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임한 직위 | |||||||||||||||||||||||
|
<colcolor=#ffffff> 제6대 녹색당 공동대표 김찬휘 Kim Chanhwi | |
<colbgcolor=#5CB32E> 출생 | 1965년 ([age(1965-01-01)]세) |
서울특별시 | |
학력 | 배재고등학교 (졸업)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경제학 / 학사) |
현직 | 선거제도개혁연대[1] 대표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운영위원 |
소속 정당 | [[녹색당(대한민국)|]] |
경력 | 티치미 영어 강사 대성마이맥 영어 강사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부소장 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 농어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2] 교육홍보위원장 비례민주주의연대 운영위원 경기도기본소득위원회 위원 녹색당 정책자문위원 녹색당 공동대표[3] 녹색정의당 공동대표 |
SNS | |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교육인 출신 사회운동가, 민간 연구가, 정당인. 녹색당의 제6대 공동대표.
티치미·대성마이맥 등 사교육 업체에서 영어 강사로 재직했으며, 한석원, 한석만, 최인호 등과 함께 온라인 교육 사업 붐이 일던 초창기 '무료 인터넷 강의'를 핵심으로 내세운 '티치미'에서 활약하며 높은 인지도를 얻었다. 한때 김기훈·김정호·정지웅·로즈리·최원규 등과 함께 인터넷 강의 초창기를 대표하는 영어 강사 중 한 명이었다. 그래머 바이블, 쾌도난마, EBS 변형독해 시리즈 등 유명 영어 교재를 만들기도 했다. 2014년 학원가에서 은퇴한 뒤 사회 개혁을 위한 시민운동과 연구 활동에 매진하기 시작했는데, 선거제 개혁을 통한 다당제 정치 구현과 기후 위기 대응 등 진보적인 의제를 공부하고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섰다. 이후 녹색당 당원으로서 정치에 입문, 제6대 공동대표로 선출되었다.
녹색당 대표로 재임하던 중 2024년 제22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의당과 선거연합정당 '녹색정의당'을 결성, 선거에 참여했으나 원내 입성에 실패했다. 이후 동년 5월까지 대표로 재임한 뒤 비상대책위원회 지도부에게 이임하고 물러났다. 이후 시민단체 '선거제도개혁연대'의 대표로서 비례대표제 확대 등을 골자로 하는 선거제 개편 운동을 이끌고 있다.
2. 생애
2.1. 대학 졸업 이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4][5]를 졸업했다. 학원강사 경력일 때는 서울대학교로만 나와 있었으며 한때 대한민국에 학력 위조 광풍이 불 때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동문 조회에 김찬휘가 조회가 되지 않아 구구한 억측이 돌았다.하지만 당시 김찬휘는 강사 예명이었고 본명이 따로 있기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이었다. 후에 강사 예명으로 개명을 한 것으로 보이며, 지금은 서울대학교 총동창회 동문조회에 김찬휘가 조회가 된다. 네이버 인물정보[6]에서도 확인이 된다. 대학시절에는 학생운동을 활발히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같은 84학번이자 운동권 친구로 박종철이 있었고, 박종철의 사망사실을 투옥 중 알게되자 감옥에서 크게 울었다고 한다. 한때 "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를 맡기도 했다.
2.2. 학원강사 시절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지 못하여 학원계 영어강사로 나서게 되어 90년대 한때 노량진에서 강의했지만 학원에서 부당해고를 당했고, 이후 운동권 시절부터 절친한 사이였던 한석원[7]과 서울 지도를 펴놓고 어디서 학원을 열면 잘될까 고민하다가 가장 아파트가 많은 동네인 대치동에 '깊은생각 학원'을 차렸다. 이 당시는 대치동이 지금과 같은 곳은 아니었다.
