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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Nitocris of Babylon헤로도토스의 저서 '역사'에 기록된 바빌론의 두 여자 통치자 중 한명이다.
2.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의 기록
바빌론의 왕들 중 여왕은 세미라미스와 니토크리스 2명이다.니토크리스 여왕은 유프라테스강을 끌어들이는 대규모 공사를 벌여서 바빌론의 방어를 강화한 일로 유명하다. 여왕은 메디아 쪽을 향한 바빌론의 방벽 주위에 둘레 77.7km에 달하는 거대한 인공호를 만들어 바빌론의 방벽을 강화했고, 유프라테스강에도 수많은 인공수로를 만들어 바빌론으로 통하는 항해길을 매우 복잡하게 했다. 이는 니네베를 침공한 메디아로부터 바빌론을 방어하기 위한 것이었다.
여왕은 매우 총명했지만 동시에 짓궂어서 사람들을 놀리는 일을 즐겨했다고 전해진다. 이를 잘 보여주는 예가 있는데, 니토크리스 여왕이 죽을 때, 묘비에 자신의 무덤에는 보석이 묻혀 있으니 마음대로 꺼내 써도 되지만, 만약 꼭 필요할 때가 아닐 때 연다면 더 큰 손해를 보게 될 것라고 썼다. 그 말을 명심한 바빌론의 국왕 중에는 아무도 그 무덤을 열려는 자가 없었지만, 페르시아가 바빌론을 정복한 이후,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 1세는 그 무덤을 열어보았다. 그러나 무덤 안에는 보물 대신 탐욕을 꾸짖는 여왕의 편지만 들어 있었다고 한다.
키루스 2세가 바빌론에서 공격한 상대는 그녀의 아들로, 그는 아버지의 이름인 라비네투스(나보니두스)와 아시리아의 주권을 물려받았다.[1]
3. 기타
다니엘서 5장에서 벨사살(벨사자르)의 어머니인 여왕이 등장한다.[2] 그녀는 선왕 느부갓네살(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꿈을 신통하게 해몽했던 다니엘을 불러 벽에 쓰인 글을 해석시키도록 벨사살에게 제안했다.바빌론의 니토크리스 여왕의 이름과 사적은 헤로도토스의 '역사'에서만 나오나 다니엘서의 기록까지 고려하면 그녀는 신바빌로니아의 왕위 계승권자로,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왕녀' 겸 '사위 자격으로 왕이 된 나보니두스의 아내' 겸 '벨사자르의 어머니'라는게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설이다. 이는 기존 왕가와 무관한 출신인 나보니두스가 왕이 되고 그의 아들인 벨사자르가 다니엘서에서 네부카드네자르 2세의 자손이라고 묘사되는 의문을 해소시켜준다.
[1] 이 기록으로 니토크리스가 나보니두스의 아내이자 벨사자르의 어머니임을 알 수 있다.[2] 몇몇 성경 번역본에서는 벨사살의 왕비로 번역되었는데, 이는 유럽의 언어에서 여왕과 왕비의 칭호가 퀸 등으로 동일하기 때문에 발생한 오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