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7-08 18:11:22

마흐무드 2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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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주크 술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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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그릴 1세 알프 아르슬란 말리크샤 1세
마흐무드 1세 바르키야루크 말리크샤 2세
아흐마드 산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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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흐무드 2세 다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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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흐마드 산자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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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28b6c6> 셀주크 제국 8대 술탄
마흐무드 2세
سلجوقی
본명 마흐무드 이븐 무하마드
محمود دوم سلجوقی‎
출생 미상
사망 1143년
재위 셀주크 제국 술탄
1131년 ~ 113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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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28b6c6> 부모 아버지 마흐무드 2세
어머니 가와르 카툰
배우자 마히 물크 카툰
아미르 시티 카툰
아타 카툰
자녀 다우드
알프 아르슬란
말리크샤 3세
무함마드 2세
알라 알 다울라 아타칸
가와르 나사브 카툰
테르켄 카툰 }}}}}}}}}

1. 개요2.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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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셀주크 제국 8대 술탄.

2. 생애

1105년 셀주크 제국 7대 술탄 무함마드 타파르와 가와르 카툰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1118년 아버지가 바그다드에서 사망한 뒤 술탄에 올랐고, 형제들인 기야스 앗 딘 마수드는 파르스와 이스파한, 토그릴 2세는 카즈빈을 상속받았으며, 삼촌 아흐마드 산자르는 호라산의 지배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그는 곧 아흐마드 산자르와 내전을 벌였다.

발단은 이란 서부의 지발과 쿠르디스탄 일대에서 통치를 행사하던 카쿠야 왕조의 마지막 에미르 가르샤스프 2세에게서 비롯되었다. 가르샤스프 2세는 일찍이 무함마드 타파르의 두터운 신임을 받았지만, 무함마드가 사망한 후 그를 질시한 귀족들이 악의적인 소문을 퍼트렸고, 이를 믿은 마흐무드 2세는 그를 체포해 감옥에 가두고 카쿠야 왕조의 중심지인 야즈드를 왕실의 술 관원에게 맡겼다. 그러나 가르샤스프 2세는 탈출에 성공한 뒤 야즈드로 돌아와서 마흐무드 2세가 임명한 관원을 쫓아낸 뒤 자신의 누이를 아내로 삼았던 아흐마드 산자르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아흐마드 산자르는 이 기회에 마흐무드를 꺾고 술탄으로 인정받기로 마음먹고 지발로 진격했다. 1119년 8월 사베 시 인근에서 벌어진 대규모 접전에서, 산자르는 전투 코끼리의 맹활약에 힘입어 승리했다. 마흐무드는 처음에 이스파한으로 도주했다가 산자르에게 포위되자 협상을 요청했다. 산자르는 어머니 사피야 카툰의 설득을 받아들여 그가 술탄으로서의 칭호를 유지하고 제국의 서쪽 절반을 계속 통치하도록 허용했다. 그 대신에, 마흐무드는 레이에 있는 산자르에게 가서 충성을 서약하고, 앞으로 주조한 동전에 "가장 위대한 칭호"라는 타이틀을 가진 산자르의 이름을 새겨야 했다. 또한 레이와 카스피해 일대를 상실했다.

그가 산자르에게 패배했다는 소식이 퍼지자, 그의 영역으로 남겨졌던 서쪽 영토에서도 반란이 빗발쳤다. 마수드와 토그릴은 대놓고 술탄을 자칭하며 반란을 일으켰다가 화해했다가 다시 반란을 일으키길 반복했고, 다수의 에미르들은 그의 지시에 듣는 척도 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활동했다. 여기에 베두인 부족장 두바이스가 힐라를 기반으로 삼아 이라크를 약탈했고, 1123년 마수드와 동맹을 맺고 바스라를 습격한 뒤 바그다드를 공격했다가 바스라 총독 이마드 앗 딘 장기에게 패배했다.

이렇듯 셀주크 제국이 혼란을 틈을 타, 아바스 왕조 칼리파 알 무스타르시드가 1125년 그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켰다. 칼리파의 군대는 이라크 남부의 통일을 위해 환관 아피프에게 군대를 주어 와시트로 파병했으나 그해 12월 벌어진 전투에서 장기에게 격퇴되었다. 1126년 1월, 마흐무드 2세는 바그다드로 진격하였고 셀주크 군대가 칼리파 궁전을 약탈하였다. 튀르크 군대의 약탈에 분노한 바그다드 시민들이 민병대를 조직해 칼리파 군대를 도와 셀주크 군을 격파했다. 이에 마흐무드는 장기에게 도움을 요청하였고, 그해 2월 바그다드에 당도한 장기는 재차 칼리파 군을 격파했다. 2달 후 마흐무드는 장기에게 바그다드를 맡기고 하마단으로 귀환했고, 알 무스타르시드는 칼리파 궁에 연금되어 정치에서 배제되었다.

그는 남은 추종자들만이라도 붙들어놓기 위해 막대한 영지를 나눠줘야 했다. 그 과정에서 그에게 충성을 여전히 바친 이마드 앗 딘 장기는 1127년 모술의 아타베그가 되었다. 그러나 1128년 산자르가 장기 대신 두바이스를 모술 태수에 봉하라고 압력을 가하자, 그는 장기에게 모술에서 퇴거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장기는 무력 시위를 벌이는 한편 산자르에게 10만 디나르를 선물로 바쳤다. 이에 산자르는 그에게 제국의 서부 지역의 실질적인 통치를 맡긴다는 의미로 예복을 하사했다. 명목상 자신의 신하인 장기가 산자르에게 이같은 예복을 하사받는 동안, 그는 이에 대해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했다.

마흐무드는 1119년경 산자르에게 굴복한 뒤 산자르의 딸인 마히 물크 카툰과 결혼했다. 그녀가 1122년에 사망하자 산자르의 또다른 딸인 아미르 시티 카툰과 결혼했다. 아마르 시티 카툰은 딸 가와르 나사브 카툰을 낳고 1129년에 사망했다. 이후 카쿠야 왕조의 에미르 가르샤스프 2세와 차그리 벡의 딸 아슬란 카툰의 자녀인 아타 카툰과 재혼했다. 그와 아타 카툰 부부는 알라 알 다울리 아타 칸을 낳았다. 또한 첩들로부터 아들 다우드, 말리크샤 3세, 무함마드 2세, 알프 아르슬란과 딸 테르켄 카툰을 낳았다.

1131년, 마흐무드 2세는 2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후계자 선정을 미처 하지 못한 채 죽었기 때문에, 아들 다우드와 삼촌 토그릴 2세, 마수드와 동방의 '대 술탄' 아흐마드 산자르 사이의 내전이 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