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07 ~ ?)
1. 개요
조선 시대 영조조의 인물. 거지들의 우두머리인 꼭지이자 광대로 당대에 명성이 높았다.실록에는 1764년 4월 17일에 자근만, 홍유, 이상묵, 이달손(본명 이태정), 강취성, 도행, 문담 등과 함께 영조의 국문을 받은 것이 등장한다. 달문의 명성이 한양의 기생, 거지, 천인, 검계 등 하층민들 사이에 높은 것을 이용하여, 나주 괘서 사건으로 처형된 전 나주 목사 이하징의 서얼 아들 이태정이란 자가 달문의 동생 달손이라고 자처하면서 무뢰배 자근만을 달문의 아들이라고 위장시켜 유언비어를 퍼뜨리다가 체포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덩달아 체포되었던 달문은 이태정, 자근만과 가족 관계가 아님이 밝혀져 역모 혐의는 벗었으나 그를 위험인물로 판단한 영조의 뜻에 따라 머리가 하얗게 되었는데도 머리를 땋고 총각의 모습으로 꾸며서 인심을 현혹하고 풍속을 어지럽혔다는 죄목으로 함경도 경성(鏡城)으로 유배되었다.[1] 다음해 9월 해배되어 한양에 돌아왔으나 곧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2. 광문자전에서
박지원의 소설인 광문자전에서는 광문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며, 광문자전에 따르면 시장 바닥에 돌아다니면서 밥을 빌던 비렁뱅이로 길거리에서 여러 비렁뱅이인 아이들로부터 두목으로 추대받아 구멍집을 지켰다. 병든 아이가 있어 그 아이를 위해 구걸하러 갔다가 그 아이가 죽었기에 의심을 받아 쫓겨났다.또한 동네 안으로 들어갔다가 어떤 집의 개 때문에 도둑으로 의심받아 붙잡히기도 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아이들이 병들어 죽은 아이의 시체를 다리 아래로 던진 후에 그 시체를 거둬서 묻어주었으며, 그 집주인이 그를 찾아봐서 사정을 들어보고 의롭다고 여겨 그의 소개로 광문은 약방 부자의 고용살이를 했다.
그 이후로 고용살이를 하면서 여러 사람을 만나 의로운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으며[2], 광문자전에 후일 박지원이 붙인 부록을 보면 위에 나온 옥사가 있은 후에는 한양을 떠나 10년 이상 지방을 떠돌아다니다 한양에 돌아왔는데 백발이 되도록 총각 머리를 땋았고 당대 최고의 기생 운심과 교우하거나 늙어서 검계의 일원 표철주와 대화하는 모습도 나오나 달문이 언제 죽었는지 알 수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