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배역의 실존 인물에 대한 내용은 김은부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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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거란 전쟁/음악#s-2.1| Part 1
비상]]
서도밴드
2023. 12. 15.[[고려 거란 전쟁/음악#s-2.2| Part 2
폭풍]]
김장훈
2023. 12. 29.[[고려 거란 전쟁/음악#s-2.3| Part 3
적동
(붉은겨울)]]
안예은
2024. 01. 18.[[고려 거란 전쟁/음악#s-2.4| Part 4
그 겨울에
나는]]
IYAGI (이야기)
2024. 02. 03.그 외 오리지널 스코어는 음악 문서 참고.
<colbgcolor=#070707><colcolor=#fff> 김은부 金殷傅 | |
캐릭터 | |
가족 | 현종 (사위) 원성황후 (장녀) 원혜황후 (차녀) 원평황후 (삼녀) |
지위 | 공주절도사 (5 ~ 17회) 형부시랑 (17 ~ 29회) |
등장회차 | 5회, 9회, 14 ~ 27회, 29회 |
배우 | |
조승연[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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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
KBS 대하드라마 〈고려 거란 전쟁〉의 등장인물.
2. 작중 행적
2.1. 5회
공주 절도사로 등장. 현지의 징병이 마무리 되어 전방으로 향하는 광경을 행영도병마판관 황보유의와 지켜본다. 이때 동원령에 가장 빨리 응해 줬다며 호평하는 황보유의에게 개경 이남은 아직 호족들 세상이며 자신도 호장들의 협조를 받지 않으면 조세도 제대로 못 거둔다며 고려 지방 통치의 현실을 알려준다. 이어 병사들을 배웅하기 위해 나타난 맏딸이 전쟁터로 떠나는 병사들을 걱정하자 승패를 알수 없으니 그저 사력을 다할 수밖에 없다고 얘기하고, 이후 딸이 황제인 현종을 성종과 비교하며 깔보는 듯한 발언까지 하자 엄히 혼내며 집으로 돌아가라 말하는데, 딸이 자기가 말한 대로 집으로 가지 않고 병사들을 배웅한다며 자리를 뜨자 기막혀하면서도 못 말리겠다는 듯이 결국 웃음을 짓는다.2.2. 9회
본인이 호족의 자제를 군역에서 빼줬다는 사실을 딸이 알게 되면서 힐난을 받는다. 이에 현실적인 선택이라는 취지로 항변하지만 동시에 고려 본군의 패배가 자신이 군사를 보내지 못한 무능력인 것 같아 몸을 떨면서 현실과 타협한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다는 후회와 두려움을 느낀다고 말하는데, 이를 본 딸이 손을 잡고 그녀에게 위로를 받는다.2.3. 14회
현종을 호위하고 거란을 막기 위해 호장을 설득한다. 하지만 이미 다 끌려갔다는 호장 말에 호통을 치며 숨겨놓은 군사와 그 때 보내지 않은 자식까지 보내라고 하자 호장은 이미 고려는 무너졌다며 그냥 가버린다.[3] 그런 호장에게 호통을 치지만 따르는 군사도 없고, 지지할 호장도 없는 그는 무시당할 뿐 이다. 그리고 맏딸에게 "저들 때문에 고려의 힘이 하나로 모이지 않아 전쟁에서 진 것이다.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고려를 통째로 바꿔놓고 싶다. 하지만 지금은 공주의 호장들도 제압하지 못하는 신세다."라고 자조[4]한다.2.4. 15회
한숨 섞인 표정으로 먼 산을 보다가 자리에 앉아 글을 쓰려던 중 현종이 왔다는 보고를 받고 급히 달려가 지친 상태로 몽진 중이던 현종 일행을 환대한다. 다음날 나주로 떠나는 현종에게 밤새 쓴 글을 올린다. 이후, 지난 밤 현종에게 옷을 지어 준다며 현종의 침소에 들어 시침(侍寢)하려 했다가 현종에게 질책을 당한 맏딸[5]에게 화를 내면서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한 게야! 아비의 앞길은 이 아비가 열 것이다. 네 눈에는 이 아비가 그리 못나 보이더냐? 이제 어찌할 것이야? 네가 침소에 들어가는 모습을 노비들이 보고 군사들이 보았다. 이제 너는 폐하의 여인이 되었단 말이다!" 라고 꾸짖는다. 이에 맏딸은 "알고 있습니다. 제가 벌인 일이니 제가 감당하겠습니다. (제가 폐하께 바칠) 옷을 마저 짓겠습니다. 약속한 일이니 해드리고 싶습니다." 라고 강단있는 대도로 대답한다.2.5. 16회
