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9 06:51:42

고려 거란 전쟁/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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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장인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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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등장인물 및 특별출연은 등장인물 (고려·거란·기타 국가) 문서 참고.
[ O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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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고려 거란 전쟁 OST Part 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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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고려 거란 전쟁 OST Part 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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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거란 전쟁/음악#s-2.1|
Part 1

비상]]
서도밴드
2023.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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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
김장훈
2023.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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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동
(붉은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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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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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에
나는
]]
IYAGI (이야기)
2024. 02. 03.
그 외 오리지널 스코어는 음악 문서 참고.
[ 관련 문서 ]
||<tablebgcolor=#454545><tablewidth=100%><width=1000> 방영 목록 ||<width=25%> 명대사 ||<width=25%> 역사 탐구 ||<width=25%> 평가(논란) ||

1. 개요2. 평점
2.1. 평론가 평
3. 전쟁 관련 묘사4. 외교 관련 묘사
4.1. 부정적 평가4.2. 긍정적 평가
5. 정치 관련 묘사6. 인물 해석 및 묘사
6.1. 고려 측 인물6.2. 거란 측 인물
7. 묘사 관련 비판
7.1. 시간 끌기 및 분량 조절 실패7.2. 역사 왜곡 논란
7.2.1. 1 ~ 16회7.2.2. 17 ~ 28회
7.3. 각본가 이정우에 대한 비판7.4. 마지막회 엔딩 관련
8. 총평9. 기타 반응

1. 개요

2023~2024년에 방영한 KBS 대하드라마의 34번째 작품 〈고려 거란 전쟁〉의 평가를 다룬 문서.

2. 평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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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평론가 평

★★★★★
이 잘 쓰인 한국 사극은 잔혹한 전쟁과 생존의 이야기로 여러분의 관심을 사로잡을 것이다.
This well-written Korean historical series will keep you hooked its bloody tale of war and survival.

— 푸아 지웨이 (NME) #[1]
아무렇지도 않게 왕을 바보로 만들 만큼 자아도취라도 된 걸까 #
원작자 및 시청자와의 소통 실패도 문제 #

— 정덕현 (엔터미디어ㆍ시사저널)[2]

3. 전쟁 관련 묘사

3.1. 전반적 묘사

전작 태종 이방원에서 이정우 작가의 극본 및 전투 장면의 연출이 너무 처참하다는 평이 많았기에 본작에서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 우려가 있었다. 다행히 프롤로그의 귀주 대첩 장면을 보면 전장에서 나름대로 대열을 유지하는 병사들의 묘사를 높게 칠만하고, 프롤로그에서 1인칭 시점으로 검차 아래로 적병 여럿이 파고드는 장면이나 한국 사극에서 오래간만에 검차를 선보인 것도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3] 병사 개개인에 맞춘 디테일한 전투 묘사는 호평이 많고, 장수가 전장에서 싸울 때에 투구를 벗지 않는다는 점도 다수의 KBS 대하드라마와는 달리 잘 묘사되었다.[4] 프롤로그에서 중갑기병대가 등장할 때의 연출도 크게 호평을 받았는데, 잠깐의 등장이지만 역대 대하사극 최초로 부대 전원이 찰갑 형태의 갑옷과 면갑까지 갖춰 입고 말에게도 마갑을 입힌 형태로 등장하여, 재현도도 높은 동시에 위엄이 넘치는 비주얼을 보여주었다.[5][6]

전쟁 준비를 위해 동원령 선언을 통한 군사 징집, 인원 수에 맞는 식량을 비축하는 과정, 검차 등의 무기를 제작하는 등의 장면이 상세하게 나온 점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에는 각 분야에서 활발한 준비가 이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이러한 장면을 그동안의 대하드라마에서는 이상하게도 보기 힘들었으며, 그나마 나오던 것도 군대 지휘 정도가 다였기에 이 또한 장족의 발전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전쟁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군상을 통해 그저 전투만이 아닌 정치 영역에서의 전쟁도 이유가 있게 그려지고 있다.[7] 본작의 강감찬의 말대로 한 사람의 능력으로 막을 수 없고 온 고려가 총력을 다 해야하는 일이기에 전쟁이라는 점을 잘 그려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전쟁의 승리나 외적을 무찔렀다는 영광에 치중하는 이전까지의 사극과는 달리, 전쟁의 참상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묘사함으로서 '전쟁은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며, 평화를 위해서는 스스로 힘을 길러야 한다'는 메시지를 강하게 보여준다. 특히 16회에서는 전쟁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그린다. 거란군이 압록강을 건넘으로서 2차 침공이 끝난 뒤, 몸에 화살을 맞고 장렬히 전사한 양규와 김숙흥의 별동대[8], 극한 상황의 연속이었던 피난길로 인한 피로와 심적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사산한 황후, 고문 후유증으로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강감찬, 멍한 얼굴로 길 위에 나앉은 백성들, 파괴되어 잿더미가 된 개경의 궁궐 등을 차례로 보여주며, 전쟁은 끝났어도 전쟁이 할퀴고 간 상흔은 지워지지 않음을 보여준다.

후술할 제2차 여요전쟁 장면들에서 제작비 절약의 문제가 부각되기도 했지만, 사극에 대한 투자가 줄어든 요즘 시대에 적은 제작비 때문에 전투 묘사가 아쉬운 것은 감안할만한 일이며, 오히려 없는 제작비를 짜내어 연출한 제작진들이 칭찬 받을 점이기도 하다. 실제로 상술한 구도들은 결과적으로 제작비를 절약하기 위한 연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드라마가 '고려의 역량을 총동원하여 막아내야만 하는 침략 전쟁'을 다룬 전쟁 드라마라는 점이다.[9] 그렇기에 여러 매체에서 각종 규모 있는 전투 묘사로 눈이 높아진 시청자들에겐, 이렇게 제작비 절약에 치중한 전투 연출은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아쉬운 부분일 수밖에 없다.

애초에 사실 KBS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제작비 약 270억원 투자가 명색이 전쟁 사극이라는 본작의 제작비로는 그렇게 많은 금액이 아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사실 KBS가 투자를 많이 하지 않은 것인데, 편당 제작비가 9억원도 안 된다. 2020년대의 드라마계는 12~16부작에도 200억원 정도를 쓰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32부작에 270억원이면 현저히 적은 것이 맞다. 제작진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노력하는 편이고, 진짜 문제는 그만큼 더 많이 투자를 받지 못했으면서 대하드라마 중 편당 제작비가 가장 높다는 까닭으로 과장 홍보를 한 KBS의 탓이 아주 크다.[10] 애초에 엑스트라들 인건비도 그렇고 각종 소품 대여료나 말 대여료등만 해도 수도 없이 깨지는게 현실이다 보니 270억원이면 많은 금액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11]

종영 후, 김한솔 PD는 전쟁 장면이 초라하게 묘사된 원인은 온전히 제작비 부족 때문이 아니라 기술 문제가 컸다고 밝혔다. # 인터뷰 내용을 종합하면, CG합성 등 기술의 발달로 전투신에 든 제작비는 오히려 궁궐 안 연회 장면 연출보다 더 적게 들었다고 한다. 다만, 사전에 크로마키 세트장에서 사전 제작한 촬영분을 디지털 합성으로 입히는 기술을 활용해도, 실제 역사상 기록인 30만 대군의 대회전을 묘사하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촬영분도 적어 최종적 연출에 한계가 있었다는 아쉬움을 밝혔다.

3.2. 제2차 여요전쟁

결과적으로 양규가 주인공인 전투 장면들은 대체로 호평이 많지만, 각 전투마다 연출의 편차가 너무 크다. 흥화진 전투의 경우 TV 사극 중에서는 역대급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고퀄리티의 전쟁씬을 선보인 반면, 통주 전투는 회전 한 번 하고 기습으로 어이없게 강조가 잡혀버렸고[12] 서경 전투에 이르러서는 싸우는 거 몇 초와 출격 장면 말고는 죄다 대사만으로 날려버렸다.

그나마 묘사되는 전투도 자세히 보면 전투의 웅장함을 느끼게 해주는 규모 묘사는 아주 제한적이고, 제2차 여요전쟁 동안에는 기록상 과장의 가능성을 감안하더라도 수십만 규모에 걸맞은 대규모 전쟁 묘사는 모자란 편이다. 카메라에 동원되는 인원 자체도 너무 적고 인원을 불리는 CG도 쓰지 않아서 부대 규모가 굉장히 초라해보인다. 때문에 고려 장수는 장군이 아니라 소대의 분대장처럼 느껴질 정도이며, 분명 설정상으로는 두 군대가 요충지에서 처절하게 싸우는 상황인데 화면에서 펼쳐지는 장면은 동네 패싸움을 연상케한다. 초반부 흥화진 전투 이후로는 대부분 옛날 '주몽'급의 처참한 스케일과 연출을 보여준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본작은 병사나 소품 같은 개별적 요소에 주목하는 구도를 활용했다. 본작에서 크게 호평 받은 흥화진 전투도 사실 성벽을 옆에서 보는 구도를 많이 넣어 바깥의 적군은 잘 보여주지 않으며, 투석기 역시 실제로 제작한 두 대만 카메라에 잡고 나머지는 보이지 않는 뒤에서 불덩이가 CG로 날아가는 식으로 묘사했다. 통주 전투도 수십만 규모의 대회전이지만 초반부에는 역시 기병들 몇 기만 클로즈업 하면서 묘사했고, 양규와 김숙흥의 결전 역시 호평 요소이지만 함께 돌진한 고려군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려서, 마찬가지로 전투보단 개인의 사투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게다가 놀랍게도 공성전에서 흔한 연출인, 사다리를 타오르고 이를 막는 장면은 정말 조금 등장한다. 그 밖에도 처음에는 노를 든 병사가 나오는 등 재현도에 호평을 받았으나 수성전 묘사는 궁병 일색이며, 그나마 16회 쯤에 노병이 섞여있지만, 이를 보조하는 장전수는 묘사되지 않았다.

드라마 전반에 걸쳐 이렇듯 미시적인 구도에 맞춘 전투가 대부분이다. 그렇기에 이와 관련해서는 모자란 제작비 안에서 전투를 살리기 위한 연출, 또는 제작비가 모자라 웅장함을 살리지 못한 연출로 호불호가 갈리는 모습을 보인다. 다만 어느 쪽이든 장점을 감안하더라도 모자란 것이 아쉽다는 점은 바뀌지 않는다. 이런 단점은 여진족과의 싸움이나 1014년의 국지전에서도 그대로 드러났지만, 24회 시점에서는 이미 드라마의 분량 조절이 시급한 상황인데다가 후술할 다른 문제가 더 커졌다.

원작자 길승수는 흥화진 전투와 (강조가 잡히기 전의) 통주 전투 초반부, 그리고 애전 전투의 연출을 담당한 김한솔 PD에 대해 호평을 남겼지만[13], 그 밖에 전반적으로 대본을 작성한 이정우 작가에 대해서는 강도 높게 혹평하였다.

3.2.1. 흥화진 전투

5회부터 시작된 흥화진 전투는 당시 시대상에 완전히 알맞지는 않지만[14] 중세의 무게추식 투석기 사용법을 정확하게 재현하였다. 게다가 5회는 빛과 색감을 잘 활용한 세련된 영상미로 찬사를 받았는데, 결말부에 양규가 낀 깍지에 불길이 비치며 거란군이 투석기로 화염을 두른 돌을 던지고, 관측병이 거리를 조절하며 군사들이 다시 돌을 여럿 던지면서 어두운 하늘이 점차 밝아져 양규가 지키는 흥화진을 향해 날아오는 장면이 인상적이라는 평이 많다. 특히 관측도구까지 사용해가며 상대방 투석기의 위치를 파악해 점차 사거리를 맞춰가는 모습이 시청자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다.[15] 현대에도 정밀한 포격이 힘든데, 전근대 투석기는 말할 것도 없다. 공성측이나 수성측 양쪽에서 투석기를 사용하는 것은 반지의 제왕이나 킹덤 오브 헤븐에서 묘사된 바가 있지만, 이렇게 투석기의 사거리나 타점 조절을 한 것은 고려거란전쟁이 처음이다.

6회에선 기존 사극에서 잘 지켜지지 않았던 전쟁에서 진형을 갖추고 처절하게 싸우는 묘사가 큰 호평을 받았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심한 부상을 입으면서 싸우는 양국의 병사들, 화살을 너무 많이 쏘아 시위가 망가져서 피범벅인 손으로 다시 각궁을 재정비하는 양규, 틈틈이 물을 마시고 밥을 먹다가 입에 묻은 밥풀을 뗄 시간도 없이 분전하는 고려군, 피로 물들어진 성벽 아래에 쌓인 거란군의 시체 등의 여러 장면들을 통해 잘 묘사하였다. 거란군이 고려 사람들을 포로로 잡은 다음 방패막으로 삼아 성벽을 올라오려고 할 때에도 고려군이 고뇌 끝에 결국 화살을 쏘는 묘사 역시 비슷한 평을 받았다.[16][17] 기존 사극에서 소위 지휘관라는 사람들이 독려 혹은 독전만 하고 지휘는 안 하는 것에 비해, 독특하게 화살로 지시하여 불화살을 따라 맹화유를 투석기로 날리거나 효시를 발사하여 위치를 파악하자마자 거란군에게 화살을 쏘는 식으로 지시를 내리는 양규의 모습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기존 사극의 전투씬에서는 적이 멀리 떨어져 있으면 화살을 쏘고 가까이 있으면 칼을 들고 싸우는 천편일률적인 연출로 일관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소수가 다수를 이긴 전투나 일반적인 전투나 연출적으로는 큰 차이가 없었다. 이 때문에 연출만 놓고 보면 그냥 칼싸움 잘하면 이기는 거고, 칼싸움 못하면 지는 수준밖에 안 되는 경우가 매우 많았다.[18][19] 반면 본작의 흥화진 전투는 고려군이 맹화유를 활용하여 화공을 가하거나 성 주변에 함마갱을 파서 적의 접근을 차단하는 등, 소수가 다수를 상대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철저하게 준비를 해왔음을 잘 보여준다는 점도 호평받았다.[20]

또한 기존 사극에서 중요 장수를 뺀 나머지 병사들은 그냥 죽어나가는 역할을 하는 것에 비해 흥화진 주둔 병력은 확실히 정예로 묘사된다. 방패병들이 적의 화살을 막고 궁병이 대기하다가, 양규의 지시에 일사불란하게 방패병이 비키고 궁병이 화살을 쏜 뒤에 물러나면 방패병이 다시 적의 화살을 막는다. 연출만이 아니라 3천명이 40만명을 막은 전투 결과도 작중에서 강조해서 이들의 성과로 확실히 언급한다. 다만 투석기를 발사하는 장면을 빼면 이레 동안의 전투라기에는 백병전이 거의 없고, 성벽을 타고 오르는 일도 거란군의 시체가 바닥에 쌓여있는 묘사 등 여파 자체는 적나라하게 묘사된 것과 별개로 과정이 생략되었으며[21], 예산이 모자랐던 까닭에 성벽도 급조한 세트 느낌이 여실히 보인다. 또한 원작에서 성벽을 오르려는 거란군에게 쇳물을 붓는 장면, 거란군이 북과 징을 치면서 공격하는 척 해서 고려군이 잠들지 못하도록 지치게끔 하려고 시도 및 잠깐 동안 고려군의 기병대가 출전하여 거란군을 놀라게 하는 등의 묘사가 없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7회에서는 흥화진 전투의 여파가 묘사되었는데, 고려군의 승전이면서도 전쟁에서의 승리가 마냥 통쾌한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 가족을 잃은 백성들과 몸이 만신창이가 된 병사들을 통해 잘 드러났다. 다만 흥화진 전투 다음에 흥화진의 양규가 병사들과 봉화를 올려 승전의 소식을 알리기 위해 매복해 있는 거란군과의 전투 자체는 창작이라서 중세의 정보 전달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장면이라는 것과는 별개로 굳이 필요했냐는 반응도 있는데, 특히 이 싸움이 묘사된 7회에선 후술할 통주 전투 말고도 개경의 장면들과 전쟁터의 장면들 사이의 분량 조절이 아쉽다는 의견이 있다.

프롤로그 장면에서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뭉개져서 잘 들리지 않는다는 반응이 있었는데, 5회 말미부터 피드백이 되었는지 고려군과 거란군 장면에서 모두 자막이 삽입되었다. 다만 일점사 같은 용어를 해설 자막까지 동원해가며 차용한 것은 현대 어투 치고도 다소 어색하다는 반응이 있었다. 극 중에서 일점사가 현대의 사격 분야도 아니고 게임 분야에서 사용되는 뜻으로 나오기도 했고, 사극에서 자막은 당대의 표현을 해설하는 용도로 사용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더욱 그렇다.

3.2.2. 통주 전투

5~6회의 흥화진 전투는 중세 전투의 역사 재현도가 높아지고, 전투의 처절함을 잘 살린 연출이 돋보여 많은 호평을 받았지만 7회에서 다뤄진 통주 전투 연출은 원작자 길승수 포함 아쉽다는 평가가 많다.[22] 일단 통주 전투의 전초전에서 검차를 앞세워 고려군이 질서정연 하게 진을 치고 다양한 장병기를 이용해 거란 기병을 막는 장면까지는 호평이다. 한국 사극에서 이렇게 전근대 군대가 대열을 잘 갖추어 전투에 나서고, 전열을 잘 유지한채 다양한 중장병기(투석, 쇠도리깨, 장창)를 사용해 기병을 격퇴하는 보병의 모습을 잘 묘사한 적은 거의 이번이 처음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분위기를 끝까지 잘 이끌었으면 좋았겠지만, 여기서 통주 전투를 더 묘사하지 못하고 거란군의 야밤 기습으로 강조가 사로잡히고 고려군이 무너지는 스케일이 너무 초라하게 묘사되었다.

사실 7회가 시작하자마자 흥화진 전투의 결과가 대충 스킵되고 이미 몇 번이나 반복적으로 묘사된 개경 상황 장면으로 시간을 질질 끄는 등의 불안한 요소들이 많았다. 이런 불필요한 장면들이 늘어날수록 전투 묘사는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23] 그리고 막상 통주 전투 부분이 시작되자 아니나 다를까 약 3분 정도만 묘사된 전초전이 끝난지 5분만에 야율분노가 소수 병력만 이끌고 기습을 꾀하는 장면이 나오고, 힘 한번 못 써보고 2분만에 강조가 고려군 본진 한가운데서 붙잡히는 급전개와 개연성 없는 전개를 보여준다.[24] 불과 4천의 병력이 수성에 나선 흥화진 전투 장면이 6회에서 30분 넘게 할애해 제대로 각잡고 묘사된 것에 비하면 지나치게 가볍게 넘어갔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통주 전투는 이 작품의 클라이막스인 귀주 대첩보다 큰 규모의 회전으로 역사적으로도 대충 다루기 어려운 전투이다.[25][26] 따라서 허망하게 무너진 고려군이 왜 졌는지에 대한 빌드업이 제대로 안 된 상태에서 전투가 빨리 끝나서 급전개가 너무 심한 편이다.

사실 통주 전투 초반부의 화면 화질이나 고려군, 거란군 병사들의 질서정연한 연기는 작중 초반 맛보기로 보여줬던 뛰어난 퀄리티의 귀주 대첩 장면 분위기와 거의 비슷하다. 이에 비하면 삼수채 전투 장면의 경우 화면 화질, 어수선한 분위기라든지 주변 환경 묘사 퀄리티 차이가 전초전 묘사와는 다른 것이 매우 극명해서, 확실히 삼수채 전투 묘사는 본작 제작진이 힘을 덜 쓴 부분인 것은 분명하다. 이 외에도 태종 이방원 촬영 당시 있었던 말 학대 및 죽음으로 인해서 그런 것인지 고려군 보병의 뛰어난 묘사와 달리 거란군 중기병대가 격파당하는 장면이 맥아리없이 진행된 문제가 발생했다.[27] 이에 대응해 기병이 닥치기 전에 방패 뒤에서 적의 동태를 살핀 뒤 호각을 불어 검차를 출진시키는 고려군 보병의 연출은 한국 사극 연출상 유래를 찾기 어려운 독창적 연출이라고 볼 수 있었기에 더욱 아쉬운 부분이다.

또한 통주 전투의 전반적인 묘사나 설명이 모자랐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영상 작품이라는 건 특별한 까닭이 있을 때 말고는 시청자에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장면을 전체적으로 보여주는 순간이 있어야 한다. 심지어 일상 생활 장르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등장 인물이 사는 장소를 보여줄때, 그리고 타국으로 장소를 이동했을 때 전체적인 분위기나 장소를 조감도로 보여준다. 특히나 전쟁을 주제로 하고 있는 드라마인데 전투 장소, 병력들이 어느 정도 크기로 진을 치고 있고[28], 어떻게 진법을 구사하고 있는지 스케일을 보여주는게 걱정될 만큼 없다. 실제로도 그렇겠지만, 마치 CG를 쓸 여력이 안되고 사람을 많이 동원을 못했다는걸 숨기려는 듯 클로즈업이 많다. 드론 촬영 기법으로 거란 진영과 고려 진영이 어떻게 대열을 이렇게 유지하고, 어떻게 대치하고 있는지를 조감도로 잠깐만이라도 보여줘야 할 필요도 있었다.[29][30]

어떤 면에선 14년 전 드라마 『천추태후』는 제3차 여요전쟁을 날림 처리하는 등 최악의 역사 재현을 보여준 작품 중 하나인 것과는 별개로 통주 전투만큼은 전장을 어느 정도 넓게 조명해서 최대한 규모감 있는 싸움으로 묘사하려는 노력을 하거나 강조가 초전에 승리하고 나중에 패배하는 장면을 제대로 구분해서 넣는다든가, 패전한 뒤 포로로 잡혀 항복했단 기록이 있는 이현운을 처음부터 배신자로 몰아 패전 책임 몰빵하는 판타지를 써서라도 삼수채에서 고려군이 지는 개연성이라도 챙겼는데 본작의 통주 전투는 이렇게 허망하게 무너진 고려군이 왜 졌는지 빌드업이 제대로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 전투가 너무 빠르게 끝나버려서 급전개가 너무 심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서전인 흥화진 전투가 더 크게 느껴지고, 본전인 통주 전투는 그냥 난전처럼 묘사된 문제가 생겼다. 어찌 되었든 간에 8회에서 통주 전투의 여파가 잘 묘사된 것과는 별개로 7회에서 고려사 최대 규모 전투 중 하나인 통주 전투의 '기승전'이 이렇게 허무하게 연출된 것은 변함이 없다.[31][32]

3.2.3. 서경 전투

원래부터 생략하거나 날림으로 처리하는 부분이 없진 않았지만, 10회의 서경 전투에 들어와 생략씬이 더 심해졌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전투 장면은 없고 출격하는 장면만 보여주고 전령의 대사로 때우는 게 전부일 정도인데, 더 자세히 풀자면 야율융서의 진격이나 공성전은 아예 묘사되지도 않았고, 지채문의 승리는 출격과 귀환 장면만 나왔다. 또한 이후 패하는 장면에서 화살비가 쏟아지는 장면에서 다른 장면으로 들어와 패하여 쫓기고 있다고만 이야기되며, 대도수가 사로잡힌 부분은 아예 보여주지도 않고 전령의 대사로 대신해 비판 받는 중이다.