2000년대 이후 인강 산업이 태동하게 발빠르게 대응했다. 이미 메가스터디가 가장 먼저 인강 산업에 뛰어들어 시장을 독과점하고 있었는데, 여러 후발 주자들이 나타났지만 제대로 성공한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 망했다. 하지만 김찬휘와 한석원은 평등한 교육의 기회를 기치로 과감하게 전강의 무료를 선언하며 인강 사이트인 티치미를 설립했다. 김찬휘가 대표이사이자 영어 강사를 맡았고, 한석원이 수학을 맡았다. 당시는 유료 인강 수강료가 지금보다 훨씬 비쌌던 시절이었고[8], 공교육 인강인 EBS는 지금과 달리 질적으로 매우 뒤떨어지던 시대였기 때문에 무료인강이었던 티치미는 엄청난 인기 몰이를 했다.
2004년 강남구청 인터넷수능방송을 만든 산파다. 당시 강남구청 사업추진단이 한석원과 김찬휘를 찾아왔고 둘이 국어의 조동기, 과학의 이범을 초대하고 이범이 사회의 최강을 초대하여 5인 대표강사진을 구축했다. '인강'이란 말도 모르던 강남구청 공무원들에게 인강에 대해서 가르쳐 주고 edu.ingang.go.kr 이란 도메인도 따 주었다고 한다.
티치미에서 오쏘독스 그래머(2004년)라는 타이틀의 문법 강의를 했고 이후 그래머 바이블로 바뀌었다. 강의 변천사는 그의 강의 중에 아주 자세히 설명된다.
이후 메가스터디 견제를 위해 윤도영, 박상영을 영입하는가하면 2년여만에 결국 티치미를 유료화하는 등 허덕이는 통에 이제는 아재가 된 여러 학생들이 심하게 실망하기도 했던 흑역사가 있다. 결국 허덕이던 티치미는 결국 디지털대성에 팔렸다. 당시 대성학원 측이 지지부진하던 대성마이맥을 본격 성장시키기 위해 티치미를 인수하려 했는데, 이때 김찬휘와 한석원이 거액을 벌었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경영이 어려웠던 티치미 재수학원을 살리고 직원들과 강사들의 고용을 보장받기 위해 깨끗이 손을 털었다 한다.
이후 대성이 운영하는 3개 사이트(대성마이맥, 비상에듀, 티치미)에서 강의를 판매하게 되었다. 하지만 김기훈, 김정호, 정지웅 등 기존 경쟁자에다가 로즈리, 이충권, 심슨, 최원규, 이명학에게 밀렸고, 특히 대성마이맥 내에서도 이명학에게 완전히 밀리게 되었다.
2014년 11월을 마지막으로 강사직에서 은퇴했다.
2.2.1. 강의 스타일
7형식론으로 강의하던 대표적인 강사 중 한 명이었다. 2000년대에 기존 문법적 영어 학습법에 대한 회의론이 심각한 수준으로 제기될 때 기존 영문법인 성문영어식 문법의 상징인 5형식론을 비판하면서 7형식론을 강의했던 강사들이 일부 있었다. 물론 전부 망했다. 다만 김찬휘는 수능 강의에서는 7형식론을 그다지 거론하지는 않았고, 주로 그래머 바이블 강의에서 7형식을 이야기했다. 참고로 2000년대 초반 "10년 동안 영어를 배워도 말 한마디 못한다"는 한 마디로 대표되는 문법 무용론이 제기되었고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기존 영어 공부 방식은 오히려 언어 습득에 해가 되니 아예 모든 영어 공부를 하지말고 그냥 영어를 듣기만 해도 6개월이면 영어에 통달할 수 있다는 거의 도시전설급 수준의 저서 '영어공부 절대로 하지마라!'가 장기 베스트셀러에 등극하는 현상까지 나타났다. 