나주에 머물던 현종이 이전 회차에서 그가 쓴 서신을 보았는데, 해당 서신에는 '고려가 강해지기 위해서 호족들을 제압해야 한다.'라고 언급되었다. 이후 큰 딸에게 현종이 그녀가 지어 올린 옷을 받았다고 전한다. 이어 "(폐하가) 널 받아주신 것이냐"고 묻자, 그녀는 "(제가 아니라) 아버지를 받아주신 것"이라고 대답한다.2.6. 17회
형부시랑으로 임명되어 큰 딸과 함께 공주에서 개경으로 상경했다.[6] 내용 정황상 현종이 김은부에게 개경으로 상경할 것을 직접 요청한 듯하다. 상경 후 자신이 밝힌 호족 숙청 계획에 대해 현종이 신임한 강감찬이 강력하게 반대하자, 그도 호족 출신이라며 계속 반대하면 내쳐야 한다며 현종을 설득한다.[7] 한편 채충순과 장연우, 황보유의 등이 현종의 설득에 넘어가 호족 혁파에 동의하자 이들과 함께 모든 지방에 지방관을 파견하기로 하는 등[8]의 개혁안을 마련하는데 박차를 가한다. 계속해서 강감찬이 거란과의 전쟁을 이유로 호족 정책에 반대하자 따로 만나 한림학사 자리는 임금이 아끼는 신하에게 주는 관직인데 왜 그렇게 반대하냐며 현종이 걱정한다고 알려준다. 그럼에도 강감찬이 뜻을 꺽지 않는 모습을 보이자 신하된 자의 도리로 현종을 위해 사직해달라고 제안한다.[9]2.7. 18회
관료들의 집단 사직 사태로 6부의 업무가 마비된 가운데, 김은부는 현종에게 전시에 죄를 지었던 관료들을 사면하여 업무에 복귀하게 할 것을 청하지만 현종은 방법이 옳지 못하다며 반대한다. 이에 김은부는 "그럼 왜 폐하께서는 거짓 친조를 내세워 거란군의 철군을 유도했느냐"며 전시에 보였던 현종의 행보를 지적하고, 그런 방법을 써서라도 백성들을 보살펴야 하는 것이 군주의 도리라 역설하여 결국 현종을 납득시킨다. 이를 안 강감찬이 김은부를 찾아와 따지지만, "공도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 않았느냐"며 반문하고 더 이상 조정 관료가 아니니 이래라 저래라 하지 말라며 돌려보낸다. 그러다가 강민첨으로부터 자신이 공주 절도사 당시 호장의 자제들을 군역에서 빼주었다는 사실을 알게된 강감찬이 탄핵 상소를 현종에게 올려버리면서, 마침 지방 개혁에 반대하던 호족 관료들은 물론 김훈, 최질 같은 무장들이 벌떼같이 일어나 성토하면서 위기에 처한다.2.8. 19회
결국 현종의 호족 척결과 지방 개혁을 좌초시키려는 원정왕후와 유진의 주도로 국문 자리에 끌려나와 서게 된다. 혐의는 사실이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항변하고, 장연우의 변호도 있었지만, 공주 절도사 당시 비협조적이었던 호장들의 거짓 증언과, 가택을 수색당하며 뇌물의 물증으로 보이는 은까지 발견되자[10] 몸을 부르르 떤다. 게다가, 부당하게 큰딸까지 끌려나와 원정왕후의 심문을 받자 결국 완전히 무너져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공주에서 딸을 현종의 침소에 들인 것도, 재물을 받은 것도 다 자신이 시킨 짓이고 모든 혐의와 죄를 인정한다, 내 딸은 죄가 없다" 라며 주저앉는다. 상황이 모두 정리되려는 찰나에 마침 현종이 나타나 분노하여 당장 그만하라고 처결을 거부하였고 딸의 부축을 받아 힘겹게 집으로 돌아가지만, 조정 관료들이 일제히 자신의 처벌을 주청하는 상황에 놓인다. 그러다가, 최항의 부탁을 받은 강감찬이 현종에게 김은부 일가를 구할 계책으로 그의 맏딸을 새롭게 제3황후로 맞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맏딸을 데리고 입궁하여 다시 현종을 알현하는 장면으로 회차 종료.2.9. 20회
