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7 14:17:47

나고야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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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3대 명성
오사카 성 구마모토 성 나고야 성
오사카부 오사카시 구마모토현 구마모토시 아이치현 나고야시
※: 나고야성 대신 히메지 성이나 히코네 성을 꼽기도 한다.
<colbgcolor=#BE0529><colcolor=#fff> 나고야 성
[ruby(名, ruby=な)][ruby(古, ruby=ご)][ruby(屋, ruby=や)][ruby(城, ruby=じょう)] | Nagoya Castle
파일:external/www.uraken.net/0002.jpg
형태 <colbgcolor=#fff,#2d2f34>, 궁전
건설 1609년 (게이초 14년)
도쿠가와 이에야스
폐성 1871년 (메이지 4년)
소유주 나고야시(현재)
궁내성(1893년~1930년)
주소 아이치현 나고야시 나카구 혼마루 1-1

1. 개요2. 역사3. 구조
3.1. 혼마루 어전3.2. 천수각
4. 여담5. 찾아가는 길

[clearfix]

1. 개요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에 위치한 성. 오랫동안 고산케의 하나인 오와리 도쿠가와가의 성이었다. 일본 100명성 중의 하나이며 금성(金城)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2. 역사

나고야성의 역사는 도쿠가와 천하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곳에 처음 성을 쌓았던 것은 이마가와 가문으로, 당시에도 이름은 같았지만 '那古野城' 으로 한자를 달리 썼다. 이후 오다 노부나가의 아버지인 노부히데가 이 성을 차지해 거성으로 삼았는데, 노부나가도 이 성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측된다. 오다 가문이 서쪽으로 세력을 확장하면서 거성도 기요스, 기후, 아즈치 등지로 옮겨간 다음에는 차츰 필요성이 사라져 폐성되었다. 오다의 동쪽은 동맹인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영지였으므로, 그 건너편에서 다케다 신겐 같은 적이 쳐들어와도 거기서 막으면 되었다.

이곳이 다시 부상한 것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주목하면서부터이다.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리를 압박하기 위해 이에야스는 오사카를 몇 겹으로 포위하는 형태로 각지에 가신들을 파견해 성을 쌓았다. 오와리 국의 축성 후보지로는 기요스성이 있었으나 규모가 작고 수해가 잦다는 점 때문에 탈락시키고 지금의 나고야성 부지를 선정했다. 나고야성 축성에는 가토 기요마사,[1] 가토 요시아키, 후쿠시마 마사노리, 호소카와 타다오키, 구로다 나가마사 등 20명의 다이묘가 동원되었다.

메이지 시대 판적봉환 당시 번에서는 성의 건물을 철거하고 자재를 팔아 각종 비용에 충당하고, 천수각 꼭대기의 긴샤치(金鯱)는 신정부에 바칠 계획이었다. 그런데 계획을 알게 된 독일 제국 공사 막스 폰 브란트가 철거하지 말 것을 건의했다.[2] 그리고 그의 의견이 받아들여져 나고야성은 폐성령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후 나고야성은 육군성 관할을 거쳐 궁내성 산하에 들어가 나고야 이궁이 되었다.

1930년에 소유권이 나고야시로 넘어갈 때 주요 건물들이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1945년 태평양 전쟁 당시 미군의 네이팜탄 공습으로 거의 모든 건물이 불탔고 전후에 성은 복원되었지만 문화재에서는 제외되었다. 지금은 몇 개 그림들만 중요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2018년 5월 7일부터 천수각이 폐쇄되었다. 내진 능력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어 폐쇄하였으며 2022년 준공을 목표로 목조 복원에 착수하였다. # 2018년 5월 30일 성 외부에 철골 구조물을 덧대는 작업이 진행 중에 있었으며 작업이 완료되면 복원이 완료될 때까지 아예 외부를 덮어버릴 것이라 한다. 이후 절차상의 문제로 22년 12월 준공 계획은 틀어져 이보다 늦은 시점에 개방될 예정이다.

3. 구조

파일:169-nagoya.jpg
에도 시대 당시 나고야 성의 전경을 그린 그림

3.1. 혼마루 어전

파일:나고야성 어전.jpg

나고야성 혼마루에 있는 어전은 영주의 주거와 번의 정무를 위한 공간으로 설계되었지만 번의 정청이 니노마루로 옮겨진 이후에는 쇼군이 교토에 행차할 때 중간 숙소로 사용했다.[3] 혼마루 어전은 성의 위용에 걸맞게 면적이 4천 제곱미터가 넘는 건물이었다. 에도 막부 초기 서원 건축의 대표적인 사례로 일본의 국보였지만 천수각과 함께 소실되었다. 다행히 내부를 장식하던 장벽화들은 따로 보관한 덕에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2009년부터 3단계 복원 공사에 착수, 2018년 6월 8일 완료하였다. 입구에 안내원이 있는데 그중 나이 지긋한 남성분이 한국말을 엄청 잘한다. 2019년 7월 기준으로 약 30초 가량의 동영상 시청 후 입장할 수 있다.

