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단기 4288/4/26
오전 10時 45分 始動
오전 11時 再動
구조변경 이상 무하며 特히 鋳物에도 무관하였음
콤프렜숑 110 上昇
아멘할넬누야
1955년 시발 자동차 엔진 제작 성공 당시 그의 노트[1]
오전 10時 45分 始動
오전 11時 再動
구조변경 이상 무하며 特히 鋳物에도 무관하였음
콤프렜숑 110 上昇
아멘할넬누야
1955년 시발 자동차 엔진 제작 성공 당시 그의 노트[1]
우리도 자동차 엔진 만듭시다. 할 수 있습니다. 도전해 봅시다. 해보지도 않고 안된다는 말은 하지 맙시다.
KBS 스페셜 - 빅 아이디어 (2부) 산업의 심장 편
KBS 스페셜 - 빅 아이디어 (2부) 산업의 심장 편
대한민국의 자동차 기술자.
2. 상세
1919년 출생으로, 1996년 향년 77세를 일기로 사망했다.학력 자체는 초졸이었지만, 일본에서 기계 설계 학원에 다녔고, 엔진 공장에서 일했던 경험도 있었다. 때문에 시발자동차를 만들 당시 한국의 유일한 엔진 기술자였다.
최초의 국산 엔진인 시발 자동차의 엔진을 만든 자동차 기술자로 시발 자동차 탄생 최고 공로자 중 한 사람이다. 미군 폐차 부품이 떨어져 가는 상황이 되자, 당시 국제차량제작의 최무성 사장에게 엔진 국산화의 필요성을 주장하여 국산 엔진 제작이 추진될 수 있었다. 1955년 그가 결과물로 만든 시발 자동차의 엔진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만든 국산 엔진이다. 비록 미제 엔진을 복제한 물건이었지만, 열처리까지 되어 당시로서는 상당히 쓸만한 엔진이었다고 한다. 열처리 문제 때문에 엔진이 파손되는 시행착오를 10번이나 반복한 끝에, 열처리 방법을 터득하여 11번째 시도에 성공했다. 4시간 연속으로 엔진을 고속으로 작동시켜보는 방식으로 성공을 확인했다. 1954년 시작한 지 1년 만이었다. 정밀성의 한계로 인해 출시 이후에도 엔진이 파손되거나 멈추는 문제가 여전히 있었지만, 6.25 전쟁 직후 열악한 환경과 부족한 기술에서도 복제에 성공한 것 자체가 대단한 것이다.
1963년 국제차량제작의 폐업 이후 한동안 완전히 잊혀진 인물이었고, 자동차 애호가들 사이에서 한국 초기의 자동차 기술자로 함경도 아바이라고 불린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제법 알려져 있었지만 자세한 신상에 대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후 본명이 김영삼이며 원산에서 주물 공장을 운영했었기 때문에 함경도 아바이라고 불렸다는 등의 사실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 속에서도 노년까지 기술자의 길을 포기하지 않은 기술자였다. 그의 생애 동안 한국의 자동차 공업은 국산 최초의 고유 모델인 현대 포니의 출시, 국산 최초의 독자개발 엔진인 현대 알파 엔진 개발, 국산 최초의 플랫폼 독자개발 모델인 기아 세피아의 출시를 넘어 플랫폼, 엔진까지 100% 최초 독자개발한 모델인 현대 액센트[2]를 출시하는 수준까지 이르렀다. 후배 엔지니어들이 그의 못다 이룬 꿈을 이루는 것을 전부 본 뒤에 영면했으니 감개무량했을 것이다.
2016년 방영된 KBS 스페셜 - 빅 아이디어 (2부) 산업의 심장 편에서 그의 시발 자동차 엔진 제작 비화가 자세히 소개되었다. #
[1] 해석하면 "단기 4288(1955년)/4/26. 오전 10시 45분 시동, 오전 11시 재동(재시동). 구조변경 이상 없으며 특히 주물에도 이상 없었음. 컴프레셔 110 상승. 아멘 할렐루야"이다.[2] 김영삼의 사망 2년 전인 1994년 출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