다행히 조주연, 심지어 단역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와 납득가는 스토리가 스케일의 부실함을 만회하는 중이다. 또한 최소한 장수들이 무기를 휘두를 때 화면의 흔들림을 통해 무게감이 더해졌으며, 잠깐 나오는 지채문과 대도수 등이 거란군에 맞서는 난전 묘사에도 화면의 구도와 자연광 덕분에 볼만하다는 평도 있다. 아울러 양규의 야간정찰 당시 기도비닉을 위해 말굽에 천을 감싸는 디테일한 연출들로 리얼리티를 살리려 노력하는 부분도 분명 존재한다. 제작비와 분량 문제 때문인지 전투의 규모 자체는 축소되었지만, 대신 전투 내의 자잘한 리얼리티와 세밀한 심리 묘사를 통해 이를 메꾸고 있는 셈이다. 이와는 별개로 아이러니한 점은 서경 전투가 묘사된 10회에서 시청률이 10%에 처음 도달했다는 것이다.

11회에서 그대로 이어진 조원과 강민첨 등이 이끈 서경 공방전은 비록 흥화진 전투 묘사만큼은 아니었고 장면도 짧게 묘사되었지만, 충분히 절망적이고 처절한 상황을 잘 그려내었다는 점에서는 좋은 반응을 얻었다. 특히 병사도 병사지만 지휘할 무관들이 죄다 죽어나가는 통에, 인력난에 시달리는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그나마 있는 무관들이 계속되는 전투 탓에 죽어나가는데, 예로 강민첨이 최 교위라는 무관에게 동문을 지키던 박 교위가 죽은 탓에 그 곳을 지휘하는 무관이 없으니 대신 가라고 명령하는데, 최 교위도 이곳을 지휘하는 무관이 자신 밖에 없어서 못 간다고 말한다. 이 탓에 강민첨이 직접 동문으로 가서 지휘해야 했다. 짧은 장면이라 흥화진 전투처럼 전투씬에 자체자막이 현출되지 않았지만 포성과 굉음이 난무하는 장면에 자막이 없어 대사가 잘 식별되지 않았는데 자막 연출이 일관되지 않은 부분은 아쉬운 부분이다.

서경을 포기한 거란군이 어떻게 개경으로 진격하였는지에 대해서도 묘사하여 절령에서 지채문, 장연우, 황보유의 등이 거란군을 최대한 막아내던 장면 역시 기병은 없지만 제파전술로 고려군을 끊임없이 괴롭혀 기진맥진하게 만드는 과정을 잘 보여주었다.[33] 10회에서 거란군을 공격하다 사로잡혔다는 대사만으로 하차할 것으로 예상되었던 대도수도 야율융서에게 붙잡혀 거란으로 압송되는 모습까지 나와 마무리를 적절하게 짓는 묘사가 나왔다.

다만 여전히 동네 싸움처럼 보일 정도로 부족한 스케일과 개경 성문이 열리는 장면을 빈약하게 묘사하여 지적 받았다. 서경은 고려가 외침을 받을 때마다 핵심 방어 도시로 단골처럼 묘사되는곳인 동시에 고려에서 개경 다음으로 큰 도시이자 중요 병참 기지이기도 하다. 고려 역사 470년 동안 고려를 대규모 침공해 온 북방 민족들은 모두 한번 이상은 서경에서 큰 격전을 치루었고, 서경이 보존되느냐 아니냐는 전황에 큰 영향을 미쳐왔다. 그래서 이 곳을 지키는 것의 의미는 실로 큰 의미를 둘 수 있지만, 드라마 상의 묘사를 보면 흥화진이나 곽주나 서경이나 소수의 병력이 수성하는 성인 것처럼 별반 차이가 없게 느껴진다.

3.2.4. 곽주 전투

12회에서 연출된 곽주 전투는 이전 회차의 아쉬웠던 부분에 비하면 큰 호평을 받았다. 기록이 부족한 곽주성 탈환 과정을 잘 메꾸었다는 평을 받았는데, 양규가 먼저 효시를 날려 지시를 보내자 성을 사수하려고 혼란스러워진 거란군 사이에 먼저 포로로 들어간 김숙흥 등이 내란을 일으켜 성문을 열고, 양규와 최충을 포함한 고려군이 불화살을 날려 마치 적이 많은 것처럼 위장하는 장면들은 원작을 잘 따라간 부분이다. 한편 원작에서는 포로들이 그저 부상병을 업고 나오는 장면 밖에 없지만, 드라마에서는 포로로 잡혔던 백성들이 악에 받쳐 같이 거란군을 학살하는 묘사는 작품의 주제였던 거란과의 전쟁에서 모든 고려인이 단합되어야 한다는 점을 잘 보여줬다는 반응이 많다.

여담으로 유성이 나오지 않은 부분은 애초에 고려사에서도 곽주에 유성이 떨어졌다는 점만 기록했을 뿐이고, 유성을 통해 곽주성이 함락되었다는 설은 기록 자체로는 절대로 찾아볼 수 없는 일각에서의 추측일 뿐이기에 이를 굳이 묘사할 필요는 없다. 원작 소설에서도 그저 곽주에 유성이 떨어졌다는 것을 최충과 양규가 보는 장면으로 나올 뿐이지 성을 함락시키는 데에 도움을 주지는 않았으며, 이 유성은 서경성의 장수들과 도망쳐 개경으로 향하던 지채문도 멀리서 보게 된다.

드라마 상에서 주제 의식을 잘 살린 부분이 많지만, 원작 소설에서 노전이 선봉으로 참여하여 성문을 여는 활약 및 고려군이 곽주성 안에 불을 질러 거란군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장면이 생략되었다는 점은 아쉽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드라마에서는 수급을 베기 전에 곽주성 안에 있던 지휘관 3명이 탈출하였다가 양규의 화살에 죽지만, 원작에서는 남문 쪽으로 탈출한 일부 기병들과 보병들이 최질을 포함한 고려군이 미리 설치한 수천의 철질려에 발이 묶여 서로 아비규환 속에 압사당하거나 창과 불화살에 의해 죽는 장면이 있다. 그 외에 원작에서는 준비 과정 도중 양규가 통주성에서 거란군이 물러가고 남하한 것을 확인하자 통주와 삼수채에 영채를 쌓게 하거나 바퀴가 없더라도 최대한 검차를 많이 만들어 적군이 고려군의 수가 많다고 오판하도록 지시하기도 한다.

3.2.5. 애전 전투

통주 전투나 서경 전투에서 지적된 문제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전반적인 묘사나 설명의 부족 그리고 전투씬의 생략 및 날림 처리 등이 그렇다. 장점도 똑같은데 배우들의 연기력과 납득가는 스토리로 부족한 스케일을 만회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원작자 길승수 포함 16회를 시청한 사람들은 양규의 영웅적 희생을 감동적으로 묘사하였다는 점에서는 호평으로 의견이 모이지만, 세부적인 연출이나 각본 면에서는 호불호가 갈린다.

호평하는 쪽에선 사극에서 지금까지 거의 장식품 수준으로 다루어지던 갑옷의 방어력에 대한 묘사가 이루어졌다는 점을 호평한다. 갑옷이 종이갑옷인 양 아무 방호력을 갖지 못하던 대부분의 기존 사극과는 달리, 단병접전에서는 기본 냉병기만으로는 중장갑옷의 방호력을 뚫을 수 없는 점을 충분히 고증하였고 고려군이 호항(목가리개)을 착용하여 목을 보호하고, 목가리개가 떨어져 나가자 거란군사가 목을 노리라고 외치는 부분 등은 연출진이 처음부터 기획한 철저한 고증의 방향과도 일치한다. 그리고 그동안 빌드업해온 캐릭터를 무너뜨리지 않고, 양규와 김숙흥의 최후를 장렬하게 연출했고, 사서의 내용도 그대로 반영해 과장 없이 마무리 했다는 점에서 고평가를 하고 있다. 이 정도면 부족한 제작비 등 제한된 여건 속에서도 보여줄 수 있는 만큼은 충분히 보여줬다고 평가하며, 향후 사극 전투신의 새로운 기준점을 마련하였다는 평가를 한다. 다만 갑옷이 둔기 또는 검 같은 날붙이의 타격에 의한 충격을 다 막아주는 듯한 묘사는 기존 KBS 사극의 갑옷은 장신구에 가깝던 묘사와는 정반대로 조명하여 오히려 과장에 가까운 부분도 있으며,[34] 비장미를 위해 자기네 황제를 노리는 양규를 지켜보는 거란군의 묘사는 비현실적이라는 지적도 있다.[35][36]

불호 입장에선 비장함과는 별개로 애전 전투가 갑작스럽게 벌어져 너무 어설프게 연출된 것에 불만을 가진다. # 사실 양규의 죽음으로 비장함과 슬픔이 강조되어서 그렇지 귀주 협곡 전투나 포로 구출, 정성의 최후의 공격 등을 봐도 굉장히 스케일이 작게 묘사되거나 생략당했다.[37] 이 때문에 드라마만 보면 거란이 괴멸적인 피해를 받았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기록으로 살펴보면 이 전투로 거란은 장족(귀족)과 병졸, 수레도 돌아간 것이 드물었고, 관속들 태반이 전몰하면서 조금이라도 글을 아는 자를 뽑아 결원을 보충해야 하는 상황이 될 정도로 큰 피해를 받았다. 드라마에서도 몇 만이 죽었다고 언급되지만 전투 스케일이 작아 실감이 안 나고, 야율융서나 소배압에게서 다급함이 느껴지지 않다 보니 고려군의 활약 및 거란군의 피해가 대단치 않은 느낌을 준다.[38]

3.3. 제3차 여요전쟁

궁중 암투와 김훈·최질의 난이 늘어질 때 우려한 대로, 어이없는 속도의 날림 전개가 나타나고 있다. 드라마 제목이 고려거란전쟁인 만큼, 하이라이트가 될 제3차 여요전쟁은 전쟁 묘사가 주요 장면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전투신이 다른 장면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는 평가가 많다. 소배압이 개경 직공을 한다는 사실 외에는 전쟁의 전개 양상이 실제 역사와 맞지 않는 전개로 가는데다가 제대로 된 전투 묘사가 부족하고, 역사에 기록된 일부 전투 사건은 마치 방치형 게임처럼 해설이나 지도 CG로 대충 설명하는 것으로 때우고 스킵하는 경우가 급격히 늘어났다

전술하였듯이 1~16회는 어느 정도 전투 묘사가 많았고, 특히 양규와 휘하 고려군 부대의 생동감넘치는 전투장면은 매우 큰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16회 이후에는 호족들과의 분쟁과 김훈·최질의 난 등 고려 내정에 관한 문제에 대해 대부분의 분량을 소모하였고, 모든 내부 문제가 해결된 29회를 기점으로 제3차 여요전쟁은 사실상 마지막 전투인 귀주대첩을 제외하고 앞의 대부분의 전투는 모두 해설로 생략하고 넘어갔는데, 김훈·최질의 난에서 4개의 회차로 시간을 끈 이후의 고려와 거란의 전투 장면은 또 해설로 넘어가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가 현실화된 것이다. 특히 이런 문제는 29회에서 여실히 드러나 흥화진 주변에서 강감찬이 이끄는 중갑기병이 거란군과 격투를 벌이는 장면은 생략한 채 부하 장수가 중갑기병이 거란군을 물리치고 있다고 보고하는 장면으로로 퉁쳤다.

드라마에 묘사되는 병력 수도 여전히 부족하여 현실감이 없다. 29회에서 강감찬이 거란과의 최후의 전투를 준비할 때, 무려 20만 대군이라고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집결된 병사 수는 100명도 안되는게 태반이었다. 고려 검차를 운용하는 부대를 훈련시키는데, 수십명의 병사만을 가지고 훈련시키고, 기마부대인 중갑기병은 불과 20명밖에 묘사되지 않았다. 현대 사회에서 수십만 대군을 일일이 동원하여 묘사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므로, 보통 영화나 드라마에서 대규모 병력이 동원된 전투 장면을 묘사할 때에 CG 기술로, 수십~수백명의 스턴트맨을 복사하여 많아보이게 묘사하곤 한다. 그럼에도 겨우 수십에 불과한 병사 복장의 스턴트맨을 가지고 수십만 대군이라고 보여주는 것은 시청자들 입장에서 공감이 갈 수 없는 부분이다.

30회에서도 삼교천 전투의 수공은 생략되고 소규모 접전 수준으로만 묘사되었으며, 거란군이 개경에 이르는 과정의 전투들은 대부분 대사로 처리되거나 한 두 장면 정도만 나왔다. 과거부터 늘 사극에서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받았던 패싸움식 전투로만 묘사된 것도 큰 문제이다.[39] 애전 전투 때 갑옷의 중요성을 어필했던 것치고는 중갑 기병이 거란군의 화살 공격에 허무하게 패퇴하는 점에서 시청자들에게 중갑 기병의 필요성을 설득하는 데에도 실패했다. 31회에서의 금교역 전투가 그나마 조금 공을 들였으나 패싸움 연출은 그대로였고, 횃불을 들어 거란군에게 고려인들의 수를 속이는 장면이 창작되어 나온 점에서 비판을 받았다.[40] 군주가 대놓고 성 밖(벌판)[41]에 나와 맨 앞에 서서 횃불을 드는 상황 및 백성들이 모두 횃불을 드는 덕에 겨우 작전이 성공하는 등 운에 의존하는 전개로 인해 본래 전투의 전황이 제대로 부각되지 못하였으며, 퇴각하는 소배압 또한 여전히 활약할 기회 없는 바보로 만드는 각본가의 허술함이 돋보인다.

날림 전개 외에도, 신파식 전개의 문제가 있다. 현종이 개경을 포기하지 않았고 개경 밖에서 청야 전술을 실시하도록 한 것까지는 사실이지만, 현종이 친조를 하러 개경을 떠났던 것, 그것을 백성들이 거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저지하려 했던 것, 그것을 기억하고 현종이 백성들에 대한 믿음으로 개경 사수 결정을 내린 것, 조정에서 의용병을 모집한 것, 높은 신분의 부인들(강조, 양규, 강감찬의 처)이 의용병에 지원한 것, 수많은 백성들이 의용병에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 황제가 성문 앞까지 나와 눈물을 흘리며 백성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백성은 오히려 황제를 위로하고 만세를 외치는 장면에 이르는 신파식 서사는 당연히 역사에 기록된 사실이 아니며 현실적이지도 않다.[42][43]

이런 신파식 서사는 정도전에서 태종 이방원까지 지난 10년 동안 지양되었던 전개 방식이었는데[44], 역사 기록과 현실성에 민감해진 시청자들이 많아진 2024년에 뜬금없이 다시 등장했다. 하다못해 드라마라는 창작물이니 만큼 나름의 빌드업을 거친 뒤 나왔으면 묘사의 유치함은 둘째치더라도 개연성은 붙여줄 수도 있었겠지만 이미 궐안전쟁으로 그런 빌드업을 할 분량을 다 까먹었다보니 마치 사이코패스와 마조히스트가 같이 화학작용을 하는 듯한, 사람심리를 이해못하는 사람이 만든 각본으로 표현되어 버린 참사가 일어났다. 이전 회차까지 박진이란 가상인물이 입에 개거품을 물고 전쟁에 대한 방향이 빗나간 복수로 날뛰며 폭주하던 상황을 계속 봤던 지라 이런 묘사가 더욱 괴리가 심하다.

3.3.1. 귀주 대첩

'고려거란전쟁' 중갑 기병 도착하니 귀주대첩 끝? 싱거운 결말

31회의 후반부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귀주 대첩이 시작되었고, 해당 전투 장면은 김한솔 PD가 극본 및 연출을 담당하였다. 양군이 서로 대치하는 구도와, 전투 전에 거란군이 주술사의 지휘 아래 기도를 하는 장면 등은 전투 전야를 느낌 있게 묘사하여 호평 받았다. 1화 이후 거의 처음으로 대규모 전투에 걸맞은 규모 묘사도 뒤따랐다. 다만 기본적으론 1회의 서전(緖戰)에 나왔던 사전 촬영분의 재탕인데다, 31회에 추가된 전투 중 대화 장면 같은 경우 분량 늘리기 혹은 각본 변경으로 예정에 없던 장면을 사전 촬영분에 덧붙여놓은 탓인지 흐름도 1회처럼 깔끔하지 않고 인물들 몇몇 부분에서 누가 봐도 어색한 CG 활용이 눈에 뜨여 혹평 받았다.[45][46]

또한 1회의 프롤로그에 나온 전투 장면이 31회에 모두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32회에 나올 장면도 결국엔 남은 분량의 재탕에 일부러 늘린 부분이 어색하게 섞여 열화된 형태로 나올 것이라는 예상에 실망감을 피력하는 의견이 대다수다. 막연하게 중갑기병이 오기만을 기다리기만 하는 강감찬의 모습[47]이나 퇴각전인데도 전쟁은 기회다라며 외치며 달려드는 거란군 병사 등 이상하게 느껴질만한 장면들이 종종 보였다.

32회의 귀주 대첩 묘사는 1회와 귀주 대첩 티저에서 나왔던 예고 장면을 재탕한 것에 불과했다. 그나마 마지막회에서만 볼 수 있었던 장면은 중갑기병이 거란군을 몰살하는 장면과 고려군이 검차로 거란군을 밀어내려 안간힘을 쓰는 장면이었다.[48] 명색이 당대 최강이라던 거란군 기병은 묘사가 거의 없고 경기병과 거란의 철갑기병의 차이점을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한 데다 전투신은 결국 보병 위주로만 표현되는 점도 비판받는다. 이후 귀주대첩 전개가 진행되나 싶었는데, 검차가 통나무를 넘었을 뿐 아직 거란 방패병과의 몸싸움이 진행 중인데도 뜬금없이 칼을 떨어트리고 실망스러운 표정을 짓는 소배압과 검차를 전진시키려 안간힘을 쓰던 강감찬이 마름쇠 하나가 떠오르는 하늘을 바라보자 갑자기 비가 내리는 장면이 연출되었고 곧바로, 폭우로 진흙이 되어버린 벌판 위에서 고려군이 갑자기 이겼다며 환호를 지르는 장면으로 스킵되었다. 속칭 우천취소전쟁.[49]

마름쇠를 뿌리는 것이 몽골군의 퇴각 신호인 것을 반영하여 거란군에게도 그런 설정을 부여한 점은 나쁘지 않았으나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된 설명이 부족하였다는 점이 큰 문제이며[50], 귀주 대첩을 어떻게 이겼는지, 고려군이 거란군을 최종적으로 어떻게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주는지에 대한 장면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다시 말해 시청자 입장에서는 고려군이 한창 거란군과 검차를 사이에 두고 힘겨루기만 하다가 칼날 한두개가 방패를 뚫으니 갑자기 거란군은 패착을 느끼고 고려군은 승리해 환호를 지르는 장면으로 넘어간 것이다. 상식적으로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면 시체들이 가득 쌓여있어야 하는데, 전투가 끝난 후 장면엔 땅바닥이 훤히 보이며, 고려군 숫자도 마치 전멸당한 마냥 줄어있다.[51]

이전 흥화진 전투나 애전 전투같은 경우도 결말까지의 과정까지 다 직접적으로 보여주지 않고 중간과정을 연상하게끔 묘사한뒤 바로 끝으로 넘어가는 연출은 나왔지만 최소한 이때는 특별한 정보 없이 상식적으로 알만한 묘사인 것에 비해 전쟁묘사가 날림으로 나왔던 귀주 대첩의 경우 그런 연상으로 이어질만한 빌드업도 사전에 없이 그냥 이전 제작 분량을 생각없이 갖다 붙여놓아서 나사빠진 연출이 되고 말았다. 결국, 1회부터 계속해서 호언장담했던 귀주 대첩 하이라이트는 허상에 불과했고, 황당함을 감추지 못한 시청자들은 최종화 전투 장면을 다 끝마치지 못한 채 승리한 것으로 퉁쳐버린 드라마 전개에 엄청난 분노를 쏟아내었다.[52]

결론적으로, 마지막 귀주 대첩 연출에 따라 그동안 들었던 비판을 모두 만회하냐마냐가 달려있었다. 마지막 귀주 대첩만 잘 묘사하여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면 그나마 망해가던 작품을 살려낼 수 있었을 테지만, 제작진은 그 기회를 스스로 차버렸다. 완벽하게 실패했다고 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종영 후 스페셜 방송에선 김한솔이 스스로 강감찬의 낙성대 탄생 설화 CG 장면을 연출했다고 밝혔는데 이 역시도 엉성했던 귀주대첩 일부 CG 장면을 보듯 정작 공을 들여야 할 마지막 전투 장면을 소홀히 묘사한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3.3.1.1. 편집 권한 논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귀주 대첩 장면은 김한솔 PD가 극본 및 연출을 담당하였고, 편집 권한 또한 그에게 있었다. 전우성 PD는 전쟁 장면 연출에 관여한 것이 전혀 없지만, 감독 간의 이견이 있던 것은 사실이다.

3월 11일, 텐아시아측에서 단독으로 취재한 내용에 따르면 해당 귀주대첩 실제 촬영본은 이보다 더 길고 디테일했다고 한다. 전투씬도 더 많았던데다 거란군의 갑옷들도 잔뜩 쌓여있는 연출을 통해 전멸을 당한걸 보여주는 핵심 장면들은 다 편집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태에 원인에는 전우성, 김한솔 두 감독들의 내부갈등이 있었다고 하는데, 당초 귀주대첩 촬영 및 방영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던 게 김한솔 PD였으나 정작 편집 권한은 전우성 PD가 가져가면서 이러한 대규모 분량 삭제가 일어났다고 한다. # 그러나 이후 KBS측의 공식 입장을 보면 갈등으로 인해 귀주 대첩 장면이 편집된 일은 없었고, 현종의 즉위씬 삭제나 전우성 PD가 귀주대첩씬 편집에 관여한 것도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

이후 처음 단독 보도를 하였던 텐아시아측에서 김한솔 PD와는 제대로 사실관계에 대한 연락도 주고 받지 못하였고, 총감독 전우성 PD가 흥화진 전투, 애전 전투, 귀주 대첩 장면의 촬영 및 편집에 관여한 바가 전혀 없다고 정정 보도를 하였으며, 해당 장면은 오로지 김한솔 PD 본인의 작품이라고 하였다. 실제 귀주 대첩 장면 콘티의 삭제된 마지막 부분은 소배압의 퇴각을 다룬 요사의 기록 및 해설이며, 전우성 PD 본인은 전투 장면에 대하여 콘티를 보면서도 걱정되는 부분이나 이견은 있었지만, 흥화진 전투를 성공적으로 연출한 전례가 있는 김한솔 PD가 하자는 대로 한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기사에서도 나오듯이 "오히려 이 과정을 통해 더 명확히 밝혀진 전말은 두 감독의 이견이 서로 나몰라라 할 정도 수준"까지 갔다는 것을 의미하며, 두 감독들의 갈등이 본 작품을 아쉬움 속에 끝나게 만든 것이다. #

한편 해당 논란이 사실상 종식된 바로 다음 날에 김한솔 PD가 KBS를 2월 29일에 퇴사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졌으며, 이로써 김한솔 PD에게는 《고려 거란 전쟁》이 KBS에서의 마지막 작품이 되었다. #

4. 외교 관련 묘사

거의 기존 한국 사극에 대한 안티테제에 가까울 만큼 파격적인 외교 묘사가 많다.

