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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28b6c6> 셀주크 제국 술탄 다우드 الفارض | |||||
본명 | 다우드 이븐 마흐무드 شرح الخمرية ابن الفارض. | ||||
출생 | 미상 | ||||
사망 | 1143년 | ||||
재위 | 셀주크 제국 술탄 | ||||
1131년 ~ 1133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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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셀주크 제국 술탄. 형제 및 숙부들과 함께 술탄을 놓고 경쟁했으나 끝내 밀려났다.2. 생애
서부 이란과 이라크를 통치한 술탄 마흐무드 2세와 성명 미상의 첩실 사이의 아들이다. 일찍이 아버지로부터 아제르바이잔의 통치자로 선임되었고, 1131년 아버지가 사망한 뒤 아버지의 가신들에 의해 새 술탄에 추대되었다. 그러나 숙부이자 파르스와 이스파한의 통치자인 기야스 앗 딘 마수드가 술탄위를 쟁취하고자 반란을 일으켰고, 호라산의 통치자 아흐마드 산자르는 카즈빈의 통치자 토그릴 2세를 지지했다.다우드는 반란자들을 상대로 승리를 거둬서 입지를 다지려 햇지만, 1132년 7/8월 하마단 인근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토그릴 2세에게 완패했다. 그는 아타베그인 아크 순쿠르 알 아흐마디리와 함께 아제르바이잔으로 피신했다. 이후 아흐마드 산자르에게 패배해 복속해야 했던 마수드가 산자르가 호라산에서 벌어진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회군하자마자 복속을 철회하자, 그는 마수드에게 의탁한 뒤 산자르가 술탄으로 옹립한 토그릴 2세에 대항했다. 그러나 두 사람은 토그릴 2세에게 패배한 뒤 바그다드로 도주했다.
칼리파 알 무스타르시드는 두 사람을 받아준 뒤 1133년 1월 바그다드 아미르들의 지지를 받던 마수드를 술탄으로 책봉했다. 이후 다우드와 마수드는 칼리파의 군대를 등에 업고 북상해 그 해 5월 토그릴 2세를 격파하고 하마단에 입성했다. 이후 마수드가 칼리파와의 동맹을 단절했지만, 그는 아제르바이잔에 자리를 잡고 칼리파와의 동맹을 이어갔다. 칼리파가 이란 중부에 웅거하던 토그릴과 화해한 뒤 마수드의 영역에 속한 모술을 공격할 때 함께 했지만, 마수드가 구원병을 파견하자 철수했다.
그 후 아제르바이잔에서 마수드의 봉신으로서 조용히 지내던 그는 1135년 칼리파 알 무스타르시드와 마수드가 전쟁을 벌일 때 칼리파를 지원해 , 알 무스타르시드가 케르만샤 부근에서 참패하면서 실패했다. 알 무스타르시드는 마수드에게 사로잡힌 뒤 바그다드의 궁전을 벗어나지 않는 조건으로 사면받았다. 그러나 8월에 마수드가 약속을 파기하고 알 무스타르시드의 폐위를 선포한 후 아제르바이잔으로 유배했다. 알 무스타르시드는 하마단 외곽에서 떠날 채비를 하다가 산자르의 군대가 인근에 당도하자 그에게 망명해 재기를 꾀했으나, 산자르 진영 내 막사에서 쿠란을 읽던 중 아사신 단원에게 살해당했다.
그 후 마수드에 의해 칼리파에 옹립된 알 라시드는 1135년 10월 바그다드에 도착하자마자 복수를 천명하고 마수드가 선임한 바그다드 총독 베그 아바를 추방하고 마수드가 파괴한 성벽을 재건하며 수성전을 준비했다. 이후 마수드에 대항할 동맹을 결성했는데, 다우드도 여기에 가담했다. 알 라시드는 쿠트바에서 마수드와 산자르의 이름을 삭제하고 다우드를 언급함으로써 그를 술탄으로 인정할 용의가 있음을 드러냈다. 그러나 1136년 8월 바그다드가 마수드의 맹공으로 함락될 위기에 몰리자, 알 라시드는 동맹을 맺은 장기가 있는 모술로 피신했다가 마수드의 압력을 받은 장기에 의해 추방당하자 다우드에게 의탁했다. 다우드는 칼리파를 앞세워 반 마수드 세력을 구축하고 술탄에 복위하려 했지만 1138년 6월 알 라시드가 아사신 자객에게 암살당하면서 실패했다.
그 후 아제르바이잔 산악 지대에서 웅거하던 그는 1143년 타브리즈에서 목욕하던 중 4명의 아사신 단원들에게 암살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