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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abd00><colcolor=#c60b1e> 누에바그라나다 부왕령 Virreinato de la Nueva Granada Viceroyalty of New Granad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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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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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기 | 국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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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 | |||
국가 | 국왕 행진곡 Marcha Real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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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에바그라나다 부왕령의 영토, 1739~1777년. | |||
1717 ~ 1822년 | |||
성립 이전 | 해체 이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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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란 콜롬비아 | |||
수도 | 산타페 데 보고타 | ||
국가 원수 | 스페인 국왕 └ 누에바그라나다 부왕 | ||
주요 국가 원수 | 국왕 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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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 스페인인 (지배민족) | ||
기타 남아메리카 원주민들 (피지배민족) | |||
언어 | 스페인어 | ||
종교 | 로마 가톨릭 | ||
통화 | 레알 |
1. 개요
남미 북부에 위치해 있었던 스페인의 부왕령이다. 콜롬비아와 에콰도르, 베네수엘라와 파나마, 트리니다드 토바고에 해당하는 지역을 포괄하였다.본래 페루 부왕령의 일부였으나 스페인 부르봉 왕조 초창기인 18세기 초 분리되었다. 분리 이전 페루 부왕령은 리마에 주둔한 부왕과 산타페 데 보고타에 주둔한 총독이 이원화되어 다스리는 구조였고, 스페인 본토와의 교통에 있어서 카르타헤나 데 인디아스에 의존하던 상황이라, 일원화된 행정 확립에 어려움이 있어서 18세기 들어서 분리가 이루어졌다. 1819년 12월 17일 그란 콜롬비아가 독립해 멸망한다.
2. 역사
스페인은 16세기 초 아메리카 대륙 탐험과 정복을 시작하면서, 1530년대 초 프란시스코 피사로와 그의 부하들이 잉카 제국을 정복하는 동안, 이 지역에서는 스페인의 다른 탐험가들이 안데스산맥 북쪽에 위치한 오늘날의 콜롬비아와 그 주변 지역을 탐사하기 시작했다. 1538년, 곤살로 히메네스 데 케사다가 카르타헤나 인근 지역에 부뉴에바 그라나다의 수도인 산타페 데 보고타를 설립하면서, 이곳이 누에바그라나다 총독령의 중심지가 되었다. 누에바그라나다는 스페인의 신대륙 내 행정 구역 중 하나로서, 처음에는 페루 부왕령의 일부였으나 1717년에 별도의 부왕령으로 승격되어 좀 더 자치적인 행정 권한을 갖게되었다.스페인 당국은 누에바그라나다가 카리브해와 남미 서부로 향하는 관문이라서 해적과 밀수업자들이 판을 쳤다. 그래서 페루 부왕령에서 오늘 날의 콜롬비아,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파나마, 트리니다드 토바고에 해당하는 지역을 분리해서 이 일대를 효과적으로 관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에콰도르 일대는 페루 북부와 가까워서 자신들은 페루 부왕령에 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레서 스페인 국왕은 1720년 4월 29일 왕령을 내려 토 지구가 페루 부왕령에 재통합시켰다. 1724년에는 경제적 이유로 누에바그라나다 부왕령이 폐지되어 다시 페루 부왕령 산하로 편입되었으나, 1739년 8월 20일 다시 부왕령으로 재설립되었다. 1740년에는 에콰도르도 다시 누에바그라나다 부왕령에 다시 편입시켰다.
1808년 나폴레옹 군대가 스페인을 침공하자 이는 식민지에 권력 공백을 초래했다. 1809년 8월, 키토에서 후안 피오 몬투파르 등 크리올들이 페르난도 7세에 충성을 맹세하며 본국에서 임명한 당국을 거부하는 자치 정부를 선포했다. 1810년 7월에는 산티아고 데 칼리, 소코로, 팜플로나 등 여러 도시에서 자치 정부가 설립되었고, 7월 20일 산타페(보고타)에서 엘 플로레로 데 요렌테 사건을 계기로 부왕령 중심지에서 반란이 일어나 부왕이 체포되면서 사실상 부왕령 체제가 붕괴되었다. 이 사건은 왕실의 공무원과 크리올로 간 갈등을 이용해 시민들을 동원해 행정기관을 교체하는 계획에 따른 것이었으며, 산타페 민병대는 안토니오 바라야가 지휘했다. 1811년 11월 11일 카르타헤나가 누에바그라나다 지역 최초로 스페인으로부터 완전한 독립을 선언했다. 이후 여러 도시가 독립을 선언했으나, 연방주의자와 중앙집권주의자, 그리고 왕당파 간의 갈등으로 불안정한 내전 시기가 이어졌다. 페르난도 7세가 권력을 회복한 후 1815년, 아메리카 여러 지역에서 반독립 세력이 난립했고, 스페인은 파블로 모릴로 장군을 보내 누에바그라나다와 베네수엘라를 재점령했다. 모릴로는 스페인에서 군대를 이끌고 카르타헤나에 상륙한 뒤 내륙으로 진격해 산타페 데 보고타를 점령했다.
하지만 1819년, 시몬 볼리바르가 이끄는 공화군이 산타페 데 보고타를 점령하면서 부왕령은 해체되었다. 1820년, 스페인 군 지휘관 파블로 모릴로와 볼리바르는 휴전을 맺었고, 볼리바르는 이를 이용해 그란 콜롬비아 공화국을 수립했다. 1821년 봄보나 전투로 적대행위가 재개되었으며, 전투는 양측에 큰 피해를 입혔으나 전략적으로 공화군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이후 콜롬비아, 에콰도르, 베네수엘라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며 스페인의 지배를 종식시켰다. 최종적으로 부왕령 뉴그라나다 영토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했고, 이전 베네수엘라 총독령과 합쳐져 최초의 콜롬비아 공화국, 즉 그란 콜롬비아를 형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