강감찬의 묘책으로 구제받고 국구가 되어 안도하는 찰나, 강민첨으로부터 묘책의 입안자가 강감찬이라는 사실을 넌지시 듣고, 현종에게서 다시 이 사실을 확인받으며, 강감찬이 제시한 지방개혁 타협안을 보고 처음에는 주저하지만, "그가 우리의 입장에서 생각해줬으니 우리도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줘야 한다"는 현종의 말에 수긍한다. 이후 금주 인근의 사찰에서 강감찬을 만나 자신을 구해준 것에 감사를 표하며 화해하고, 강감찬이 제시한 안무사를 우선 파견하는 안건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눈 후, 재상들과의 논의에서는 현종의 의지에 따르겠다고 하여 안무사를 파견하게 된다. 그러나 처음 파견한 안무사들을 지방 호족들이 백성을 동원하여 쫓아낸 사실을 보고하면서, 왜 학사승지(강감찬)은 아직도 돌아오지 않느냐는 물음에 아직 폐하를 뵐 면목이 없다고 느끼는 것 같다고 답한다.2.10. 21회
현종이 강씨 문중으로 행차했다는 것을 들은 큰 딸인 김씨 부인(후에 원성황후)이 "왜 말리지 않았냐?"면서 다그치자 "자신도 이미 말려봤지만 듣지 않으셨다."고 답하며 근심한다. 그러나 현종은 무사히 강감찬을 데리고 돌아왔고, 그와 서고에서 서책들을 정리하면서 개혁에 대한 소회와 강감찬의 복직을 축하한다면서 덕담을 나누고 훈훈하게 있던 찰나, 서고에 찾아온 예부낭중 강민첨으로부터 거란의 사신이 도착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후 친조의 사신을 보내어 시간을 지연시키려는 고려 조정의 계책도 약발이 떨어지던 찰나, 마지막 사신으로 유진이 자신을 추천하고, 현종이 유진을 향해 "왜 또 형부시랑을 쫓아낼 생각만 하는 거냐?"면서 질책함에도 재상으로서의 결정이 그렇다고 유진이 논리정연하게 그 이유를 말하자, 이후 현종과 독대하며 자신이 가겠다고 말한다. "실낱 같은 희망에 왜 목숨들을 거냐?"며 비통해하는 현종에게, "이미 학사승지(강감찬)도 여러 번 목숨을 걸었고, 언젠가는 갚아줄 날이 올 것이다. 고려는 그런 나라, 강한 나라"라며 사신행을 자처하고, 이후 딸과 인사를 나누고 국경에 이르자 따라온 수행원들을 놔두고 자신이 혼자 가겠다[11]면서 이를 우려하는 흥화진사 정성 앞에서 "살아도 죽어도 혼자가 편하오."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그대로 압록강을 건너 초원을 달려 거란주(야율융서)에게 향하는 장면으로 회차를 마무리한다.2.11. 22 ~ 24회
22회에서 거란의 상경으로 가던 중 고려로 향하는 거란 사신을 보고 의구심이 들었지만, 이내 상경으로 가서 생일을 맞은 황제 야율융서를 만나나 이미 고려의 친조 의지를 눈치 챈 야율융서에 의해 난릉군왕 소배압 앞에서 목이 베일 위기에 놓였지만, 마침 거란 황제의 생일을 축하드리기 위해 찾아온 송과 당항(서하)의 사신에 의해 목숨을 구제[12]받고 그들에 의해 거란의 내부 사정을 듣게 된다. 이후 객관에 머물다가 하공진이 전해 온 거란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가 일러준대로 상경에서 탈출하려고 했으나 거란군에 잡혀서 소배압과 대면한 상태에서 그들이 흥화진을 노린다는 정보를 들었지만, 이후 객관에 갇히게 되었다.23회에 여전히 객관에 갇힌 상태에서 하공진과 발해 유민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상경을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압록강 국경에서 잠시 쉬는 와중에 다시 거란군이 추격해온 바람에 붙잡히지만 다행히 포획당하기 직전에 고려에 거란의 상황을 쓴 편지를 화살에 묶어 흥화진으로 보내는 데에 성공한다. 그 후 내원성에서 처형 직전에 소배압과 차를 마시는데, 소배압에게 "자신이 죽는 것은 자업자득."이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자신의 처형 명령이 떨어질 쯤에 고려에 갔던 거란 사신들이 흥화진에 억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처형이 미뤄졌으며, 이후 흥화진으로 온 한림학사승지 강감찬과 소배압의 협상을 통해서 여진 땅에 억류되었다가 몇 달 뒤에 풀려나는 조건으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았다.