그동안의 한국 사극에서는 외교와 전쟁을 민족주의적 자부심이라는 면에서 다뤘으며, '평화를 위한 굴종'은 거의 금기에 가까운 묘사였다. 오직 원 간섭기~조선시대만이 예외일 뿐이다. 그러나 본작에서는 고려를 외왕내제로 묘사하면서도[53] 고려가 거란에 사대한다는 걸 매우 분명하게 명시적으로 묘사하며, 이를 이해하지 못한 즉위 초 현종을 '정치 초보의 무지함'으로 일축하였다.[54] 동시에 고려의 대(對)거란 적개심도 노골적으로 묘사하여, '종주국이면서 동시에 주적'이라는 거란의 특수한 위치를 부각하고 있다. 민족적 자부심을 부각하는데 특화된 여요전쟁 시대를 다루면서도, 오히려 거꾸로 민족주의적 사관과 선을 긋는 것이다.[55]

'민족적 자부심'을 내려놓은 것과는 정반대로, 본작에서는 '평화'라는 주제가 오히려 부각된다. 본작은 고려 거란 '전쟁'을 다루면서도 전쟁이 결코 영광스러운 행위가 아니라 절대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점을 지속적으로 명시하고 있으며, 전장의 참혹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전쟁이 양국뿐만 아니라 다른 교류국에도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대신들의 발언을 통해 잘 묘사하고 있다. 본작의 고려가 기존의 그 어떤 한국 사극보다도 뻔뻔하고 교활한 마키아벨리즘적인 외교술을 전개하는 것도 여러가지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56] 본작의 고려는 '하늘 아래 부끄럼 없이' 목종은 시해당하지 않았다는 거짓말까지 불사하고 '친조한다고 했지, 항복한다곤 안 했다!'는 말장난까지 하면서 시간을 번다.[57] 특히 승하한(정확히는 시해한) 왕의 사인(死因)을 숨기는 사기는 기존 사극의 한국 묘사에선 거의 금기에 가까운 것이며, 심지어는 거란에 진실을 이실직고한 여진족을 고려가 적반하장으로 여진은 신의를 모르는 종족이니 믿지 말라며 매도하기까지 한다. 얼마나 고려 측의 기만전술이 강조되는지 팬덤에서 '보이스피싱' 드립이 나올 정도다.

단순 사실관계 공방에서는 고려의 외교야말로 뻔뻔함의 극치이지만, 본작은 이런 뻔뻔하고 비겁한 짓을 해서라도 전쟁은 결코 일어나선 안 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강조한다.[58] 원작 소설의 표현을 빌리자면 "서로 속고 속이고 속아주는 척하는 전쟁만큼 치열한 물밑 전"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본작이 단지 싸움만이 없는 '거짓 평화'를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현종이든 강감찬이든 전쟁을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지만,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고 영토를 잃은 채 종전하는 건 반대하고 있다. 즉 전쟁은 단호히 반대하지만, 그게 끌려간 백성을 꼬리 자르듯 유기하고 상황을 모면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동시에, 거란 측의 외교 역시도 굉장히 뻔뻔하게 묘사된다. 거란의 대외 명분은 "역적 강조를 토벌하자"이다. 즉 '책봉된 제후왕의 억울한 원한을 황제가 갚아준다'는, 겉으로는 참 아름답고 의리가 넘치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실상 거란은 목종과 강조에게 아무 관심이 없고, 그저 침략을 위한 허울 좋은 명분을 내세웠을 뿐임이 노골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게 가장 잘 드러나는 장면은 야율분노가 독단적으로 강조를 생포해 오자 분노한 소배압이 일갈하는 장면인데, 여기서 명분을 곧이곧대로 믿었던 야율분노는 역적 강조를 잡았으니 좋은 거 아니냐고 항변하나 이에 소배압은 대놓고 "그럼 철군하라는 말이냐? 황제 폐하께서 원하시는 건 강조가 아니라 이 고려 전체를 정벌하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종합하자면, 본작의 외교는 거란이든 고려든 굉장히 뻔뻔하고 추잡한 진흙탕 싸움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추악한 진흙탕 싸움의 끝을 보여줌으로써, 침략은 나쁘며 '국가와 백성의 진정한 평화'가 가장 소중함을 역설하고 있다. 애초에 침공을 하지도, 받지도 않았다면 양국 모두 이런 추악한 모습은 보일 이유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다.

4.1. 부정적 평가

다만 전쟁은 이겨야 된다는 주제에만 집착해서 정작 알맹이가 없다는 지적도 있다. 과거에 급제하고 조정에서 일하는 고려의 머리 좋은 신하들의 대사 질이 그다지 좋지 못하여 그들이 주장하는 명분이나 논리가 너무 허접하다는 것이다. 특히 강감찬이 전쟁은 이겨야 된다고 말하는 것 자체는 좋지만, 백성들이 고통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런 소리는 너무 비현실적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이긴 전쟁이니 그러려니 하는 거지 만약 나라 접수당하고 패망했으면 씨알도 안 먹힐 논리라는 것이다. 무엇보다 작가가 쓰는 대사들이 너무 평면적이고 단선적인 대사들이 많고 전쟁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빌드업이나 캐릭터들을 제대로 부각을 못 시키고 있다.

사실 드라마에서의 외교전도 원작 소설의 묘사와 어느 정도 다른 부분이 있는데, 원작에서는 명목상의 항복 표문을 작성하여 거란군이 철군하도록 유도하려던 계획은 채충순의 생각이었으며, 강감찬도 분명히 힘으로 적을 상대할 수 없다는 것을 명시하며 기책으로 승부를 보아야 한다고 현종과 논의한다. 또한 원작에서의 강감찬은 처음에는 일단 백성들에게 고려의 굳건함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지만[59], 이후 서경성에서 지채문의 패배 소식을 듣고서는 현실을 직시하며 우선 나이가 많거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부터 피난을 가도록 하고, 일부 대신들은 지방으로 보내 근위군을 조직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주장을 한다.[60]

위에 언급된 원작 소설과는 달리 드라마에서는 극의 외교전을 상징하는 주요 인물인 강감찬의 이미지가 아직까지도 무조건 전쟁을 주장한 전쟁광으로 보인다는 비판도 있다. 병력도 형편없이 열세인데 최소한 강감찬이 그러한 대사와 고집을 부릴 정도면, 이길 수 있는 전략이라든가 어떠한 자신감이 있는 근거가 있거나 지지 않을 만한 그 무언가를 제시해야 그나마 납득이 가는 것이다. 싸우는 장군들과의 제대로 된 소통도 없는 상태이고, 뜬금없이 한참 이후에나 양규를 만나서 자기와 같은 마음의 소리를 들었다고 뿌듯해 하는 등 대책없는 수준이다.[61][62]

4.2. 긍정적 평가

고려 대신과 강감찬의 주장이 허접하다고 되어 있지만, 당시 고려 상황을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이미 30만 고려군은 붕괴 된 상태이고 서경은 고립 되었고, 거란에 저항했다 망한 발해라는 역사가 있다. 여기에서 대신은 영토를 내주더라도 나라를 보존하자고 했고, 이는 1차 거란 전쟁에도 나온 주장이다. 최소한의 피해로 최악의 피해를 막자는 것이 틀린 말도 아니고, 별다른 대안도 없다.[63] 그리고 전쟁의 명분인 강조마저 죽었기에 거란은 전쟁을 지속할 명분도 없다. 그리고 서경이 포위되고 지원군이 대패하여 거란이 쳐들어 올 때 강감찬의 이길 비책은 없다고 하는데 실제로 틀린 말이 아니다. 전쟁은 절대로 어떠한 비책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다.

때문에 기존에 초월적인 영웅관을 보여주며 완벽한 해답들을 주인공들이 선택하는 고전 사극들은 분명 주인공에 대한 대단함을 표현하는 대가로 이렇게 완전한 인간이 존재할 수 있냐는 괴리감이 발생할 수 있지만, 작품 내에서는 이런 완전무결한 드라마적 부분들은 모두 배제하면서 대부분의 인물들이 미래 시점인 우리가 보기에는 논리가 어설픈 부분이 있지만 전쟁의 혼란함을 보여주기에는 적절하다고 평가받는 부분이 존재한다.[64] 결국 본작은 전쟁 사극이라는 어떤 논리를 펼쳐도 관점에 따라서 논란이 발생하는 장르라는 점을 인지하고 차라리 여러 관점을 보여주며 관점에 따라서 다양하게 공감하도록 유도한 극본에 가깝다.[65]

5. 정치 관련 묘사

전쟁 드라마이긴 하지만 양규를 제외한 현종과 강감찬은 정치적으로 단련이 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정치와 관련된 묘사가 중요한데 문제는 정치 관련 묘사는 기존의 좋았던 사극의 모습을 답습하지 않고 되리어 나빴던 사극의 모습을 답습하는 그림이다.

사실 강조의 정변으로 가는 단계에서 그려진 정치 상황도 목종과 강조의 열연으로 덮혀진 측면이 있지, 실상 뜯어놓고 보면 드라마 상에서 강조의 정변으로 가는 상황이 전혀 정치적으로 매끄럽게 연결이 되지 못한다. 그나마 그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강조의 출정 장면이 연출이 되긴 했지만 역시나 부족한 표현을 그대로 보여준 상황에 지나치지 않는다.

그래도 목종의 재위와 강조의 정변 단계는 극중 극초반부였고 거기다 강조의 정변은 역사서에서조차 애매하게 표현되었을 정도이기에 그러한 각색이 그럭저럭 용납이 가능했고 금방 2차 여요전쟁 파트로 넘어갔기에 이러한 단점이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17회부터 이어지는 2차 전쟁과 3차 전쟁 사이의 정치적 상황을 그려내는데 있어서 이전부터 불안하게 전개되던 정치적 묘사에 대한 단점이 여실히 드러났다. 사실 2차 전쟁과 3차 전쟁 사이는 7년이라는 기간이 있었지만 기록으로 보자면 정말 빈약할 정도로 부족하다. 그러기에 이 부분을 어떻게 드라마로 풀어낼 것인지가 작가의 역량이라 볼 수 있는데 실상 살펴보니 이를 풀어내는 능력이 영 아니었다.

물론, 17회의 전개는 이후 현종 최악의 실책으로 볼 수 있는 김훈 최질의 난으로 연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기에 적절한 측면도 있었다. 현종의 지나칠 정도로 병적인 호족에 대한 견제 역시 몽진길에서 호족들에게 당한 스트레스가 충분히 작용했을 것이라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강감찬의 파직으로 연결되긴 하지만 이후 18회에서 이 부분에 대한 묘사를 끝내면서 역사대로 김은부를 거란으로 보내고, 강감찬을 동북면병마사로 보내면서 전개가 이어질 수 있고 현종에게 도움을 주고 2차 전쟁 당시 무신들 사이에서도 인정을 받았던 강감찬이 자리를 비우면서 김훈 최질의 난으로 연결된다는 자연스러운 전개가 이어질 수 있었다. 또한 현종이 전국에 지방관을 파견하는 역사는 강감찬이 17회에서 언급하듯 7~8년이 걸려서 거란의 3차 침입 직전에 마무리가 된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의 평가도 17회가 좀 이상하긴 했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볼만한 전개였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18회에서 이러한 전개 없이 오히려 일을 더 벌려놓았다.[66]

애초에 가상인물인 충주호장 박진이 몽진 중에 왕을 공격하는 그저 하나의 불충한 자에서 전쟁 후 왕의 개혁에 반대를 하는 대표적인 호족 중 하나로 무게감이 급상승해 중반부 스토리 라인에 가지처럼 얽혀있게 되면서 빠질래야 빠질수 없는 인물로 바뀌었다. 여기에 원성왕후를 띄우기 위한 각종 스토리 전개소모는 여러모로 억지에 가까웠다. 일반 성년 남성도 혼자서 함부로 다니기 힘든 개경과 공주, 충주를 여성의 몸으로 혼자서 왔다갔다 한다는 것 자체가[67] 너무나 어이가 없는 발상이며 그녀를 구하기 위해 왕의 친위대가 간다는 설정이나 승은을 입었다는 설정이 없음에도 왕과 독대한다는 설정 등 과한 띄우기로 캐릭터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녀의 아버지인 김은부의 경우에도 첫 등장부터 16회까지 보여줬던 인자하면서도 고려를 생각하는 그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진 채 병적으로 호족을 제거하는데에 열중하고 있는 모습만 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개혁인 지방관 파견으로 얻는 이득이나 이런 측면에 대한 내용 설명은 전무하다.

또한 이를 반대하는 강감찬도 때가 아니라는 점만 강조하고 있을 뿐 이후 어떻게 해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 제시가 없다. 현종은 여전히 병적으로 호족에 대한 비판만 할 뿐 나라를 이끌어 나가는 것에 대한 식견이나 이런 것이 거의 전무한 모습만 보여줬다. 현종 측 편에 드는 신하들도 로보트처럼 김은부와 현종의 움직임에 따라 행동할 뿐 스스로 무엇을 하겠다고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전무하고, 유진을 비롯한 재상들의 경우도 분명히 나라를 뒤흔드는 대개혁임에도 불구하고 강감찬과 같이 대놓고 반대로 대하거나 아니면 현종 파 대신들처럼 찬성하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줘야 함에도 이도저도 아닌 모습만 보이고 있고 되려 유진은 박진과 얽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차라리 이 점은 그냥 반대의사를 분명히 한 관리들의 파업이나 전쟁 중에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극중 현종의 협박으로 조정으로 복귀한 탁사정과 박섬 같은 사람들의 어쩔 수 없는 모습이 더 이치에 맞아 보인다. 그리고 원정왕후는 어느새 지나칠 정도로 원성왕후를 그저 용손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견제하고 있는 상황이다.[68] 결국 이런 모든 것들이 폭발하며 18회 마지막 장면에서 강감찬이 김은부를 탄핵하는데 현종이 이에 대해 화를 내면서 강감찬을 찾아가고 다시 말을 타고 나서는 중 사고가 나서 목숨이 위태로워 진다는 다소 어이없는 전개로 이른다. 분명히 3차 전쟁에서 현종과 강감찬이 서로 힘을 합쳐 거란의 침입을 성공적으로 방어한다는 이후의 내용을 생각한다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전개다.

애초에 2차 전쟁 때 강감찬과 현종은 여러차례 서로를 부둥켜 안으면서 고려의 앞날을 충분히 걱정했었다. 그런데 17회에 갑자기 현종이 안면몰수하고 완전히 다른 스토리 전개가 나오니 정치적 상황에 대한 묘사가 영 아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극중에서 강감찬은 2차 전쟁에서 자신이 고문당하면서까지 거란군 철수를 위해 싸운 어찌 보면 전쟁 공신 중 하나다. 그런 그를 그저 자신의 개혁에 반발한다는 이유만으로 파직시키고 이후 정당한 탄핵 상소까지 화를 내며 마구잡이로 찾아간다는 것은 그냥 핍진성 결여의 단계를 넘어서 16회까지의 이야기와 17~18회의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드라마라 봐야 할 것이다.

결국 18회에서 현종, 김은부, 강감찬 등이 연루된 갈등의 문제를 충분히 끝내고 다음 중요 사건인 김훈 최질의 난[69], 그리고 거란의 지속적인 침입, 강감찬의 동북면 생활과 여진의 침입 등을 다뤄야 하는 상황인데도 불구하고 기록에 없는 사건들이나 묘사하는 일이 나오면서 앞서 말한 부분을 언제 다루고 3차 전쟁으로 넘어갈 수 있을지 이것부터가 의문인 실정이다.

당장 극이 32부작으로 마무리라서 이제 남은 회차는 10여회 밖에 남질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정치적 상황에 대한 묘사를 제대로 못한 점으로 인하여 작가가 이전 작품인 태종 이방원에서 벌였던 실수 중 하나인 뒷 부분의 날림 전개를 그대로 답습할 가능성이 높아졌다.[70]

이에 대해 원작자 길승수 작가는 “16화까지는 원작의 테두리에 있었는데 17화부터는 대본 작가가 완전히 자기 작품을 쓰고 있다. 원작을 피하려다 보니 그 안에 있는 역사까지 피해서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71]면서 “제가 쓴 원작과 역사책을 KBS에 제공했다. 재미있게 쓸 실력이 뒷받침이 되지 않는데도 자기 고유의 대본을 쓰겠다고 저러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본 작가가 늦게 합류해 연구할 시간이 거의 없어서 시간상 실력이 뒷받침 할 수도 없다. 다음 주부터는 대본 작가가 정신 차리기를 기원한다”라고 작심 비판을 날렸다.기사[72]

결국 19회에서도 고작 나아간 게 원성을 부인으로 받아들이는 것뿐이었다. 애초에 17회 못해도 18회 초반부에도 끝낼 수 있는 내용을 19회 후반부에 가서야 끝내니 아까운 시간만 날린 셈이 되었다. 그것도 문무백관의 탄핵을 받는 김은부를 보호하기 위해 강감찬의 계책으로 원성을 부인으로 들인 거라, 비리 의혹을 받는 대신을 벌하거나 무고함을 밝히는 게 아니라 황제의 장인이라는 성역으로 보호하겠다는 것뿐이다.[73] 거기다 극에 대한 기대감이 확 떨어진 것은 덤이다. 남초, 여초 할 것 없이 모두 잘못된 각본을 성토하고 있으며 고려거란전쟁이 아니라 고려궐안전쟁이 되었다면서 3류 궁정암투극으로 전개된 19회를 매우 비판하고 있다. 시청자 게시판에서의 민심 역시 크게 떡락하였다.

결국 이러한 3류 정치극은 20회에서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될 것으로 보이는데, 20회에서도 작가는 본인의 무능력과 역사에 대한 무지를 그대로 드러내버렸다. 특히나 호족들이 대놓고 현종에게 반기를 든다는 설정은 여러모로 억지에 가깝다. 당장 지방의 호족들이 자신들의 권력을 잘 휘두른 편이긴 하지만 이런 권력적 용인은 중앙 조정에서 어느 정도 용인한 바에 기인한다. 애초에 중앙 고관들 상당수가 지방 호족 출신들이 여전히 많았을 정도이기에 그런 것이고, 그렇다면 당연히 지방 호족들의 상당수도 고려 중앙에 대해 충성하고 있다 봐도 무방할 것이다.

광종의 호족 숙청이 이루어진 것도 한참 전의 일이고, 이후 경종, 성종, 목종 대를 지나면서 호족들 스스로도 중앙의 문벌귀족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호족들이 중앙에 반기를 들만한 명분 자체가 너무나 부족하다. 당장 현종도 따지고 보면 막강한 호족들로 무장한 핏줄 출신이다. 아버지 쪽은 신라 경순왕의 사촌 핏줄(할머니)이고, 어머니 쪽은 황주 황보씨와 정주 류씨의 연합이다. 거기다 자기 첫째 왕후인 원정왕후는 선주 김씨, 둘째 왕후인 원화왕후는 경주 최씨 집안이다. 그야말로 호족 핏줄로 얽히고 섥힌 사람이 현종이었고 그런 현종이었기에 호족들의 불만을 잘 어루고 달래면서 지방관 파견을 지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현종을 호족과 아무 연관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고 호족과 단편적으로 대립하는 구도로 만들어버렸으니 애초에 제대로 된 전개가 아닌 것이다.[74]

6. 인물 해석 및 묘사

1회부터 세 명의 주인공으로 내세운 현종, 강감찬, 양규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우선 강조나 고려 황실의 묘사부터 먼저 천천히 진행하는 것이 특징이다. 무리하게 스토리를 현종이나 강감찬에 욱여넣는 것이 아니라 목종과 천추태후, 강조의 서사 모두 비추어줬다. 이에 반해 강감찬은 1회에서는 프롤로그인 전쟁 장면에 8분 가량만 출연하였고 현종도 1회에서 반쯤 지나서야 나온다.[75]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을 거쳐 사병이 완전히 혁파되고 중앙집권이 완비된 조선시대의 왕권과는 전혀 상반되게 묘사되는 고려의 왕권 묘사도 특징이다. 조선은 대한제국 이전까지 한 번도 스스로 황제국을 자처한 적이 없음에도 왕권은 역대 한국사 왕조 중 가장 강력했던 반면, 고려는 황제국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해동천자를 자처하고 있었음에도, 아이러니하게 왕권은 조선 시대보다 약했다. 이는 한국사 기준 고려시대에 해당하는 중세[76]라는 당시 시대상을 고려해볼 필요가 있는데, 중세 시대 대부분의 왕국들은 봉건제 사회였고 중앙의 행정력이 강하지 않아 지방 영주(호족)들의 세력이 강했으며,[77] 유교가 정치사상으로 확립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를 잘 나타낸 것이 극초반 김치양의 왕 시해 시도와 뒤이은 강조의 난이다. 왕이 무능하고 국정을 농단하는 모습을 보이자 김치양은 일국의 왕을 우습게 여기고 왕의 어머니와 사통해 사생아까지 낳는 모습을 보인다. 강조는 한술 더 떠 무능한 왕을 본인 손으로 시해하고 허수아비 왕을 옹립하기까지 하는 등 전형적인 중세 유럽스러운 모습을 보인다.[78] 왕 앞에서 말 한 마디만 잘못해도 목이 날아가던 조선과는 상반되는 부분이다.[79]

또한, 주인공들을 포함하여 극의 인물들의 대사가 기존 KBS 사극 같진 않고, 대사가 비교적 가벼운 편이라는 평가도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점이 오히려 젊은 층을 유입하기에 좋은 점일 수도 있다. 과거 사극들(2010년대 초반까지)은 그 편수가 100회 내외로 길었고 내용도 길게 이어가는 편이었고, 당시 시대의 한자나 사자성어를 인용하는 일도 자주 있었던 상황과 지금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대본의 투박함과는 별개로 각 인물의 감정선을 크게 중요시하지 않고, 기록을 적절히 반영하여 각색하였기에 이런 스타일에 의외성을 느끼는 반응도 있다. 그래도 덕분에 여러 인물들을 다각면에서 조명하거나 실제 역사에서의 행적에 맞게 적절히 빌드업을 진행하였다는 평을 받았다. 당시 시대 정황상 여러 인물들이 어지러이 오가는 일종의 군상극이기에 이러한 스타일의 각본이 오히려 적절할 수도 있다.