하지만 문법을 제외하고 회화 위주로 영어를 학습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력이 기초 수준에서 늘지 않고 정체되는 것을 스스로 절감했고, 2000년대 후반 이후 취업난으로 인한 토익 열풍, 그리고 수능 영어의 난이도 상승으로 인해 오히려 기존 성문영어식 5형식 문법 강의가 90년대보다도 더욱 활성화되었다. 게다가 2010년대 이후 성문영어에서 한단계 더 나아가서 문형 기반 구문 강의가 발전하면서 80~90년대 성문영어의 전성기 시대보다 오히려 문장 구조 분석 기법이 정교해졌다. 또 원서 문법책이 많이 전래되면서 조동사 등 성문영어에서 시대에 뒤떨어진 일부 내용이 시대에 맞게 수정되었다. 특이한 점은 한국에서는 2000년 이후 그런 원서 영문법책이 대거 도입되면서 성문영어에 대한 비판론과 더불어 한때 성문식 문형 문법책을 대체하는 듯 하더니 이내 실패하고 오히려 성문영어식 문법 틀 안에 원서 영문법의 내용들을 부분 부분 집어넣어서 보강하는 방식으로 문법 교재와 강의가 발전하게 되었다. 결론적으로 2010년대 영어 교육은 본고사로 대입 시험 난이도가 정점에 있었던 90년대보다 오히려 5형식 문형을 바탕으로 한 문장 구조 분석식 강의가 훨씬 강화되었다. 2010년대 중반 이후 현재 7형식론으로 강의하는 강사는 수능, 공무원, 토익, 토플을 모두 포함해서 더이상 보이지 않는 듯 하다.김찬휘는 자신의 강의를 ‘현대식 영문법’이라고 강조하면서, 다른 강의들을 '구식 문법', '일본식 문법', '일본식 구식 문법 용어'[9], '문장의 형식론'이라고 하면서 대차게 까는데, 이런 발언은 주로 경쟁 강사들, 특히 김정호 등을 타겟으로 하는 발언으로 여겨진다.
일본과 관련된 문법학의 전문가급이라서(...) 강의하면서 일본을 정말 많이 거론한다. 모든 문법 용어 하나 하나에 대해 다 일본놈들이 붙인 이름이라며, 일본인들이 이런 명칭을 붙인 이유는 물론이고 그것에 대해 잘했느니 못했느니 하며 비평을 한다. 영어 어원이나 영어학적 관점에서 용어의 유래가 어떻게 되는지는 설명 안해도 일본놈들이 왜 이렇게 명칭을 붙였는지는 꼭 설명하거나 비평을 하고 넘어간다. 물론 본인이 전지적 비평가적 입장에서 일본을 평한다. 일본을 까는 듯 하지만 은근히 칭찬을 많이 한다. 일본 문화, 역사, 특히 근대화 과정에 대해 매우 빠삭하다. 일본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많아 입이 근질근질하다. 일본 관련 잡소리만 빼도 강의가 상당히 줄어들 정도. 일본식 영문법을 맨날 까지만 알고보면 그 누구보다 일본식 영문법을 자세히 설명해 준다. 강의를 듣다보면 심지어 일본 역사와 문화까지 빠삭해 진다. 집중해서 강의를 보지 않으면 본 내용은 기억 안나고 일본 관련 이야기만 기억에 남을 정도.
전체적으로 설명이 빠르고 좀 산만한 스타일이 단점으로 꼽히며, 이것을 염두에 두고 선택해야 한다. 학생들이 졸지 않게 하기 위해서 과장된 특유의 말투와 몸짓을 하는 것이 특징인데, 이것이 오히려 몰입을 방해한다는 평도 있다. 강의 중에 자주 개드립과 ‘’’노래’’’, 과장된 몸짓을 해서 호불호가 갈리는 편. 본인은 스튜디오 강의이다 보니 지루해질 수 있다고 학생들을 위해 몸소 희생(?)하는 거라고 언급했다.