24회에 여진 부락에 연금된 채 있다가 자신을 살피려 동북면행영병마사가 되어 찾아온 강감찬과 만나는데, 강감찬과 만나기 전 기침을 하는 모습에서 많이 고초를 겪었을 것으로 보임과 동시에 건강이 많이 악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다행히 해당 여진 부족이 고려에 우호적인 부족이라 그럭저럭 잘 버티고 결국 소배압이 성종 야율융서에게 고려 사신을 풀어줄 것을 건의하고 야율융서가 이를 승낙하면서 무사히 고려로 돌아와 현종과 자신의 큰 딸인 김씨 부인을 만나고, 시점이 1014년으로 넘어가면서 정전이 복구될 때 다른 신료들과 함께 현종의 뒤를 따라 걸었다.
2.12. 25 ~ 27회
25회에서는 조정에서 간간히 얼굴만 잡힌 가운데 상장군 김훈과 최질이 장작주부 박진과 함께 반란을 일으키면서 정전에 갇힌 신세가 되었고, 이후 26회에서 거란과의 싸움에 필요한 고려 정예병들을 잃을 수 없다면서 일단 반란군의 요구를 들어주고 나중에 주모자들을 처단하자는 의견을 제시하지만, 최사위, 채충순, 최항, 유진은 이 의견에 반박하면서 끝까지 버텨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그러다가 반란군이 난입할 때 저항하다가 먼저 끌려가 집에서 다른 가족들과 연금된 채 박진과 함께 따라온 반란군 장수에게서 "개경을 떠나라."라는 말을 듣자 위협을 받는 와중에서도 자신의 큰 딸인 김씨 부인을 걱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13]27회에서 결국 가족들과 함께 개경 외곽의 외딴 가옥에서 사실상 감금을 당한 상태에서 두 딸과 함께 자신들과 따로 떨어져 쫓겨난 큰 딸을 걱정한다.[14]
2.13. 29회
29회의 후반부 시점이 제3차 여요전쟁이 시작되는 1018년으로 넘어가기 때문에 해당 회차가 사실상 마지막 회차이다. 그리고 시청자들의 예상대로 29회에서 노환으로 사망했으며, 죽기 전 현종에게 자신의 딸들을 모두 맡겼다. 다만 이 부분이 짧은 회상 형식으로 처리되면서 앞선 회차들에서의 분량 조절 실패로 작중 중요한 인물로 대우하던 김은부의 허무한 퇴장 묘사에 대해 비판이 나온다.2.14. 최종화
최종화에서는 목종, 천추태후, 강조, 김훈, 최질, 장연우, 원정왕후와 함께 실루엣으로 모습을 비춘다.3. 인간관계
- 현종
- 원정황후
- 강감찬
- 큰 딸(후에 원성왕후 김씨)
- 박진
- 다른 가족들
4. 묘사
원작 소설에서는 실제 역사대로 공주에서 현종 행렬을 영접하며 그를 야산 안쪽의 막사로 안내하여 밥을 대접하는데[15] 식사가 끝나자마자 필요한 물품들을 막사에 옮겨 이후 현종이 자신을 호종한 인물들에게 물품을 하사하도록 하여 그의 권위를 세워준다. 이후 파산역까지 그를 호종하고 현종의 나주행에 자신의 수하들까지 그를 호종하도록 데려가게 하며, 거란군이 반드시 물러갈 것이라고 그를 안심시키는데, 이에 현종이 떠나면서 세 왕후를 잘 지키라는 말을 하자 황공하다는 듯이 고개를 숙인다.[16] 원작에서는 말 그대로 잠시 동안 현종의 조력자 역할에 그친 인물이지만, 드라마에서는 초반부부터 등장하여 중앙 집권 체제가 약했던 11세기 초 고려의 지방 상황을 자세하게 조명하며, 당시 호장의 권세에 제대로 대항할 수도 없었던 절도사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줬다. 