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비 金恩妃 | Kim Eunbi | ||
<colcolor=#fff><colbgcolor=#cc0225> 출생 | 1989년 3월 6일 ([age(1989-03-06)]세) | |
서울특별시 관악구 봉천동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
학력 | 광명동초등학교 (전학) 서울개봉초등학교 (졸업) 개봉중학교 (졸업) 한국조리과학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조형예술학, 패션 비니즈 전공 / 학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미디어, 광고PR / 석사수료) | |
가족 | 부모님[1] | |
반려묘 까비(2015년생, 코리안숏헤어) 반려묘 신비(2017년생, 코리안숏헤어) | ||
신체 | 169cm, 60kg, AB형, 85G cup, 245mm | |
MBTI | ISFJ / INFJ | |
종교 | 무종교[2] | |
데뷔 | 2016년 6월 27일 싱글 1집 MoiraSound (데뷔일로부터 [dday(2016-06-26)]일, [age(2016-06-26)]주년) | |
소속 | Talented | |
플랫폼 현황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
김은비 | ||
구독자: 8.34천명 조회수: 308,884회 | ||
gimeunbee | ||
팔로워: 13.5만명 | ||
gimeunbee | ||
팔로워: 31600명 | ||
기준: 2024년 4월 6일 | }}}}}}}}} | |
관련 링크 | ||
SNS | |||| | |
음악 | |||||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프로듀서, 인스타그램 스타.2. 생애
2016년부터 음악작업을 하며 전 세계적으로 테크노 음악을 발매하고 있고, 소수지만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고 한다..더불어서 전공 덕분에 시작된 패션 마케팅 경험 등을 바탕으로 현재 압구정로데오에서 패션홍보대행사 ‘리포트팩토리’ 를 운영중인 CEO 겸 메인 디렉터이다.
10년동안 운영한 블로그나 채널 덕분에 자연스럽게 인플루언서라는 호칭을 얻긴 했으나 그런 호칭보다는, 패션쪽에서만 한우물을 파고 오래 일을 한 덕에 음악과 패션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접점을 알고 있어서 다양한 덕을 보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2.1. 학력, 데뷔
고려대학교 학사 및 석사 출신의 김은비의 독특한 이력 중 하나는 고등학교인데 특성화고등학교인 한국조리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감성의 이미지, 영상을 만들어내는 김은비의 전 직업은 디렉터라고 한다. 2008년도에는 힙합에 빠져서 힙합동아리에서 춤을 2년 내내 췄었고, 2010년도에는 홍대에서 영국 브릿팝에 빠져서 1년동안 밴드생활을 했다고 전해진다. 앨범 창작에 서문에도 항상 밝히는 그녀의 소개글의 등장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젊음과 자신에 대한 기록이라는 말들이다.
몽환적인 사운드를 만들기 시작한 것은 시간이 오래지난 후인 2016년 데뷔 앨범 직전으로 추측되는데 “Moira Sound”를 시작으로 별도의 홍보 없이 ‘음악 그 자체의 힘'만으로 자신이 설 땅을 굳건히 만들어 냈다. 소속사가 없이 독립 레이블로 음악 활동을 해왔다. 독자적 레이블로 처음 음원을 선보였던 것은 2016년 젠틀몬스터 재직당시인데, 당시 회사에서 일을 하다가 저작권 문제땜에 운영하는 플래그십 스토어 및 매장에서 저작권 없이 패셔너블하게 사용할 수 있는 음원을 기획해보는것을 시작으로 첫 음원 발매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매장에 틀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만들어보고자 하는 생각으로 노래를 만들다보니 생각보다 더 난해하고 무난하기는 어려웠는데, 패션위크나 다양한 컬렉션 필름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강렬한 비트를 찾다보니 일렉트로니카 베이스의 테크노에 매료되었다고 한다.
마케팅과 디렉팅에 대한 독창적 영역이 패션업계에서 긴시간 인정받는동안 놓치지 않고 독자적으로 만들던 음악 활동이 지속되어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2022년도 3월부터는 passport seoul과 독점계약하여 워너뮤직코리아를 통해 전 세계로 음원시장 발매영역을 넓혀 나가고 있다. 출처.
