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15:40

노(도구)

1. 개요2. 역사3. 노 젓는 방식과 노잡이
3.1. 서양식 노젓기
3.1.1. 고대: 센실레 방식3.1.2. 스칼로치오 방식의 등장
3.2. 동양식 노젓기
4. 기타5. 관련 문서

1. 개요

파일:Paddle.gif
櫓 / Oar[1]
마음호수요, 그대 노 저어 오오.
김동명, '내 마음은'
배를 젓는 데 사용되는 도구. 일종의 주걱처럼 생긴 나무를 이용해 사람의 힘으로 을 밀어내어 그 반작용으로 추진력을 얻는 원리다.

한국어 동사 '젓다'도 길쭉한 물건을 목적어로 쓰는 식으로 용법이 상당히 제한되어있는데, '노'는 특히나 '젓다'하고만 주로 쓰이는 특성을 보인다.

2.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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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기기관이 발명되기 전 과 함께 선박의 동력을 얻기 위해 사용했던 대표적인 동력 기관 중 하나이다.

바람의 영향을 크게 받는 데다 정교한 움직임을 취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물건이었다. 그래서 돛을 설치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보트에서 노를 사용한 것 이외에, 전근대 전투함선은 기본적으로 노를 장비하고 있었다. 때문에 급할 때에는 손상되기 쉬운 돛을 접어서 보호하고 노로 이동하는 것도 가능했다.

대항해시대대서양 항해에서 범선이 더 유리해지면서 노잡이 배는 점점 쇠퇴하게 되었고, 증기기관이 발명되면서 돛이고 노고 그런 동력원은 필요없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호수공원 같은 곳에서 모터 보트는 면허가 필요하고 소음이 커서 분위기를 해치기 때문인지 자전거 페달 구조의 노를 저어서 움직이는 오리 보트가 많다. 겉보기에는 운치있어 보이지만 아래의 노잡이에 대한 설명에서 알 수 있듯이 무척 고되다.

3. 노 젓는 방식과 노잡이

파일:external/www.choongmoogongleesoonsin.co.kr/07403.jpg 파일:external/866cf35c7de98822e9bfd2d9ab565a111ce29829886e84ca4ba3ab9387c49623.jpg
조선 수군의 노잡이(격군[2])
(불멸의 이순신)
로마군 갤리선의 노잡이
(벤허)
무척 고된 일이기 때문에 주로 노예들이 이것을 다루는 역할을 맡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서양의 경우 중세 이전에 갤리선 노잡이들은 노예가 아니었다. 로마 같은 경우는 노예로 땜빵하기도 했던 거 같은데, 이것도 팍스 로마나가 성립된 제정시대 이후에나 이야기고 해군력이 가장 절실했던 포에니 전쟁 전간기에는 대부분 시민으로 때웠다. 그리고 이것은 고대 지중해 세계의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현실적으로 노예에게 이 일을 시켰다간 만에 하나, 노예가 도망갈 경우 답이 없어져 버린다.

처음에는 전투병들과 같은 갑판 위에 노출되는 경우도 흔했으나 발전한 갤리선, 판옥선, 안택선 같은 함선의 경우 중간에 별도의 갑판을 만들어 직접적인 공격으로부터 격군을 보호할 수 있거나[3] 노를 젓는데 집중할 수 있게 하였다. 보통 이들은 전투에 직접 참여할 일은 거의 없지만 유사 시에는 직접 전투에 뛰어드는 경우도 있었다.

카누, 조정의 경우 노를 얼마나 잘 젓느냐로 승부를 가린다.

3.1. 서양식 노젓기

노를 물 밖으로 꺼내어가며 배의 뒷 방향으로 물을 밀쳐내는 방식. 추진력이 좋지만 파도의 영향을 많이 받고 피로도가 높으며, 노가 많은 배의 경우엔 조작인원들의 숙련도가 많이 요구된다.

3.1.1. 고대: 센실레 방식

이를 설명하기 위해선 일단 갤리선에 노젓기라는 기술을 이해해야 한다.

고대에는 일반적으로 노 1개마다 1명이 붙어서 노를 젓는 센실레(alla sensile)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3단 노선, 5단 노선 이야기를 하는데 3단으로 구성된 좌석이 노잡이들이 앉아서 3열로 배치된 노를 젓고 있는게 3단 노선이고, 5단 노선의 경우에는 노마다 1명 또는 2명[4]을 배치해서 노를 젓게 했다.

