여러 가지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그 와중에 물구나무서기를 할 줄 아냐는 감독의 물음에 후루야가 할 줄 안다고 해서 물구나무서기로 최종 결정된 것이라고 한다.
드라마판에서의 긴다이치 코스케의 테마.
3. 생애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 '혼진 살인사건'에서 그의 이력이 소개되는데, 북쪽 지방 출신으로 19세 때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일본의 학교는 시시하다고 생각해 미국으로 떠나 거기서 공부를 하면서 접시닦기, 간호원 등 온갖 아르바이트를 한다. 그러다가 어이없게도 마약에 빠지게 되는데, 이 와중에서 샌프란시스코의 일본인 사이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을 멋지게 해결하면서 재미일본인들 사이에서 유명해진다.마침 사업차 미국에 와 있었던 실업가 구보 긴조는 긴다이치와 알게 되고, 이 만남을 계기로 그의 후원자가 된다. 그래서 마약도 끊고 학업을 마친 뒤 일본에 귀국하여 탐정 일을 시작한 긴다이치는 긴조의 요청으로 옛날 혼징(일본 다이묘등이 묵던 여관)으로 쓰였던 혼징 저택에서 일어난 밀실 살인사건을 해결한다. 이후 탐정 활동에 긴 공백기를 가지다가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자 일본 추리소설의 걸작으로 칭송 받는 '옥문도'로 돌아온다. 실은 '혼징 살인사건' 후 제2차 세계 대전이 일어나 군대크리로 징집되어 뉴기니까지 끌려갔다. 뉴기니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긴 살아남았는데, 귀국하면서 전우였던 기토 치마타가 '자신이 죽으면 여동생들이 살해당할 것'이라는 유언을 하자 그 유언을 조사하기 위해 간 치마타의 고향 옥문도에서 기묘한 살인사건을 접하는 것이 '옥문도'의 시작이다.
이 소설에서 언급 된 바에 따르면, '혼징 살인사건'은 1937년, 그리고 '옥문도'는 그로부터 9년 후의 일이다 (징집 시기를 진주만 공격 전후로 늦춰잡는다 해도 근 6년을 군대에서 보냈다는 이야기가 된다). 덕분에 '혼징 살인사건'에서 24살이던 긴다이치는 꽃다운 젊음을 전쟁터에서 쫄쫄 굶으면서 쌩으로 다 날려먹고 33살부터 다시 탐정으로 새출발을 하게 된다.
옥문도 사건을 해결한 후, 도쿄로 돌아가던 중 징집되는 바람에 연락이 끊겼던 중학교 동창 가자마 슌로쿠[11]와 우연히 재회한다. 이를 인연으로, 사실 집이 없는 형편이었던 긴다이치는 몇년간은 가자마의 집 중 하나에 기숙하며 지냈다. 덧붙여 그 집의 사실상의 주인은 가자마의 첩 중 하나인 세쓰. 이 두 명 모두 작중에서 몇 번 등장했다. 그러나 결국 도쿄에 긴다이치 코스케 탐정사무소를 차리고 수많은 단편 및 장편소설에 등장하면서 무지막지한 사건들을 해결하게 된다.
그러나 탐정 생활 막바지에 20년에 걸쳐서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충격을 받은 나머지 전재산을 기부하고 미국으로 떠난 다음 행방불명된다. 명탐정의 말로치고는 너무 비참하다.
4. 역대 담당 배우
워낙 유명한 시리즈인 만큼 여러 차례 영상화되었고, 그만큼 긴다이치 역을 거쳐간 배우들도 상당히 많다.- 영화판
- TV 드라마판
- 오카 조지
- 후나야마 유지 - 동명의 전 축구선수가 있으나 이름의 한자가 '祐二'로 다르다.
- 카네우치 요시오
- 후루야 잇코 - 1977년부터 2005년까지 TBS 테레비 계열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에서 긴다이치를 맡았으며, 드라마판의 긴다이치 코스케 역 배우 중에서는 가장 오랫동안 긴다이치를 전담했다.[12]
- 아이카와 킨야
- 오노데라 아키라
- 나카이 키이치
- 카타오카 츠루타로 - 후지 테레비 계열에서 방영된 '카타오카 츠루타로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의 주연. TBS 테레비판에 비해 화수는 적지만(총 9화) 이쪽도 나름대로 잘 알려져 있다.