2.2. 테크노
베를린의 가장 영향력있는 테크노 커뮤니티에서부터 유명해지기 시작한 그녀의 전체 음악은 현재 사운드클라우드 일렉트로니카 차트에서 top 50 안에 항상 들어가 있다. 국내에 여성 일렉트로닉 테크노 사운드 붐을 불러일으킬, 김은비는 현재 전 세계 테크노 뮤직 씬에서 영향력 있는 여성 중 하나로 라인업되며 독특한 음악 세계, 장르를 규정하기 힘든 음악으로 독일의 테크노 커뮤니티들에서부터 유명해지기 시작했다.음악 스타일은 테크노를 기반으로 하며, 하드한 사운드의 테크노를 주로 다루기는 하나 음악 폭이 다양한 편이다.
버라이어티한 그녀의 음악이 규정짓기 힘든 이유가 결국 그녀의 경력에 담겨있었던 이유가 아닐까라고 업계 동종 디렉터들이 평가 하고 있다. 각종 유명 브랜드의 패션 인플루언서 겸 마케팅 디렉터 출신의 DJ/프로듀서 김은비 (Eun Bee Gim)의 경력이 재밌는 만큼 강력하고 독특한 싱글 [Oddity출처]의 섹시한 사운드를 들어봐도 좋을 것 같다. 2020년 8월 14일 발매한 음원은 발매 직후 언더그라운드 테크노 글로벌 차트에서 24위를 진행중이다.
국내 유일무이한 하드 테크노 프로듀서로 주목받고 있는 김은비는 매 시즌 알렉산더 맥퀸 및 샤넬의 프레스로 초대받는 등 패션 인플루언서로도 이미 유명하며, 오랜 기간 동안 마케팅 디렉터로 활동한 경험 덕분에 많은 담당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즐긴다고 한다. 함께 일했던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면 웬만한 모든 인맥들이 그녀의 친분으로 이루어졌고, 그녀의 친분이 아니고서는 이뤄낼 수 없는 일들이 많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일도 많았다고 전해진다.
돈보다는 사람이 좋아서 일을 했기 때문에, 그만큼 함께 일한 사람들이 계속해서 찾는데는 이유를 알 것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들으며 합을 맞춰왔다는 평을 듣는다. 최근에는 인플루언서라는 단어가 실체가 없다고 느껴 행사 자체에 가는것 자체를 줄였다고 한다. 실제 전 세계 다양한 패션 업계 사람들의 마음을 사진 한장만으로도 자연스럽게 얻어냈는데 디자이너 '크리스토퍼케인' 은 그녀의 인스타그램에 직접 댓글을 달기도 하며, Etude studio 의 총괄 디렉터도 또한 그녀에게 직접 소통하며 그녀가 의상을 직접 사입고 올린 룩을 좋아하고 반응해주며 그녀의 패션 센스를 소통해주기도 하여 놀라움을 샀다.