사극에서 새로이 시도된 캐릭터성도 주목을 받았다. 반정을 일으키면 정권에 충성하지 못해 타락하거나 충신이면 반역을 저지르지 못할거란 이미지에서 벗어나 양면성을 모두 납득시킨 강조, 핍진성이 있으면서도 시청자의 이해를 도울 수 있던 현종과 강감찬의 관계, 정형적인 무인상에서 벗어난데다 군인임을 감안하면 호불호가 크게 갈릴 수 있는 속성[80]을 가지고 있음에도 이를 긍정적으로 납득시킨 김숙흥이 대표적인 예다.

다만 전개가 진행될수록 대사 퀄리티에는 부정적인 평가가 증가했는데 전개는 급하고, 역사적으로 중요한 내용을 다룰 것도 많은데 이상하게 꼭 돌아가면서 한 대사씩 작위적으로 던지게 해서 쓸데없이 분량 잡아먹는 경우가 많아졌고 대사의 질 자체도 투박하며 어색하고 딱딱한 느낌이 매우 강해졌다. 인물간 대사의 맥락 역시 중간에 중간에 중요한 대사가 삭제된 느낌이 강해져 이유도 납득 안 가는데, 꼭 지나치게 엄근진하고 화가 나있는 대사들이 많아 보는 입장에서도 그냥 답답하고 피곤해진다. 전반적으로 작가의 전작인 태종 이방원에서도 지적된 낮은 퀄리티의 딱딱하고 어색한 대사들이 점점 거슬린다는 평가들이 많아졌다.대사 주고받는 맥락이 너무 이해가안감[81]

또한 캐릭터성 역시 17회 이후부터는 긍정적인 평가가 거의 없어지고 있다. 특히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이 주인공 현종인데, 명백히 극의 주인공이자 실제 역사에서는 고려의 전성기를 연 한국사 최고의 성군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에서는 그저 아무것도 모르면서 남한테 땡깡만 부리는 무능한 떼쟁이 군주로 전락했다. 신하들 역시 지금까지의 입체적인 모습과는 달리 그저 상황에 수동적으로 끌려다니는 1차원적인 모습만 보여주고 있고, 앞으로 회차라고는 14회밖에 안 남았는데 그 14회 안에 산으로 간 캐릭터성과 그에 따라오는 방대한 스토리를 다 담을 수 있을지 의문인 상황이다.

전반적으로 드라마의 후반부 시작인 17화부터 없는 갈등을 억지로 만들기 위해서 실존인물들의 묘사를 크게 훼손한 부분이 많아지고 있다. 이 드라마에서 현종의 성장을 그리고, 그래서 전쟁사 뿐만 아니라 현종의 개인사도 다루고 싶어하는 거 알겠으나 이렇게 좋은 소스로 왜 이렇게 3류스러운 갈등 관계밖에 그려내지 못하는지 많은 이들이 분노하는 지점도 여기다. 김은부-현종이 개혁 정책을 추진하려다가 마구잡이로 선을 넘고 원정왕후가 개혁정책을 추진하는 김은부와 원성왕후가 눈엣가시여서 선을 넘는 행동을 하기 시작하는 부분 전체가 실제 역사상으로는 전혀 있지도 않은 일들이며 실제로 다루어야 할 실제 정치적 사건들이 많음에도 대충 넘기고 있으니 시청자들이 분노할 수밖에 없다.

요약하자면 1~16화와 17화부터의 드라마가 영 다른 드라마처럼 전개되는 상황이라 사실상 고려거란전쟁은 16부작 드라마라는 자조가 시청자들 사이에서도 나오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배우들의 연기는 중견 배우들이나 신진 배우들이나 모두 준수한 평가를 받고 있기에 진심으로 배우들이 아깝다는 의견도 많이 나오고 있다.

6.1. 고려 측 인물

방영 첫 주에는 현종(대량원군)의 인물 해석에 관하여 그가 자존심만 앞세우며 천추태후에게 목숨을 위협받는 현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 하는 철없는 모습을 보여주어 좀 아쉽다는 평가가 있었다.[82][83] 일단 현종은 17~18살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 이후로 신중하게 결정을 내리고 누구보다 냉정한 판단을 할 줄 아는 인물이었으며, 본작의 큰 관건은 몇 달 후 왕위에 올라 엄청난 결정들을 해야 할 현종이 저렇게 저돌적인 성격에서 여요전쟁이라는 시급한 상황을 어떻게 냉정하게 대처하는지를 묘사하는 방식일 것이다.

방영 둘째 주부터는 반응이 더 좋아졌는데[84], 3회까지의 모습을 보면 처음에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기만 하는 철없고 저돌적인 사람이었지만, 자신뿐만 아니라 승려들까지 입막음으로 죽이려 하는 자객들을 보고 그들을 지키기 위해 각성하고 왕이 되고자 하는 의지를 다지는 모습이 나온다. 또한 자신을 죽이려던 최 상궁과 대화하며 누구였는지를 기억해내어 과거에 쫓겨날 때 달래준 일에 대한 감사를 표하였고, 후에 목종의 명령으로 그를 지키러 온 군사들이 나타나자 그녀에게 찾지 않겠다고 말하여 빨리 도망갈 것을 재촉한다. 이렇게 본작에서는 현종의 초반부 캐릭터를 아직 미숙하지만 성장이 빠르고, 위기의 순간에 좋은 판단력을 보여주며 적이라도 일단 최소한의 자비를 베푸는 인물로 잡은 것으로 보인다. 한편 회차가 지날 수록 자신의 항복하지 않곘다는 결정을 고수하면서 어떻게든 항전하겠다는 고집도 보이는데, 그가 제2차 여요전쟁 시점에서는 전란을 감당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것이 너무 많아 미숙하다는 점도 잘 그려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징비록선조가 성군으로 보일 정도로 고려 최악의 암군으로 전락하였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자세한 내용은 하단의 비판 문단 참조.

지승현이 연기한 양규는 초반부터 나라에 끝까지 충성하는 무인이라는 점이 강조와 대조되어 무결한 인간상을 보여주어 시청자들 사이에서 반응이 좋으며, 6회에서 고려의 포로들을 죽이게 되는 상황을 겪은 것이 그가 훗날 다른 포로들을 구출하는 장면에 대한 암시라는 의견이 많다. 실제로 극 중 그를 전설적인 영웅으로서 치켜세우는 듯한 연출이 많은데, 대부분 공과 과가 극명한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사실상 무결한 인간상이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온다는 반응이 많다. 이와 별개로 양규 역이 지승현의 첫 사극 연기는 아니지만, 첫 정통 사극 출연인데도 불구하고 뛰어난 연기와 각궁 실력을 보여주었고, 결과적으로 본 드라마의 전반부의 의의가 양규의 재발견이라는 반응을 얻을 정도로 큰 호평을 받았다.

최수종이 연기한 강감찬은 그가 대외적인 인식과는 달리 본래 장군이 아닌 문관이며, 4~7회까지는 남들과 타협할 줄 몰라 융퉁성이 부족한 인물로 그려졌지만, 8회부터는 현종에게도 쓴소리를 하게 된 이후 점차 심경의 변화를 겪고 신하들의 의견을 수용하되 자신만의 신념을 따라서 계책을 마련하는 모습을 보여 그 또한 어떻게 보면 성장형 캐릭터라는 평을 받았다. 11회에선 계속해서 항쟁을 주장할 때 전쟁을 이기는 것만 주장하지 이겨서 얻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찰이 부족해 보인다는 지적도 있는데, 이 또한 그의 성장을 암시하는 부분인지 주목할만하다.[85] 한편으로는 드라마에서 작가에 의해 너무 과도한 푸쉬를 받았다는 의견도 많다.[86][87]

백성현이 연기한 목종의 경우 그간 대하사극에서 묘사된 웬만한 암군과는 다르게 재상들을 믿어주는 모습, 왕위 후계자만큼은 신경 쓰는 모습, 그리고 의외로 백성들을 사랑하는 면모를 보여 여러 복합적인 캐릭터성으로 인해 많은 시청자들 사이에서 호감형 캐릭터로 호평을 받았다. 특히 대하사극 치고는 천추태후 이후로 오랜만에 1회부터 동성애나 근친, 애정 묘사 같은 게 적극적이라 화제가 된 면도 있다.[88] 또한 그동안 거의 부각되지 않았던 고려 전기의 성문화[89] 및 당시 고려 왕실의 개족보를 어느 정도 조명하였다.[90] 덕분에 초반부에는 현종보다는 오히려 목종에게 매력을 느끼고, 그가 극 중 시해당한 이후에도 그의 이른 퇴장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원종이 연기한 강조는 3~4회가 되어서야 권신으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서 1~2회에서 묘사된 덕장으로서의 면모와 크게 대조되는 바람에 캐릭터 변화가 너무 빠른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있었지만, 5회에 들어서 현종의 결단을 내리는 태도에 대해 사실상 인정하였고, 그가 후에 부월을 하사하면서 전쟁에서 이기면 아무도 그를 역적으로 매도하지 않을 것이라는 격려의 말을 전하자 눈물을 흘리며 충성을 바치는 장면은 훗날 강조의 최후에 대한 좋은 빌드업이라는 반응이 많았다.[91] 통주 전투 및 삼수채 전투의 묘사가 너무 허무하게 진행되어 시청자들 사이에서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있었지만[92], 끝까지 고려에 충성을 맹세했던 그의 최후만큼은 사서의 기록을 적절히 반영하여 마무리되었다는 평을 받았다.

하승리가 연기한 원성왕후에 대해서는 별다른 불호 의견은 없었지만 17~18회를 기준으로 불호 여론이 강해졌다. 정확히는 배우의 연기 문제만 그런 것이 아니라 각본가인 이정우의 문제로 지나치게 비중을 받고 개연성마저 엉망이 된 것이다.[93] 물론 원성왕후의 캐릭터성만이 아니라 17~18회 전체가 문제가 많다. 이재용이 연기한 박진의 경우 연기력은 출중하지만 전반부에 사라져도 상관 없을 인물이 김훈·최질의 난을 부추기는 인물이 되어가는 과정이 매끄럽지 못하고, 하필 이 전개로 인해 김훈과 최질을 비롯한 무관들이 필요 이상으로 비하되는 전개에 비판이 많다.

6.2. 거란 측 인물

거란국 고위층 인물들의 경우 재현이 잘 되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유목 민족의 부족제와 농경 민족의 군현제를 혼합한 이원(二元) 통치 체제를 같은 국가 내에 공존하는 거란족 인물들과 한족 인물들을 통해 잘 묘사하였으며, 유목 민족으로서의 생활상을 제대로 보여주기 위해서 몽골을 방문하여 실제 유목민들의 생활상을 촬영한 점 덕분에 호평을 받았다. 갑옷 외에 변발 양식 등도 높은 수준으로 재현했기에 일각에서는 고려 측 재현보다 더 낫다고 평하였다. 거란군 자체도 꽤나 강력한 부대로 묘사되었는데, 특히 6회에서 고려군이 파놓은 함마갱에 보병들의 발이 빠지자 이를 하루만에 다 메우는 묘사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다만 고위층의 문화 재현과는 별개로 아직까진 그저 적국의 인물들로만 묘사되어 아쉽다는 반응도 있다.

김혁이 연기한 거란의 황제 야율융서는 첫 원정인 만큼 미숙한 면모를 보이면서도 유목 민족의 잔혹성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대국의 군주답게 위엄이 넘치는 모습을 보여 호평을 받았다. 제2차 여요전쟁을 일으킨 원인이 축약된 것과는 별개로 승천태후(예지황후)에 대한 아들로서의 효심을 보이거나 소배압을 신뢰하는 장면들을 통해 그의 가족에 대한 정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강대국의 황제로서의 자존심이 강하다고 묘사되며 자신에게 복종하는 이에게는 자비를 베푸는 성격도 보이는데, 강감찬이 올린 거짓 친조 요청에 속은 후 그가 약탈(타초곡)을 금하여 달라고 청하자 흔쾌히 허락하고 포로들에게도 제대로 대접을 하겠다고 말한다. 한편 강조와 2차 여요전쟁 이후 하공진에게 거란족이 '야만인'과 '짐승'이라는 모욕을 받자 둘을 도끼로 마구 찍고 형틀에 묶어서 산 채로 간을 꺼내 죽이는 장면은 자신에게 복종하지 않는 자에게는 엄벌을 내리는 모습과 더불어 야만족이란 멸칭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갖고 있는 정복 왕조의 군주로서 자신의 분노를 토해내는 것을 보여준다.[94]

김준배가 연기한 거란의 장수 소배압도 젊은 군주를 보필하는 노회한 신하로서 강감찬과 대립각을 세우며 크게 호평을 받았다. 거란 측 인물들 중에서 머리가 좋은 인물로 묘사되어 일종의 브레인 역할을 하는 등 나름대로 확고한 인물상이 구축되어 있고, 정치적 수완도 다른 거란 측 인물들에 비해 독보적이다. 의외로 인격자의 면모를 보이기도 하는데, 휘하 장수들이 고전하자 조언을 주기도 하면서 패전의 책임으로 그들을 질책하지는 않는다. 한편 배우의 얼굴과 분장이 꽤 잘 어울린다는 평이 많아서 실제 거란 사람 데려와서 연기하게 했냐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으며, 배우 본인 특유의 사시와 쇳소리도 무섭게 들린다는 반응이 있다. 그러나 머리가 좋은 것과는 별개로 13회 시점까지 활약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점에서 우습다는 반응도 많다.[95]

거란국 고위층이 좋은 반응을 얻은 것과는 달리 거란군 엑스트라 중 타초곡기는 작위적인 느낌이 대놓고 들 정도로 과장된 연기를 하고 있다. 특히 6회에서 고려 사람들을 포로로 납치한 거란 타초곡기들을 인간이 아닌 악마적 존재로 묘사하기 위해 야만성을 보여준답시고 뜬금없이 원시인에 대한 고정관념을 차용하여 동물처럼 소리를 내거나 행동을 묘사하는 1차원적 방식을 동원했다. 거란 항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거란은 수당시대를 거치면서 중원의 문물들을 받아들이며 북방민족 치고는 꽤 문명화 된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요나라 시기에는 그 절정에 이르면서 고도의 문명을 향유하는 민족이었다. 다만 상술한 요나라의 생활상과는 별개로 몽골제국 이전까지 유목제국들의 경우는 정규군이라도 전시작전 중 약탈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거란군이 40만의 대군인데다 다국적군에 출신 성분도 다양해서 개개인마다 규율이 천차만별이긴 했을 것이다.[96][97]

뿐만 아니라 거란 측 인물에 대한 연구와 조사도 부족해 보인다. 여요전쟁 당시에 황제인 야율융서, 소배압, 야율분노, 야율적로 외에도 소배압의 부관이었던 야율팔가와 야율분노의 부관 야율홍고 등 여러 장수들이 나왔으나 그들에 대하여 설명하는 자막도 없으며 제3차 여요전쟁 전 강동 6주의 반환을 요구한 거란 사신 야율자충과 이송무에 대한 소개 자막 또한 없었다. 원작 소설에서 정말 다양한 거란 인물들이 나온 것을 생각하면 많이 아쉬운 부분이다.

7. 묘사 관련 비판

7.1. 시간 끌기 및 분량 조절 실패

17부터 23회까지 극 중 시점이 1011년에 머무른 점으로 인해 많은 시청자들이 혹평하였으며, 이어서 1014년 11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전개된 김훈·최질의 난을 다룬 25회부터 28회까지는 지나치게 시간을 끄는 전개로 더 큰 분노를 사게 되었다. 물론 여요전쟁 중에서 김훈·최질의 난이 발생하여 고려가 혼란한 국정상황을 겪었던 것은 역사적 사실이나, 32부작에 불과한 드라마에서 한 사건을 주제로 무려 4회분을 갖고 해당 정변 사건만을 주제로 다룬 것은 지나치다는 평이 많다. 특히 드라마 제목이 고려 거란 전쟁인 만큼, 궁중 내 정치 암투극이 아닌 거란과의 전쟁을 주로 다뤘어야 한다는 의견이 계속 제기되어왔기에, 김훈·최질의 난은 짧게 다루었어야 했다.

26회에서 강감찬이 이끄는 동북면 군사들이 개경에 감금된 현종을 마치 구원하려는 듯이 전개하다가, 갑자기 현종이 개경성에 나타나서 김훈과 최질의 요구대로 강감찬의 구원군을 물리라고 직접 명하며 굴복하는 등, 역사 왜곡을 넘어, 김빠지는 반전 전개로 시청자들에게 답답함을 선사하였다. 이후 작중 최질을 황제앞에서 궁중예절 따위 쌈사먹고 노골적으로 황제에게 협박하는 등 인간쓰레기에 가깝게 묘사하면서 실제 최질이라는 인물의 이미지를 바닥으로 추락시키는 왜곡묘사를 하였고, 극중 빌런인 박진을 강감찬이 황제 시해 혐의로 극적으로 체포하였으나, 최질이 황제의 취조를 무시하고 박진을 빼돌리는 전개로 또 다시 미꾸라지처럼 박진을 빌런으로 여전히 생존시켜 시청자들에게 원성을 샀다.

28회에서는 최질이 친조를 핑계로 현종을 거란으로 넘기려는 계획을 역이용하여 서경성에서 최질 등 역당 일가를 처단하려는 현종의 계책을 묘사하는데 전체 분량을 소모하였고, 최질을 참살할 계획이 박진의 계략으로 줄줄이 좌절되는 등, 불필요하고 답답한 전개만 계속 이어졌다. 결국 현종이 칼춤을 추는 무희들로 변장한 군사들을 대동하여 대반격을 하려는[98] 장면을 끝으로 28회가 끝났고, 반란의 주동자인 최질을 차단하기 위한 계책을 구상하는데 총 2회분을 써버리는 역대 최고의 시간 끌기를 보여주었다. 게다가 역사적 사실이 불분명하고 굳이 필요가 없는 세세한 장면까지 다 집어넣어 결국 최질에게 반격을 가하는 하이라이트 순간은 다음 회차로 넘겨버렸다. 한편 박진의 양자인 박영이 자신이 최질을 암살하려는 이들을 놓아준 사실을 털어놓자, 박진은 자신의 아들마저 목졸라 살해하고, 활을 가져가는 장면을 끝으로, 끝까지 현종을 죽이려는 최후의 빌런보스로 남길 여지를 29회에 제공하여, "도대체 박진이라는 미꾸라지 빌런은 드라마에서 언제 죽냐"면서 시청자들은 답답함을 호소하고 있다.

게다가 반란 진압 마무리마저 29회로 넘어가버린 것 외에도, 시기적으로 극 중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맹활약한 원정왕후와 장연우와 김은부가 모두 3차 전쟁 이전에 죽는다. 이들의 죽음에도 분량을 할애해야 하니 실질적으로 29회의 절반 이상을 제3차 여요전쟁은 시작도 못하고 날릴 공산이 크다고 예상되었다. 그렇다고 세 사람의 죽음을 패싱하자니 역사적으로도 나름 비중이 있거나 혹은 비중은 없어도 당대에 중요하게 취급되었던 인물들이고, 극 중에서는 더더욱 활약상이 컸던 인물들인 만큼 패싱은 패싱대로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99] 즉 쓸데없는 전개로 분량을 낭비한 시점에서 논란을 피할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김훈·최질의 난이 마무리되는 29회까지 포함한다면 총 5회분, 그 앞전에 반란의 동기와 (드라마상의)반란 사건 주연들[100]을 묘사하는 빌드업까지 합하면 거진 11회에 해당되는 분량으로 전체 드라마 부작 중 총 1/3 이상을 실제 역사상에서 제2차 여요전쟁 이후 해프닝이자 4개월도 안 되는 김훈, 최질의 난에 분량을 소모해버린 것이다.[101] 따라서 드라마 종영까지 불과 3.5개의 회차만 남은 상태에서 3차 여요전쟁귀주대첩이라는 굵직하고 거대한 전쟁을 도대체 어떻게 다 담아낼 것인지에 대해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시청자들 사이에서 17회부터는 "이럴거면 차라리 드라마 제목을 "고려 거란 전쟁"이라 하지 말고 "고려 박진 전쟁" 이나 "고려 궐안 전쟁"[102]이라 하라", "조사의의 난이나 쓸 실력이라더니 그걸 칭찬으로 알아서 전쟁 다 날리고 고작 잡다한 해프닝 묘사에 드라마 분량을 다 때려박은거냐" 등의 비아냥이 나오는 중이다. #

결국 29회부터 엄청난 타임슬립을 보여주어 무려 3년에 가까운(1015년 3월 ~ 1018년 11월) 시간을 순식간에 건너뛰었다. 이미 24회에서 저 기간과 비슷한 시기(1012년 1월 경 ~ 1014년 11월)를 건너뛴 상황이라 만약 이전 12 ~ 13회에 너무 띄운 강감찬 부분을 줄이거나 위에 언급된 17회부터 29회까지의 장면들을 대표적 사건. 즉, 고려와 거란 사이의 국지전이나 여진과의 전투를 넣고, 김훈 최질의 난은 2회 정도로 다루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가득하다.

