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9-24 03:35:34

노태공

노 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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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9ACD32> 노(魯)나라 초대 국군
태공
太公
희(姬)
노(魯)
백금(伯禽)
아버지 주공단(周公旦) 희단(姬旦)
생몰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998년
재위 기간 음력 기원전 ???년 ~ 기원전 998년
1. 개요2. 생애

[clearfix]

1. 개요

노나라의 초대 군주. 주공단(周公旦)의 아들. 노고공, 노양공(魯煬公)의 아버지. 그는 서융(徐戎)의 난을 평정하고 주례(周禮)로써 나라를 다스렸다고 전해진다.[1]

2. 생애

원래 아버지 주공 단이 노나라에 봉지를 받았으나 그는 주나라의 정사를 돌보아야 해서[2] 아들인 그를 대신 보낸 것이다. 주공 단이 아들인 공자 백금에게 충고했다.
"가거라! 너는 노나라에 가서 선비들에게 교만하지 말거라. 나는 문왕(文王)의 아들이며, 무왕(武王)의 아우이고, 금상[3]의 숙부이다. 또한 천자를 보필하며, 내가 천하에서 맡은 지위 역시 가볍지 아니하다. 그러나 나는 머리 한 번 감을 때 세 번이나 머리채를 잡고, 밥 한 번 먹을 때 세 번이나 뱉어내더라도, 오히려 천하의 선비를 잃을까 두려워했다. ······ 겸손치 아니하여 천하를 잃고 그 몸을 망친 자가 걸(桀)과 주(紂)이니, 삼가지 않음이 가당키나 하겠느냐!"

그리하여 노나라의 군주가 되니 그가 바로 노 태공이다.

노 태공이 3년 간 나라를 다스리고 주나라에 노나라의 상황을 보고했다. 그런데 주공 단이 아들 노 태공을 꾸짖었다.
"너는 어째서 보고가 늦었느냐?"
노 태공이 대답했다.
"제가 풍속과 예의를 다듬고, 어머니 3년 상을 치르느라 늦었습니다."
그런데, 제나라의 시조인 강태공은 5개월 만에 일을 마쳤다.[4] 주공 단이 물었다.
"제후께서는 어째 일처리가 이리 빠르시오?"
강태공이 대답했다.
"예의를 간소화해 그 풍속에 익숙하게 하는데 그렇게 걸렸다오."
거기까지 들은 주공 단이 탄식했다.
"노나라는 필시 제나라의 손에 잡혀살 것이다. 예의가 간소화 되지 않으면 백성들이 따르지 않는다. 쉬우면 백성들은 모이게 되어 있다."[5][6][7]

후일 노 태공의 백부 관숙 선, 숙부 채숙도 등이 주공 단의 섭정에 불만을 품고 그들이 감시하는 무경과 짜고 반란을 일으키니 그것을 바로 삼감의 난이라 한다. 거기다가 서융들과 회이들이 반란을 일으켜 노나라를 쳤다. 노 태공은 힐서를 지어 병사들을 소집해 그들을 물리쳤다.

노 태공이 죽고 아들 공자 유가 즉위하니 그가 바로 노 고공이다.


[1] 후술했듯 노 태공이 그 적용을 지나치게 빡빡하게 해서 주공 단에게 꾸짖음을 들었다.[2] 자신의 봉지인 소주(小周)도 소주거니와, 종주국인 주나라의 재상인지라 그곳 정사도 무시할 수 없었다.[3] 당시는 주성왕(周成王) 대였다.[4] 3개월이라는 말도 있다. 헌데 주나라에서 제나라까지의 거리를 감안하면 당시 기솔로 5개월이면 거의 왔다가 돌아간 수준이 아닐까 싶다...[5] 공자가 존경하는 주공 단 조차 허례허식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음을 인지했음을 알 수 있다.[6] 참고로 이렇게 제나라와 노나라는 그 시조의 성향이 극단적으로 달라서인지 제나라는 제후국들 중에 가장 실리를 따졌고 반대로 노나라는 주나라의 예법이 잘 살아있었다. 다른 건 둘째치더라도 그 공자의 고향이 노나라다. 허나 한편으로 주공 단의 탄식대로 정말로 노나라는 제나라가 강해지면서 쩌리 신세가 되었고 내부적으로도 군주와 유력가문들의 힘싸움이 이어지며 쇠퇴하다가 전국시대 후기에 초나라에 의해 멸망한다. 노나라의 나라꼴이 어찌나 엉망이었던지 훗날 사마천은 사기에서 노나라를 두고 예는 보존되었으면서 나라꼴은 어째서 그 모양이었냐고 디스했다.[7] 사기 노주공세가 출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