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7-15 00:45:57

김기춘/비판 및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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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72년 10월 유신부터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이르기까지, 반세기에 걸친 한국 정치사의 그늘진 이면에서 브레인으로 활동했다. 그의 인생 행적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가히 영화나 소설에서나 나올 법한 절대로 대중에 드러나서는 안 되는 어둠의 참모 역할을 철저히 수행하였다. 그를 한마디로 함축하자면 가늘고 길게 한 획을 그은 인물이라 평할 수 있다.

2. 상세

2.1. 1975년 학원 침투 간첩단 사건

파일:external/imgnews.naver.net/IE002086152_STD_99_20170115144404.jpg

당시 중앙정보부 소속으로 있던 김기춘이, 납북 어부를 간첩으로 만들거나 재일동포 학생들을 간첩으로 만들었다는 의혹이 있다. 학원간첩단사건에 연루되었던 21명 중 2016년 현재까지 재심 신청자 12명 모두 무죄 판결이 났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자백에서 잠시 출연한다. 이 영화에서 1970년대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을 취재하던 최승호 기자는[1] 아주 우연히 김포국제공항에서 일본으로 가는 김기춘을 마주쳐서, 그 사건의 조작여부에 대해 추궁하는데, 김기춘은 아는 바 없다고 모르는 척 한다.[2] 최승호 기자의 회고에 의하면 화장실로 도망쳤다가 한참 지난 후 나왔는데, 그때까지 최 기자가 대기하여 질문하자 난감해했다고.

2.2. 1989년 우지 파동

1989년 우지 파동이 벌어지자, 검찰총장이던 김기춘의 특별지시를 받은 검찰이 삼양식품을 대대적으로 수사해서 거의 파산직전까지 몰아간 적이 있다. 가뜩이나 1988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농심그룹[3]에게 업계 1위를 뺏겼던 삼양식품을 제대로 빅엿을 먹인 셈이다. 이후 삼양식품은 한때는 후발주자인 빙그레오뚜기에게도 위협당했다. 이 사건은 1997년 삼양라면이 무죄를 받음으로써 결백이 밝혀졌다. 문제는 김기춘은 퇴임 후에 이 사건으로 엄청난 수혜를 입은 농심의 비상근 (출근 안 하는) 고문변호사[4]를 맡으면서 매달 천만 원씩의 급여을 수년간 받아왔다는 것이다.

이렇게 무죄로 판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이나 특별수사를 지시한 김기춘은 파산할 뻔한 삼양식품에 대한 사과를 한 적이 한 번도 없다.

2.3. 1991년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 사건

노태우 정권 시절, 김기춘이 법무부장관 재직시 일어난 국가적 차원의 조작 사건. 그 모든 지휘를 했다는 의혹이 있다.

2.4. 1992년 초원복집 사건

파일:external/blogfiles9.naver.net/2016_1211.jpg

일명 "우리가 남이가"사건이다. 1992년 14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법무부 장관에서 물러난 지 2달 된 김기춘이 주도하여 부산의 기관장[5] 들이 모여 우리가 남이가!를 외치며, 지역감정을 유발하고 돈과 권력을 이용하자고 불법 관권선거를 모의했다.@
믿을 데라고는 부산 경남이 똘똘 뭉쳐 주는 것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는데, 민간에서 지역감정을 좀 불러 일으켜야… (우리는 지역감정 좀 일어나야 됩니다.) 일어나야 된다. 야, 지금 이번에 뭐 제대로 부산놈들 뭐 본때를 못 보이면 다 죽어야 된다. 요새 부산놈들이 정주영 운운하는 놈들이 쓸개가 있는 놈이냐 어떤 놈이냐 이런 식으로 하면서 이번에 이거 제대로 못 하면 부산놈들은 창자 쓸개도 없는 놈들이다 라는 어떤 그런 식으로.. 이건 부산 운동본부에서도 아이디어 한 번 주세요.
1992년 12월, 부산 초원즉석복국집에서 김기춘
나는 그것을 잘했다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내가 늘 반성하고 내 생애에서 가장 부끄러운 추억 중에 하납니다. 지우고 싶은 것 중에 하나에요. 난 깨끗한 비단옷을 입고 달밤에 길을 가는 그런 아낙네였는데, 그냥 구정물을 한 바가지 옷에 덮어쓴 것 같은 기분을 느껴요.
2005년 한겨례 TV와의 인터뷰에서 김기춘
본질은 분명히 지역감정을 유발하고 돈과 권력을 이용해 불법 관권선거를 모의했다는 것인데 이게 엉뚱하게 정주영 후보 측의 도청 문제로 번지면서 역풍이 불어버렸다. 이 사건이 터지자 도리어 영남의 보수층이 우리가 남이가 정신으로 결집하여 김기춘이 열심히 밀고 있던 김영삼 후보가 압도적으로 당선되는 계기가 되었다. 어쩌면 이 사건은 김기춘의 몰락을 앞당길 수 있었던 사건이었는데 프레임 전환의 귀재답게 김기춘은 이 상황에서도 사건의 본질을 불법 관권선거 모의가 아닌 도청으로 물타기 하는데 성공하여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는데 성공한 것이다.

