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21 19:43:56

마흐무드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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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주크 술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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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28b6c6> 셀주크 제국 제4대 술탄
마흐무드 1세
آمحمود بن ملكشاه
본명 니시르 우드딘 마흐무드 이븐 말리크샤
محمود بن ملكشاه
출생 1088년
사망 1094년 10월 19일 (향년 6세)
페르시아 이스파한[1]
재위 셀주크 제국 술탄
1092년 11월 9일 ~ 1094년 10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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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28b6c6> 부모 아버지 말리크샤 1세
어머니 테르켄 카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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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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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셀주크 제국 4대 술탄.

2. 생애

1088년경 셀주크 3대 술탄 말리크샤 1세카라한 칸국의 지도자 보리티진의 딸 테르켄 카툰의 아들로 출생했다. 남자 형제로 다우드, 아부 슈자 아마드, 이불 카심이 있었지만 모두 그가 태어나기 전에 사망했고, 여자 형제로 아바스 왕조 칼리파 알 무크타디와 결혼한 마흐 이 물크 카툰이 있었다. 말리크샤 1세는 테르켄 카툰을 맞이하기 전에 여러 자식을 두었지만, 테르켄 카툰은 자기 자식을 술탄에 세우기로 마음먹고 남편을 열심히 설득했다.

말리크샤 1세는 그 말에 따라 다우드를 후계자로 세우려 했지만, 재상 니잠 알 물크가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는 어린 아이를 술탄으로 세운다면 여자의 잘못된 조언과 환관의 속삭임에 휘둘릴 공산이 크며, 제국의 안위가 위태로워진다고 직언했다. 이로 인해 두 사람의 갈등이 고조되던 중 다우드가 1082년에 사망하면서 흐지부지되었다. 그러다 6년 후에 마흐무드가 태어나자, 말리크샤 1세는 즉시 마흐무드를 후계자로 선포했다. 니잠 알 물크는 이번에도 반대했지만, 말리크샤 1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투르켄 카툰은 그런 니잠을 정적으로 인식하고 말리크샤에게 수시로 니잠을 헐뜯었다.

그러던 1092년 10월 14일, 니잠 알 물크가 암살당했다. 암살자는 니잠을 살해한 직후 경비병에게 사살되었기에 배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세간에서는 튀르켄 카툰이 눈엣가시같았던 그를 암살하라고 사주했을 거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 해 11월 말리크샤 1세가 바그다드에 방문하여 칼리파 알 무크타디를 폐위시키려 했다가 돌연 암살당했다. 튀르켄 카툰은 남편의 죽음을 잠시 숨긴 뒤 에미르들을 매수한 후 아들 마흐무드를 새 술탄으로 옹립했다. 갓 옹립된 술탄은 금요일 오후에 모스크에서 설교하는 '쿠트바(Khutbah)'를 해야 했지만, 당시 4살에 불과했던 마흐무드가 그럴 수는 없었기에 튀르켄 카툰의 부탁을 받은 칼리파 알 무크타디가 그를 대신해 쿠트바를 했다.

그 후 튀르켄 카툰은 군대에게 막대한 하사금을 내려서 충성심을 확보한 뒤 에미르 카르부가에게 이스파한에 있는 말리크샤의 또다른 아들 바르키야루크를 처단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니잠 알 물크의 추종자들과 이란을 다스리던 관료들은 말리크샤 1세의 장남인 바르키야루크야말로 술탄이 되어야 한다고 여기고, 카르부가를 막아낸 뒤 레이에서 바르키야루크를 술탄으로 옹립했다. 이리하여 벌어진 내전은 1093년 1월 이스파한과 카라지 사이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바르키야루크의 군대가 승리한 뒤 마흐무드 1세의 지지자 중 다수가 바르키야루크에게 넘어가면서 급격히 기울었다. 튀르켄은 바르키야루크를 술탄으로 인정할 테니 마흐무드가 이크타(Iqta: 봉토)를 얻고 그곳의 수입으로 먹고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바르키야루크 측이 협상에 응하면서 내전이 끝나는 듯했지만, 튀르켄은 적의 공세가 중단된 틈을 타 아제르바이잔의 통치자이자 비르키야루크의 삼촌인 쿠트비우딘 이스마일 이븐 야쿠티에게 자신을 도와주면 그와 결혼할 것이며, 그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을 술탄으로 세우겠다고 제안했다. 쿠트비우딘은 이를 받아들여 바르키야루크 측을 공격했지만 1094년 카라지 인근 전투에서 패배하고 비르키야루크 측 인사들에게 체포되었다. 쿠트비우딘은 여동생 주바이다를 통해 비르키야루크에게 목숨만은 살려달라고 요청했지만, 비르키야루크는 삼촌을 가차없이 처형했다.

튀르켄은 추격병을 따돌리는 데 성공한 뒤 또다른 셀주크 왕자이며 아르군과 다마스쿠스의 지배자인 투투쉬에게 의탁하려 했으나 1094년 9월 사와이에서 사망했다. 한편 마흐무드는 아스파한에서 바르키야루크 측 병사들에게 연금되어 있다가 그 해 10월 19일에 사망했다. 천연두로 사망했다는 설과 바르키야루크의 명령으로 살해되었다는 설이 병립하나 어느 쪽이 옳은지는 불분명하다. 그 후 바르키야루크가 새 술탄으로 등극했다.


[1]이란 이스파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