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2 15:16:21

김용규(1936)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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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36년
사망 2013년 2월
학력 금강정치학원
중앙당학교
김일성대학 - 철학과
문평공대 - 기계제작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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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2.1. 간첩 활동

1. 개요

1976년 남파 간첩으로 전남 거문도에 잠입했지만 붙잡히고 귀순한다.

2. 생애

1936년 경기도 경성부에서 태어나 서울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51년 3월에 패주하는 북한군에 의해 강제 납북되었다. 납북 후 그는 526부대 루트 공작원이 되었으며 금강정치학원, 중앙당학교를 졸업하여 김일성대학 철학과에 입학한다. 하지만 김일성대학을 마치지도 못한 상태에서 1957년 남로당 2차 숙청 시 문천기계공장 노동자로 좌천된다.[1]

이후 문평공대 기계제작과를 졸업하고 당에 대한 충성심을 다시 인정받아 로동당 연락부 소속 공작원으로 선발되어 대남 공작원 양성기지인 김일성 군사정치대학에 들어간다. 이후 군사정치대학 1년을 수료한 그는 1976년 9월에 귀순할 때까지 10년간 대남 공작활동을 벌이게 된다.

2.1. 간첩 활동

귀순할 때까지 10년 간 고정간첩의 임무를 띠고 일곱차례 남파된다.[2] 남파공작의 성공으로 이른 바 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고 지도 핵심만 이 될수 있는 공작조의 조장이 된다. 남한으로 치면 차관급 대우를 받는 핵심적인 위치에 오르게 된 것이다. 로동당 연락부에서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 덕분에 그는 여러 비밀 자료를 접할 수 있게 된다.[3]

차관급 대우를 받는 핵심적인 위치에 있었지만 남한 출신이라는 이유로 한번 좌천된 경험을 갖고 있는 그는 늘 불안했다. 또한 주변에서 이용 당할 대로 당하고 버림받는 다른 남한 출신자들의 말로를 수없이 목격했고, 아무리 몸부림 쳐도 자신의 출신 성분은 남한 출신일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는 귀순하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거문도에서 진행 된 일곱번째 남파공작 중 다른 두 공작원을 설득해 같이 귀순하려 했지만 거부하고 공격하자 그들을 사살하고 그 날 귀순하게 된다.

귀순한 그는 어머니 등 남한에 살고 있는 가족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고 북한의 대남공작을 연구하는 전문가로 활동, 치안본부 대공실, 경찰청 치안 정책 연구원 등에서 활동하였으나 민주화 이후에는 정부의 보호를 받지 못해 친북 인사 및 공작원들의 협박으로 인해 다소 어렵게 살았다고 한다. 시효인간, 소리없는 전쟁 등 다수의 책을 출판하였으며 2013년 2월에 폐암으로 사망하였다. 유작은 2013년 5월에 출판된 태양을 등진 달바라기다.


[1] 또한 이 때 남한 출신이라는 이유만으로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북한의 독재체제에 환멸을 느끼기 시작했다고 한다.[2] 여담이지만 드라마 신고합니다에서도 언급되는데, 간첩활동 중 뛰어난 잠복기술로 3개 중대 수색속에서도 이틀동안 버틴기록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3] 김일성 군사정치대학 지도 핵심반에서는 과거 대남 공작에서 성공한 경험과 실패한 사례들을 수록한 공작 경험집이 극비 문고로 비치 되어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