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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wcolor=#fbe673,#fbe673> 서열 | 관등명 | ||||||||
| <rowcolor=#000,#ddd> 장관 | 9주 | 5소경 | 차관 | 군 | 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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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길사(吉士)는 신라의 17관등 중 제14등에 해당하는 관등이다. 제13등인 사지(舍知)의 아래, 제15등인 대오(大烏)의 위에 위치한다. 별칭으로 '당(幢)'이라고도 불렸다.2. 명칭 및 유래
'길사(吉士)'라는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다양한 언어학적, 역사적 해석이 존재한다. 우선 '길(吉)'은 한자의 '좋다', '상서롭다'는 의미 외에도, 고대 한국어에서 '크다', '으뜸' 또는 특정 지위를 나타내는 고유어의 음차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선비'나 '인물'을 뜻하는 '사(士)'가 결합되어, '훌륭한 인물' 또는 특정 직능을 가진 우두머리를 의미했을 것으로 추정된다.이 관등은 이표기로 길지(吉之), 길지지(吉之智), 길차(吉次), 계지(稽知) 등으로도 표기된다. 학계에서는 표기에 사용된 '지(之/智)'나 '차(次)'를 존칭 접미사(*ke) 또는 그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형태소로 보고 있다.
또한 길사는 '당(幢)'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삼국유사》에는 "신라말로 당(幢)은 모(毛)라고도 한다"는 기록이 전해진다.[1] 길사를 당이라고 부른 이유는 '당(幢)'이 기치(旗幟)[2]를 뜻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 '기치'는 고대 일본어의 '키시(kisi, 君)'와 음이 유사하여 '지배자'나 '우두머리'의 의미와 통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고구려의 지명 중 동자홀현(童子忽縣)의 이칭이 구사파의(仇斯波衣)[3] 또는 당산현(幢山縣)인 점을 들어, '구사(仇斯)'와 '당(幢)'이 대응하는 관계에서 그 연관성을 찾기도 한다.
3. 타국 관등 및 용어와의 관계
삼국통일 전후로 주변국과의 관계 속에서 '길사'라는 용어는 단순한 관등명 이상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일본에서의 용례를 살펴보면 '길사(吉師)'는 '왕(王)'이나 '대인(大人)'으로 해석된다. 《일본서기》에는 백제 왕의 칭호로 '코키시(kokisi)' 또는 '코니키시(konikisi)', 가야 국왕의 칭호로 '키시(kisi, 君)'가 등장한다.[4] 또한 백제의 박사인 아지길사(阿知吉師)나 화이길사(和邇吉師) 등에게서 '길사' 칭호가 확인되며, '나니와노키시(難波吉師)'와 같이 도래계 씨족의 성씨로 사용된 사례도 있어 길사가 특정 지위나 신분을 나타내는 용어였을 가능성을 시사한다.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 타국의 귀족을 포섭하는 과정에서도 길사 관등이 적용되었다. 고구려 귀족을 신라에 받아들일 때는 고구려 후기 기준 13관등인 선인(先人) 출신을 신라의 길사 관등으로 대우했다. 또한 백제 귀족을 편입할 때도 백제 16관등 중 제6관등인 나솔(奈率)을 이 길사(당)에 대응하여 취급했다.
4. 관직 진출 및 정원
길사는 17관등 중 하위권에 속했으므로 중앙 관청의 장관직에는 오를 수 없었다. 따라서 주로 각 관청의 실무를 담당하는 서기직인 사(史)에 임용되었다.4.1. 경관직 (중앙)
《삼국사기》 〈직관지(職官志)〉에 따르면, 주요 관청의 실무직인 '사(史)'는 제11관등인 나마부터 제17관등인 조위까지 임명될 수 있었다. 길사는 이 범위(11~17등)의 중간에 위치하므로, 아래 표에 기재된 모든 부서의 '사' 직책을 수행할 수 있었다.||<tablewidth=100%><tablebgcolor=#fff><tablebordercolor=#373a3c><bgcolor=#008275> 소속 관청 ||<bgcolor=#008275> 직책 ||<bgcolor=#008275> 관등 ||<bgcolor=#008275> 정원 ||
| 병부(兵部) | 사(史) | 나마 ~ 조위 | 18명 |
| 창부(倉部) | 사(史) | 나마 ~ 조위 | 16명 |
| 예부(禮部) | 사(史) | 나마 ~ 조위 | 13명 |
| 집사부(執事部) | 사(史) | 나마 ~ 조위 | 8명 |
| 사정부(司正部) | 사(史) | 나마 ~ 조위 | 13명 |
| 예작부(例作部) | 사(史) | 나마 ~ 조위 | 24명 |
| 선부(船部) | 사(史) | 나마 ~ 조위 | 8명 |
| 영객부(領客部) | 사(史) | 나마 ~ 조위 | 4명 |
| 승부(乘部) | 사(史) | 나마 ~ 조위 | 6명 |
| 좌/우이방부(理方部) | 사(史) | 나마 ~ 조위 | 각 16명 |
4.2. 외관직 (지방)
일반적인 군(郡)·현(縣)의 수령은 될 수 없었으나, 5소경이나 기타 특수 기구의 실무 관직에는 진출할 수 있었다.||<tablewidth=100%><tablebgcolor=#fff><tablebordercolor=#373a3c><bgcolor=#008275> 지역 및 기구 ||<bgcolor=#008275> 직책 ||<bgcolor=#008275> 관등 ||<bgcolor=#008275> 비고 ||
| 국원(國原)·북원(北原) 등 5소경 | 소신(小臣) | 나마 ~ 조위 | 실무 행정관 |
| 각종 특수 기구 | 광감(廣監) | 나마 ~ 조위 | 특수 감찰 및 관리직 |
| 각종 특수 기구 | 모척(毛尺) | 나마 ~ 조위 | 구체적 역할 미상 |
상기했듯 길사(14등)는 '나마~조위' 범위에 포함되므로 해당 직책을 수행할 자격이 있었다. 길사는 하위 실무 그룹(사, 소신 등) 내에서 15등 대오, 16등 소오, 17등 조위보다 상위 등급이었으므로, 실무진 내에서는 선임자 역할을 수행하거나 승진에 있어 유리한 위치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 '모(毛)'는 '털' 또는 '돌'로 읽힌다. 예로 삼모부인(三毛夫人)을 사량부인(沙梁夫人)이라고도 하는데, '량(梁)'자도 '돌', '독'으로 읽힌다. 다른 예로 박제상이 있다. 제상(堤上)은 모말(毛末)이라고도 하는데, '제(堤)'는 '둑'을 뜻하며, 음차로 '토(吐)'로 적기도 했다. '상(上)'은 '말', '마리', '머리'를 훈차한 것이다.[2] 옛날 군중(軍中)에서 쓰던 깃발.[3] '파의'는 '바위'의 음차다.[4] 임나회의에서 가야국 왕들은 한기(旱岐)를 왕의 칭호로서 가지고 나타나지만 후에 몇몇을 제외하고 '키시(kisi, 君)'로 바꾸어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