베를린과 런던을 오가며 다양한 활동을 한 그녀는 마케팅 디렉터로 서의 디렉팅 활동과 음악 활동을 병행하며 다양하고 흉내 낼 수 없는 이미지들을 보여주고 있다. 독특한 연출과 구성을 통해 치명적인 매력을 발산하는 음악이 대중성을 가져가기 어려울 수 있었지만, 국내 및 국외까지 결국 주목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트렌드'에 휩쓸리지 않는 영리함이다. 테크노 신의 다양한 뮤직 리스너들과의 소통이 가능한 인스타그램에서 다이렉트 메세지를 통해 다양한 아티스트 및 그녀의 팬들이 소통하는 창구에서도 주목받고 있다는 것을 인스타그램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일렉트로니카'라는 큰 범주 안에서 ‘테크노'와 어울리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적 질료를 토대로 고유의 형상을 구축한다. 치열하지만 가볍고 즐거운 음악의 느낌은 청자에게 스며든다. 이는 냉소와 무관심이 ‘멋짐'으로 받아들여지는 시대인 지금, 우리가 김은비의 음악을 듣자마자 반응하는 이유다. 독일 테크노 신에서 2020년 주목하는 여성 DJ로 주목받고 있는 김은비의 결코 가볍지 않은 이번 해 두 번째 EP, “침입자”와 함께 감정을 뒤흔들 하드 테크노의 신이 주목받는다. 출처
2.3. 콜라보
패션이슈로 첫번째 콜라보레이션을 시작했다. SMK (프랑스 디자이너 산드라메이어강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한 paper vinyl bag 글로벌 발매 (2015)를 통해 독일 및 프랑스와 전 세계 편집샵에서 그녀의 색감을 담아낸 페이퍼 비닐백 판매를 통해 패션 디렉터적인 감각 또한 표현해냈다. 음악적인 첫 콜라보레이션 뮤직비디오 '침입자(Emotional intruder)'는 발매 후 독일 커뮤니티 뿐만 아니라 유투브에서 실시간으로 10만명이 넘는 전 세계 인들이 주목했다.해외 필름 작업 작가들의 필름을 직접 찾아서 맘에 드는 작업물을 완성해 나가고 마지막 디렉팅 작업 및 모든 앨범에서 보여주는 영상을 함께하는 스텝들의 의견을 수렴한 후 최종적으로 본인이 직접 편집하고 있다.# 2021년 22년 상반기에 발매할 음반 발표를 미리 예고하며 또 한번의 콜라보레이션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개 후 독일에 있는 팬들에게 DM 및 선발매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Rave New Sounds Collaboration'이라는 타이틀로 해당 계정에서 들어볼 수 있다.#
2022년 3월 16일 공개된 The Dreamers, 몽상가들 (The end of Privacy) M/V
2.4. 패션 디렉터 및 홍보대행사 대표
2021년 고려대학교 미디어대학원 광고PR 전공에서 석사 공부를 진행중이다.
2021년 3월 부터는 홍보대행사 '리포트팩토리'를 전체 디렉팅 및 오픈하며 패션PR 업계에 새로운 판도를 만들어 나가고 있다.
2021년 국내 첫 런칭하는 wwdkorea 마케팅 디렉터 총괄직에 대한 제안을 거절했다.
3. 경력
Kim Eunbi Career | |||||
<rowcolor=#fff> 년도 | 활동 내역 | 비고 | |||
2013년 | LF 남성복팀 | 마케팅 인턴 | |||
2016년 | 젠틀몬스터 입사 | 핵심 업무 수행[3] | |||
- | CJ ENM & MNET | 기획부 | |||
- | 리츠칼튼 호텔: 르 메르디앙 호텔 서울 PR 매니저 | 이직 및 스카웃 제의 | |||
- | 달바 | 총괄 | |||
- | 디캐이 | 마케팅 팀 총괄 | |||
- | 오호라 | 디렉터 | |||
- | 레콩키스타 | 프리랜서 | |||
- | 리포트팩토리 | CEO |
4. 여담
- 그림은 어릴때부터 잘그렸는데 유치원생때부터 타고나길 손재주가 있다고 평을 들어서 전국대회 상을 받아 그림에 재주가 있단 생각을 항상 하며 살았었다고 한다.
- 민트초코칩을 좋아한다. 하나 좋아하면 그것만 먹어서 민트초코칩만 4개 시켜서 파인트로 먹은적도 있었다고 한다. 예전에는 캔디바도 좋아해서 캔디바 20개 사서 넣어놓고 먹다가 배탈도 났었다고 한다.
- 양식조리사 자격증이 있는데 고등학교 3년 내내 요리를 한 덕분이라고 한다. 한식, 중식, 일식은 물론 양식, 베이킹, 전통조리까지 그때 싹 다 배웠었다고 한다. 현재도 요리를 하면 몸이 기억하는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 20대 초반에 몬스터우쌤이랑 버키쌤이 너무 멋지다고 생각하면서 크럼프를 배웠었다고 한다. 홍대 몬스터 우팸에서 배우면서, 워낙 내성적이라서 춤이 그나마 본인을 적극적으로 만들어주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밝혔다.
- 30살에 가장 많이 변화를 경험했는데, 이 때 변화가 너무 커서 다시 돌아보니 그런것 같다고 느낀다. 당시가 가장 많이 아팠지만 가장많이 성장했던 해였다고 밝혔다.
