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5-30 20:23:35

남명천화상송증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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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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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내용3. 판본의 종류4. 목판인가? 금속활자본인가?5. 공인본에 보이는 초기 금속활자의 특징6. 기타7. 보물 제758호

1. 개요

南明泉和尙頌證道歌 보물 제758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 당나라 현각이 저술하고 이후 송나라 법천이 주석한 책이나, 한국에서는 고려시대에 들여와 세계최초의 금속활자본으로 만들어졌다.

직지심체요절 보다 138년 앞선 금속활자본이다. 이미 문헌 등에서 상정고금예문과 더불어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본으로 기록되어 있다. 현재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두 판본은 더 후대에 만들어진 목판본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 연구 결과 두번째 판본인 보물 758-2호는 목판본이 아니라 금속활자본이라는 증거가 나오고 있다. 학계에서 정론이 되기 까지 시간이 걸리겠지만, 만약 금속활자본인 것으로 밝혀진다면 기존에 직지심체요절이 가졌던 '현존하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본'이라는 타이틀을 가져올 것으로 보이며, 세기의 보물로 지정될 것이다.

2. 내용

「증도가」는 당나라의 현각(玄覺)이 깨달은 바를 시의 형식으로 저술한 책이다. 서역으로 전해져 유명해진 까닭으로 「증도가」는 조사선의 최고 경전으로 추앙받는 「육조단경」과 함께 선종의 2대 경전으로 불린다. 「남명천화상송증도가」는 증도가의 각 구절 끝에 송나라의 남명선사(南明禪師) 법천(法泉)이 7자 3구씩 총 320편을 읊어붙여 증도의 깊은 뜻을 보다 구체적으로 밝힌 책이다.

한자를 풀이하면, '남명천+화상+송+증도가'가 되며, '남명선사 법천이라는 화상(고승)이 낭송한, 도를 깨닫는 노래'.

3. 판본의 종류

고려에서 발행된 ‘남명천화상송증도가’는 1239년 수선사에서 찍어낸 것이다. 현존하는 ‘남명천화상송증도가’는 모두 10여종으로 전해지는데 그 중 4책이 같은 판본으로, 목판본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출판박물관에 소장 중인 삼성본(보물 제758-1호), 공인박물관에 소장 중인 공인본(보물 제758-2호), 대구 스님 소장본(문화재 신청 중), 개인 소장본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중 공인본은 금속활자본이고 다른 책은 목판본각본으로 각기 다른 판본이라는 게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의 주장이다.

종로도서관 고문헌 검색시스템에서 원문을 볼 수 있으며 종로도서관 소장본은 1526년(중종 21) 황해도 연탄군의 자비산 심원사에서 목판본으로 간행한 책이다.

4. 목판인가? 금속활자본인가?

重彫鑄字本
금속활자본으로 다시 주조한다.
최이의 발문중.
책에는 “<남명증도가>가 널리 유통되지 않자 기해년(1239년) 주자본(금속활자본)을 ‘중조(重彫)’했다”는 무신정권의 실력자 진양공 최이(?~1249)의 발문이 붙어있다. 그러나 확실한 연도(1239년)가 기록된 이 책들은 목판본으로 알려져 왔다. 발문의 ‘중조주자본(重彫鑄字本)’ 구절을 ‘금속활자본을 모본으로 해서 다시 목판으로 판각한다’는 뜻으로 해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이의 발문 중 ‘중조주자본(於是募工 重彫鑄字本)’ 구절은 ‘주자본(금속활자본)으로 다시 주조한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 박상국 한국문화유산연구원장의 주장이다. 그 동안 금속활자본을 다시 목판본으로 새긴다고 해석해 왔지만 그것은 오독이라는 것이다. 남명증도가는 1931년 경성제대 도서관 주최 ‘조선활자인쇄자료전’과 1954년 서울대·연희대 전시회에 잇달아 소개 되었는데 그 전시회에 소개된 남명증도가는 모두 목판본이었기에, 최이의 발문을 ‘목판본의 발문’으로 철석같이 믿게 됐다는 것.

5. 공인본에 보이는 초기 금속활자의 특징

공인본에는 금속활자의 특징이 나타난다. 주조 기술 미비로 인해 야기된 획 뭉침이나 탈락이 많고, 특히 글자마다 균등하게 주조되지 못해 농담의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이다. 실제 삼성본은 판면이 평평한 목판에서 간행한 것이므로 농담의 차이가 없고 목재가 갈라지거나 쪼개지는 현상이 많이 보인다.

