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金泉 葛項寺址 東·西 三層石塔 出土 舍利莊嚴具. 1916년 경상북도 김천시 갈항사(葛項寺) 터의 동·서 삼층석탑(국보 제99호)을 경복궁으로 이건하던 중 발견된 통일신라 시대의 사리기 4점과 준제다라니 1점. 현재 국립대구박물관에서 소장 중이며, 대한민국 보물 제1904호로 지정되어 있다.2. 내용
동삼층석탑 사리장엄구 (사리호1, 사리병1)
서삼층석탑 사리장엄구 (사리호1, 사리병1)
준제진언다리니경
신라 경덕왕 17년인 758년에 만들어진 한국의 사리장엄구로, 김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대한민국 국보 제99호) 안에서 발견된 것이다. 사리호 2점, 사리병 2점, 준제진언다리니경 1점으로 이루어져 있다.
갈항사는 경상북도 김천시 남면에 있었던 사찰로서 통일신라 초기의 승려 승전(勝詮)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데, 이 사찰 터에 있던 김천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을 경복궁으로 이건하던 중 본 사리장엄구 및 기타 유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사리장엄구는 동탑과 서탑 모두 동제 항아리 안에 금동병을 넣은 상태로 기단 아래 사리공에 안치되어 있었고, 보존처리를 하면서 금동병 안에서 준제진언 다라니 1매를 추가로 발견하였다. 항아리 모양의 금속 외함과 수병(물병) 형태의 금동병을 사리장엄구로 사용한 예는 현재까지 거의 발견되지 않아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
758년이라는 명확한 제작 연대 및 언적법사(言寂法師)와 그의 두 누이들이 제작했다는 조성주체 기록이 상세히 남아 있어 통일신라 사리기 연구에 있어 절대 편년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중요한 유물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지금으로부터 1,300여년 전 한국의 불교 문화와 공예술에 대하여 연구할 수 있다.
2016년 7월 1일 대한민국 보물로 지정되었다.
3. 외부 링크
4. 보물 제1904호
지정사유 이 사리장엄구는 1916년에 갈항사 터의 동·서 삼층석탑을 경복궁으로 이건하던 중 발견되었다.
갈항사는 통일신라 초 승전법사(勝詮法師)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절로 동탑(東塔)의 상층기단(上層基壇) 면석(面石)에 경덕왕(景德王) 17년(758) 언적법사(言寂法師)와 그의 두 누이가 함께 발원하여 이 탑을 건립하였다는 사실이 적혀 있는데, 사리장엄구도 탑의 건립과 함께 봉안된 것으로 생각된다.
사리장엄구는 동탑과 서탑 모두 동제항아리 안에 금동병이 넣어진 상태로 기단 아래에 마련된 사리공에 안치되어 있었다. 그 중 서탑에서 발견된 동제사리호는 뚜껑의 꼭지와 몸통의 두 귀를 청동 끈으로 연결하여 묶은 사리호로 9세기 이후 뼈항아리로 많이 사용된 연결고리 유개호와 관련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두 탑의 사리병은 나팔형으로 벌어진 길고 아름다운 목과 균형 잡힌 타원형의 몸통을 가졌는데, 이러한 병의 형태는 8세기대 동아시아에서 유행했던 병의 형태를 따르고 있는 것으로, 당시의 시대상을 뚜렷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특히 동탑의 사리병은 죽절형의 목과 꽃잎형의 굽을 달아내어 신라인들의 뛰어난 미적 감각도 엿볼 수 있다.
이 사리기는 통일신라 감은사 식의 전각형 사리기와 달리 호형의 외함 안에 정병과 유사한 금속제 병을 사리병으로 봉안한 독특한 형식의 사리기이다. 최근의 보존처리를 하면서 작은 크기의 금속제 병에서 준제진언(准提眞言) 다라니 1매가 발견되어 당시의 불교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특히 동탑 상층기단에 기록된 건립연대를 통해 사리기의 제작연대와 조성주체를 알 수 있어 통일신라 사리기 연구의 절대 기준자료라는 점에서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가치가 크다.
갈항사는 통일신라 초 승전법사(勝詮法師)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절로 동탑(東塔)의 상층기단(上層基壇) 면석(面石)에 경덕왕(景德王) 17년(758) 언적법사(言寂法師)와 그의 두 누이가 함께 발원하여 이 탑을 건립하였다는 사실이 적혀 있는데, 사리장엄구도 탑의 건립과 함께 봉안된 것으로 생각된다.
사리장엄구는 동탑과 서탑 모두 동제항아리 안에 금동병이 넣어진 상태로 기단 아래에 마련된 사리공에 안치되어 있었다. 그 중 서탑에서 발견된 동제사리호는 뚜껑의 꼭지와 몸통의 두 귀를 청동 끈으로 연결하여 묶은 사리호로 9세기 이후 뼈항아리로 많이 사용된 연결고리 유개호와 관련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두 탑의 사리병은 나팔형으로 벌어진 길고 아름다운 목과 균형 잡힌 타원형의 몸통을 가졌는데, 이러한 병의 형태는 8세기대 동아시아에서 유행했던 병의 형태를 따르고 있는 것으로, 당시의 시대상을 뚜렷하게 반영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다.
특히 동탑의 사리병은 죽절형의 목과 꽃잎형의 굽을 달아내어 신라인들의 뛰어난 미적 감각도 엿볼 수 있다.
이 사리기는 통일신라 감은사 식의 전각형 사리기와 달리 호형의 외함 안에 정병과 유사한 금속제 병을 사리병으로 봉안한 독특한 형식의 사리기이다. 최근의 보존처리를 하면서 작은 크기의 금속제 병에서 준제진언(准提眞言) 다라니 1매가 발견되어 당시의 불교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특히 동탑 상층기단에 기록된 건립연대를 통해 사리기의 제작연대와 조성주체를 알 수 있어 통일신라 사리기 연구의 절대 기준자료라는 점에서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가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