2.5.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결의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당시 국회 법사위원장으로 탄핵소추위원장을 맡았다.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청구를 기각하자, 헌법재판소 재판관들 탄핵의 찬반 여부를 실명으로 공개하도록 "심판에 관여한 재판관은 결정서에 의견을 표시하여야 한다."(헌재법 제36조 제3항)고 헌법재판소법을 개정하였다. 따라서 최순실 게이트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소추안이 국회를 통과된 이후 헌재 재판관들이 국민의 여론에 반하는 반대의견을 내놓기가 부담스러워지면서 본의아니게 팀킬을 하게 되었다.

이후 2008년 서울대 법학과 제16회 동창회가 엮은 ‘낙산의 둥지 떠나 반백년’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탄핵소추 당시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으로서 탄핵소추위원으로 참여한 경험에 대해 글을 기고 하였는데 2016년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크게 이슈화 되면서 재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때 김기춘이 쓴 대통령 탄핵 소추의 의미의 내용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다. 1.“제헌국회 속기록을 보면 대통령의 실정법 위반뿐 아니라 지휘·감독 관계에 있는 공직자에 대한 지휘·감독을 소홀히 한 것과 국정을 불성실하게 수행하는 경우 모두 헌법 위반으로 탄핵 사유가 된다 2. “탄핵 사유는 기소가 가능한 형사적 범죄일 필요는 없고 헌법이 부여한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우, 부패 행위를 한 경우, 공중의 신뢰를 깨뜨리는 경우도 탄핵 사유가 된다 3. “직무를 태만히 하거나 성실히 수행하지 않은 경우에도 탄핵 사유가 된다 할 것이다. 4. “형사재판에서는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유죄 판결이 확정되기 전에는 공무원의 직권이 정지되지 않는 데 반해 탄핵심판에서는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되는 유죄 내지 유책 추정의 원칙을 적용한다” 이는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반대 입장을 대리하는 변호인측의 주장과 상반되는 주장들이다. 출처: 허핑턴포스트코리아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8년 전 글로 쓴 ‘대통령 탄핵사유'는 매우 놀랍다"

2.6. 2012년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

박근혜 정부는 이 사건으로 정권 초부터 그 정당성이 크게 위협받는다. 당시 이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국가정보원이 조직적으로 박근혜 후보에게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하고 야권후보를 비방한 사실, 김용판 서울지방경찰청장이 대선 직전 수사에 외압을 넣고 허위의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한 사실 등을 밝히고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기소한다.

하지만 당시 검찰을 이끌던 채동욱 검찰총장은 돌연 사퇴하게 된다. '혼외자녀' 의혹에 휩싸이며 여론이 반전된 것이다. 김기춘은 채동욱 총장을 비롯한 '검찰 길들이기'를 주도하고 대선개입사건의 법원 판결에 대한 검찰 항소를 무마하는 데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2.7. 2014년 정윤회 국정개입 의혹 사건

사실상 이 사건이 발생한 원인이자 흑막이다. 사건의 수습방식도 초원복집 사건과 굉장히 흡사하다. 초원복집 사건의 본질이 불법 관권선거 모의였는데 초점이 불법 도청으로 번지며 실체가 흐려졌듯이 이 사건 또한 핵심은 정윤회문고리 3인방이 국정에 개입해 국정농단을 저지르고 있다는 문건의 내용인데 엉뚱하게 사건의 초점이 문건의 내용이 아닌 문건이 어떤 경위로 유출되었는지에만 초점이 맞춰지며 사건의 실체인 정윤회가 아닌 정윤회가 비선 실세임을 폭로한 조응천박관천 등이 역풍을 맞아 청와대에서 쫓겨나게 되었고 문건 유출 책임자로 지목된 최경락 경위는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2.8. 2015년 성완종 자살 사건

이명박 자원외교 비리 조사를 받던 성 전 회장은 이날 서울 청담동 자택을 나온 직후인 오전 6시부터 50분간 경향신문과 전화 인터뷰를 통해 “김 전 실장이 2006년 9월 VIP(박근혜 대통령) 모시고 독일 갈 때 10만달러를 바꿔서 롯데호텔 헬스클럽에서 전달했다”며 “당시 수행비서도 함께 왔었다.고 알려왔다.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은 자살하였고, 이후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애초에 수사선상에서 제외돼서 그 어떠한 조사도 받지 않았다.[6][7]

2.9. 2016년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

유진룡 전 문화체육부 장관의 증언에 의하면, 문화 예술계 인사와 단체의 탄압을 수차례 직접 종용했고, 블랙리스트 작성의 흑막이다.유튜브1유튜브2

또한, 김희범 전 문체부 차관에게 블랙리스트에 반대한 문체부 1급 공무원 6명의 사표를 받아오라고 지시를 한 의혹도 있다. 사실이면 직권남용죄에 해당한다.