동시에 맏딸에게 직접 고려를 개혁하고 싶은 욕심이 많다고 밝혔는데, 그가 현종을 좋게 대접한 이유에 충심 외에 다른 목적 또한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하지만 작중의 김은부는 맏딸의 언급대로 너무 고지식해서 당시로서는 관례인 딸을 침소에 들여 연줄을 만든다는 발상은 하지도 못하고 본인의 생각을 담은 글을 지어 바치는 것으로 대신한다. 본작의 주인공 현종에게 조력하고 이후 현종의 장인이 된 행적, 그리고 열전에서 근검한 성품을 지녔다는 인물평에 살짝 각색을 더해서 현종의 개혁정책을 뒷받침하면서 개인적으로도 호족 중심의 고려를 바꾸고 싶어하는 야심가로 각색되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도 호족 출신이고 이후 역사에서 끝내 그의 처가 집안이 김은부를 벤치마킹해서 고려를 장악하는 것을 생각하면 본 드라마에서 다소 미화된 측면도 있는 인물이다.[17]4.1. 17회 이후에서의 비판
그러나 17회 이후 그의 모습은 완벽하게 무너졌는데, 자신의 개혁에 대한 야심을 그려낸 방식이 17 ~ 19회까지는 사실상 드라마상 신료들이나 시청자들 사이에서 '병역비리범'이나 '간신'에 가깝다는 의견이 많았고, 오히려 미화는커녕 실제에도 김은부에게 없었던 일을 만들어내는 왜곡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나마 그와 대립각을 세웠던 강감찬이 파직당하고 난 이후인 19회 후반 자신의 집안을 살리려는 계책을 서한으로 보내면서 그는 현종의 장인이 되었고, 그 사실을 알고 현종을 알현할 때 강감찬이 올린 지방 개혁의 수정안에 일단 거부하는 듯 했지만, 현종의 노력으로 강감찬과의 갈등을 봉합하고 타협했지만 이 이후부터는 거란에 사신으로 가다가 억류당한 일 외에는 비중이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사실 거란으로 사신을 간 21회부터 24회 중반까지를 보더라도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적국(거란)으로부터 사신으로 가면 죽을 걸 알기에 그럼에도 고려를 위해 가야만 한다면서 수행원들조차 물리치고 혼자서 가는 결연한 모습(21회 후반)뿐만 아니라 거란의 실상을 알고 돌아오던 길에 추격받음에도 불구하고 거란의 실상을 담은 문서를 고려에 전한 장면(23회 중반)에서 충신으로 표현되었지만, 사실 이후 여진에 억류당하는 모습을 빼면 극 중 행보는 실제로는 하공진의 행보와 비슷하며, 두 번씩이나 거란에 의해 죽을뻔한 모습까지 각색한 점은 아무리 거란이 야만이라 할지라도 다소 무리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18]그리고 복귀한 이후인 24회 후반에는 조정에 얼굴을 비추는 모습 외에는 없다가 상장군 김훈과 최질, 그리고 이들의 배후에서 고려 조정을 없애려는 음모를 계획하던 장작주부 박진이 주도한 반란에 자신은 물론 궁에 입궐한 큰 딸, 그리고 다른 가족들까지 수난을 당하는 모습을 그렸는데, 실제 기록이 전무해 이들 가족이 반란 당시 수난을 당하는 일이 없었고, 오히려 당시 김은부나 그의 집안에서 비중이 있는 일이라면 김은부의 남은 두 딸(후에 원혜황후, 원평황후[19])이 맏딸을 따라서 입궁을 하는 일인데, 드라마에서는 그런 내용을 넣지 않은 채 종반부인 29회부터 제3차 여요전쟁이 시작 되는 1018년으로 넘어 가기 때문에 사실상 퇴장을 준비 중이며 회상씬으로 둘째, 셋째 딸을 현종에게 부탁하면서 마무리된다.