7.2. 역사 왜곡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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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1. 1 ~ 16회

일단 극이 전개되면서 강감찬, 현종이 극의 중심으로 등극하여 이야기를 주도해 나가기 시작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드라마 초반부에서는 호불호가 갈린다는 의견이 존재하는데, 몇몇 시청자들은 아마도 과거의 대하사극들에 비하면 전반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힘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듯하다. 극의 초반을 이끌어 갔어야 하는 천추태후, 김치양에 노련한 배우를 배치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는데, 나름의 위기감을 조성하는 역할을 했어야 하는 천추태후는 연기의 무게감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고, 김치양은 비중이 적어 권신이라는 느낌조차 주지 못했다.[103]

목종의 경우 혼군으로 묘사된 것에 대해 은근히 위화감이 느껴질 수도 있는데, 그가 처음 등장하기 직전에 개경을 묘사할 때에 융성하고 풍요로운 시장의 모습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고려의 사정이 나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면 시청자들이 직관적으로 받아들이도록 백성들의 삶을 빈곤하게 묘사하거나[104] 차라리 목종이 직무를 유기한 상태에서 재상들이 업무를 보고 판단을 내려 고려를 주도해 나가는 내용을 더 삽입했다면 나았을 부분이라는 의견도 있다.[105] 다만 극 중에서 다루는 목종 당시의 문제는 임금의 태업, 계승 갈등, 총신의 발호 같은 정치 문제에 국한되어 행정이나 민생 문제까지 영향을 끼치지는 않는 수준이고, 강조도 정치 문제와 함께 그로 인해 국방 문제에 대한 대비가 소홀해지고 있는 것에 경각심을 가질 뿐이지 민생을 걱정하지는 않는다.[106]

6회에서는 '거란 측 인물' 문단에 전술하였듯이 타초곡기에 관한 비판이 생겼는데, 7회에서는 고려와 거란의 장수들 묘사에 모두 비판을 받았다. 뜬금없는 거란 장수들 간 경쟁 구도가 보여 소배압의 군재도 제대로 부각되지 못했고, 부월씬으로 대표되던 강조의 복잡한 심리도 잘 활용되지 못했다. 특히 7회에서 소배압은 활약이 없는 무능한 장수처럼 보였고[107], 삼수채 전투에서 야율분노는 지도만 보고 난생 처음 온 적국의 산을 야간에 완벽하게 넘어와서 도통사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잡아가는 모습을 보인다.[108][109] 때문에 흥화진의 승리로 희망을 얻는 부분이 강조의 대패로 무너지는 극적인 장면을 제대로 묘사하지 못하였고, 거란군의 위엄과 그로 인한 강조의 절망감을 적절히 그려내지 못하였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13회까지 오면서 소배압의 유능함이 크게 부각되지 못하였고, 그가 사실상 제대로 활약한 장면이 없다는 점이 크게 혹평을 받았다. 심지어 야율분노와의 갈등이라는 사서에 없는 내용이 나왔는데, 제장들이 모두 소배압이 아닌 야율분노의 편에 들면서, 외려 군부도 장악하지 못한 무능한 장수라는 느낌이 든다. 강감찬도 너무 과하게 활약하려다가 이도저도 아니게 되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점점 생기고 있다. 사서에 빈 기록을 채운다는 작가의 노력이 무색하게 그 결과가 너무 무리수라는 반응이 많으며, 특히 60대의 문관이 드라마에 묘사된 것처럼 화살을 맞고 심한 고문까지 겪어 살아올 가능성[110]은 사실상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인물 개개인에 대한 핍진성의 문제도 심각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2차 여요전쟁 당시 인물들을 묘사하면서 보이는 본작의 가장 큰 문제는 단순히 원작 소설에서의 묘사에 대한 존중이 부족하다는 점 외에 실제 전쟁 중 있었던 기록이나 일화 같은 내용을 대폭 삭제하고 자꾸 강감찬처럼 2차 전쟁 당시의 기록이 없는 사람들에 관한 오리지널 각색을 계속 집어 넣는다는 점이다. 13회에서 문제가 되는 강감찬의 오리지널 행적만 보더라도 사실 이 부분에서는 양규의 활약상이나 서경에 있는 장수들의 활약, 현종을 정말로 열심히 호종한 사람들의 행적을 더 넣어야 할 판이고 강감찬의 이전 행적 각색은 딱 이전 회차까지만 넣어도 상관없었는데 부족한 전투씬을 이걸로 매꾸려는 것인지 자꾸 무리수를 두는 각색이 관측된다. 2차 전쟁의 흥화진 전투, 통주 전투, 서경 전투, 현종의 몽진만 하더라도 묘사가 대폭 축소된 감이 있는데 이래서야 대하드라마라는 스케일에 걸맞은 묘사라고 보기엔 힘든 부분이 있다. 결국 이 또한 현재 대하사극의 고질적인 문제인 전투씬 축소의 연장판이라 할 수 있다.[111]

다만 핍진성은 아쉽긴 해도, 작품 흐름적으로는 2차 전쟁에서 강감찬을 적절하게 임시 퇴장시키려는 의도가 강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역사와는 다르게 본작에서 강감찬은 2차 전쟁에서 신출귀몰하게 다방면적인 활약을 이어갔는데, 만약 강감찬이 여전히 멀쩡하다면 이후에 더 나와서 활약해도 문제고, 안 나와서 대뜸 증발해도 문제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주인공 보정을 넣어서라도 거란에게 잡혀 고문당한 후유증으로 무대에서 잠시 탈락한다는 전개를 넣어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13회 후반에서부터 15회까지 강감찬은 거의 나오지도 않았으니, 2차에서 오리지널 활약을 많이 분배받은 강감찬을 적당한 때 잠시 퇴장시키고, 몽진 중인 현종과 거란군을 격퇴하고 포로들을 구하면서 장렬하게 전사한 양규 쪽에 집중하려는 빌드업을 벌였다. 결국 양규는 16회 초반부에 활약이 집중되면서 전사한 채 마무리되었고, 이를 이어받아 강감찬은 현종이 몽진에서 복귀한 이후 개경에서 그 모습이 나오는 것으로 바뀌었다.

7.2.2. 17 ~ 2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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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각본가 이정우에 대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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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마지막회 엔딩 관련

32회의 마지막 장면에서 현종이 걸어가는 정전에 드라마에서 퇴장한 과거 등장인물을 차례차례 회상하듯이 보여주는데, 중후반부의 메인 빌런이었던 최질과, 대량원군 시절 대립각을 이뤘던 천추태후는 보여주면서도 드라마 전반부에서 최고의 전투 연기를 보여준 양규김숙흥을 끝끝내 보여주지 않았다. 이에 전반부 드라마 흥행의 1등공신이었던 인물과 그 역을 맡은 배우를 철저히 패싱했다고 생각한 시청자들의 실망한 반응이 많았다.[112]

다만, 해당 장면은 고려에 크고 작은 갈등과 위기를 초래한 인물들을 보여주며, 그 위기들을 딛고 현종이 성군으로 나아갔음을 보여주기 위해 연출한 장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113] 혼군으로 평가받은 목종과 천추태후, 반역을 일으키고 2차 전쟁의 원인을 제공한 강조, 혼돈기 난을 일으킨 김훈과 최질, 그 난의 원인을 제공한 장연우, 급격한 개혁정책으로 지방호족 및 강감찬을 포함한 조정 대신들과 갈등 양상을 보였던 김은부, 원성왕후와의 갈등을 보인 원정왕후의 모습[114]을 보여주며, 고난과 위기를 차례로 극복하고 전진해 현종이 비로소 평화와 번영을 이룩했음을 왕좌에 오르는 모습으로 연출한 것으로 추측된다.[115]

이는 평화는 결코 쉽게 얻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냄과 동시에, 수많은 시련을 극복해내며 고려사 최고의 성군이 된 현종의 삶, 곧 고려가 극복해 온 시련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자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본작에서의 현종의 삶은 곧 드라마와 일치하기에, 이는 드라마의 전체 내용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며 마무리하는 연출이기도 하다. 만약, 드라마의 전개가 잘 진행되었다면 대서사시를 마무리하는 인상적인 엔딩으로 호평을 받았겠지만, 작가의 막장 각색으로 인해 마지막 연출이 지니는 의미와 힘이 절감되었고, 상술했듯 시청자들에게도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116]

8. 총평


시작 성대했고 중반 이후부터 결말까지 용두사미로 끝나버린 망작[117]으로 전락했고, 사실상 총체적 난국이라고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제작진들의 실책과 각본가의 무책임으로 인해 극본과 연출의 수준이 떨어진다면, 배우들이 연기력으로 끌고 가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전체적인 평은, KBS 대하드라마가 늘 그렇듯이 배우들의 우수한 연기력과 절박한 상황을 잘 묘사한 음악은 거의 일관되게 호평이 우세하다. 대하 드라마의 계보 면에서 본다면 대하 드라마의 필수과제 중 하나였던 배우 세대교체에 성공하여 차기작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는 점도 호평받는다. 작 중 배역들을 소화한 20 ~ 40대의 배우들 대부분은 사극 경력도 거의 없었고, 캐스팅 전 드라마 경력이 주연이 아닌 비중이 낮은 조연 혹은 단역 뿐이였다. 이 때문에 초반에 다소 어색하다는 평이 있기도 했지만, 극이 진행될수록 연기가 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사극 경력이 적은 배우들이 사극 베테랑 배우들과 잘 어울려져 모두 열연하였다. 그에 비해, 연출과 각본 부분은 짧은 장면 단위에서의 호평[118]은 있었을지언정, 전체적으론 부정적인 평가가 우세하다.

이 작품은 양규의 죽음과 제2차 여요전쟁의 종전을 기준으로 1~16회의 전반부 / 17~32회의 후반부로 양분되는 구성인데, 평가 또한 전반부와 후반부에 대한 평이 극단적으로 엇갈리게 되었다. 전반부는 처절한 이야기가 시청자와 연기자들에게 호평을 보여주며 대하사극의 미래를 기대하게 했다면, 후반부는 처참한 수준의 각본이 시청자와 연기자들을 욕보이며 앞으로 만들어질 대하사극(정통사극)에 대한 기대감을 완전히 접게 만들어버렸다. 결국 〈천추태후〉 → 〈근초고왕〉 → 〈광개토태왕〉 → 〈대왕의 꿈〉을 잇는 KBS 대하드라마의 흑역사 계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제2차 여요전쟁(1~16회)까지는 단점이 없지는 않았더라도[119] 상당한 퀄리티를 보여주었고 목종과 강조, 양규와 김숙흥 등 복합적인 면모를 가진 캐릭터들을 매력적으로 묘사해냈다. '무조건 긍정적인 인물', '무조건 부정적인 인물'식의 배치가 아닌, 입체적인 면모를 지닌 인물들이 복합적인 대립과 협력을 통해서 작품성을 높여왔다. 특히 대중들이 잘 모르고 있었던 제2차 여요전쟁의 영웅 양규 장군의 존재를 배우의 뛰어난 연기력과 좋은 연출을 통해서 대중에게 확실하게 각인시키는데 성공했고, 이는 16회까지의 화제성과 인기에 큰 도움이 되었다. 복식이나 배경 고증이 양적으로는 잘 묘사하긴 힘들었다고 봐도, 질적으로는 현대 사극답게 훌륭한 수준이었다. 또한 기존 사극들의 특징이었던 느린 전개가 아닌 필요한 장면만 추려서 보여주는 빠른 전개 역시 호평을 받았다. 거기다 제작비의 한계로 인한 아쉬운 스케일을 배우들의 연기로 커버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주연 배우부터 시작해서 단역에 이르기까지 골고루 나무랄 데 없이 좋은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제2차 여요전쟁 전개 이후부터 역사 왜곡 논란 및 극중 전개 능력의 심각한 퇴보에 이어 각종 캐릭터 붕괴와 가상 인물들의 비중이 현실 고증을 무시하고 폭주하는 바람에 괴작으로 추락한 작품으로 전락해 버렸다. 이야기의 질도 크게 퇴보해서 과거 오래 전 한국 드라마의 정형화의 원인이 되던 철 지난 사이다 전개 지향[120]에 뒤에서 꾸미는 음모들이 난무하는 아침드라마식 궁중 암투극 전개가 나왔고, 이로 인해 과도하게 일그러진 인물들이 경쟁적으로 비현실적인 음모와 음모를 동원해서 점점 이야기가 극단적으로 폭주하였다. 또한 인물 묘사에 어줍짢은 여성 서사[121]를 겸하여 개연성을 무시하고 과도하게 감정만 자극해서 당위성을 부여하는 신파적인 요소까지 합쳐져서 20~30년 넘은 과거 드라마들에서나 자주 보이는 후진적인 전개들로 퇴행해버렸다.[122]

제작진은 기획의도를 통해 고려가 어떤 나라인지 알리겠다고 호언장담했고, 이는 제2차 여요전쟁 때까지는 어느 정도 의도하는 바가 잡혀나가는 듯 하다가, 이후 전개 때문에 결과적으로 시청자들은 도대체 무엇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냐며 조롱하게 되었다. 특히 설날 연휴에 "재정비"를 이유로 사정상 한 주를 통째로 결방했고, "재정비 기간동안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겠다"고 호언장담 했으나, 재정비 이후의 결과물조차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야기의 스케일은 축소되어서 대륙에서 한반도 남단까지 오가는 이야기는 개경과 그 주변에 갇히게 되었다. 현종, 강감찬 야율융서, 소배압 등 중요 인물들이 활약해야 할 때, 작가 편의적으로 창조한 가공의 자캐들과 작가 자의식을 담아 너무 거창하게 재해석한 역사적 비중 낮았던 캐릭터들 때문에 주축 인물들의 활약할 공간은 대폭 축소되었고, 이는 이야기의 중심축이 크게 흔들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목종, 강조, 양규와 김숙흥, 흥화진의 군사들, 그리고 거란 측 인물들[123]을 빼면 볼 게 없다는 것이 주된 여론이다. 때문에 16회까지의 드라마와 17회 이후의 드라마가 사실상 다른 작품 수준인데, 심지어 비슷한 시기를 다룬 〈천추태후〉보다도 못하다는 이야기들까지 여러 커뮤니티를 통해서 나오고 있다.[124]

해당 드라마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사례로 지난 2015년 '광복 70주년 특집'으로 KBS가 방영한 대하드라마 〈징비록〉이 있다. 징비록의 경우 최고 시청률이 〈고려 거란 전쟁〉과 동일하며, 대하사극 고정 시청층은 확보하면서 평균 정도는 한 작품이다. 또한 임진왜란 자체에 집중했다는 점[125], 탄금대 전투 일본군 전사자 왜곡 정도만 빼면 역사 왜곡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점, 주요 전투 사건[126]을 적은 제작비에서도 어떻게든 묘사하려고 노력했던 부분에 있어서 적어도 이 드라마보다는 낫다는 것이 중론이다.전반부는 나름 수작으로 평가받았던 만큼 17회부터 왜 이렇게 망가졌는지 궁금해질 정도인데, 일부에서는 이것도 제작비와 관련된 문제가 아니냐고 추정하기도 한다. 실제로 2차 전쟁 시기도 배우들의 열연과 양규 장군의 활약을 집중 조명하는 것으로 넘기긴 했지만 전쟁 관련 묘사는 상당히 빈약하였고 이 원인으로 제작비 문제가 추정되었는데, 3차 전쟁 본 전투 및 이전의 국지전도 마찬가지였을 거라는 것이다. 특히 3차 전쟁 이전의 국지전들은, 관련 문서들을 보면 알겠지만 2차 전쟁에서 주역이 아니었던 장수들이 많이 등장한다. 즉, 국지전을 제대로 묘사한다면 2차까지 조명하지 않았던 새로운 인물들이 대거 투입된다. 게다가 국지전을 뺀 3차 전쟁만 놓고 보면 전체 기간은 2차와 비슷하나, 굵직한 사건의 개수와 다이나믹함은 2차에 비해 뒤떨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국지전과 3차 전쟁에 공을 들일 경우 제작비도 많이 나가고, 분량 조절도 난감하다.

그렇기에 이를 커버하기 위해서 국지전을 대사 몇 줄로 날려버리고[127], 부족해진 분량을 커버하기 위해서 그나마 큰 사건인 '김훈 최질의 난'을 쓸데없이 잡아늘려 오리지널 전개를 만들다가 사달이 난 것이다. 다만, 귀주 대첩 장면처럼 제작비가 많이 드는 굵직한 전투의 경우는 사전 촬영을 미리 해놓고 방영을 한 만큼 원래부터 제작비 배분에 대한 계획이 사전에 있었을 것이니 되려 작가가 바뀌면서 기존 계획과 틀어진 전개 때문에 '매몰비용으로 제작비 낭비가 발생해 졸속 제작을 해버린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128]

일부 옹호론자들 사이에서는 "드라마는 드라마로 봐라"[129], "본방 챙겨볼 건 다 챙겨보면서 왜 뒤늦게 불만이냐"[130], "높은 시청률은 어떻게 설명할거냐"[131] 라는 등 극단적인 옹호행태를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명색이 대하 사극 드라마로 야심차게 시작한 만큼 높은 품질의 드라마를 만들 필요가 있었고, 16회 이후 용두사미가 되어버린 드라마에 대해 시청자들의 정당한 비평이 적극 반영되야 하는 것이 맞다. 해당 사극이 〈해를 품은 달〉이나 〈철인왕후〉처럼 퓨전 사극이 아니기 때문에 역사 왜곡은 최소화하고, 역사적 사실에 극적 요소를 적당히 가미했어야 했다. 물론 실록의 기록이 워낙 상세하여 작가의 상상력의 여지가 좁은 조선시대 사극에 비해, 그 이전 시대 사극은 기록이 매우 부실하므로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워넣을 여백이 많은 편이기는 하지만, 이는 부족한 기록간의 간극을 메워넣는 기능에만 충실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태조 왕건에서 묘사된 궁예의 행적은 역사기록상으로는 단 몇 페이지에 불과한 궁예의 기록을 바탕으로[132] 출연분을 무려 120화까지 크게 불려 놓았기에 판타지 요소에다 대부분의 극적 요소는 작가의 상상력으로 채워넣을 수밖에 없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역사인물의 훌륭한 재해석이 되어 방영 당시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작가가 기존 역사기록과 배치되지는 않게끔 창작부분을 구성하였고, 일부 역사 왜곡의 소지가 있는 부분에는 극중에 내레이션을 넣어 충분히 참고한 원전의 내용을 밝히고 구체적으로 어떤 대목에 상상력이 개입되었는지를 명시하는 등의 세심한 각본 작업을 하였기 때문이다. 반면 이 작품은 그러한 좋은 선례를 제대로 참고하지 못하였다.

또한 이 드라마는 애초에 전쟁이 주요 주제인 만큼, 고도의 인력과 비용이 소모되는 전쟁 장면 촬영을 대비하여 충분한 제작비와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했다. 반면 이 드라마는 중반부쯤 가서는 시청자들의 그런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고, 결국 전쟁 장면은 절반도 못 채운 채, 후반부 대부분을 궁중 암투극이나 궁궐 내 정치갈등, 여인들의 암투로 점철된 막장 드라마가 되어버렸다. 드라마 중반부의 내용은 사실상 드라마의 제목과 따로 노는 양두구육이 된 셈이다. 작품의 클라이맥스라 할 수 있는 '귀주 대첩' 장면도 실상은 8분 동안 나왔던 1회 프롤로그에 나온 장면의 재탕인데다가, 심지어 고려군이 거란군을 격퇴시키는 장면을 생략한 채, 구체적인 설명도 없이 비가 내리면서 갑자기 고려군이 승리하여 환호하는 장면으로 스킵하는 어이가 없는 서사 전개를 보여주었다. 결국, 16회 이후 고려"궐안"전쟁이라 불릴 정도로 불필요한 내정 갈등으로 시간을 질질 끌다가, 마지막 4회차에 걸쳐서 29~32화까지 제3차 여요전쟁을 다 담아내는 것도 실패하면서 주요 전투 장면은 거의 생략했고, 그나마 마지막 희망이었던 귀주 대첩의 묘사도 천추태후의 귀주 대첩보다 더 보여줄 묘사에서 처참하게 실패하면서 철저하게 개판이 된 드라마로 남게 되었다. 거기다 또 덤으로 무엇보다 본 드라마가 시청률은 준수하게 나왔어도 전체 평가는 부정적인 평이 압도적으로 더 많게 된 가장 대표적인 원흉은 바로 박진이란 가상 캐릭터라 할수 있는데 자세한 건 본 인물의 문서 내용을 참고.

결국, 이 작품의 최대 문제점을 일으킨 각본가인 이정우 작가는 그나마 평작 수준의 평을 받던 전작 태종 이방원을 훨씬 넘어서는[133] 본 드라마의 비판점을 도저히 수습이 불가능할 정도로 크게 악화시키는 바람에 불명예스러운 평가를 받게 되었다. 즉, 원작자와 시청자들의 의견을 계속 무시하고 자기 고집으로 최종회까지 역사 왜곡에 재미 없는 전개가 진행되는 사극을 밀어붙이면, 최악의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10% 초반 대의 시청률을 기록한 것에 대해서 사극 팬들은 역량이 부족한 각본가와 제작진이 이 시청률을 믿고 계속 중용될 것이라며 2025년 초에 방영 예정이라고 알려진 후속 사극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기자들은 이 드라마가 이렇게 된 이유로 제작진의 갈등(특히 전우성 감독과 김한솔 감독 간의 갈등)을 꼽고 있다. '편집 권한 논란 문단'에 전술하였듯이 "두 감독의 이견이 서로 나몰라라 할 정도 수준"까지 가면서 본 작품이 아쉬움 속에 종영하게 된 것이다.[134] 안타까운 점은 여요전쟁시기는 1차 전쟁을 제외하고 2차 전쟁이 드라마틱 한 점이 많기 때문에 픽션을 거의 삭제하고 그냥 역사대로만 만들었어도 이미 훌륭한 작품이 나올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심하게 망가뜨린 김훈, 최질은 비록 반역자이긴 하지만 나름 완환령, 통주 방어전에서 큼직하게 활약을 했기에 반역자이면서도 충신인 복잡한 면을 그려낼 수 있었을 것인데 엉뚱하게 캐릭터 붕괴를 하는가 하며, 곽주로부터 애전으로 마쳐지는 양규와 김숙흥의 서사도 대규모 전투가 아닌 소규모로 급습을 하는 게릴라식 전투들 이었기 때문에 제작비용에 큰 부담이 되지 않고 적은 숫자로 연출이 가능한 면이 있었기 때문.