파일:external/imgnews.naver.net/0000495890_002_20170118141402489.jpg
세월호 참사 당시 정부를 비판한 영화 <다이빙 벨>을 상영했다는 이유로, 부산국제영화제 정부 지원 예산을 전액 삭감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문체부 관계자의 진술이 나왔다.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과 직접 대면해서 블랙리스트 관련 지시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구속 중인 김종덕 전 장관이 특검 조사에서 "김기춘 전 실장에게 블랙리스트에 대해 대면보고를 했다"고 진술했다.#

결국 구속되었다. 전직 법무부장관, 검찰총장을 역임한 사람으로써, 수갑을 차고 서울구치소로 이송되어, 수감되는 치욕을 맛보았다. #

2017년 7월 3일 김기춘은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작성과 실행을 지시한 혐의로 특검에서 징역 7년을 구형하였으나, 1심에서 직권남용은 인정되었으나 강요죄에 대해 인정되지 않아 ~겨우~징역 3년형을 받았다. 그러나 위에서 상술했듯 이제 완벽하게 범죄자로 몰락한 상황이니 그의 길고 긴 추악한 정치경력도 종말을 맞이한거나 다름없어졌다.

2017년 12월 식물인간 상태의 아들을 언급하며 선처를 호소했다고 한다. 네티즌들의 반응은 당연히 감성팔이. 이 사람의 공작 정치로 억울하게 박해받거나 감옥살이로 인생이 망가진 사람을 생각하면 동정할 여지가 아예없다. 동정을 받으려고, 병원 신세를 지는 외아들까지 이용해서 더욱 저질이다.

2018년 8월 6일, 구속기간 만료로 석방되었다. 관련 기사 구속영장의 재청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대법원 판결은 불구속 상태에서 받게 될 예정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재판/김기춘·조윤선·김상률·김소영 참고.

2.10.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보수단체 지원 강요(화이트리스트)

국정원 특수활동비 청와대 상납 사건/재판/허현준·김기춘·박준우·조윤선·현기환·김재원·신동철·정관주·오도성 참고.

2.11. 세월호 7시간 훈령 및 서류 조작 혐의(무죄)

파기환송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재판/김기춘·김장수·김관진·윤전추 참고.

2.12. 양승태 대법원 사법농단 의혹 사건

2019년 12월 4일 구속기간 만료로 석방 되었지만 양승태 대법원 사법농단 의혹 사건으로 다시 검찰 수사를 받았다. 주요 혐의는 상고법원 관련하여 사법부와 행정부간의 거래에 개입되었다는 혐의다. 그리고 그동안 주군을 위해 충성을 바쳐왔던 그가 주군을 배신하기 시작했다. 김기춘, 2014년에도 법원행정처와 日징용피해자 소송 논의 정황, "김기춘, 삼청동 공관서 대법관 만나 강제징용 재판 논의 정황", 이번엔 '강제징용 재판거래 의혹'… 검찰에 또 소환된 김기춘, 檢, '일제 강제징용 재판 거래 의혹' 김기춘 전 비서실장 14일 재소환 통보, [포토] 석방 8일만에 검찰 소환되는 김기춘, [포토] 나오지 않은 김기춘

이후 임종헌/재판의 증인으로 소환됐지만 출석을 두 차례나 거부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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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BC에서 부당해직되고 뉴스타파에서 활동하던 시절이다. 알다시피 2017년에 MBC에 사장으로 되돌아갔다.[2] 김기춘은 이 사건에 대해 수사기획 지휘 책임자로서 반드시 답변해야 할 의무가 있다. 김기춘은 이 사건을 기획, 수사지휘했던 '공로'로 훗날 1990년 노태우 정부 시절에 '5.16 민족상' 안보분야에 훈장을 받았다.(#)[3] 초창기 이름은 롯데공업주식회사다. 이후 롯데그룹에서 분리독립해 농심으로 이름을 변경했다.[4] 이런 고문 자리는 사실 거의 일이 없다. 결과적으로 사실상의 뇌물이나 다름 없다. 특히 농심이 김기춘이 현직일 때 스폰을 했는지도 조사할 필요가 있다. 검사들이 재력이 두둑한 스폰을 두는 것은 상당히 잦았으며, 2000년대까지 근절되지 않던 악습이었다. 이미 이명박 정권시절 검찰총장 후보였던 천성관이 스폰의혹으로 물러난 바 있다.[5] 부산시장, 부산지방검찰청장, 부산시 교육감, 부산상공회의소 회장 등[6] 수수정황에 대해서 검찰 측에서 아예 사실여부 확인조차도 거부하였다.[7] 반면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형도 같은 공소시효인데도 받은 정황은 있었다고 발표하는 등 같은 공소시효임에도 한 쪽은 확인 자체를 거부하고 다른 쪽은 정황이 있었다고 발표함으로써 전 정권 때리기 박근혜 정권 실세에 대한 노골적인 봐주기라는 비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