공인본에는 초창기 금속활자본의 특징인 글자 뭉침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는 점도 눈길을 끈다. 박 원장은 “공인본에는 쇠를 불에 달구어 불릴 때 달아오른 쇠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가 활자에 달라붙어 생기는 글자 뭉침들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글자 뭉침들로 획이 붙어서 이상하게 굵어지기도 하고 먹이 뭉친 것처럼 보이는 글자들을 찾을 수 있으며 이는 초창기 기술 미숙으로 생긴 현상으로 목판본에서는 있을 수 없는 글자들이다." 라고 말하였다.

6. 기타

  • 자세한 내용은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를 참조.기사 유튜브
  • 남명증도가를 새겼던 금속 활자체를 증도가자라고 하는데, 2015년 증도가자 유물이 진품인지 조작인지에 대한 논란이 일었고 결국 조작으로 결정났다. 그러나 증도가자는 '활자'고, 이 남명천화상송증도가는 적어도 과거에는 실제로 존재했을 그 금속활자로 인쇄한 '문서'이며 증도가자 진위 논란과 직접적 관련은 없다는 의견이었다. 하지만 증도가자의 진위여부를 논할 때 나왔던 판본이 남명증도가 판본이었으며, 당시에는 목판본으로 추정했지만 금속활자본을 모방한 목판본으로 추정했기에, 이 판본으로 활자의 동일 여부를 비교하였다. 그런데 이 판본이 흉내낸 목판본이 아니라 온전한 금속활자본으로 밝혀지게 된다면 그 전에는 금속활자와 목판은 그 성질과 특색이 다르기 때문에 간접 비교 였다면 이제는 금속활자와 금속활자본을 직접 비교할 수 있기 때문에, 다시금 검증을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 전에 조사했던 증도가자의 물적 특성과는 별개로 문자 비교 분석학의 중요한 판별 지점이기에 이 결과에 따라 증도가자에 대한 이의 제기와 학술연구도 활발해 질 것이다.

7. 보물 제758호

‘남명천화상송증도가’는 당나라 영가대사 현각(永嘉大師玄覺, 665~713)이 육조 혜능(六祖慧能)을 배견(拜見)하고 깨우친 오도(悟道)의 경지를 표현한 증도가(證道歌)의 각 구절 끝에, 송(宋)나라 남명 법천선사(南明法泉禪師)가 320편을 계송(繼頌)하여 증도(證道)의 뜻을 구체적으로 밝힌 책으로 선가(禪家)에서 매우 중시하는 서적이다.

권말에 수록된 최이(崔怡, ? ~ 1249)의 지문(識文)에, “남명증도가(南明證道歌)는 선가에서 매우 중요한 서적이다. 그러므로 후학(後學) 가운데 참선을 배우려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 책을 통해서 입문하고 높은 경지에 이른다. 그런데도 이 책이 전래가 끊겨서 유통되지 않고 있으니 옳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각공(刻工)을 모집하여 주자본(鑄字本)을 바탕으로 다시 판각하여 길이 전하게 한다. 때는 기해년(己亥, 1239) 9월 상순이다. 중서령 진양공 최이는 삼가 적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를 통해서 이 판본의 제작 동기와 1239년 당시 최고의 권력자인 최이에 의하여 주자본(鑄字本)을 번각(飜刻)하여 간행한 목판본임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 판본의 판각시기인 1239년보다 앞선 시기에 『남명천화상송증도가』가 활자로 인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판본은 본문에 구결토(口訣吐)가 묵서되어 있으며, 광곽 중 판면의 세로 높이가 서로 다른 부분도 있고, 각 장의 글자를 보면 크기, 굵기, 길이 등에 차이가 있다. 글자 배열도 전체의 각 장은 8행이나 39장의 후면만은 7행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총 44장 판심 하단에는 그 판을 새긴 11명의 각수가 나누어 새겼음을 표시하고 있다. 또한 글자 획에 나무 결이 나타난 것이 있는가 하면 어떤 글자는 획이 끊어지거나 일부를 잃은 것도 자주 나타나고 있어 주자판(鑄字版)을 중조(重雕)한 번각본의 후쇄본임을 알 수 있게 한다.

『남명천화상송증도가』의 금속활자본(金屬活字本)이 전래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지문(識文)에서나마 우리나라 초기 금속활자인쇄술의 정황을 살펴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 가치가 매우 높다. 더불어 불교학(佛敎學) 및 서지학(書誌學) 연구에도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