9. 기타 반응

  • 각 회차가 일정한 분량이 아니라서 1~4회는 60여분 정도였지만, 5~15회는 8회를 제외하면 분량이 50분 이하로 떨어지는 등 어느 정도 일정하지 않은 면이 있고, 중간 광고 투입으로 인해 분위기나 긴장감이 갑자기 꺼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는 반응도 있다.[135][136] 다행히 16회를 기점으로 분량 문제는 해결되어 30회를 제외한 모든 회차가 50분 이상이지만, 동시에 극의 평가도 완전히 추락하였다.
  • 5회 마지막 장면에서 거란군의 투석기들이 불이 붙은 수많은 화염구를 흥화진 성에 던지고 이에 덮쳐지는 양규가 이걸 멍하니 바라보는 장면이 있는데, 이는 딱히 어떤 역사 장면을 오마주한 게 아니라 토탈 워: 삼국 DLC 팔왕의 난 트레일러에서 사마영사마옹사마예와 공성전에서 대결하는 장면 중 성에 던져진 화염이 자신에게 떨어지자 사마예가 이를 바라보는 장면을 오마주한 것으로 추측된다는 글들이 있었다.# 두 장면 모두 당시에는 없었던 회회포를 사용한다는 점도 비슷하다.[137]
  • 프롤로그 장면 및 16회 제2차 여요전쟁 막바지를 제외한 해설의 부재 역시 특이하게 느껴진다는 반응이 있다. 그나마 이를 강감찬의 말로 해결하거나 당시 백성들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상황을 조명하였기에 너무 다큐멘터리 같지 않아서 좋다는 평도 있지만, 그간 대하드라마에 비해 이질적이라는 점에서 호불호가 갈리는 듯하다.[138]
  • 아울러 전근대 시대에 대한 고찰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초반부에는 대표적으로 전쟁 소식을 황성문 앞에서, 동요하는 개경 백성을 다리에서 막아서 직접 대화하는 왕의 모습이나 왕의 조서를 관리나 서생같이 글을 알 법한 계층이 아닌 남루한 차림의 백성이 대독(代讀)하고 만세를 부르는 장면. 엄연히 왕의 처소에 들어 입궁한 김은부의 여식이 왕비 책봉을 못 받자 등 뒤에서 궁녀들이 "살펴가세요, 부인"이라고 비아냥대는 장면[139], 안무사를 파견하자마자 지역 백성들이 뉴스 속보라도 본 것마냥 몰려나와 안무사를 겁박하거나 쫓아내는 장면 등이 있다. 다큐멘터리가 아닌 사극이라 해도 전근대시대라는 시대배경을 어느 정도 감안하고 시청자들에게 이해시키는 장면이나 연출이 필요한데 그런 것이 갈수록 결여되고 있다. 통주 전투와 개경 방어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백성을 징집한 광군들에게 불멸의 이순신 수군 포졸복에서 "수(水)"를 붙이고 나온 것 같이 "군(軍)"표식을 달고 나오는 것도 작위적이거나 빈약해보인다. 영화 남한산성에서 징집된 백성들에게 따로 무슨 표식이 없이 나온 것과는 대조되는 부분이다.
  • 중반부를 기점으로 김영현, 박상연 작가들이 공동집필한 사극들을 어설프게 따라한 장면들이 많은데, 대표적으로 16회에서 양규가 "거란주까지 100보" 타령을 하거나[140] 17~21회의 호족들의 비밀 결사체의 묘사는 몇몇 배우들까지 동일하여 사실상 뿌리깊은 나무밀본처럼 나온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다. 본작의 창작 인물인 박진육룡이 나르샤분이처럼 가상 인물인데도 실존 인물 간의 사건에 너무 깊게 관여하여 시청자들이 혹평하는 것 역시 닮았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장면들에 대해선 불호 의견이 많은 편이다. 또한 육룡이 나르샤는 퓨전사극인데 비해 고려 거란 전쟁은 정통사극을 표방했기에 논란이 더 커졌다.
  • 목 조르기 장면이 유독 자주 나와 우습다는 반응이 많다. 2회에서 목종이 김치양의 목을 조르는 장면, 18회에서 현종이 강감찬의 목을 조르려다가 마는 장면 및 24회에서 최질이 무관들의 난을 부추기려고 일갈하는 박진의 목을 조르는 장면이 있다. 28회에서는 무려 3번이나 등장하였는데, 박진이 양아들 박영의 목을 조르다가 울면서 그만두는 장면, 최질이 이자림의 목을 조르며 경고하는 장면, 그리고 박진이 배신감에 박영의 목을 졸라 죽이는 장면이 있다. 아예 메이킹에서 박진 역의 이재용이 대놓고 너무 이런 장면이 많다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 태종 이방원에서 썼던 방식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점에서 자가복제라고 할 수 있다. 해당 작품에서는 이방원이 분을 못 이기고 신덕왕후의 목을 조르려던 장면과 신덕왕후가 죽기 직전에 마지막 발악으로 이방원의 목을 조르다가 죽는 장면이 있다. 그래서 자주 나오지 않을 법한 장면들이 이 작가의 작품들에서 너무 많이 나와서, 작가의 특이 성벽을 반영한 것이 아니냐는 우스갯 소리들도 나오고 있다.
  • 감성적이면서도 웅장한 느낌의 오프닝 음악을 비롯한 OST의 퀄리티가 전반적으로 뛰어나기에 OST는 좋았다는 평이 있다. 특히, 오프닝 음악은 여러 버전으로 나와 극 중 분위기와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다만 '오프닝 음악' 외에 음원으로 나온 OST는 일부 회차에만 사용했을 뿐 길게 사용되지 않은 점[141]이 변수이며, 'MV'라면서 유튜브에 띄운 영상들이 가사와 드라마 장면과 일치되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 사전촬영을 했음에도 중후반부인 16회를 기점으로 촬영 기간이 겨울로 넘어가게 되고, 2023년 말 ~ 2024년 초까지 눈이 온 경우가 생각보다 많았고, 역사적인 배경이 주로 추운 계절과 지방이다 보니 이를 적절하게 연출에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만, 31회와 32회에 걸쳐서 나왓던 귀주 대첩의 경우, 사전에 촬영을 했기 때문에 CG로 처리했음에도 불구하고 후반부의 배경과 약간 이질적으로 보였다.
  • 본작의 주연이었던 최수종은 종영 소감으로 본인도 솔직하게 말해서 드라마 전개에 대해 아쉽다고 밝혔다. 현종과 강감찬과의 관계나 전쟁이 메인이 되어 귀주 대첩의 중요성이 더 부각되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하였다. # 또한 종방연에서도 다른 촬영과 일정이 겹쳐 참석하지 못했다. 보통 이 정도 무게감 큰 최연장자에 얼굴 마담 격의 배우의 일정이 겹친다면 종방연 일정을 연기하는 것이 통상적이고, 최수종은 사전에 자신의 일정을 제작진에게 알렸는데도 불구하고 KBS가 종방연을 강행한 것을 보면, 제작진들과 간판 주역이자, 연기력으로 드라마를 캐리한 최수종 사이에도 무언가 어긋난 부분이 없지 않을까 하는 추측들이 많다. #
  • 이런저런 논란이 있기는 했지만 초반부의 포텐이 워낙 좋았고 좋은 남자들의 뜨거운 관계를 다루는 스토리를 좋아하는 여성 층의 호응을 많이 받은 사극이기도 하다. 전반부인 16회까지는 드라마를 많이 소비하는 20~40대 여성층의 소구도도 같은 연령대 남성보다 다소 높았을 정도로 굉장한 관심을 받았었다. 다만 작품이 막장화되면서 젊은 여성층의 호응도도 많이 줄어버린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이 중에서 좋은 남자들의 뜨거운 관계를 다루는 스토리를 특히 더 좋아하는 계층에서도 꽤 인기가 있었는데, 양규-김숙흥, 현종-강감찬, 야율융서-소배압 간의 관계가 특히 더 많은 주목을 받았다.
  • 17회부터 32회까지 작가의 문제가 여실히 드러나자 정도전을 성공적으로 집필하고 흥행에 성공하면서 대하사극의 부활을 알린 정현민 작가를 그리워하는 시청자들도 상당하다.[142] 또한 대하드라마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이환경 작가가 그립다는 반응도 있다.