문법에서는 시제-조동사-조건문에 특화되어 있으며, 이쪽이 전체 강의의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함께 티치미를 세웠던 동료이자, 마르크스 전집 번역으로 운동권에서는 레전드인 최인호도 가정법 부분을 집중적으로 파면서 "안티 성문종합영어"라는 책을 낸 적이 있다. 이 안티 성문종합영어로 인지도를 얻었고 결국 티치미를 론칭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시제-조동사-조건문을 제외한 부분은 날림이라는 비판이 있다. 특히 동사, 구문에 있어서 비판을 받기도 하며, 많은 학생들이 김정호를 선호하게 된 이유로 꼽히기도 한다.
또 강의 분량이 매우 긴 편이라는 것도 단점으로 꼽힌다. 실제 강의 자체가 긴 것보다 위에 나온 것처럼 일제식 용어라고 신랄하게 까거나, 자신의 오쏘독스 그래머와 그래머 바이블 시절의 차이점 등 일반 학생들 입장에서 불필요하다고 느낄 수 있는 부분을 길게 설명하느라 시간을 잡아 먹는 감이 있다. 본인이 자신 있어하는 시제와 그 후속 부분을 제외하면 의외로 빠르게 대충 설명하고 넘어가는 부분도 많다. 김정호 역시 강의 분량이 매우 길어서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어쨌든 김정호는 문법 심화 강의에서는 정지웅과 함께 가장 인정을 받기 때문에 긴 시간을 감안하고 듣거나 아니면 중위권을 타겟으로 하는 심슨 등 짧은 강의로 넘어가는 편.
강의에서 설명 방식이 다른 강사들에 비해 이해하기 어려운 편은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다. 이런 평가를 의식해서인지 나중에 중,하위권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기초강의인 fundamental이나 edge 시리즈를 만들기도 했다.
현강을 하지 않는다. 오로지 지하 강의실에서 카메라 앞에서 혼자서 하루종일 강의만 찍는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과도 거의 만날 일이 없다고 한다.
목소리와 억양이 매우 과장된 편인데, 과거 90년대 성문종합영어의 공식 비디오 테이프에서 강의한 최선식 선생과 강의 스타일이 매우 비슷하다는 평이 있다. 목소리와 억양이 매우 비슷하다.
2014년 수능이 끝나고 인강에서 은퇴를 선언했다.
2.3. 은퇴
2014년 11월 16일에 은퇴를 이야기하는 고별사가 올라왔다. 다음은 고별사 내용.고별사 - 김찬휘 긴 시간을 달려 왔습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제 곁에 늘, 여러분들이 함께 있었다는 것이 저에게는 가늠할 수 없는 감사함입니다. 떠오르는 제자들의 모습들이 있습니다. 졸업하는 날 공부했던 반 친구들의 사진과 글들을 모아 손수 앨범을 만들어 주었던 학생. 시험 전날 밤을 꼬박 새면서 함께 시험 대비를 하고 새벽에 바로 등교하던 제자들. 시골에서 엄마가 직접 짜 준 참기름을 주섬주섬 꺼내던 지방 출신의 착하던 그 제자. 무엇보다 저로 인해 공부의 즐거움을 영어 공부의 즐거움을, 더 나아가 살아간다는 것의 즐거움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던 제자들. 그 제자들이 있어서, 사실은 제가 더 행복했습니다. 이제 이 모든 것을 기억의 저편으로 보내려고 합니다. 저는 2014년 11월을 마지막으로 학원강사 20년, 인터넷강사 10년의 삶을 접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늘 보아왔지만 늘 낯선 나의 삶을 민낯으로 새롭게 바라보고자 합니다. ‘인간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만을 스스로에게 제기한다’고 하죠. 아무리 봐도 틀려 보이는 이 말을 믿어 보려 합니다.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Here must all distrust be left; All cowardice must here be dead. - The Divine Comedy, Dante |
은퇴하고 나서 한동안 추종자들이 있었다. 쾌도난마, EBS 변형독해, 바이블에 대한 언급들이 많은데 아래의 이야기가 회자되기 때문이다.