- 외동딸인데 항상 맞벌이어서 어머니가 집에 계셨던 적이 많이 없었다고 한다. 어릴때 아버지가 어머니를 잠깐 집에 있도록 해준적이 있었는데 그때 잠깐 빼고는 거의 대부분 어머니도 일을 하러 다니셨고, 항상 친구들이랑 지내거나 혼자있는 시간이 많다보니 백색소음처럼 티비를 켜놓는 습관과 무조건 불을 켜놓는 습관도 생겼다고 한다.
- 남자친구는 본인만 보는 스타일을 선호하며, 변하지 않는 스타일의 남자를 좋아한다고 한다. 자신한테 친절한건 좋지만 여기저기 친절한 스타일은 싫어한다고.. 자세한 사항은 이상형 부분 참고.
- 거짓말을 극도로 싫어해서 거짓말을 하지 않고, 숨기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신뢰를 중요시하며 날 믿어준 사람에게는 반드시 보답하는 성격이라고 한다.
- 결혼에 대한 생각이 확고해서 믿고 함께할 배우자를 만난다면 최선을 다하고싶다는 마음을 항상 갖고있는데, 사실 결혼을 아직도 못했다고 한다.
-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배려심이 엄청나게 있는 편이라는 얘길 많이 듣는 편이고, 헤어진 남자친구들이 몇년 내내 매달리고 항상 연락이 온다.[4] 주변에서 신기하다고 할정도로 헤어진 남자친구들마다 연락이오는 편이라고 한다.[5]
- 치킨을 좋아해서 새로 나온다면 항상 먹어보고, 라면이랑 라멘 매니아라고 한다.
- 대학교 재학시절 캠퍼스 스타일 아이콘에 서울대, 연세대를 이어 고려대 메인 아이콘으로 소개되어 지면에 소개팅룩으로 실렸다고 한다.
- 직장을 다닐때는 성과를 너무 내서 항상 새로운 역사를 썼다. 그 해에 모든 프로젝트에 투입되기도 했다.
- 학자금을 직접내고 학교를 다니고, 용돈을 벌어서 생활하느라 대학교 내내 안해본 알바가 없다고 한다.
- 장학금을 받은 기억도 있다고 한다.
4.1. ~ 초등학생
- 초등학생때 게임을 너무 좋아해서 집에 워크래프트 CD가 있었다고 한다. 어떤 날은 스트리트 파이터 97을 너무 좋아하다가 너무 잘해져서 밤늦게까지 하다가 어머니가 퇴근하고 오락실로 잡으러온 적이 있다고 한다.
- 펌프 잇 업이 나온 후로 허구헌날 펌프만해서 대회에 나갈까 고민할정도로 빠진 적도 있다고 한다.
-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가슴이 커졌는지, 그때부터 동네 돌아다니면 가슴을 만지고 도망갔던 친구들이 있어서 아직도 기억이 난다고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학교에서 우두커니 서있는데 본인의 가슴을 만지고 도망갔던 남자애라고 한다.
물론, 현재 이러면 초등학생이고 뭐고 얄짤없다.
4.2. ~ 중학생
- 중학교 1학년 들어가자마자 담임선생님 추천으로 부반장을 했고, 3년내내 공부를 열심히 한 덕분에 특성화고에 입학할 수 있었다고 한다.
- 중학교 시절에는 소속사에서 컨텍이 여러번 왔는데 거절했었다고 한다.
- 중학생 때부터 고등학생만큼 키가 컸고 조숙했는데, 1학년 때가 164cm, 3학년 때는 168~169cm 정도의 현재 키로 완성되었다고 한다.
그 이후로 없나요..? - 중학교때부터 동네에 걸어다니면 어른들이나 선생님들이 몸매가 이쁘다고 칭찬을 많이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본인은 개인적으로 큰 엉덩이가 너무 고민이여서 엉덩이를 집에와서 혼자 마구 때린적도 있다고 한다.