[1] 영국의 유명 잡지 NME의 해당 기사는 4회까지 시청하고 작성된 리뷰이며, 본작이 여요전쟁 시기를 고전적인 스타일의 사극으로 조명한 점 및 목종 역의 백성현의 연기와 강감찬 대 강조의 대립을 호평하였다. 또한 현종의 성장을 기대하는 듯한 말을 적기도 하였다.[2] 본래 6회까지만 해도 이쯤 되면 시청료는 물론 270억 제작비도 전혀 아깝지 않다면서 본작이 단순한 영웅 서사가 아니라 전쟁의 이유와 양상 및 소위 '난세의 영웅들'이 싸우려는 이유라고 호평하였는데, 17~20회를 기점으로 동일 인물의 평이 극단적으로 달라졌다.[3] 7회에서 묘사된 통주 전투의 검차와 비교하면 모습에 은근 차이가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약 10년에 가까운 시대의 변화 및 제3차 여요전쟁의 준비 과정에서 검차의 발전을 암시한다는 평이 있다. 참고로 해당 검차는 14년전 사극 천추태후에서 나오던 통주 전투 검차 소품 재탕이다. # 당시에는 워낙 드라마가 엉망이라 검차가 나오고도 제대로 활용도 못해보고 등장이 종료되었다.[4] 이전 KBS 대하드라마 중에서 전장에서 꼬박꼬박 투구를 착용시킨 마지막 작품이 13년 전근초고왕이다.[5] 위기의 순간 전세를 반전시키기 위해 뿔나팔을 불며 언덕 위에서 나타난 대규모 기병대의 모습이 펠렌노르 평원의 전투로한 구원군을 연상케 했다는 평가도 많다.[6] 다만 프롤로그에 나온 귀죽 대첩의 전투 장면 자체는 완성도가 높지만, 전투 전개나 분위기에 각색이 들어간 것으로 보인다. 작중에서 고려의 제1진이 뚫리자, 소배압이 "고려는 끝이다!"거리고, 고려군 지휘부는 제1진이 뚫린 것만으로도 군대 전체가 붕괴될 수 있다며 다급해하는 것으로 연출된다. 그런데 이런 모습이 역사상 사실과는 맞지 않는 것이, 귀주 대첩이 일어날 당시 거란군은 "퇴각 중"이고, 고려군은 거란군의 두 배나 되는 병력을 동원해서 거란군의 퇴각을 막고 있던 형국이다. 즉, 소배압은 저렇게 여유로운 모습을 보일 수가 없는 처지고, 강감찬은 20만 대군을 끌고 왔으니 고작 제1진이 뚫린 것만으로 패배를 걱정할 처지가 아니다. 즉, 역사적 고증에 맞게 연출한다면, 소배압은 고려군의 봉쇄망을 뚫지 못해 초조하고, 강감찬은 거란군에게 결정타를 때릴 김종현의 중기병이 없어서 답답해하는 모습여야 할 것이다.[7] 과거의 작품들이었다면 교전 내지는 항쟁을 부르짖는 주인공이 항복론을 찍어누르는 묘사가 많았던 데에 비해, 이 작품에서 항복론은 국가의 손해를 최소화하고 보다 나은 상황에서 교섭을 이어가야 한단 논리를 통해 강세를 보이며 항전론은 주역의 입장이지만 현종의 억지로 진행될 뿐이고 강감찬은 끝없는 항전을 주장하다 결국 후대의 평가를 생각해 당대의 백성을 져버린 사람이란 평가를 받는 상황이 이어졌으며, 결국 항전론의 주역인 둘도 항전의 상징인 개경을 버리는 것에 동의해 11~12회에서 현종이 몽진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참고로 12회는 당시 거란군이 개경을 함락한 과정과 고려의 백성들에게 저질렀던 대학살 등의 만행이 지상파 드라마 치고는 영아 살해도 묘사되는 등 굉장히 적나라하게 그려졌다.[8] 김훈이 실려온 김숙흥의 시신이 꽉 쥐고 있는 주먹을 펴주려 하는데, 사후강직이 일어나 꼼짝도 하지 않자 눈물을 참지 못하는 모습을 보인다.[9] 다만 애초부터 인터뷰에서 흥화진 전투와 귀주 대첩에 크게 힘을 들였다고 했고 실제로 흥화진 전투는 굉장히 뛰어났던 것을 보면, 한도가 있는 제작비 안에서 애매하게 분배하느니 차라리 힘을 확실하게 줄 부분을 취사선택하고 나머지를 희생한 것으로 보인다.[10] 참고로 MBC의 로맨스 사극 연인의 경우엔 편당 15억원의 제작비가 쓰여 총 제작비가 300억원 이상이다. 해당 사극도 병자호란의 참상을 다루는 등 전쟁 묘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는 전란 도중 연인들의 비극적인 사랑에 더 주목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에 이는 KBS가 평소 강조하는 수신료를 제대로 못 써먹는다고 할 수 있다.[11]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미국의 2024년 9부작 드라마 마스터스 오브 디 에어의 전체 예산이 2억 5000만 달러인 것을 생각하면, 사극에서 전쟁을 제대로 묘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이 필요한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12] 실제 역사에서는 고려군이 몇 차례의 회전에서는 승리했지만, 야율분노가 전황을 타개하기 위해 신속하고 강력한 종심돌파로 반격해 방어선을 단숨에 깨부수고 지휘부가 있는 후방까지 빠르게 밀고들어온 것에 가까웠다.[13] 참고로 원작자에 의하면 해당 전투 장면들의 극본도 김한솔 PD가 담당하였다고 한다. #[14] 원작에서 거란군은 인력식 투석기를 사용하고, 고려군은 '추의 원리'를 이용한 투석기를 사용한다고 묘사된다. 드라마에 등장한 무게추식 투석기는 망고넬에서 트레뷰셋으로 넘어가는 시기의 과도기적 형태로, 무게추와 인력 밧줄 꾸러미를 함께 사용하는 모습이다. 이와 같은 무기는 동양에서는 확인되지 않으며, 주로 인력이 모자라 최소한의 인력으로 더 큰 돌을 날리려 했던 서양에서 발달했다. 그 뒤에 최소한의 인력마저도 배제하고 무게추만으로 투석하는 무기가 바로 트레뷰셋으로, 몽골군이 이 트레뷰셋 전문가를 중동에서 고용하여 중국의 양양성 공격에 사용하였다. 회회포(回回砲)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무기는 동아시아에서 인력식 투석기가 아닌 다른 종류의 투석기가 사용된 유일한 사례다.[15] 엄밀히 말하면 극중 등장한 거란군의 관측도구는 훗날 몽골군이 이슬람권을 정복하면서 얻은 수학 지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여요전쟁 당시 거란군이 사용할 수는 없다. 연출의 디테일을 살려내기 위해서 부득이하게 자료가 많이 남은 몽골 관련 자료를 참조한 것으로 보이는데, 고증오류이기는 하나 전쟁을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수행하고 있다는 감각을 잘 전달해준다는 점 때문에 호평이 더 많은 편이다.[16] 이 장면이 신파가 아니냐는 의견이 어느 정도 있었지만, 엄밀히 말해서 신파를 넣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도 아닌데다가 훗날 양규가 포로들을 구출하는 장면을 위한 빌드업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어쭙잖은 신파와 달리 이 장면은 단순한 개인 간의 사랑이나 감정선이 아니라 엄연히 전쟁 중에 일어날 수 있고 실제로 여러 사례가 존재하는 만큼,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연출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비슷한 장면이 있는 대조영 1회와 비교해 보아도 이런 부분에서 해당 장면의 연출은 굉장히 담백한 편이다.[17] 참고로 원작에서는 흥화진 전투 시점이 아니라 양규와 김숙흥 등의 전면 돌파에 의해 퇴각이 지체되자 소배압이 부하들의 말을 따라 재산 가치와는 별개로 남은 고려인 포로들을 방패막으로 삼아서 우회하는 거란군을 공격하려는 고려군을 묶어두고 그들의 사기를 떨어뜨리도록 지시한다. 원작에서 양규는 차마 격살하라는 말을 내리지 못하고 피난민들에게 길을 내어 주다가 난민 사이에 숨은 거란군들이 고려인을 죽이기 시작하자 난민들이 거의 다 빠져나갈 때에 대열을 맞추어 북을 울리며 진격하나 이로 인해 위험에 처하게 된다.[18] 성벽에서 근접 전투가 벌어질 정도면 거의 함락 직전과 마찬가지다.[19] 이는 비단 드라마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 영화 명량 역시 이순신의 대장선에서 백병전을 하는 연출이 대거 등장하는 것을 두고 '조선군이 저렇게 칼싸움을 잘하는데 배가 13척이라서 위험하다 이런 얘기는 왜 한 거냐?' 는 식의 반응이 꽤 있었다. 이는 김한민 감독이 이 피드백을 받아들였는지 후속작 한산: 용의 출현에서는 포격전 연출이 훨씬 많아지면서 개선되었다.[20] 원작 소설의 묘사를 잘 따른 부분이며, 소설에서는 함마갱으로 인해 단순히 보병만 발이 빠지는 것이 아니라 공성차도 전진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거란군이 이를 포대로 메우는 장면 역시 원작의 묘사를 가져온 것이다. 한편 드라마에서는 맹화유를 활용한 수성전을 고려군의 반격으로 보여줬지만, 원작에서는 고려군의 선공으로 묘사하였다.[21] 이 장면에 대해 어떻게 보면 고려군이 전장정리도 안 했다고 볼 수는 있으나 사실상 못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 양규가 혼자서라도 보초를 서다가 잠시 조는 장면도 이레 동안 제대로 쉬지 못하고 싸운 입장에서 그도 엄연히 인간이기에 있을 수 있는 일이다.[22] 이는 사실 본작이 100% 사전 제작이 아니라서 발생한 문제로 2023년 11월 중순의 역사저널 그날 회차를 보면 적어도 10~11월까진 아직 통주 전투를 촬영 중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로 원작자 본인은 통주 전투 초반부 연출은 괜찮지만 강조가 사로잡히는 과정에 문제가 많다고 말한다.[23] 사실 작가가 태종 이방원 때부터 무슨 스페셜 재방 보여주듯이 매끄럽지 않게 쓸모없는 부분은 많이 늘리고 중요한 사건은 툭툭 던져서 스킵하는 식으로 각본상의 문제가 있었는데 그런 문제가 고려 거란 전쟁에서도 재발하였다. 심지어는 본작의 원작인 고려 거란 전쟁 소설에서도 통주-삼수채 전투를 비롯한 주요 전투들은 고려군과 거란군 장수들이 치열하게 머리싸움을 하며 극의 재미를 살리는 장면으로 묘사되고, 강조의 최후도 충분히 독자들이 납득할 수 있게 설명되었다. 각본을 맡은 작가의 각색 능력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원작 묘사[24] 당장 흥화진의 고려 병력은 거란 본대가 남하한 뒤 남아있던 포위망조차 제대로 뚫지 못해 전령이 아닌 봉화를 올려야 했을 정도였는대, 드라마 상 수십 기에 불과한 거란 기병이 수십만의 고려군이 지키고 있는 고려군 본진을 기습해 강조를 사로잡는다는 것은 납득하기가 어렵다. 물론 강조의 지휘부 근처에 있는 야산을 이용해 기습했다는 언급이 나오지만, 상식적으로 그런 지형이 있다면 다른 곳보다 경계를 더욱 강화해야 정상이다. 강조가 제대로 된 상황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바로 사로잡힌다는 전개는 현실성이 없다.[25] 기록만 놓고 보면 수십만명이 맞붙은 전투이며, 이 수치가 과장일 가능성이 높더라도 사실상 역대 여요전쟁의 모든 회전 중에선 가장 큰 전투인 것은 분명하다. 강조의 본군이 격파된 삼수채 전투도 원래 야율분노의 거란군이 수많은 고려군을 전사시키고 포로로 잡은 스케일 큰 국지전이다. 물론 초반부 통주 전투에서 기를 다 빼버릴 순 없기에 이해할 수는 있지만, 나중에 진행될 대규모 회전에 대한 기대치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또한 사료상의 삼수채 전투의 전개와도 차이가 나는 묘사라 혹평이 많다. 웹상에선 야율분노가 다크템플러 폭탄드랍, 혹은 아비터 리콜이라도 시전한거냐며 아연해 하는 반응들이 나왔다.[26] 사실 나름대로 상황 설명을 넣기는 했는데, 먼저 거란 측이 숨겨진 루트를 통해 침투했고, 강조가 그들이 군량미를 노린다는 보고를 접하고는 주변 군사들을 그 쪽으로 보내는 장면이 있었고, 부도통사 장연우가 후방 군율을 잘 잡지 못하는 장면이 빌드업으로 나오기는 했다. 물론 거란 측은 군량미가 아니라 강조 자체를 노리고 들어왔기 때문에 그렇게 허무하게 잡혔던 것인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전체적인 연출이 뭔가 아쉬운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야율분노의 군대가 본진을 들쑤시고 들어오는 장면이 하나도 없이 그냥 보고로 때운 뒤에 갑자기 강조가 있는 본영으로 전부 등장하니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는 빌드업이 하나도 없다며 어이없어하는 것이 당연하다.[27] 말이 뾰족한 것을 두려워해서 눈을 가리라거나 하는 표현은 중국의 명작 사극영화인 명장에서도 청나라 기병이 이런 제스처를 취하는 장면이 묘사될 정도로 노련한 유목 기병의 말에 대한 순간 대응을 잘 볼 수 있는 장면이라 적절했으나 그 밖의 묘사에서는 아쉬운 점이 많았다. 말이 어떤 병장기에도 맞지 않고 사람만 공격당해 붕괴되는 장면은 너무 이질적인 묘사였으며, 이 밖에도 40만이 동원된 전쟁임에도 기병이 너무 소수라 명색이 유목제국의 정예병인 거란 기병이 빈약하게 묘사됐다. 기병의 수가 많을 때 주로 묘사되는 땅울림이나 흔들림 역시 하나도 등장하지 않았다.[28] 참고로 원작 소설에서는 기록상 과장의 가능성을 인지하여 삼수채의 고려군의 수를 10만으로 소개하기도 하였는데, 이에 반해 드라마 상에서는 당시 병력을 30만이라고 적혀 있는 기록 그대로 반영하였으나 화면에 나오는 병력이 너무 적어보여 어색해 보이는 점도 있다.[29] 전체적으로 통주 전투를 묘사하는 카메라의 시야가 너무 좁아서 거란 기병도 너무 노골적으로 가깝게 잡아주고, 어느 정도 대규모 병력이 검차진 쪽으로 몰려온다라는 느낌이 시청자들에게 전혀 없었다. 때문에 통주 전투의 묘사에서 이 드라마는 수십만 대군이 저기 어디 화면에 잡히지 않는 곳에 주둔해 있다는걸 추측하고 상상하라고 시청자들에게 강요하고 있는 셈이다. 흥화진 전투도 사실 기록대로 거란군 40만이 포위하는 연출은 딱히 없었지만, 이는 작은 성을 지키는 소규모 병력들이 처절하게 싸우는 것을 그들 시점에서 보여주는 부분이라 시야가 제한되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무려 대회전인 통주 전투를 저렇게 허무하게 스킵하는 것은 시청자들에게 불친절한 부분이며, 연출 역량의 모자람 또는 분량 조절 실패로 볼 수 있다.[30] 물론 제한된 제작 환경에서 나름대로 역량을 짜내어 3분 동안 대규모 기병전을 잘 묘사한 부분은 호평하는 의견이 적지 않은 편이다. 촬영에 동원된 말은 열~스무 필 정도로 보이고, 그나마도 CG로 일부 장면을 보완해 넣은 것이 보이지만, 컷을 빠르게 전환하고 기마병이 진군하는 역동성을 강조하는 연출 기법을 사용해서 최대한 대규모 회전처럼 보이도록 연출한 노력이 엿보인다. 다만 아무래도 케이블이나 OTT 오리지널이 아닌 지상파 드라마라서 영화처럼 실감나고 잔인한 묘사를 할 수 없는 한계는 있다.[31] 사실 방영 직전에 제작발표회 때부터 흥화진 전투 및 귀주 대첩에만 크게 공들인 것을 밝히긴 했지만, 퀄리티 차이가 너무 심하기 때문에 비판을 받았다. 특히 5회에서 현종이 강조에게 부월을 수여하는 장면이 본작의 명장면으로 시청자들에게 각인되었는데, 이때 생긴 기대감을 7회에서 배신당해 허탈해 하는 시청자 반응들이 많다. #1 막판에 강조가 잡힌 부분도 차라리 원 역사를 반영해서 담요로 싸가는 편이 낫지 기존에 강조가 보여주던 위엄에 비하면 너무 볼품없고 오히려 웃기는 장면처럼 보였다는 비평들도 있다. #2[32] 여담으로 드라마에서는 생략되었지만, 원작에서는 강조가 아침에 거란군을 섬멸하기 위한 방안이 꽤 구체적인 편이다. 노전이 군사들을 쉬게 하려면 좌우위군에게 엄호를 맡기고 군영으로 후퇴시켜야 한다고 말하자 날이 밝을 때에 고려군이 후퇴하면 거란군이 따라올 것이니 대열을 유지하다가 많이 연습한대로 거란군도 모르게 신속히 방진을 풀어 학익진을 만들고, 적에게 돌이나 맹화유 등을 던지며 모든 기병이 좌우익에서 포위하거나 실패하더라도 그들을 검차진 밖으로 나와 영채까지 추격하여 기병을 활용해 거란의 황제를 잡거나 도망치게 하는 식으로 다수를 패주시키자고 주장하여 제장들 모두 동의한다.[33] 다만 서경에서 전투를 치르던 중 거란군에게 쫓기던 지채문이 합류하는 과정이 상당히 부자연스럽다. GPS 추적과 통신이 발달한 현대에서도 전쟁 중에 통신이 두절되거나 고립된 부대의 소재를 파악하기란 몹시 힘든데 서경과 개경 사이 어딘가에서 떠돌던 지채문 부대를 전전승지 양협이 홀연히 홀로 나타나 황명을 전한다. 차라리 장연우가 이끌고 절령으로 향하던 선발부대와 조우하여 합류하는 연출이 나았을 것이다.[34] 제아무리 갑옷이 뚫리지 않는다 해도 충격이 몸에 전해지는 건 막을 수가 없다. 방탄조끼에 총을 맞아도 피멍이 드는 것과 같은 이치.[35] 군주를 살해하려는 것을 방조하는 건 당장 즉결처형감에 가족 외 삼족을 멸할 대역죄다. 아무리 냉병기 시기 전쟁이 기세 싸움이고 쓰러지지 않는 적장을 보고 사람으로서 겁을 먹을 수는 있지만, 자칫하다간 황제를 제대로 호위하지 못하여 삼족을 멸할 대역죄를 자었다고 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기에 거란병들도 오히려 더 죽기 살기로 싸웠을 것이다.[36] 다만 고려거란전쟁은 다큐가 아닌 '드라마'이기 때문에 재미를 위한 극적 과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할 필요는 있다.[37] 물론 애전 전투에서 거란 병사들에 CG를 더 사용해서 이전의 몇몇 전투에서 보인 수십명 대군 수준보다는 낫지만, 그래도 수가 부족해 보이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38] 이에 대해 반론을 펴는 측은, 드라마의 하이라이트로 남아 있는 귀주 대첩의 스케일을 키우기 위해서는 빌런의 카리스마 또한 이번 전투로 지나치게 훼손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거란군의 대패보다는 양규의 비장한 최후에 보다 초점을 두어 연출한 것이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그것도 생각하기 어려운데 작중에서 야율융서나 소배압은 제대로 활약이나 공적을 쌓지 못했으며 오히려 이현운이나 야율분노 쪽이 활약했다는 느낌이 강하다. 카리스마를 제대로 보여줄 거였다면 무언가 활약을 보여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으면서 빌런의 카리스마를 위한다는 반론은 어색하기만하다.[39] 심지어 예전 패싸움들보다도 못하다는 평도 있다.[40] 이 장면은 이미 대조영에서 나와 재탕이라는 비판과 최수종이 고구려 부흥운동 시절 써먹었던 전략을 알려줬다는 웃지 못할 드립까지 나왔다.[41] 굳이 이런 묘사를 해야했다면 상식적으로 성벽에서 하는 게 맞는데, 친정을 할 때에도 군주는 절대로 전방에 나서지 않으며, 항상 후방에 있는 것이 기본적인 원칙이다.[42] 오히려 이런 전투 양상은 거의 600년 뒤인 임진왜란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선조가 의주로 도망가려고 하자 백성들이 길을 막았고, 수많은 조선 백성들은 왜적을 막기 위해 의병에 자진 참전했으며, 당시 일부 여성들은 행주대첩, 진주대첩 등 성곽 전투에서 돌을 나르거나 직접 돌을 던지는 등 전투에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물론 조정에서 의용병을 모집하지는 않았지만 광해군분조를 이끌고 일본군과 대치하면서 의병 활동의 촉매제 역할을 했다.[43] 당장 본작이 방영되기 전 약 9년 전에 공개된 영화인 명량만 해도 임진왜란, 정유재란 당시 조선 백성들의 활약상을 무리하게 띄어주려고 필요도 없는 신파성 장면을 연출했다는 비판을 많이 받았는데, 본작도 이 보다 덜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은지라 해당 비판을 결코 피할 수 없다.[44] 해당 작품들도 하나씩 신파극 장면이 존재했지만, 본작에 비하면 그렇게 과하게 들어가지지도 않았으며 신파극성 장면들도 어느정도 납득되도록 만들었다.[45] 대체로 강감찬을 비롯한 장군들의 클로즈업 장면에서 배경의 군대 묘사가 그림을 잘라 붙힌 것처럼 심한 이질감이 느껴진다.[46] 강감찬의 클로즈업 장면은 킹덤 오브 헤븐에서 보두앵 4세살라딘의 대치 장면을 오마주한 것으로 보인다. 킹덤 오브 헤븐의 경우는 실제 엑스트라를 동원하여 실사 촬영한 장면이다보니, 강감찬 뒤 CG 병사들의 이질감이 더 도드라져 비교가 될 수밖에 없다. 비교[47] 안 그래도 1회부터 혼자 검차를 밀면서 속삭이듯이 고려는 죽지 않는다고 중얼거리는 대사다 때문에 주문 외우냐라는 비아냥을 들었는데 이번에는 대책 없이 중갑기병만 기다리는 모습에 기도메타하냐라는 조롱을 들었다.[48] 그 와중에 계속 강감찬과 강민첨이 계속 중갑기병만 찾거나 '검차 돌격' 같은 말만 남발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엄연히 원작에서도 작전명으로만 쓰인 모루와 망치 전술을 가지고 고려군이 '모루와 망치'를 기술명 부르듯이 외치는 대사가 지속적으로 나와 웃음거리가 되었다. 참고로 후술할 편집 논란은 그렇다 쳐도 귀주 대첩 장면의 대본은 분명히 김한솔 PD의 몫이다.[49] 문단의 맨 위에 올라온 영상에서는 고려사 기록 등이 담긴 자막이 추가되었다. 방영분에는 없던 부분을 따로 추가한 것을 보면 아마도 시청자들의 비판을 의식한 듯하다.[50] 차라리 바로 전 장면에서 소배압 혹은 그의 부장이 퇴각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장면만 넣었어도 상황이 이해는 갔을 것이다.[51] 이 때문에 저 당시 비에 염산이 섞여있어 군사들이 다 녹아버려 끝난거 아니냐며 조롱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이다. 그 외에 전투가 끝나고 한 고려군 병사가 강민첨에게 '배고파요'라고 말하자 강민첨이 '밥먹자 두 그릇 세 그릇 먹자'라고 대답한 불필요한 대사도 눈에 띈다.[52] 비가 오더니 갑자기 전투가 끝나버렸다며 '전쟁이 우천취소 되었냐'는 드립이 곧바로 쏟아졌다. 이외에도 '비가 거란군을 다 죽였냐', '고려군이 팀이라 콜드게임으로 이겼다' 등의 드립도 난무하고 있다.[53] 엄밀히 말하면 고려의 외왕내제 여부는 학계에서도 논쟁적이긴 하지만, 이건 본작이 역사를 왜곡한 게 아니라 '상충하는 학설들' 중 일부를 극의 전개를 위해 취사선택한 것일 뿐이다.[54] 이런 철없고 세상물정 모르는 현종의 모습이 실제 역사 속 현종의 모습과 다르지 않냐는 반응도 있다. 하지만 이는 현종의 캐릭터를 빌려서 역사나 정치 외교에 대한 지식이 많지 않은 일반 시청자에게 당시의 상황과 이후 벌어질 일들을 설명하고 개연성을 부여해주는 장치로 활용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또한, 현종이 결과적으로 성군으로 재위 기간을 마치긴 했으나 즉위 당시에는 명백히 후계자로서 필요한 교육도 받지 못하고 급하게 왕위에 오른 것이 사실이다. 사서에 현종이 처음부터 정치에 관해 잘 알고 있었다는 기록도 없는 만큼 이러한 각색이 실제 역사 속 현종과 다르다는 근거는 없다.[55] 기획의도에서 애국 마케팅을 보였기에 본작도 그러한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이 아닌가 우려한 사람들도 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오히려 정반대에 가까운 모습이었기에 의외였다는 반응이 있다.[56] 이 표현만 보고 근본적으로 고려가 사악하고 저열한 사기 행각을 벌였다고 오해하면 안 된다. 오히려 한민족은 예나 지금이나 중원 및 만주 세력과 비교해 늘 약자의 포지션이고, 당시 고려가 힘대힘으로 절대 이길 수 없는 거란과 동등하진 않더라도 최소 밀리지 않으려면 겉보기에는 뻔뻔하고 교활해보이는 기만책과 외교 전술을 써서라도 스스로를 지켜내야 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상대를 속이고 뒤통수를 치더라도 나를 노리는 적을 이기고 살아남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은 사기가 아니라 전술이자 책략이다. 더불어 정치와 외교에 선악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는 냉엄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강감찬이 지적하듯 애초에 말도 안 되는 핑계로 먼저 쳐들어온 건 거란이다.[57] 또한 외교는 아니지만, 백성들에게 전장 상황을 속이는 것도 기존 사극과 달리 옹호된다. 상식적으로 봐도 이쪽이 더 현실적인 것이, 백성들의 동요로 후방이 붕괴하면 더 큰 재앙이 나기 때문이다. 현종은 "전쟁을 이겨도 백성들의 신의를 잃으면 무슨 소용이냐"고 말하지만, 이는 "그런 생각은 일단 살아남고 나서 하자"고 반박된다.[58] 이런 고려 거란 전쟁의 성향을 상징하는 대사가 강감찬의 입에서 나온다. "폐하께서 막연하게 생각하시는 것보다 천 배 만 배 더 고통스러운 것이 전쟁이옵니다. 인간이 살아서 겪는 유일한 지옥이 바로 전쟁이란 말이옵니다." 전쟁을 마냥 영웅적이고 낭만적으로만 묘사하는 중국의 현대 프로파간다 영화들과 그야말로 대척점에 서 있는 입장.[59] 정확히는 백성들을 피난시키자는 의견에 대해서는 요지는 이해하나 도성이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한 것이며, 구정과 위봉루에 군사를 모이게 하여 밥과 술을 내린 후 공을 세운 자에게 상을 주고 노비를 면천시킨다는 조서를 통해 군사들과 백성들을 안심시키자는 방안도 주장한다. 그래서 직후 서경성이 고전한다는 소식에도 현종은 우선 피난은 반대하며 강감찬과 따로 논의를 하기도 한다.[60] 애초에 원작에서 서서히 이길 방법을 찾기 위해 나주까지 몽진을 주장한 요지도 흥화진의 양규, 통주성의 이원구, 귀주의 김숙흥 등의 장수들이 아직도 분전할 때에 고려의 안위를 가장 책임져야 할 조정이 벌써부터 항복을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으며, 친조가 지금의 위기를 넘길 수는 있어도 훗날 언제 거란이 멸망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거란의 간섭을 받아 추종자들이 늘어날 시에는 대비가 불가능하기에 반대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원 간섭기의 부원배(附元輩)들을 생각하면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러면서도 결정은 현종의 몫이며 만약 항복을 결정하더라도 따를 것이라고 덧붙이고, 현종이 몽진을 결심하자 근왕군을 나주로 모이게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드라마에서의 대책 없는 모습과는 다르다.[61] 양규야 무장이니 그러한 자신감이 충만하고 근거가 있지만, 도대체 강감찬은 무슨 근거로 이러는지 알 수 없다. 사전에 장군들과의 교감 정도는 형성을 하는 빌드업이 있든지, 아니면 그럴듯한 명분과 대사, 전술을 더 제시할 필요가 있든지 해야 할 것인데, 애초에 2차 여요전쟁에서 몽진을 주장한 것 외에는 별 행적이 없는 인물을 자꾸 비중을 주고 오리지널 행적을 넣다 보니 이런 면에서 행적 자체가 부실해지는 것이다.[62] 심지어 몽진 직전에는 강감찬이 계속 항전을 주장하자 무슨 대책이 있느냐는 질문이 들어오는데, 강감찬은 여기에 "저도 방법은 모릅니다만"이라며 대놓고 인정해버린다. 제3자 입장에서 보면 대책도 없는 양반이 무슨 자신감으로 계속 항전을 주장하는 건지 어이가 없을 정도다.[63] 유일한 대안이라고는 송나라 뿐인데 당시 송나라는 이미 거란에게 대패하여 굴욕적인 화친을 맺은 상태다.[64] 어설픈 논리라고 하는데 고려의 상황을 보면 어설프다고 보기 어렵다. 정예군과 검차라는 병기까지 준 강조의 어이없는 대패, 명장 지채문의 패배, 탁사정의 도주, 대도수가 포로가 되었다. 대신은 일부 영토와 포로를 포기해도 마지막 기회라며 친조를 청하자고 했고, 강감찬은 큰 피해를 낳을 수 있는 청야와 몽진을 주장했다. 어느 쪽도 어설프다고 하기 어렵다.[65] 물론 작가의 능력이 그런 관점들을 모두 감안할 정도로 높다면 좋겠지만 차선적 선택으로 전쟁의 참사와 고뇌를 표현하여 한국의 사극에서는 쓰지 않은 도전적 극본으로 기존의 사극과 차별화를 시도했다고 할 수 있다.[66] 드라마 초중반에 재상들이나 강감찬이나 자기 주장이 강했다. 유진을 비롯한 재상들은 강조에게 협력은 하나 그뿐이라고 일침을 가했고, 강조를 견제하거나, 거란과의 전쟁을 막고자 했다. 강감찬은 황제에게 대놓고 일침을 가하는 캐릭터인데 그런 것은 사라지고 내가 무조건 옳다!로 묘사된다. 즉 초중반까지 유지되던 서로 간의 명분을 가진 대립이 그냥 억지 대립으로 끝나버렸다.[67] 자동차로 오고간다 하더라도 의외로 꽤 먼 거리이다.[68] 해당 회차의 원정왕후는 대호족들과 연합해 고려를 세우고 삼한을 통일한 태조 왕건의 일을 들며 현종의 개혁을 만류하는데, 그 왕건의 가장 중요하고 유명한 정책 중 하나가 그 대호족들 가문에서 29명의 왕후를 들이는 것이었다.[69] 다만 지방개혁 과정에서 무신난의 주요 가담자인 최구가 호족들과 내통하고 있다는 장면이 나왔는데, 이로 인해 호족과의 대립과 무신의 난을 함께 섞어서 묘사할 가능성이 제기되었다.[70] 최악의 전개가 나왔는데 별다른 대안이 없는지 현종을 그대로 낙마시켜버리는 악수를 두었다. 사실상 나도 모르겠다 라는 무책임한 태도다.