- 야쿠쇼 코지
- 카미카와 타카야
- 이나가키 고로
- 하세가와 히로키
- 이케마츠 소스케
- 마시마 히데카즈
- 요시오카 히데타카
- 카토 시게아키
5. 소년탐정 김전일에서
소년탐정 김전일의 주인공 긴다이치 하지메(김전일)가 그의 외손자라는 설정은 작가인 요코미조 세이시 본인이 공인한 설정은 아니다. 소년탐정 김전일의 작가진이 연재 전에 이미 타계한 요코미조의 아내에게 해당 설정에 대해 허락을 받았지만, 다른 저작권 상속자가 있다는 것은 연재 중 상속자들의 항의로 알게 되었다.이러한 이유로 연재 초기에는 "긴다이치 코스케의 이름을 걸고!"([ruby(金田一耕助, ruby=ジッチャン)]の名にかけて!) 라고 말하고 다니던 김전일은 연재 중기부턴 그냥 "할아버지(할배)의 이름을 걸고!"(ジッチャンの名にかけて!)라고만 말하게 되었다. 루비처리가 빠진 것 뿐으로 읽는 법은 같다. 따라서 실사판이나 애니판에서는 영향이 없다. 또한 '그 유명한 명탐정의 손자'에서 '몇번이나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했다는 고교생'으로 칭호도 바뀌었다.
이후 작가진들이 상속자들 전원에게 각서를 제출하고, 일정 금액을 지불하는 것으로 해결하여서, 현재는 정식적으로 손자라는 설정이 확립되었다. 다만 긴다이치 하지메 본인이 긴다이치 코스케의 외손자라고 직접 소개하는 일은 줄어들고, 다른 주변인들이 소개하는 식으로 언급을 자제하고 있다.
소년탐정 김전일의 한국어 애니메이션 더빙판에서는 킨다이치에서 김(金)을 빼오고 코스케(耕助)를 한국식으로 읽은 김경서(金耕助)라는 이름으로 언급된다. 하지만 김경서로 확실히 정해진것은 아닌지 학원 7대 불가사의 에피에서는 사쿠라이 루이코에게 김강건이라는 이름으로 소개되기도 한다.
소년탐정 김전일로 인해 드러난 가족 관계는 최소 딸 하나, 아들 하나가 있었던 것으로 묘사된다. 딸이 긴다이치 하지메의 모친이고, 아들은 하지메의 사촌인 긴다이치 후미의 아버지다.[13] 그러니까 하지메는 코스케의 외손자인데, 성이 같은 이유는 하지메의 아버지가 긴다이치 가에 데릴사위로 들어갔다는 설정이기 때문이다. 아들은 '헤이스케'라는 이름이 공개되었으나 딸은 주인공의 어머니임에도 불구하고 이름이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메와 후미가 8살이나 차이나는 것을 고려하면 하지메의 어머니가 누나이고 헤이스케 쪽이 남동생인 관계로 추정된다.[14] 그리고 명탐정의 유전자는 손자인 하지메에게만 유전된 게 아니라서 딸도 학생 시절에 사건 해결을 제법 했다는 뒷설정이 있으며 손녀인 후미는 커서 추리소설가로 데뷔한다.
다만 이 같은 설정은 원작의 시계열과는 맞지 않는다. 코스케의 마지막 사건인 병원언덕의 2부는 쇼와 48년(1973년)인데, 이 때 코스케는 친구인 카자마가 무료로 대여해 준 맨션에서 20년 전부터 줄곧 홀로 살면서 맨션의 관리인 부부에게 가사 전반을 신세지고 있었고[15], 이 때까지도 독신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문제는 손자인 하지메가 1978년생이라는 것이다. 즉 코스케는 5년도 채 안되는 시간 동안 미국에 갔다가 귀국해서 딸을 가지고 손자까지 봤다는 소리가 된다.