2012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약 한달 남은 시점에서 각종 PC방을 전전하던 한 중하위권 재수생이 위기감을 느끼고 EBS 수능특강부터 공부를 하던 중, 외국어 EBS를 한번에 여실히 분석해준다는 인강을 수만휘에서 추천받아 수강하였다. 그게 바로 김찬휘의 'EBS 변형독해'였던 것.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던 때라 그런지 글의 요지와 선생님이 짚어주는 핵심 단어를 위주로 공부했는데, 완강했을 때는 많은 지문이 수능까지 연상되었다고 하고 결국에는 외국어 부문에서 2등급을 받은 성적을 인증했던 적이 있다. 이것이 당시 인터넷에서 전설처럼 회자되었다.
또 그래머 바이블 강좌는 입시 커뮤니티에서 현대식 영문법을 총망라한 강의로 찬양받기도 한다. 쾌도난마와 더불어 거의 한국어답게 깔끔한 번역을 가능하게 가르치는 강의라는 평이 있다. 다만 이 강의만을 위주로 공부한다고 하면 모르겠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자기 것으로 만들려면 많은 시간, 적어도 2년이 걸린다.
2014년 김찬휘가 은퇴하면서 더 이상 그래머 바이블을 들을 수 없게 되자, 그래머 바이블은 이제는 더이상 볼 수 없는 과거의 유물로 회자되며 전설이 되어갔다. 그래머 바이블 교재를 중고로 10만원 이상의 고가에 파는 장사꾼들도 나타났고, 동영상 강의를 어둠의 경로에서 판매하기도 했다.
나중에 김찬휘 본인이 인터넷에 교재와 강의를 무료로 공개했다.[10]
2.4. 이후
현재는 블로그를 통해서 배낭 여행 등에 대한 근황을 전하고 있다.2015년 말부터 영문법 강의인 Orthodox Grammar나 Grammar Bible을 무료로 업로드 하기 시작하여 현재 주요 강의가 업로드 되어 있는 상태며 교재도 PDF로 공개하고 있다.
Grammar Bible 같은 경우는 은퇴 이전 현역 시절에도 좋은 평가를 받았던 강의였는데, 영어 공부에 관심이 있는 학생이라면 시간이 날 때 들어보면 좋다. 직접 김찬휘 선생님이 올리지 않은 강의도 유튜브에서 검색하면 개인이 올린 것을 찾아볼 수 있다. [11]
강사 은퇴 직후 디지털대성의 입시전략연구센터장으로 재직하며 입시설명회 강사로 활동했다. 티치미 시절부터 인터넷방송 형태의 "김찬휘의 입시늬우스"를 진행해 인기를 끌더니 담당 과목을 아예 바꿨다.
2015년 12월, 진보적 성향의 연구소인 정치경제연구소 대안[12]의 부소장이 되었다. 정치경제연구소 대안에서 운영하는 경제심층 전문 팟캐스트 <이럿타>[13]에 고정멤버로 출연하고 있다. 대체로 진보적 성향의 학자들이 모인 곳으로 보인다. 오랜 강사 출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진보적 교육정책에도 관심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 연구소 홈페이지에서 이름이 빠진 것으로 볼 때 연구소를 관둔 것으로 보인다.
2019년에 유튜브에 김찬휘TV를 오픈하고 유튜버로 변신하였다. 과거 영어 강의 자료와 함께 다양한 정치경제 관련 동영상을 올리고 있다.
2.5. 정치활동
2020년에 비례대표제 선거개혁 운동을 하는 '비례민주주의연대' 공동대표로 선출되었다. 이 단체는 최근에 선거제도개혁연대로 명칭을 변경하였다.2021년 7월 13일 제6기 녹색당 공동대표로 당선되었다. # 이후 김예원 공동대표가 대마초 복용 혐의로 입건되며 사실상의 단독대표직을 맡았다.
22대 총선을 앞두고 녹색당이 정의당과의 선거연합을 의결하며 2024년 2월 3일 김준우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과 함께 녹색정의당 공동대표로 선출되었다.
