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1-10-14 17:01:59

남상권



성명 남상권(南相權)
생몰 1892년 11월 12일 ~ 1963년 8월 4일
출생지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목리
사망지 전라남도 강진군
매장지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추서 대통령표창

1. 개요2. 생애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6년 대통령표창을 추서받았다.

2. 생애

남병희는 1892년 11월 12일 전라남도 해남군 해남읍 목리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9년 4월 1일 김동훈(金東勳), 안정석(安正錫), 안유석(安儒錫) 등의 설득을 받아들여 해남읍에서의 독립만세시위를 준비했다. 그는 태극기 제작을 위한 백지와 당목(唐木)을 자진해 내놓았고, 김동훈은 대화동에 소재한 자신의 집에서 목판(木版)을 만들어 김경두 등과 함께 종이 태극기 800여 개와 당목으로 대형 태극기 6개를 만들었다. 이들은 거사일을 4월 11일로 정하고 4월 6일 해남 보통학교 학생들의 거사를 찬양, 선전하면서 시민들에게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할 것을 촉구했다.

이윽고 4월 11일 오전 9시경, 남상권 등 거사 주동자들은 해남로의 대로에서 당목으로 만든 큰 태극기를 휘두르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남상권은 작은 기를 사람들에게 나눠줬고, 김흥룡(金興龍)이 대형태극기를 들고 앞장서 행진을 벌였다. 그러자 시민들이 대열에 참가하면서 시위대는 천여 명에 달했다. 이에 경찰이 무력으로 저지해 시위대를 해산시켰고, 남상권 등 수십 명이 체포되었다. 이후 그는 1919년 5월 10일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5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후 강진군으로 이사가서 그곳에서 조용히 지내다 1963년 8월 4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남상권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다. 그리고 2008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