문제는 노의 간격이 상당히 좁았고, 또 길이도 상당히 길었다는 것. 그렇기에 어설프게 노예들을 마구 때리면서 썼다간 노끼리 엉키거나 서로 부딪칠 수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었다. 이게 굉장히 심각한 문제인데, 최악의 경우 배가 전혀 원치 않는 방향으로 진행하거나(이를테면 노를 한쪽에서만 젓게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든지) 배 자체가 기동력을 완전히 상실할 수 있었다. 꼬인 노를 풀어내는 건 간단한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니까 말이다. 급박한 전투상황이라면 최악의 경우 진형을 유지하던 우군 함정끼리 충돌하는 것까지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고대 노잡이들은 호흡이 무엇보다 중요했고, 이 호흡은 말로 가르친다고 되는게 아니기에 수많은 경험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숙련된 노잡이들은 국가의 매우 귀중한 인적 자원이었다. 배는 있어도[5] 엔진, 연료와 다름없는 노잡이가 없으면 배를 돌릴 수 없으니까 말이다. 실제로 펠레폰네소스 전쟁 시기에 아테네 해군은 전염병 때문에 인구가 크게 줄어서 보유 함선의 30~40%정도 밖에는 가동시킬 수 없었는데, 당연히 노잡이의 부족이 가장 큰 문제였다. 키우는 데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에서, 노잡이는 귀한 인적 자원이었고 노예들로 땜빵해서 채찍질로 시킬 수 있는 직업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리스 최강의 해군력을 자랑하는 아테네의 경우, 이 노잡이들이 아테네의 정계 개편과 민주정의 발전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마라톤 전투로 유명한 1차 페르시아 전쟁에서는 육군이 중요했지만, 2차 페르시아 전쟁은 살라미스 해전에서 드러나듯이 해군 또한 중요했으며 페르시아군이 아테네를 불사를 때에 시민들을 보호해 주었던 것도 아테네의 해군이었다.

그래서 아테네가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하자, 노잡이나 선원으로 복무하여 입지가 커진 테테스(아테네 최하위 계층)들이 정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으며 이들은 재산이 부족해 중장 보병으로 복무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참정권과 영향력이 대부분 거세당해야 했던 설움을 풀려 했다.

아테네 정부 입장에서 페르시아 전쟁 이후로 아테네가 에게 해와 이오니아 해의 해상 패권을 차지하고 해상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시기에 노잡이와 선원으로 활동하는 테테스들을 무시한다는 것은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였고 기득권층인 아테네의 귀족들조차 2차 페르시아 전쟁에서 테테스들이 노잡이로서 기여한 공적을 부정할 수가 없었다.

이러한 이유로, 페르시아 전쟁 이후의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크게 발전하게 된다. 민회의 권한이 강화되고 귀족 회의는 약화되었으며 기존에는 펜타코시오메딤노이(제1계급), 히페이스(제2계급)들만 독점하던 고위 관직들이 제3계급인 제우기타이에게도 개방되었다. 기존에는 무급이었던 공직자에게 수당을 지급하여 재산이 부족한 테테스들도 공직에 참여할 수 있게 하고 테테스 계층의 민회, 500인회, 법정으로의 진출도 확대되었다. 노잡이들이 역사를 바꿔 버린 것이다.

센실레 방식일 때도 가끔 노예를 쓸 때가 있기는 했지만, 그 가끔이라는 건 전쟁처럼 급박한 상황으로 노꾼 수요가 폭증했을 때, 그리고 이럴 때에도 미리 자유민으로 해방 시켜주거나 후에 해방을 시켜주겠다는 약속으로 사기와 의욕을 올려줬다. 실제로 아테네 정부는 아르기누사이 전투 직전, 노예들에게 노잡이로 복무한다면, 해방시켜주겠다는 약속을 했고 전후에 노예들을 해방시켜 주었다.

3.1.2. 스칼로치오 방식의 등장

사람들이 생각하는 채찍 맞는 노잡이들은 기술 발전으로 1개의 노에 복수의 인원이 달라붙어서 젓는 스칼로치오(a scaloccio) 방식이 개발되면서 생겨났다.

이럴 경우 가장 바깥쪽의 1명만 숙달되어서 노의 방향을 조종하면 되기 때문에 나머지는 비숙련 인력을 채워도 된다. 이러면서 점점 노잡이들의 대우가 안 좋아지기 시작한다. 그나마 베네치아 같은 경우는 좀 나았는데, 크로아티아의 달마티아 지방 같은데서 자유민들을 노꾼으로 모집하고 이들에게 간단한 무장을 지급하여 만약의 경우 전투원으로도 썼다. 하지만 구호기사단이나 아랍 바르바리 해적들의 경우에는 베네치아마냥 할 수는 없었다. 레판토 해전바르바리 해적들이 편든 오스만 투르크 측이 패배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에 있다. 그나마 신성 연합 같은 경우 노잡이들 중에 자유민들이 많았으나 바르바리 해적들을 포함한 오스만 투르크 측의 노잡이들은 거의 대부분이 기독교도 노예들이었기 때문에 함선 운용이 제대로 될 수 없었던 것.[6] 자세한 건 갤리선 문서 참조.

