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남창녕(南昌寧) |
생몰 | 1919년 1월 9일 ~ 1977년 6월 15일 |
출생지 | 평안남도 평양시 신양 |
사망지 | 경기도 성남시 |
매장지 |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
추서 | 건국훈장 애족장 |
1. 개요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2. 생애
남창녕은 1919년 1월 9일 평양에서 태어났다. 그는 1941년 2월부터 1942년 3월까지 일본 도쿄에서 동지 김통한(金通漢)과 회합하고 독립의식을 고취하는 방법으로 조선민족 고유의 풍습, 습관, 역사, 예술 등을 소재로 하여 영화를 제작해 조선인들이 관람하게 함으로서 독립의식을 일깨우기로 결정하고 이를 추진하다가 1942년 7월 경찰에 체포되었다. 이후 가혹한 고문을 받은 그는 1942년 10월 경도구치소에 구금되어 7개월간 예심을 받았고 1943년 6월 8일 경도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른 뒤 출옥 후에도 감시를 받아가 8.15 해방으로 자유의 몸이 되었다. 이후 북한의 급격한 공산화를 피해 월남하여 경기도 성남시에서 조용히 살아가다가 1977년 6월 15일에 사망했다.대한민국 정부는 1977년 남창녕에게 대통령표창을 추서했고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1995년에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