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09 17:39:55

다카하라 나오히로

다카하라 나오히로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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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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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SV
沖縄Sport-Ver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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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c2059><colcolor=#ebbe00> 이름 다카하라 나오히로
高原 直泰 | Naohiro Takahara
K리그 등록명 다카하라
출생 1979년 6월 4일 ([age(1979-06-04)]세)
시즈오카현 미시마시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신체 181cm, 체중 72kg
직업 축구 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축구 감독
등번호 수원 삼성 블루윙즈 - 22번
SC 사가미하라 - 31번
오키나와 SV - 10번
학력 시미즈 히가시 고등학교 (1995~1997)
소속 <colbgcolor=#0c2059><colcolor=#ebbe00> 선수 주빌로 이와타 (1998~2002)
CA 보카 주니어스 (2001~2002 / 임대)
함부르크 SV (2003~2006)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2006~2007)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2008~2010)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10)
시미즈 S펄스 (2011~2012)
도쿄 베르디 (2013~2014)
SC 사가미하라 (2014~2015)
오키나와 SV (2016~2023)
감독 오키나와 SV (2016~2023 / 선수 겸 감독)
오키나와 SV (2024~ )
국가대표 3경기 1골 (일본 U-17)
16경기 16골 (일본 U-20)
11경기 4골 (일본 U-23)
57경기 24골 (일본 / 2000~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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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축구인.

일본에서 축구 열기가 가장 높은 동네인 시즈오카현 출신이다.

2. 클럽 경력

2.1. 주빌로 이와타

주빌로 이와타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아르헨티나CA 보카 주니어스에 임대된 한 시즌을 제외하고 세 시즌 동안 105경기 58골이라는 무시무시한 기록을 남겼다.

2.2. 함부르크 SV

2002년 주빌로 이와타에서 J리그 MVP와 득점왕을 차지한 다카하라는 독일 분데스리가의 함부르크 SV(Hamburger SV)로 2003년 1월에 완전 이적하였다. 이적 후 연속 무실점 경기를 이어가던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골키퍼 올리버 칸에게 실점을 안기며 득점에 성공하여 주목을 받기도 했었다. 2003/04 시즌에는 많은 경기에 출전하였으나 2골 밖에 득점하지 못하며 주춤하기도 했으나, 2004/05 시즌에는 31경기에 출전하여 7골을 득점하여 함부르크 팀내 공격수 중 최다골을 기록하며 입지를 확실히 다졌다. 그러나 다음 시즌에는 21경기에 1골이라는 매우 저조한 활약을 보였으며 함부르크에서의 마지막 시즌이 되었다.

2.3.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함부르크에서 퇴단한 다카하라는 2006년 5월에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로 팀을 옮겼다. 이적 후 2006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독일과 평가전에서 다카하라는 멀티골을 성공시키며 프랑크푸르트 팬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월드컵 종료 후 소속팀으로 복귀한 다카하라는 주전 공격수로 꾸준히 득점에 성공하였고 2006년 12월 3일에 있었던 알레마니아 아헨(Alemannia Aachen)과 경기에서는 일본인 최초로 분데스리가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하기도 했다.

2007년까지 득점 행진을 이어간 다카하라는 이 시즌 11골을 득점하며 분데스리가 진출 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 득점 기록, 팀의 분데스리가 잔류에 기여하였고 프랑크푸르트 서포터들이 선정한 시즌 MVP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었다.

이적 후 첫 시즌부터 맹활약하여 다음 시즌에도 전망이 밝아보였지만, 정작 2007/08 시즌에는 무릎 부상으로 초반부터 경기를 소화하지 못하였다. 게다가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기 원했던 감독과 전술상 차이가 발생하게 되면서 8경기 1골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끝으로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를 떠나게 되었다. 2008년 1월, 프랑크푸르트에서 방출되어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로 이적하게 되었는데, 이때 180만¥이라는 이적료가 들었다고 한다.[2]

2.4.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2008년 1월 11일,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에서 우라와 레즈로 이적료 1억 8,500만엔, 연봉 1억 8,000만엔에 3년 계약으로 J리그에 복귀하였다. 하지만 프랑크푸르트에서 있었던 무릎 부상 후유증과 적은 경기 출전으로 실전 감각이 떨어져 우라와 레즈에서 주빌로 이와타 시절 만큼 폭발적인 모습을 보이지 못하였다. 또한 2009년 우라와의 감독으로 취임한 폴커 핑케 감독이 사이드 미드필더로 기용하며 다카하라는 부진의 늪에 빠지게 된다.