당시 남자들이 많이 놀려댔었다고.. 한다
4.3. ~ 대학생
- 대학생 때 고려대학교에서 처음 패션비즈니스 학회가 ‘옷거리’가 만들어졌는데, 1기때 부회장이 되어 패션에 대한 모든걸 흡수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다고 한다.
- 대학교 교정에 걸어다니면 일명 '다람쥐길'이라고 있는데, 지나가는 애들이 본인을 그려주거나 사진을 찍는등 제보를 해주고 인터뷰를 많이 요청받기도 했었다. 알고보니, 이유는 패션이 고려대학교 학생같지 않게 굉장히 튀게 입거나[6], 남자옷이나 다양하게 도전적으로 코디를 하는 등 다양하게 연출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 시를 써서 입상한 적이 한 번 있었는데, 한양대학교에 가서 상을 받았습니다.
- 학비랑 용돈을 벌어야해서 롯데백화점 버버리향수 매장에서 1년인가 알바를 했는데 그때 향수란 향수는 다 경험하며 향에 대한 신세계를 경험한 것 같다고 밝혔다. 현재도 향수를 좋아하고 모으는 취미가 있다고 한다.
- 경기대학교 메인 OT 무대에서 공연할 일이 생겨 힙합 랩과 콜라보로 여자 크럼프 댄스를 직접 선보여준 적이 있는데, 남들은 저보고 멋있다고 했지만 본인은 흑역사라 지워버리고 싶다고 한다.
- 홍대에서 밴드생활을 21살시절쯤 잠깐했는데, 그 시절 빵이라는 클럽에서 공연을 하다가 자우림밴드 어떤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아 데모테입을 보낼 기회를 얻었는데 밴드 친구들과 심하게 다투게 되어 본인은 밴드를 안하게 되고 밴드 친구들은 탑밴드에 나가서 성공적으로 데뷔를 했다고 전해들었다고 한다.[7]
4.4. 이상형
Q. 이상형이 어떻게 되시나요?
이상형은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외모적인 건 자기 자신을 꾸밀줄 아는 그런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잘생기거나 키가 크거나, 이런 걸 바라는 게 아니라 그냥 평범하지만 자기 자신만의 매력을 아는 그런 사람인 것 같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관리도 어느 정도 할 수 있어서 절제를 할 수 있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인데 그 사랑하는 사람 속에 저도 포함되는 사람이면 너무나 제 이상형일 것 같아요.
다른 이성들에겐 눈길도 안줄 수 있는 그런 남자여서, 오랜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저만 좋아해주는 그런 사람이면 더 좋을것 같아요. 결국 이런 모든게 ‘성격’에 해당되는 것 같아요. 성격이 좋아야 좋겠네요.
원하는 이성상은 생각의 폭이 넓어서 저를 이해하고 품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아이처럼 순수하게 절 바라봐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기도 하고 냉정한 판단이 필요할때는 저보다 더 냉정하게 판단해줘서 저에게 도움도 줄수 있는 그런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취향이 좀 잘 맞고 이야기를 나눴을때나 생활을 같이 했을때 편안한 사람이였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만화 그림이였나.. 커플이 싸우는데 막 화를 내도 우산을 씌워주는 그림이 되게 인상적이였는데 (커플사진중에) 항상 나를 먼저 챙기고 생각해주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그 사람이 정말 원하는 이성상인데 (물론 화도 안내면 더 좋겠지만) 그런 사람들 보다는 싸우면 버리고 가버리거나 자리를 뜨거나 대부분 그러지 않나요? 저를 끝까지 지켜준다는 믿음을 주는 그런사람이 제가 같이하고 싶은 이성상이 아닐까 싶어요. 사람이 살다보면 즐거운 순간만 있는건 아닌데, 행복하고 좋을땐 마냥 좋다가 위기에 봉착하면 다 버리고 떠나버린다던가 상대를 탓하는 사람들도 많이 봤는데 그런 핑계가 많은 사람보다 자기가 해결할 수 있는 용기가 있고 담대함을 가져서 저에게도 용기를 주는 사람이였으면 좋겠어요. 그럼 저도 지구끝까지라도 믿고 따라갈 수 있지 않을까요. 잘난 사람보다는 끈기있고 착하고 배려심많은 사람이 좋아요, 물론 약간 힙해서 저랑 음악적 코드가 맞고 같이 클럽도 가고 먹는거 코드도 맞는건 완벽한 이성상에 부합할거 같구요.