5. 어록
(현종 일행을 맞이하면서 무릎을 꿇고) "어서오시옵소서, 폐하. 공주 절도사 김은부라 하옵니다. (그래, 그대가 절도사구려. 반갑소.) 폐하, 어찌... 어찌 이런 차림이시옵니까?" (그리 되었소...) |
(맏딸 김씨에게 분노하면서 질책한다) "왜 시키지도 않은 짓을 한 게야! 똑똑했던 아이가 왜 그리 어리석어진 것이야? (송구하옵니다. 딴에는 그것이 아버지를 위한 길이라 생각하여...) 아비의 앞길은 이 아비가 열 것이다. 네 눈에는 이 아비가 그리 못나 보이더냐? 이제 어찌할 것이야? 네가 침소에 들어가는 모습을 노비들이 보고 군사들이 보았다. 이제 너는 폐하의 여인이 되었단 말이다!" |
소신이 가겠사옵니다. 보내 주시옵소서. 안무사들이 성공적으로 안착했사옵니다. 소신은 뜻한 바를 마음껏 펼쳐보았사옵니다. 이제 폐하의 은혜에 보답하고 싶사옵니다. (현종: 보내지 않겠소. 나는 이미 수많은 죄인들을 용서했소. 아무리 큰 죄를 지었어도 그들의 목숨을 빼앗지는 않았소. 헌데, 이제 와서 아무 죄도 없는 충신을 사지로 내몰란 말이오? 그럴 수는 없소.) 폐하, 이 고려는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이옵니다. 폐하의 개혁이 빛을 발하고, 그것으로 국력의 신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옵니다. 이럴 때 한 사람의 희생으로 전쟁을 피할 수만 있다면 당연히 그리해야 하는 것이옵니다. (현종: 경이 간다 하여 전쟁을 피할 수 있을 거란 보장은 없소.) 그래도 시도는 해 보아야 하옵니다. 지금까지도 수많은 신하들이 목숨을 내걸고 거란과의 외교에 임해 왔사옵니다. 학사승지도 수없이 사지를 드나들었사옵니다. 고려는 그런 나라이옵니다. 소신도 그 고려의 신하이옵니다. 허니, 소신에게도 기회를 주시옵소서! (현종: (가슴을 치며) 참으로 비통하구려...! 왜 우리가 이런 고통을 받아야만 하는 것이오? 왜 고려의 신하들은... 이렇게 작은 희망 하나에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것이오?) 폐하...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을 갚아줄 날이 올 것이옵니다! 그러니 그날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소신을 보내 주시옵소서. 부탁드리옵니다. |
살아도 죽어도 혼자가 편하오! |
[1] 본작에서 강감찬 역을 맡은 최수종과는 해신 이후 약 20년만의 재회라고 할 수 있다.[2] 같은 시기를 다룬 천추태후에서 천추태후로 출연한 채시라와는 인수대비에서 같이 출연을 했고 거기서 강감찬으로 출연한 이덕화와는 궁중잔혹사-꽃들의 전쟁에서 같이 나온 적이 있다.[3] 고려가 하나의 나라 보다는 각 자치권을 가진 호장이 연합되어 있는 호족연합체임을 보여준다.[4] 당시 상황을 보면 김은부가 아닌 다른 이들이 나서도 호족들의 반발은 이미 예견됐다. 광종의 대숙청으로 호족들도 세가 매우 줄어들었지만, 뿌리깊은 호족의 부심은 황제를 우습게 여길 정도로 대단히 강했다.[5] 치수를 잰 뒤 현종이 (다 됐으면) 이만 나가보라고 하자,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느냐며 "여인이 옷을 지어 바치겠다는 것은 몸과 마음도 바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에 현종이 김은부가 전란 중에 딸을 바쳐 출세를 도모하려는 줄 알고 분개하며 김은부를 데려오라고 하자, 자신이 아비 몰래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라고 해명하며 용서를 청했다.