2.5. 수원 삼성 블루윙즈

우라와 레즈에서 자리를 잃은 다카하라는 폴커 핑케 감독의 전력 구상에서 완전히 제외되었고, 겨울부터 이적을 모색한 끝에 2010년 7월에 K리그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했다. 본래는 임대 영입으로 알려졌으나,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구단 공식 홈페이지에서 수원으로의 완전 이적을 발표하였다.[3] 다카하라는 일본 복귀 후 계속되던 부진을 만회할 기회를 찾고 있었고 마찬가지로 수원도 외국인 선수인 헤이날도의 실패와 차범근 감독의 성적 부진으로 인한 자신사퇴 등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에 윤성효 감독을 선임한 상태로 신임 감독이었던 윤성효에게 전폭적인 지원을 통하여 분위기 반전을 생각한 수원은 다카하라와 같은 검증된 공격수가 필요했었던 상호간의 의견이 맞아 떨어진 것이었다.

파일:external/image.chosun.com/2010083001656_0.jpg

K리그 데뷔는 2010년 7월 31일 광주 상무 불사조와의 홈경기에서 이루어졌다. 이적 후 평가는 실전 감각이 많이 떨어져 보인다는 등의 냉담한 평가가 주를 이루었으나, 다카하라는 이후 리그를 꾸준히 출전하며 실전 감각을 빠르게 회복하였고, 2010년 8월 28일 FC 서울과의 경기에서 데뷔골과 추가골을 폭발시키며 맹활약을 펼치며 경기 MVP에 선정되기도 했었다. 그 후에는 강원 FC와 광주 상무 원정 경기에서 1골씩 득점하여 총 12경기 4골로 2010년 시즌을 마무리하였다. 시즌 후 총평은 네임 벨류에 비해서는 아쉽다는게 대부분이었지만 실전 감각이 떨어졌던 것에 비해 다카하라 특유의 공격 센스와 반 시즌만 체결한 단기 계약임에도 팀에 헌신적이고 성실한 플레이는 인상적이었다는 평이다. 다카하라는 2010 시즌을 마치고 본인 홈페이지에 "자신감을 찾을 수 있었다"라고 스스로 만족스럽게 평가하고 수원에서 있었던 자신에 대한 지지에 대하여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하였다.

2.6. K리그 이후

2010년 반 시즌 활약하며 폼을 회복한 다카하라는 2011년부터 수원에서 J리그의 시미즈 S펄스로 이적하였고, 계약 만료로 방출된 뒤에는 2013년 J2리그의 도쿄 베르디로 이적하였다. 도쿄 베르디에서는 11골을 기록하여 팀 내 최다 득점자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었지만, 도쿄 베르디의 자금난에 이적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지게 되었다.

소속팀의 재정난에 방출 대상이 되어버린 다카하라는 2014년 J3리그SC 사가미하라로 임대 이적하였다. 2015년에는 완전 이적하여 주장으로 선임되어 33경기에 출전하여 6득점을 기록하는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2015년 11월을 끝으로 SC 사가미하라와의 계약이 만료된 다카하라는 2016년부터 자신이 대표로 새롭게 창단한 일본 5부 리그의 오키나와 SV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뛰고 있다.

2023년 8월 31일, 시즌 종료 후 현역에서 은퇴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3. 국가대표 경력

1999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일본 대표로 출전하여 3골을 기록, 일본 축구 U-20 대표팀의 준우승에 기여하였고, 이듬해 호주 시드니에서 열린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남자축구 경기에서도 3골을 기록, 일본 축구 올림픽 대표팀의 8강 진출에 기여하였다.

그 해 레바논에서 열린 아시안컵에서도 일본 대표로 출전하여 5골을 기록(이동국에 이어 득점 2위), 일본우승에 기여하였고, 다카하라 자신도 대회 베스트 일레븐에 선정(FW 부문)되었다. 하지만 2002년 월드컵에는 대회 직전에 이코노미 클래스 증후군이 발병하는 바람에 참가하지 못했다.

2006년 월드컵을 앞두고 독일과의 친선 경기에서 2골을 넣는 맹활약을 하며 일본이 독일 원정에서 2대2 무승부를 거두는데 일조했다. 덕분에 일본 축구 팬들의 많은 기대를 모았으나, 정작 본선에서는 무득점에 그치며 팀과 본인 모두 부진했다.

그는 2007년 AFC 아시안컵에서 일본 대표로 출전하여 6경기에서 4골을 기록, 팀은 4위에 그쳤지만 이라크유니스 마흐무드, 사우디아라비아의 야세르 알 카타니와 함께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4. 우승

5. 관련 문서



[1] 유니스 마흐무드, 야세르 알 카타니와 공동 수상[2] 약 17,000 달러.[3] 기사. 우라와도 비전력 선수였던 다카하라를 어떻게든 처분하고 싶어했는지, 완전 이적으로 수원에 이적한 다카하라의 연봉을 조금 부담하는 방식의 계약이었다고 한다.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