이상형 인터뷰
이상형은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외모적인 건 자기 자신을 꾸밀줄 아는 그런 사람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잘생기거나 키가 크거나, 이런 걸 바라는 게 아니라 그냥 평범하지만 자기 자신만의 매력을 아는 그런 사람인 것 같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관리도 어느 정도 할 수 있어서 절제를 할 수 있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인데 그 사랑하는 사람 속에 저도 포함되는 사람이면 너무나 제 이상형일 것 같아요.
다른 이성들에겐 눈길도 안줄 수 있는 그런 남자여서, 오랜시간이 지나도 변함없이 저만 좋아해주는 그런 사람이면 더 좋을것 같아요. 결국 이런 모든게 ‘성격’에 해당되는 것 같아요. 성격이 좋아야 좋겠네요.
원하는 이성상은 생각의 폭이 넓어서 저를 이해하고 품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아이처럼 순수하게 절 바라봐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기도 하고 냉정한 판단이 필요할때는 저보다 더 냉정하게 판단해줘서 저에게 도움도 줄수 있는 그런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취향이 좀 잘 맞고 이야기를 나눴을때나 생활을 같이 했을때 편안한 사람이였으면 좋겠습니다.
어떤 만화 그림이였나.. 커플이 싸우는데 막 화를 내도 우산을 씌워주는 그림이 되게 인상적이였는데 (커플사진중에) 항상 나를 먼저 챙기고 생각해주는 사람이 옆에 있으면 그 사람이 정말 원하는 이성상인데 (물론 화도 안내면 더 좋겠지만) 그런 사람들 보다는 싸우면 버리고 가버리거나 자리를 뜨거나 대부분 그러지 않나요? 저를 끝까지 지켜준다는 믿음을 주는 그런사람이 제가 같이하고 싶은 이성상이 아닐까 싶어요. 사람이 살다보면 즐거운 순간만 있는건 아닌데, 행복하고 좋을땐 마냥 좋다가 위기에 봉착하면 다 버리고 떠나버린다던가 상대를 탓하는 사람들도 많이 봤는데 그런 핑계가 많은 사람보다 자기가 해결할 수 있는 용기가 있고 담대함을 가져서 저에게도 용기를 주는 사람이였으면 좋겠어요. 그럼 저도 지구끝까지라도 믿고 따라갈 수 있지 않을까요. 잘난 사람보다는 끈기있고 착하고 배려심많은 사람이 좋아요, 물론 약간 힙해서 저랑 음악적 코드가 맞고 같이 클럽도 가고 먹는거 코드도 맞는건 완벽한 이성상에 부합할거 같구요.
이상형 인터뷰
[1] 아버지는 1966년생, 어머니는 1969년생이다.[2] 어렸을 때 부모님과 함께 교회를 다녔었고, 이후로는 친구네 교회를 종종 주말에 다니다가 결국 나중에는 안 가게 되었다고 한다. 종교들은 다 각자마다 의미를 지닌다 생각해 존중한다고 밝혔다.[3] 해당 업무를 수행하게 되면서 다양한 시각과 경험을 쌓게 되었다고 한다.[4] 너무 잘해줘서 남자친구였던 친구들이 만날때는 망각할정도로 의기양양해지다가 나중에 울면서 찾아오거나 빌면서 찾아오거나 매년 찾아오거나 등등 정말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5] 여담으로 해당 사유 때문에 핸드폰 번호만 3번이상 바꾼 경험이 있고 자취하던 집을 여러차례 이사한적이 있다고 한다.[6] 당시 한쪽이 찢어진 원피스나 빨간헤어 같은 의상들을 입었다고 한다.[7] 그 때 그 계기가 좋은 전환점을 주었다고 생각하는게, 마이크로 코르그라는 악기를 통해 음악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전자음악 및 일렉트로닉 음악을 하는것에 더욱 영감을 얻게되었고 그게 발전하여 현재의 테크노가 완성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