[6] 다른 가족들은 공주에서 짐을 싸고 있던 중이었다.[7] 이는 강감찬 역시 집안의 가세가 기울기는 했지만 엄연히 호족 출신인 개국공신의 자제라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8] 이전까지는 고려 성종 시기 12목을 설치하고 각 목에 절도사를 파견하는 수준의 체제를 유지했다. 김은부가 바로 그렇게 공주 절도사로 파견된 사람이었다.[9] 거란과의 항쟁에 반대했던 유진이 임금과 뜻이 맞는 신하들로 조정을 구성하기 위해 사직한 것과 같은 맥락으로 사직해달라고 한 것이다.[10] 단순 보관중인 은에 대해서 뇌물이라고 꼬투리를 잡는 것이거나, 일부러 가져다가 수색중에 발견된 척하며 뇌물로 몰아가려는 확률이 높다.[11] 이에 만류하는 수행원 중 한 명에게 다그치면서 "자네들까지 죽을 필요는 없네."라고 말했다. 아무래도 이번에 사신으로 가면 살아 돌아오지 못한 것을 알고 꺼낸 발언으로 보인다.[12] 이들 사신들은 하공진의 부탁으로 김은부를 구하러 간 것으로 보인다.[13] 자신들이 이렇게 고통을 당할 때 비웃는 박진의 모습과 대조적이며, 그 후 현종에게 최질이 거짓말을 하는 것을 볼 때 반란군들에 의해 강제로 개경에서 쫒겨난 것으로 보여진다.[14] 다행히 큰 딸은 무사히 탈출해 28회에서 서경에서 현종과 다시 만나면서 반란군 수뇌부들을 처단했지만, 본인은 그 회차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15] 원작에서 현종을 영접하면서 안 좋은 소문이 돌아 백성들이 동요하는 상황을 밝히기도 하며, 계속 남하할 것이라면 공주를 지나 파산역으로 가는 것이 좋겠으나 일단 들어가서 의복을 갈아입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다. 이후 첫째 아들 '김충찬'을 소개하고 세 딸들에게 현종의 옷을 갈아입히라고 하는데, 딸들의 경우 처음에는 누구인지 밝히지 않아서 현종이 여종으로 착각하였다가 이후 영애였냐며 놀란다.[16] 참고로 공주에서 데려온 그 장정들을 어떻게 대우할지 논할 때에 지채문, 채충순 등이 태조도 그랬듯이 전공이 있으면 어려운 시기에는 상을 베풀어 격려하는 것이 인심을 얻기 좋다는 의견을 반영하여 현종은 그들에게 향직을 주기로 결정한다.[17] 김은부는 거란에 사신으로 갔다가 억류되는 고초를 겪은 기록은 있으나 최사위, 장연우, 황보유의 등과는 달리 고려사에서 딱히 내정 측면에서 일했다는 기록이 없다. 물론 『고려사』의 기록 부족을 생각하면 누락되었을 가능성도 있지만, 현종 대의 지방행정 개혁은 엄연히 최사위가 장연우, 황보유의와 협조해서 주도했지 김은부가 여기서 역할을 담당했는지는 알 수 없다.[18] 21회에서 김은부를 사신으로 보내려는 내사시랑평장사 유진의 언급을 보면, 사신에 김은부를 추천한 것은 거란 황제인 야율융서의 생일인 '천령절'에 축하 사신으로 가는 것이며, 게다가 김은부는 현종의 장인이기 때문에 아무리 거란 황제가 포악하다 하더라도 자신의 생일을 축하하러 온 사절에다가 제후국 군주의 장인을 함부로 죽일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 추천한 것이다.[19] 원평황후의 경우 기록상 제4황후인 작은 언니 원혜황후 다음 제5황후가 아닌 제7황후로 기록 되어있고 작은 언니가 사망 후 들어가지 않았나 추측을 하고 있다. 물론 드라마상 작은 언니와 함께 들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