거의 설정상의 인물로만 존재하지만, 설귀 전설 살인사건에서 뒷모습으로 딱 한 컷이지만 출연도 한다. 하지메의 회상 장면에서 어린 하지메에게 마술을 가르쳐주는 장면으로 등장하는데, 나이를 많이 먹어서 백발의 노인이 되었다. 하지메에게 가르쳐준 마술과 바둑, 오목, 쇼기 등은 하지메의 주특기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김전일이 먼저 유명해졌다. 그래서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가 한국에서 출판 되었을때는 일본과는 정반대로 오히려 '그 유명한 소년탐정 김전일의 할아버지'라고 홍보되었다.
[1] 확인 된 자녀는 딸 긴다이치 하지메의 어머니, 아들 긴다이치 헤이스케.[2] 작가 요코미조 세이시는 김전일 시리즈 시작 11년전인 1981년에 이미 타계했지만 요코미조의 남은 유족들에게 미리 허락을 받았고, 연재 시작 당시엔 있는 줄 몰랐던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의 저작권을 나눠가진 다른 이들과도 후일 합의를 했기에 이는 엄연히 정식 설정이다.[3] 本陳. 에도막부 시대에 참근교대로 지방의 다이묘가 도쿄로 갈 때 묵었던 여관.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것을 찾자면, 역참驛站에 설치된 역원驛院이 있다.[4] 거기에 더해 트레이드마크인 숱이 많은 더벅머리도 영향이 크다. 머리가 빽빽하다고 비듬이 더 많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생긴 비듬이 자연스럽게 떨어지지 못하고 머리카락 사이에 끼기 쉽기 때문.[5] 이누가미 일족[6] 現 긴자 뒤편이다.[7] 일본의 맨션이 도리어 한국의 아파트와 비슷하다.[8] 수컷 거머리[9] 수컷 거머리에서는 다몬 롯페이타(多門六平太)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행적이 비슷해 동일 인물로 여긴다고 한다. 참고로 첫 등장인 중국풍 쥘부채 부인에서는 다몬 오사무(多門おさむ)로 표기되어 있다가, 대문 아래의 여자병원 고개의 목매달아 죽은 이의 집에서는 다몬 슈로 나오는데, 修의 일본어 훈독(おさむ)과 음독(しゅう)이기 때문에 연재 시 요코미조 세이시가 실수했거나 작중 개명으로 보인다.[10]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이전의 추리 소설 시리즈인 유리 린타로 시리즈의 작품 중 단편 <국화대회 사건>의 탐정 역할로 등장하는 우츠기 슌스케(宇津木俊介)가 이 캐릭터의 원형으로 추측된다. 참고로 우츠기 슌스케는 유리 린타로 시리즈의 더블 주인공 포지션인 미츠기 슌스케의 이름 표기 혼용으로 간주되는데, 미츠기(우츠기)의 직업도 신문기자인데다 그가 일하는 신문사의 이름도 신닛포샤. 다만 유리 린타로 시리즈의 신닛포샤는 新日報로 한자가 약간 다르다.[11] 전쟁 이후 크게 성공한 인물로, 가자마 건설의 사장. 후에 가자마는 긴다이치의 후원자 중 한 명이 된다.[12] 2019년에는 아래의 카토 시게아키가 긴다이치 역을 맡은 <악마의 공놀이 노래~긴다이치 코스케, 다시~>에서 이소카와 경부 역으로 출연, 구세대와 신세대 긴다이치 배우가 함께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 덤으로 후루야는 이소카와 경부 역을 제의받았을 때 처음에는 망설였지만, 지금의 자신이 긴다이치의 버디인 이소카와를 연기하면 어떨지 흥미가 생겨 출연을 수락했다고 한다.[13] 헤이스케는 하지메에게 외삼촌이고, 하지메의 어머니는 후미에게 고모가 된다.[14] 하지메가 17세였을때 헤이스케는 40세였다. 정황상 하지메의 어머니는 41세~45세 정도로 보인다.[15] 그 전에는 카자마의 첩이 경영하는 여관의 한 방에서 신세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