3.2. 천수각

파일:나고야1.jpg

나고야성 천수각은 사상 최대의 규모로 유명하다. 축성을 맡은 다이묘들이 공사 구역을 나눌 때 가토 기요마사가 자청해 천수대를 맡은 덕에 기반이 훌륭하게 조성되었다. 성곽 공사 후에는 코보리 엔슈, 오쿠보 나가야스 등이 건물 부분 공사를 시작했다. 천수각은 남쪽의 소천수와 북쪽의 대천수가 와타리야구라를 통해 이어진 연결식 천수이다. 1945년 태평양 전쟁 와중에 공습을 받아 소실되었다가 1959년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해 재건되었다.

2000년대 들어 50년이 넘어 건물이 노후화되고 현대의 내진 설계 기준과 맞지 않는 점이 지적되었다. 대대적인 보수 혹은 해체 후 재건 등의 대안이 제시되었는데, 현재 목조로 재건하는 방향으로 추진 중이다. 최근 나고야시가 채택한 안에 따르면 복원 비용은 최대 500억엔. 2017년 6월부터 해체 공사를 시작해, 2020년 도쿄 올림픽 이전까지 완료하는 것이 목표이다. 일각에서는 여론조사 결과 해체 후 목조 복원에 찬성하는 의견이 그리 높지 않았던 점이나[4] 졸속 복원의 가능성을 들어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으나 최종적으로 2017년 3월23일, 2022년을 목표로 철근콘크리트로 복원한 현재의 천수각(天守閣)을 목재로 다시 복원하기로 나고야 시의회에서 의결했다.[5]

파일:external/underzero.net/tz_200_165.jpg

천수각 꼭대기를 장식하는 킨샤치는 나고야성의 상징이다. 샤치(鯱)는 상상의 바다 동물[6]로, 건물의 화재를 예방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아즈치성을 시작으로 오사카성이나 에도성 천수각에도 설치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모두 소실, 결국 나고야성에만 남아 있게 되었다. 무려 320kg의 을 사용해 만들어 값어치가 대단했기 때문에 오와리 번에서도 애지중지했다. 18세기에는 훼손을 막기 위해 철망으로 두르기도 했다. 국가 차원에서도 킨샤치를 대단한 자랑거리로 생각했는지 1873년 빈에서 열린 만국박람회를 비롯해 국내 여러 박람회에도 출품했다. 문화재 이전에 귀금속으로서의 가치가 높기 때문에 킨샤치를 벗겨 먹으려는 시도도 여러 번 있었는데, 스타트는 번주인 오와리 도쿠가와 가문이 끊었다. 번에 재정난이 닥칠 때마다 금을 긁어내 재원으로 활용한 것. 메이지 시대 이후에도 3번의 도난 사고가 있었다. 1937년에는 소유권이 나고야시로 이전될 때 조사 과정에서 금으로 된 비늘 58개가 도난당해 시장이 사임하는 등 큰 소동이 벌어졌다. 전국적인 수사를 벌인 끝에 장물 거래를 하던 범인을 체포하는 것으로 해피 엔딩이었지만 어차피 8년 후에 공습 때에 다 불타버렸다. 지금 있는 킨샤치는 1976년 다시 만든 것이다. 나고야시 교통국의 마스코트 하치(ハッチー)의 모티브가 되었다.

4. 여담

혼마루 해자에는 사슴이 살고 있다. 동물원에서 3마리를 기증받아 기르던 것이 한때 50마리가 넘을 정도로 번식했으나 지금은 2마리만 남은 상태다. 해자 보수 공사 등으로 사슴이 풀을 뜯을 수 있는 면적이 줄어든 것이 원인이다. 도다이지 마당의 사슴들과는 너무도 다른 처지다.

일본 성의 페이퍼 크래프트를 제작하는 Facet에서 혼마루 어전을 재현해 내놓았다. 예전에는 파일을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었는데 완성도를 높여 상품화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5. 찾아가는 길

메이테츠 히가시오테역이나 나고야 시영 지하철 나고야조역(나고야성역)에서 내린다. 입장료는 500엔.

도니치 에코 킷푸가 있으면 400엔에 이용 가능하다.

[1] 그래서인지 가토 기요마사의 동상이 있다.[2] 그가 나고야성을 방문했을 때 천수각의 풍경과 혼마루 어전의 장벽화에 특별한 인상을 받은 것으로 추측된다.[3] 에도 막부 260년간 단 세 명의 쇼군만이 이용했다. 막부가 안정에 접어든 이후 쇼군이 교토의 천황을 알현하러 갈 이유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막말에 집권한 14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모치는 여러 번 교토를 오가며 천황의 권위를 등에 업고자 했으나 일찍 사망해서 실익을 거두지 못했다.[4] 2014년 시행된 인터넷 설문조사 결과, 현재 천수각을 유지하면서 내진보강, 개수를 한다 : 71%, 해체 후 목조로 복원한다 : 15%, 해체 후 지금과 같은 철골 철근 콘크리트로 재건한다 : 3%.[5] 2017년 3월 23일 'NHK 뉴스 워치 9' 보도.[6] 중국의 이문과 비슷한 형태.영어로는 돌고래를 의미하는 dolphin으로 해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