3.2. 동양식 노젓기

노를 물 밖으로 꺼내지 않고 8자 형태로 저어가며 배와 45도 각도로 물을 밀쳐내는 방식. 추진력이 낮은 대신 파도의 영향을 적게 받는다.

동양 수군에선 '격군(格軍)'이라고 해서 이걸 잡는 역할도 자유민 군인에게 맡긴 듯 하다. 조선에서는 신량역천(身良役賤)이긴 하지만 일단은 양민들 중에서 차출했고, 일본에서도 다이묘들이 영지 주민 중에서 차출해서 썼다.

노를 다루는 방식은 물 속에 넣고 당겨 나아간 다음 물 밖으로 빼내어 되돌리는 방식(흔히 TV에서 등장하는 갤리선 방식)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한선의 경우 대부분은 조립식 대형 노를 물 속에 잠기게 둔 채로 물 속에서 휘저어 추진하는 방식이었다. 삿대나 줄이 없이 건너다니는 나룻배에 쓰이는 방식도 동일하다. 실제로 거북선 그림을 보면 노 갑판이 배 측면으로 튀어나와 그 아래로 노를 늘어뜨리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런 형태로 노가 설치되면 갤리선과 같은 방식으로는 노를 저을 수가 없다.

한선의 노는 손잡이가 붙는 윗노와 물에 잠기는 아랫노로 나뉘고, 이 두 부품이 노좆과 노씹[7]이라는 부품으로 연결되는 거대한 구조를 하고 있다. 물 밖으로 빼려 해도 뺄 수가 없는 물건이고, 정비할 때는 아예 물에 잠기는 부분을 갈아치우도록 되어 있다.

이름만 보고 오해 할 수도 있지만 동양이라고 동양식 노젓기만 사용되지는 않았다. 조선에서도 서양식의 노가 발견되었고, 사용목적에 더 어울리는 노를 취사선택 하여 적용하였다. 일반적으로는 노의 가속력이 덜 필요한 민간함이나 소형함에는 동양식 노를, 그리고 전투함(판옥선 등)이나 대형함(조선통신사선 등)의 경우엔 서양식 노를 사용하였다 (참고: 2021년 판옥선 복원 학술 보고서).

4. 기타

  • 물이 얕은 곳에서 물 밑바닥을 밀어내는 도구는 '상앗대(삿대)'라고 한다.
  • 서양에서는 산갈치의 모양이 노를 닮았다고 해서 산갈치의 영어명에 노의 영어명인 'oar'를 붙여 'Oarfish'라고 부른다.

5. 관련 문서



[1] Paddle, Scull이라고도 한다.[2] 조선의 수군은 신분은 양인이지만 천민으로 대우받는 신량역천의 하나였는데, 그 중에서도 격군은 3D 업종이었다.[3] 물론 측면으로 적함이 화포를 난사하거나 충각으로 들이받는 경우에는 장담을 못한다. 드라마영화만 봐도 잘 알 수 있다.[4] 5열로 노를 배치하기에는 기술적으로 어렵지 않았냐 싶은 게 현대의 연구 결과이다.[5] 고대의 갤리선 건조는 근대 이후의 전함 건조에 비면 시간과 물자가 소요가 훨씬 적었다. 뭐, 이것도 돈 먹는 하마이긴 하지만...[6] 스페인 측 함선이나 구호기사단 함선에는 노예가 많았다. 스페인측은 종교 재판등을 통해 마련한 죄수들을 노잡이로 쓴 것. 그리고 구호기사단의 함선에는 지중해 일대에서 붙잡은 무슬림 노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다만 기사단의 함선은 해전에서 비중이 높지 않았고, 스페인 함선의 경우 이슬람권과 달리 노잡이 중에 이교도 노예보다는 죄수들이 더 많았고, 이들은 형량을 채우거나 다 채우지 않아도 성실하다고 평가되면 사회 복귀가 가능했으므로 가혹한 대우를 받는다 쳐도 최소한의 동기부여는 됐다.[7] 부품 이름이 꽤나 민망한데, 사실 민간에서 쓰이던 말에 음담이 조금씩 섞이는 건 꽤 평범한 현상이다. 비슷한 예로 원래 이름이 자지복인 물고기, 자주복이 있다. ...그렇다. 그 자지가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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