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3863><colcolor=#fff> 대한민국의 교수 김항묵 金恒默 | Kim Haang Mook | |
출생 | 1944년 2월 15일 |
경상북도 선산군 도개면 다곡리 (現 경상북도 구미시) | |
사망 | 2023년 2월 1일 (향년 78세)[1] |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원동 삼성서울병원 | |
학력 | 경북사대부고 (졸업) 경북대학교 (지질학 / 학사) 경북대학교 대학원 (지질학 / 석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지질학 / 박사) |
경력 | 부산대학교 자연과학대 지구환경시스템학부 지질환경과학전공 교수 자연사학회 회장 대한지질학회 총무간사 한국 고생물학회 상임이사 국립대학 통합추진위원장 부산 해양자연사박물관 운영위원장 부산 해양항만청 자문위원장 재부 구미시 향우회 회장 유네스코 육상백악계 대비 연구사업 한국대표 |
가족 | 배우자, 슬하 1남 2녀 김태헌·김유지·김도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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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교수.2. 생애
1944년 경상북도 선산군 도개면 다곡리(현 구미시)에서 태어났다. 경북사대부고에 다니던 시절 지구과학 과목 선생님이 “우리나라 지질 관련 자료가 없다. 지자기 등 지질학 연구하면 국가적으로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추천한 게 진로를 결정하는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1962년 경북대학교 지질학과에 입학했고 1966년 대학 전체 종합수석으로 졸업하였다. 1968년 동 대학원 지질학과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1976년 서울대학교 대학원 지질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국내 지층학 분야 제1호 박사이다.
박사과정 중이던 1973년 1월 20일 박사논문 부논문을 준비하기 위해 고향에 내려와 조카와 함께 산책하던 중 경북 의성군 금성면 탑리 봉황재 산복도로에서 형태가 특이한 뼈를 발견한다. 이 화석의 골편을 만들어 일본 전문가에게 보여준 결과 골편에 있는 하버스계[2]를 확인, 국내 최초의 공룡화석 발견자로 인정받았다. 즉 국내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공룡화석인 대형공룡 용각류의 상박골(앞다리뼈)을 발견한 거히다. 그리고 일본 학자에게 보여주기 이전에 당시 은사에게 보여주자 “공룡의 화석같다”며 “국내에는 공룡연구자가 없으므로 네가 해보라”라고 권유를 받았다. 그렇게 그는 소뼈를 구해 연구하는 등 공룡 연구에 뛰어들었다.
이후 1976년 9월 부산대학교 지질학과 교수로 임용되었다. 부산에 내려오자마자 황령산 기슭에서 구상반려암을 시작으로 경상남도 함안군 여항면 양촌부락 뒷산에서 공룡발자국 화석 등등 곳곳에서 공룡화석을 잇따라 발견했다. 그는 그때 야외에 나가면 공룡화석이 눈에 바로 들어왔다고 밝혔으며 다른 학자는 일생에 공룡화석을 발견하는 일이 손꼽을 정도인데 자신은 이런 발견을 300여 번이나 했다고 자랑스러워 했다.
1999년 이러한 발견을 토대로 “경상남·북도 퇴적함 지층(경상계) 속에는 공룡화석이 층층이 보존되어 있다”는 공룡유적보존의 법칙도 정립했다. 이러한 공룡유적 보존의 법칙을 발표하는 등 활동을 인정받아 영국 캠브리지대학 국제전기록센터의 국제 지성인 74명에 등재됐고, 한국의 과학자 33인에도 선정되었다.
2009년 정년 후 공룡학과 자연사학을 정립하는데 정열을 쏟았다. 그러던 2012년 영도에서 발견한 옛 석호를 복원하기 위한 공법발명특허도 획득했다. 그러나 영도 옛 석호와 공룡화석 등 자연사 유적이 제대접을 받지 못하고 난개발되면서 삶에서 가장 힘든 시기를 겪었다. 그리고 그는 "남한에는 250여 개의 옛 석호가 있다. 낙동강 하구가 지금처럼 퇴적되기 전에는 수십개의 석호가 발달되어 있었다. 낙동강 하구를 아무렇게나 개발하지 말고 베니스처럼 석호를 바탕으로 개발하면 진정한 물의 도시가 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또 영도 옛 석호와 낙동강 하구 개발방안을 연구하는 한편 암남공원 및 두도에서 발견된 앵무새룡 화석에 대해 중국 연구팀과 공동연구를 진행하였다.
3. 사망
2023년 2월 1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79세.4. 저서
- 공룡의 재발견
- 매머드는 왜 멸종되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