2.5.1. 녹색정의당 공동대표
녹색당과 정의당의 선거연합이 결의되고 난 뒤, 첫 행보로 삼척의 석탄화력발전소 인근을 찾았다. 김찬휘 대표는 "이곳이야말로 녹색과 노동의 정치가 필요한 최전선"이라고 말하며 비산먼지로 인한 피해와 탄소감축계획 악화를 우려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단순 환경문제가 아니라 탄소관세가 정착되어가는 국제 시장에서 석탄화력발전소를 추가 건설하면 경제에도 타격이 온다는 경고를 한국 사회에 던졌다. #또한 그저 대안없이 석탄화력발전소를 감축시키는 것이 아니라 삼척·강릉의 석탄발전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유지보수 업체들을 포함한 모든 발전 노동자들을 단계적으로 100% 정규직 고용이 보장되는 재생에너지 노동자로 전환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했다.
2024년 4월 10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녹색정의당이 단 한 명의 당선자도 내지 못하며 원외로 밀려나는 참패의 성적표를 받아들었고, 이후 정해진 수순대로 탈당해 녹색당으로 복당했다. 동년 5월 말 임기가 만료되었고 김순애·이치선 공동위원장의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출범하면서 당대표직에서 물러났다.
[1] 원래 '비례민주주의연대'라는 이름으로 창립된 선거제 개혁 운동 단체로, 2021년 9월 2일 임시총회를 통해 명칭을 '선거제도개혁연대'로 바꾸었다. 여담으로 이 명칭은 뉴질랜드에서 선거제 개혁(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이끌어내는데 큰 역할을 한 시민단체 'Electoral Reform Coalition'과 같은 이름이다.[2] 2020년 2월 18일 '농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라는 이름으로 창립하였고, 2023년 2월 9일 전국어민회총연맹의 가입을 승인하며 명칭을 '농어민기본소득전국운동본부'로 개칭하였다.[3] 남녀 각 1인을 당대표로 선출하는 녹색당 원칙에 따라 김예원 대표와 함께 선출된 공동대표였지만, 김예원 대표가 대마 소지 및 흡연 혐의로 기소되어 대표직에서 물러난 뒤로 사실상 단독 대표 체제를 이끌었다.[4] 당시에는 법대보다 커트라인이 높았다고 한다. 84학번. 이과는 의예과보다 물리학과가 높았다고 한다.[5] 참고로 당시는 졸업정원제 실시로 서울대 정원이 무려 6000명이 넘던 시절이었다.[6] https://search.naver.com/search.naver?sm=tab_hty.top&where=nexearch&query=%EA%B9%80%EC%B0%AC%ED%9C%98&oquery=%EC%A0%95%EC%A2%85%EA%B6%8C&tqi=hIIOXwp0J1sssd2Pgphssssss8Z-106206[7] 한석원도 데모로 인해 복역 전력이 있다.[8] 심지어 수학1 강의 하나에 100만원 하는 강의도 있었다. 이정도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인기 수학 강의는 한 강좌당 50만 원 내외로 지금 기준으로는 상당한 고가였다. 프리패스라는 개념은 훨씬 나중에 생겨났다.[9] 성문종합영어 용어-간단한 예시로 무인칭 독립분사 구문이 있다.[10] 다만 교재는 pdf파일인지라 제본을 한다던지 아니면 중고 교재를 구하는 방법 이외에는 없다. 자세한 건 여기로.[11] 어차피 강사를 은퇴하고 주요 강의를 공개한 분이니, 저작권에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정보공유 차원에서 올린듯.[12] 글로벌 자본주의가 놓여 있는 역사적 국면을 분석하고 대안을 탐색하는 진보적 연구자들로 구성되어있다(https://alternative.house/)[13] https://www.youtube.com/channel/UCJqphqZN9fW74oxevmPml-Q/featur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