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4 12:39:45

노르셰핑

<colbgcolor=#006aa7><colcolor=#fecc00> 파일:스웨덴 국기.svg
‎노르셰핑
Norrköping
행정
국가
[[스웨덴|
파일:스웨덴 국기.svg
스웨덴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외스테르예틀란드 주
시간대 UTC+1/+2
시장 안나 소트카시이라 뷔크
(Anna Sotkasiira Wik)
인문 환경
인구 137,326명
인구밀도 2,446명/km²
면적 35.68km²
기후 냉대 습윤 기후(Dfb)
홈페이지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역사3.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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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스웨덴 외스테르예틀란드(Östergötland) 주의 도시. 수력 발전방직 산업이 발달하여 스웨덴의 맨체스터라는 별칭이 있다. 스웨덴어로 노르셰핑은 북쪽(Norr)의 시장(Köping)이라는 의미.[1]

2. 역사

중세 시기부터 모탈라 강 하류에 위치한 현재의 노르셰핑 일대에 정착민들이 모여 살았으며 12세기에 노르웨이의 성왕 올라프 2세에게 헌정되었다는 교회에 대한 기록이 전해진다. 1283년, 스웨덴 국왕 발데마르의 왕비인 덴마크의 소피가 근처 수도원에 연어 낚시에 대한 권한을 주었다는 기록에서 처음 언급되며 14세기 무렵 알브렉트 왕으로부터 도시의 지위를 받았다. 다만 중세 시대의 흔적은 에리크 14세 시대에 벌어진 북방 7년 전쟁으로 인해 현재 남아있지 않다. 현재의 노르셰핑은 요한 3세때 재건되었다.

구스타브 2세 아돌프에 의해 스웨덴 무기 산업의 중심지로 성장했으며 17세기에는 수도 스톡홀름의 뒤를 이어 리보니아리가와 스웨덴의 제2의 도시 지위를 두고 경쟁했다. 그러나 이후 덴마크와의 연달은 전쟁으로 피해를 입었으며 대북방전쟁 당시 루스 차르국 군대에 의해 약탈을 당하기도 했다. 대북방전쟁이 끝난 후 재건되었고 1762년에는 스웨덴 최초의 극장이 지어졌다. 1800년 구스타브 4세 아돌프는 노르셰핑의 성 올로프 교회에서 대관식을 치렀다.

19세기 중반에 들어서 선박 사업이 발달했으며 이후 면화, 제지 공업이 발달했다. 20세기에 들어서는 섬유 공업도 발전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인건비에서 이탈리아, 일본 등에 밀리며 쇠퇴하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는 문화와 교육의 중심지로 다시 일어서고 있다.

3. 기타



[1] 외스테르예틀란드 주에는 쇠데르셰핑(Söderköping)이라는 도시가 있는데 이곳은 남쪽의 시장이라는 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