[71] 사족으로 이렇게 각색작가가 원작자 무시하고 자기작품 쓰려다 원작에 미치지도 못하고 오히려 작품과 자기 커리어만 망치는 불상사가 여럿인데 그중 최근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다름아닌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다[72] 이에 오죽하면 이정우 작가를 강판시키고 차라리 길승수 작가 본인이 나머지 대본 직접 써 달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는 판국이다.[73] 이 부분도 강감찬을 파직 대신 동북면으로 좌천하는 식으로 그리면 됐다는 지적처럼 역사로 연결할 수 있었는데, 죄를 묻지 않는 대신 죽거나 억류당할 수도 있는 거란에 사신으로 보내는 것으로 처리하는 것이다. 실제로 김은부는 사신으로 갔다 오는 중 납치당하기도 했으니 위험한 임무를 하는 조건으로 사면한다면 문무백관도 탄핵의 뜻을 거두는 게 자연스럽지만, 작중에서는 오히려 더 논란이 될 방법을 선택했다.[74] 현종이 몽진길에 고생하긴 했지만, 그것은 현종이 왕위에 오른 지 얼마 안 된 시점인데다 금군 소수만을 끌고서 몽진을 떠난 상황이기에 생겼던 점에 불과하다. 당장에 현종이 나주까지 그 먼길을 가는 데 애초에 지방 호족들이 고려 왕실을 죄다 업씬 여기고 있었다면, 그 나주까지 가기도 전에 현종은 이미 죽었을 것이며, 제일 끝에 있는 나주가 현종과는 핏줄로는 아무 연관이 없고 이미 고려 황실이나 정계에서 밀려난 혜종의 외가 쪽 집안이다. 그런데도 현종을 받아들였다는 것부터가 이미 호족과 중앙 왕실의 관계는 상당히 돈독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75] 양규 같은 경우에는 (프롤로그로 나온 강감찬을 제외하면) 세 인물 중 가장 먼저 등장했고, 천추태후에 비해서 등장이 굉장히 빠른 편이기는 하다.[76] 조선은 중세 후기부터 근대까지 걸친 중근세 왕조이다.[77]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의 묘사도 그렇고 실제 역사에서도 왕건은 거느리던 비빈의 숫자가 그야말로 맘까페를 개설해도 될 정도로 많았는데, 이들이 모두 지방 호족 세력을 포섭하기 위한 전략으로 혼인 동맹을 맺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태조 왕건의 비빈들 중에는 첫날밤 이후로 다시는 태조의 얼굴도 못 보고 죽은 비빈들도 많았을 정도였다고 한다.[78] 이 부분에서 강조는 정말로 동탁을 닮았다. 심지어 배우 이원종의 외모마저 창작물의 동탁과 비슷하다. 정확히는 동탁히 소제 유변을 폐위 후 시해한 다음, 헌제 유협을 옹립했다.[79] 때문에 이런 점을 인지하지 못해 이상하게 여기는 목소리가 간혹 나오는 국내 시청자 반응과는 다르게 외국 시청자들은 되려 이런 봉건적 세력 구도가 익숙해서 되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반응을 보여준다.[80] 극단적으론 상관살해도 서슴지 않으려는 반골기질이나 살육에 미쳐있는 것을 긍정하는 부분으로, 보통 이런 속성은 선역에게 쥐어주진 않는 속성이다. 다만 실제 역사상 전쟁영웅들 중에는 이런 유형의 인물들도 의외로 적지 않다.[81] 이 때문에 작가의 전작에서 낮은 평가를 받았던 대사까지 다시 소환되면서 작가에 대한 비판이 증가했는데 대표적인 작가의 낮은 퀄리티 대사로 태방원의 "우어어 와라, 이 역도들아. 어서 와서 이 조선의 국왕을 베어보거라!"가 자주 언급되는 상황이다.[82] 사실 현종이 아예 야심이 없는 인물은 아니었다. 궁에서 쫓겨나 강등된 시절에 작은 뱀이라는 시를 지어 자신의 신세를 생각하며 나름 와신상담하는 모습도 보여주고는 했다. 본작의 현종이 왕이 되어서는 그 무게에 짓눌려 갈팡질팡하면서 흔들리는 모습이 나오는 캐릭터라는 걸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엔 왕족이라는 자신감만 가득 차고 세상 물정을 모르는 캐릭터로 해석되어도 이상하진 않을 것이고 그런 의미에선 당연히 그럴 수 있어 보이지만, 그게 '여요전쟁을 승리로 이끈 강인한 명군 현종'이라는 대다수 한국인의 실제 역사 인물 감상과 꼭 일치하는 캐릭터 해석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평도 있다.[83] 사실 현종은 왕족이긴 하지만 부모의 불륜으로 인해 출생했고 또, 그 때문에 왕위 계승권은 있어도 어쩔 수 없이 출가를 할 수밖에 없는 신세인 데다가 여차하면 숨을 수 있게 토굴을 파놓고 김치양과 천추태후가 암살을 위해 사람을 보내면 숨곤 했을 정도였으니 현대인 입장에서는 성격이 자신만만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거라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다. 사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현종의 이미지는 목숨 부지도 어려운 상황에서 죽을 위기를 몇 번이나 거쳤다가 강조라는 권신에 의해 꼭두각시로서 옹립되었으니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속으로는 설령 격렬한 성정을 가지고 있더라도 고난의 인생사로 인해 이를 함부로 드러내지 않고 인내심이 강하며 현명한 신하들의 보필을 받는 것을 꺼리지 않는 외유내강형 인물로 생각할 것이다.[84] 특히 현종을 연기하는 김동준의 경우 1~2회에는 발성이 사극 경험이 풍부한 배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처진다는 평가가 있었으나, 점차 발전해 왕위에 오른 4회부터는 힘 없는 소년 군주에서 점차 군주의 위엄을 갖춰가는 성장형 군주의 역할에 잘 맞는 연기를 보여주어 호평을 받고 있다.[85] 대신 여요전쟁의 결말을 아는 현대의 입장에선 절대로 있어선 안 되었을 항복을 주장하는 다른 신하들의 말이 왜 설득력이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이점도 있다고 할 수 있다.[86] 제2차 여요전쟁 당시 강감찬이 한 일은 항복하자는 조정의 여론에 반대해 홀로 몽진 및 항전을 주장했다는 것 뿐이었고, 다른 기록은 전혀 없다. 원작 소설에서 추가된 활약은 현종의 어가가 몽진을 위해 떠난 직후 남아있는 20여명의 관리들을 모아 젊은 이들 중 김종현 등을 지휘관으로 임명하여 100여명의 군사들로 최대한 거란군의 남하를 지체시키도록 한 것이 전부며, 그마저도 감악산으로 가는 수천의 부대만 바람과 눈보라 덕분에 막아낼 수 있었다. 훗날 제3차 여요전쟁에서 두 사람의 활약을 빌드업하는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87] 드라마상에서는 그의 활약이 대폭 늘어나 거란으로 사신으로 가서 거짓 친조를 요청하고, 탁사정에게 서경의 상황을 알려 항복을 막았으며, 죽으려는 현종을 끌고 나온 데다가 현종으로 변장하여 시간을 끌었다. 이후에도 다시 서경으로 가서 왕이 죽지 않음을 알리고, 다시 소배압과 만나 거란이 필요한 명분까지 요구했다. 이중 한가지 일만 하더라도 전황을 뒤바꾸는 일인데, 그런 일을 홀로 5~6개를 해버렸으니 이쯤되면 제2차 여요전쟁 최고의 공신이 양규가 아니라 강감찬일 지경이고, 이런 일들이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을 리가 전혀 없기에 작가의 각색이 무리수라는 비판이 생긴 것이다.[88] 4회에서도 사촌 관계인 현종원정왕후가 아이를 가지게 되었기에 이런 측면에서 또 화제가 되었다.[89] 동성애자인 목종 외에 김치양과 사통으로 아들을 낳았던 태후는 흔히 알려져 있었으나, 태후의 교성 때문에 부처님이 노했냐는 드립과 초반부의 개경 전경을 보여주는 장면의 마지막에 나오는 연인의 키스신 등이 기존 사극과 다른 느낌을 줘서 신선해하는 반응이 있었다.[90] 드라마에서 자세히 설명되지는 않았지만, 목종은 태조 왕건의 3대손(증손자)이지만 1/8이 아니라 1/2이 왕건의 피로 친가외 외가 모두 통틀어 증조부가 태조 왕건 단 한 명뿐이다. 목종의 부모인 경종천추태후사촌간 혼인이었고 친조부모와 외조부모도 모두 태조 왕건의 자녀들로 이복남매끼리 혼인하면서 생긴 일이다. 원작에서 가족 관계 배경이 설명되었던 현종의 경우 숙부(1/2왕건)조카딸(2대손, 1/2왕건)의 불륜으로 태어난 사생아로 모계로는 3대손이고 부계로는 2대손이지만 1/2이 왕건의 혈통이며 목종과도 부계(당숙-당조카)와 모계(이종사촌)를 통틀어 모두 혈연으로 엮인다.[91] 동시대를 다룬 JTBC의 다큐멘터리 평화전쟁 1019에서도 현종이 강조에게 부월을 수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해당 작품에서 강조는 부월을 자기 멋대로 부여잡고 왕은 안중에도 없는 듯한 오만함을 보인다. 즉위 초기의 현종을 허수아비로 묘사한 해당 다큐멘터리와는 다르게 본작에서는 강조가 부월을 받들고 감개에 젖은 듯한 복잡한 감정을 보이고 있으며, 현종도 왕으로서의 위엄을 차려 오히려 역적을 감복시키고 동기부여까지 해주는 현명한 군주로 묘사했다는 평을 받는다.[92] 특히 통주 전투에 대한 빈약한 연출과 묘사에 대해 시청자들이 아쉬워하거나 혹평한 이유는 강조 또한 드라마의 극 초반부 주연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드라마의 공식 주인공들인 현종, 강감찬, 그리고 양규는 초반에 아무런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고, 오히려 강조가 극을 주도하여 1~5회의 온갖 명장면을 독식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청자들이 강조가 영광과 몰락을 나타내는 대전투인 통주 전투가 주인공에 걸맞게 나오기를 바랬는데, 그 과정이 이렇게 너무 심하게 간략화되니 시청자들이 배신감을 느끼게 된 것이다.[93] 애초에 그녀의 아버지인 김은부가 왕의 장인이 된다고 죄가 덮어지는 것도 아니며, 김은부가 실제로 비리를 저질렀는지에 대한 여부와는 별개로 모든 신하들 앞에서 이미 죄를 인정한 시점에 다른 대신들의 눈초리를 지속적으로 받을 것이다.[94] 사실 원작 소설의 야율융서는 요나라 최고의 명군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담대하며 명민하고 강조처럼 고려에 끝까지 충성한 신하들을 존중하는 호걸로 그려지기 때문에, 드라마에서 침략자로서의 면모를 부각하여 그를 더 과격하게 그린 점은 약간 아쉬운 부분이다.[95] 다만 소배압은 2차전에선 총대장이 아닌 야율융서의 최측근 정도로만 그려지기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는 부분도 이해는 간다. 제2차 여요전쟁은 사실상 야율융서가 처음으로 혼자서 지휘한 전쟁이기에 그에게 무게가 많이 실리기 때문이다.[96] 실제로 사람을 납치하고 죽인데다 그 과정이 절대로 인도적일 리는 없기 때문에 극 중에서 묘사한 잔혹함 자체는 틀렸다고 볼 수 없지만, 그렇다고 고도의 문명을 지닌 나라의 병사가 흡사 원시인같이 행동했던 묘사는 오히려 부자연스러웠다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한국 사극 특성상 적군 묘사가 완전히 공평할 수는 없지만, 거란 고위층들은 상당히 카리스마 있고 현실적인 악역으로 묘사한 반면, 유독 병사 묘사만큼은 기존 한국 사극들의 그 어떤 적군 엑스트라보다도 과장된 게 아이러니하다.[97] 다만 타초곡기에 관한 묘사가 완전히 부자연스럽다고 보기는 어렵다. 타초곡기는 전문적으로 약탈만을 시행하는 부대이므로, 일반 병사들에 비하여 수준이 낮은 병사들의 집단이었을지도 모른다. 특히 12회에서 일반병사들과 타초곡기 사이에 차등이 보이는데, 일반 병사들도 물론 타초곡기와 같은 수준의 잔혹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개경 약탈 장면에서 수준 낮은 행동을 보이는 것은 타초곡기 뿐이다. 이는 적어도 본작에서 타초곡기가 일반 병사들에 비해 상당히 질이 떨어지는 집단이라는 구분에서 차별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98] 정확히는 전투가 벌어지는 것까지는 묘사하였으나, 결국 그 전투가 끝나지 못한 데다 무엇보다도 주모자인 최질이 제압되는 장면이 28화에 나오지 않았다.[99] 특히 원정왕후와 김은부는 실제 역사 이상으로 드라마에서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분량 푸쉬를 엄청나게 받은 인물들이다. 이런 인물들의 죽음을 그냥 패싱하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하다.[100] 역사적으로는 딱히 관여하는 바가 없지만 드라마상에선 반란사건의 주된 관여자로 묘사되는 원정, 원성황후 및 가상인물로서 주동자로 묘사되는 박진 등[101] 일각에서는 한정된 제작비로 높은 인력 소모와 고가의 비용이 드는 전쟁신을 담기 어려워 궁중 암투극 비중이 늘어난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제기하고 있다.[102] 거란과의 전쟁이 아니라 궁중 내의 암투만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어진 드라마의 멸칭이다. 실제로 예전에 거란을 "글안"이라고 표기한 적이 있기도 하다. 게다가 28 ~ 29회에서 서경성의 연회장에서 무희로 위장한 황제의 비군이 최질 일당과 격투를 벌이면서 진짜 궐안 전쟁이 되어버렸다.[103] 특히 이민영의 경우엔 비슷한 시기를 다루는 모 드라마처럼 천추태후를 미화하고 띄울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연기하는 캐릭터의 힘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아들을 휘어잡는 위엄보다는 배우의 미모가 돋보인다는 평이 많다.[104] 흔히 무역 대국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대중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달리, 최소 절반을 상회하는 높은 소출 세율과 허술한 구휼 제도로 인해 고려의 중하위 계층 민생은 전성기에도 거의 항상 파탄 수준이었다. 고려도경에서는 고려의 백성들이 은혜를 베푸는 일이 적다(然其爲人寡恩)라는 대목으로 빈곤함을 돌려 말하고 있으며, 다수의 학자 사이에서도 고려의 국가적인 부유함과 별개로 민생은 피폐한 시간이 더 길었으리라는 것은 사실상 합의된 내용이다.[105] 이전까지의 대부분의 사극에서는 묘당(廟堂)과 재상들이 회의와 직무를 하는 것이 묘사되어 시청자들이 국가의 상황을 파악하게 하였다. 고려 거란 전쟁에서는 회의나 직무수행을 거의 등장시키지 않고, 대부분의 국가 상황 중 특히 거란과의 관계를 변방의 강조와 양규의 대화만으로 때우고 있다.[106] 실제 목종 항목에도 보면 상세히 나와있지만 목종은 초반에는 열심히 정치를 하였으나 계속되는 어머니의 섭정과 김치양이 본격적으로 권력을 가지게 되면서 정치에 염증이 난 모습을 보이기에 이 묘사가 완전히 틀렸다고 보기도 어려우며, 이는 목종의 대사나 신하들의 대사를 통해서 여러번 강조된다.[107] 다만 8회에서 소배압은 고려군의 전멸이 목표였기에 야율분노가 강조와 수뇌부만 잡고 오는 바람에 고려군이 전부 흩어져 섬멸하기 어려워지자 야율분노에게 하루만 더 있었으면 회전으로 고려군을 전멸시킬 수 있는데 일을 더 키웠다면서 일갈한다. 물론 실제 역사에서 야율분노는 정당하게 회전에서 검차를 돌파한 후 기병대를 이끌고 강조를 납치했는데다가 후에 소배압과 함께 개경을 불태운 공을 인정받은 공신이었기에 실제 인물에 비해 조금 격하된 묘사였다고 볼 수 있다. 어찌 보면 드라마에서 가장 큰 피해자 중 하나라고 말할 수 있다.[108] 이 장면 자체의 개연성이 좀 많이 이상한 편인데, 아무리 작중 고려군 대다수가 오합지졸이라고 해도 정예병이 없지는 않을 것인데 최고 지휘관을 지키는 고려 병사들도 없고 제대로 싸우는 병사들도 거의 없다. 심지어 군량미 창고를 치는 이중트랩의 경우 전날 밤에 처음 본 고려군 30만이 먹을 식량 창고를 단번에 알아채는 모습도 석연치 않고, 아무리 고려군이 궤주하고 있다고 해도 소수의 거란군 특작부대가 고려군 사령부 한복판에서 도망도 안 가고 강조를 잡아다가 불을 피우고는 그 위에 매달아 크게 떠들며 조롱하는 장면은 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3 그것과는 별개로 고려군이 와해되어 도망가는 장면 자체는 애초에 대다수가 농민이기에 사기가 금방 꺾인 것으로 볼 수 있어 크게 이상하다고 보기는 어렵다.[109] 야율분노의 묘사도 문제인 것이 소배압이 연이은 패전에도 아율분노를 옹호하고 목숨을 구명해 줬는데도 야율분노가 갑자기 뜬금없이 전공 때문에 소배압을 견제하는 소인배로 묘사되었다. 흥화진을 함락시키지 못해 자존심이 상할 수는 있겠지만 그런 것 치고는 앞의 복선도 없는 어이없는 전개이다.[110] 사실 60대 문관의 문제가 아니라 본작에서 묘사되는 식으로 화살을 맞고 거기다 작중 갈고리로 쇄골을 깊게 찍는 극악한 고문 같은 걸 당한다고 생각하면 젊은이라도 쉽게 살아오기 힘들다.[111] 전쟁을 다룬 드라마임에도 매 화마다 전투씬을 묘사하기 힘드니까 회차를 자꾸 전투 이외의 부분으로 채우려 하고, 그러다 보니까 자연히 주연 무장들인 소배압과 양규의 비중도 축소되며, 그 축소된 비중을 강감찬의 활약으로 대신 채우려고 하는데, 주인공 중에서도 2차 당시 기록이 거의 없는 강감찬이 다루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무리해서라도 그쪽에 활약을 몰아주다 보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폐해가 발생하는 셈이다.[112] 드라마에서 퇴장한 인물들 중에 김훈이나 최질은 적어도 2차 전쟁까지는 고려에 충심을 다했고 그만한 전공이 있어 엔딩에 포함될 건덕지라도 있었으며, 반대로 김숙흥은 작중에서 전혀 현종과 마주친 적이 없어 빠질 건덕지가 있었다. 그러나 현종과 강감찬을 본 적이 있는데다가 명실상부한 제2차 여요전쟁의 영웅인 양규가 없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 많았다.[113] 다만, 이러한 해석의 맹점은 극중 최악의 빌런인 박진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는 박진이라는 인물은 현종의 시련으로서 아무런 가치가 없음에도 무의미하게 비중이 부여됐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거나, 혹은 메시지 전달에 있어 실제 역사적 인물이 아닌 인물이 등장하는 것이 부적절하다고 여겨 제작진이 의도적으로 제외했을 가능성도 있다.[114] 드라마상 각색된 부분으로, 실제 고려사와 다른 역사왜곡 중 하나이다.[115] 만약 그저 퇴장한 주요 인물들을 등장시키는 연출이었다면, 양규가 당연히 등장했을 것이다. 공신들은 보여주지 않고 반역에 가담하거나 원인을 제공한 이들, 혹은 드라마상 갈등이 있었던 인물들만 배치한 것을 보면 이러한 해석에 무게가 쏠린다. 실제로 KBS에서 게시한 공식 영상의 제목도 '자신의 운명을 이겨내다'로 지어졌다.[116] 드라마의 전반부에 비해 후반부 전개에서 힘이 빠졌고, 현종의 성장 과정을 보여주는 빌드업에서 사용된 막장 전개에 반감이 커지다보니 시청자들에게는 엔딩에서 부각된 현종의 일대기보다는 고려가 거란을 상대로 처절히 싸워 승리한 전쟁의 모습으로 드라마의 초점이 맞춰졌다. 이는 드라마가 '대왕 현종'이 아닌 '고려 거란 전쟁'이기 때문에 오는 이질감과도 관련이 있다. 이러한 시청자 반응을 고려한다면, 최종 엔딩에서 고려를 지키다 희생된 대도수, 양규, 김숙흥 등을 배치해 '수많은 이들의 희생과 노력이 있어서 고려를 지켜낼 수 있었다'라는 메시지를 던지는 쪽이 더 좋은 평가를 받았을 수도 있었다.[117] 이 드라마의 총평을 다룬 언론 보도에는 예의상 '용두용미'라면서 호평 일색이지만, 따지고 보면 이전에 흑역사 취급당한 다른 KBS 대하드라마들이 '양반이거나 똑같이 용두사미'이라 할 정도로 심각한 수준이 되었다. 심지어 같은 여요전쟁 시기 배경이자 한국 정통사극 암흑기로 들어간 시작이라고 평가받는 천추태후와도 비교되는 수준이다.[118] 흥화진 전투, 외교관계에 대한 색다른 접근 등[119] 주연급인 캐릭터 제외하고 강민첨, 유방 등 기타 장수들에게 확고한 캐릭터성을 주지는 못했다는 비판이 존재하다, 어찌되었든 기본적인 요소는 다 갖추었다는게 호평의 논지이다.[120] 무조건 나쁜 인물이 계속 답답한 상황을 가중시켜 나가고, 나중에 그 인물을 통쾌하게 처단하는 전개, 전반부가 칭송 받은 이유는 이런 구도를 배척하고 목종, 강조 같이 공도 과도 무시못할 인물들을 잘 살린 점이 있었다.[121] 중요도 떨어지는 여성 자캐 빌드업 및 해당 캐릭터가 개연성 무시하고 큰 일을 이루는 전개가 이를 보여준다. 사실 엄밀히 말해서 여성 서사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다.[122] 물론 이런 철 지난 전개 방식도 치밀하게 잘만 사용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넣은 이런 요소들이 많을 수록, 그걸 잘 사용하기가 어려워진다.[123] 그나마도 거란 측 인물들도 고려 측 인물들보다 얘네가 나오는 게 차라리 낫다 정도이지, 캐릭터적으로 만듦새가 좋아서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니다. 졸지에 2차 전쟁 때 아무 공도 세우지 못한 소배압과 성군의 모습을 보여주기는 커녕 자신의 나라를 모욕했다는 이유로 열폭하여 사람을 무자비하게 처형하는 등 성품이 포악하게 나온 야율융서만 봐도 그렇다. 심지어 16회 이후로는 22회 정도를 제외하면 비중이 크게 줄어들어 거의 얼굴도 비치지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드라마에서의 거란 인물 묘사의 문제점은 원작에는 전부 없는 부분인데, 원작에서 소배압은 굉장히 유능하며 야율융서는 차분하고 포용력이 있다.[124] 천추태후가 취지와 8화부터 역사 왜곡의 여지가 넘쳐났었던 망작인 것을 생각하면 이건 심각한 비판이다. 본 작은 천추태후와 비교대상이 아니라 그걸 가뿐히 넘어서거나 천추태후에서 만든 후반부 평가를 반드시 뛰어넘은 걸 보여 주었어야 했다.[125] 특히나 이 드라마는 방영을 얼마 안 남겨놓고서 작가가 교체되면서 급하게 들어온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수습을 통해 극을 잘 전개하려고 했다.[126] 행주대첩, 진주대첩, 이순신의 여러 해전, 곽재우의 의병 항쟁 등이 있다.[127] 그마저도 실질적으론 국지전 수준이 아니라고도 볼 수 있는 큰 전투만 한두 번 언급되고, 그 미만의 작은 규모의 국지전은 대사로조차 언급되지 못한 게 대부분이다. 문제는 이 사이의 국지전에서 일어난 사건이 평범하진 않다. 지금까지 국경에서 치뤄진 전투로 단련된 베테랑과 대장들이 야율세량의 지휘 하에 지속적으로 소모되다 곽주에서 통주, 삼수채 전투에 비견될 대패를 당했으며, 3차 전쟁 후 외교전의 쟁점이 된 압록강 이동 영역과 관련된 영토 분쟁이 국지전 시기에 양군이 점령하면서 발발했기 때문이다. 다만, 전자의 경우엔 야율세량은 엑스트라로도 등장하지 않은데다 3차 전쟁 시점엔 이미 죽었단 점, 후자의 경우엔 드라마가 3차 전쟁 이후를 다루지 않기에 넘겼다고 이해할 순 있다.[128] 전쟁씬 만들 제작비는 없다면서 16회 이후로 역사적으로 딱히 근거도 없는 침방 관련 배경이 자주 나온다던가 16회까지 청백리로서 꾀죄죄한 살림으로 나오던 강감찬 내외가 17화 이후 호족 배경과 엮이면서 갑자기 옷차림이 으리으리해진다던가, 원성황후와 현종의 로맨스 소재로는 늘 새로 지은 옷이 등장한다던가하는 등의 미심쩍은 이유 때문에 '현재의 제작진이 한복 관련 소품 업체와 커넥션이 있는 거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129] 드라마 연령고지 이후에 "본 드라마는 역사적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라고 면책 문구가 달려있고 '야율융서' 역의 김혁도 자신의 개인 블로그에 간접적으로 언급하긴 했지만, 일정 수준의 오류는 용인되어도, 매 회차마다 지나친 수준의 역사 왜곡을 한다면 그건 사극도 아니고 그냥 판타지라고 볼 수 밖에 없다. 해당 면책문구에 너무 의존하여 드라마적 요소를 강화하기 위해 실제 역사를 완전히 배제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올 정도이다.[130] TV 채널에서 본방을 방송하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드라마 첫 방송을 보려면 TV로밖에 '본방사수'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며, 비판적인 시청자들도 "제발 이번 회차는 정신 차리고 제대로 보여줘라."라는 심정으로 시청했을 것이다. 그리고 본방을 봤다는 이유로 '비판할 권리'가 절대로 사라질 수 없으며, 시청 후 소감에 대해 모든 시청자들은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권리와 자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일단 시청을 해야 평가가 가능하다.[131] KBS에서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오랜만에 야심차게 준비했다고 한 '대하 사극 드라마'이기 때문에 이 정도 시청률이 나오는 것이다. 그리고 중간에 드라마를 보다가 실망해서 다른 채널로 돌려버려도 합산되는 게 바로 시청률이다. 영화는 작품의 인기도를 "박스오피스 티켓 판매량"으로 집계하여 판단하는데, 초기 영화 관람가들의 리뷰를 통해 이후 해당 영화를 볼지 안 볼지 결정을 할 수 있고, 이것이 티켓 판매량에 영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영화와 달리 방송사에서 실시간 방영하는 드라마는 리뷰를 남길 새도 없이 이미 시청된 드라마로 시청률이 계산되기 때문에, 시청률만으로 시청자들부터의 인기도를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270억을 들인 대하 사극이 동시간대 방영한 퓨전 사극 밤에 피는 꽃에 밀렸다는 건 부끄러운 성적이다.[132] 원전인 삼국사기 궁예 열전은 A4용지로 출력하면 2~3장 정도에 해당하는 분량이다.[133] 태종 이방원은 급전개 등의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실록을 거의 그대로 옮겨서 비슷한 시기를 다룬 전작들과의 차별점을 보여줬다는 호평도 있었다. 해당 작품도 극본은 투박한 부분이 있으나 본작처럼 극을 완전히 말아먹은 수준의 각색을 취하지는 않았고, 원경왕후를 통해 약간의 여성 서사를 시도했으나 드라마의 작품성을 해칠 정도로 크진 않았다.[134] 물론 이에 대해 KBS에서 반박 자료를 내밀면서 수습하려고 노력했지만, 오히려 제작진과 주연인 최수종과의 갈등 상황을 다룬 보도까지 나오는 등 해결이 되기는커녕 그 후폭풍이 더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었다. 다만 제작진이 함구하면서 더는 기사가 나오지 않게 되었다.[135] 예를 들어 6회에서는 1차 흥화진 전투로 피를 말리는 전투가 벌어지는데, 중간에 이걸 딱 끊고 갑자기 성상 폐하께서 등장해서 할미넴이랑 변비약 광고를 진행해 많은 이들이 뿜었다. 거기다 종료 후에는 우측 배너광고로 강감찬의 상조회사 광고도 매회 나온다.[136] 사실 2012년 대왕의 꿈이 방영될 때부터 KBS 대하드라마는 극 초반부 1~4회 사이 정도만 1시간 정도의 분량으로 진행하고 이후 회차의 분량은 대부분 50분 이하다. 게다가 이 드라마는 시작부터 KBS 2TV로 방영되기 때문에 전후반+중간 광고까지 포함해야 1시간 정도 진행된다.[137] 무게추식 트레뷰셋 투석기는 11세기를 다루는 본작으로부터 한 세기 후인 12세기에 서양과 중동에서부터 점차적으로 무게추를 사용한 무게추식 투석기, 즉 우리가 아는 형태의 트레뷰셋 투석기가 등장했다.[138] 주요한 사건 뒤에 불멸의 이순신 등 대하드라마에는 해설이 등장하였으나 이전 대하드라마와 비교하면 드라마에 해설이 없는 게 아쉬운 현실이다.[139] 아무리 왕비 책봉을 받지 못했어도 그냥 궁녀보다 당연히 왕의 여인이 격이 높다. 엄연한 신분제 사회이자 법도가 촘촘한 궁궐에서 저런 무례를 범했다가 당장 소리소문 없이 죽어나가도 할 말이 없다.[140] 단 양규와 김숙흥의 최후는 전투 규모를 제외하면 비장하게 잘 표현되었다고 호평을 받았다. 본 드라마의 명장면 중 하나로 볼 수 있으며 어설프게 따라한 것이 아닌 비담 장면에 대한 오마주라고도 볼 수 있다.[141] 물론 '파트 1'로 나온 서도밴드의 '비상'은 이후 2023 KBS 연기대상 당시 우수 연기상 장편드라마 부분 발표를 한 야율융서(김혁)와 소배압(김준배)이 등장할 때와 이후 2TV 생생정보에서 드라마를 언급할 때에 나왔다. '파트 2'로 나온 김장훈의 '폭풍'은 15회에서 곡 전체가 흘러나왔다.[142] 정도전의 경우 지금이야 타이틀롤의 범죄 행위가 밝혀지면서 흑역사가 되었지만 당시 최고 시청률이 20%에 육박하는 등 2010년대 중반 기준으로 흥행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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