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년에 개장하여 197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운영되다가 수요 감소로 인해 부차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27ha 규모의 크기를 가지고 있었으며 코넌트 애비뉴에 있는 4번 공장은 두 도시의 경계선이기도 한 철도 통행 때문에 주요 공장 구조물과만 분리되어 있었다. 초기에는 몇 채의 건물만 존재했으나, 필요에 따라 빠르게 성장하여 결국 35개의 개별 건물로 확장되었다. 철거 전에 주조 공장을 포함시키는 과정에서 원래 공장은 저명한 산업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인 앨버트 칸 어소시에이츠에 의해 설계되었으나, 1912년에 닷지 형제와의 의견 충돌로 인해 스미스, 힌치먼 앤 그릴스의 건축 회사로 대체된 바 있었다. 이들은 닷지 형제의 공학적인 철학을 바탕으로 크게 건설되었다. 전성기였던 1940년대에는 약 36,000명의 직원들이 근무한 바 있었다.
1962년까지 플리머스 브랜드의 차량을 생산했던 린치 로드 공장에서 남쪽으로 약 3.2km 정도 떨어져 있었으나, 1965년부터 크라이슬러 C 플랫폼을 탑재한 플리머스 차량도 생산되기 시작했다.
개장 당시 이 지역을 가로지르는 두 개의 철도가 있었고 많은 토지 공간이 있었다. 철도 노선 중 하나는 북쪽으로 가서 당시 최신식이었던 포드의 하이랜드 파크 포드 공장으로 향했다. 원래 철도가 깔린 의도 역시 포드 공장에 조달하기 위한 부품과 조립품들을 배송하는 것이었다. 또한 새로 제조된 차량이 경사로를 따라 주행하는 부분을 포함한 차량 테스트 트랙을 처음으로 사용하여 파워트레인 내구성과 하강 중 제동력을 테스트하는 시설로도 활용되었다.
존과 호레이스는 해당 공장의 직원들 관리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의사와 간호사가 공장 내에 상시 근무하고 있었던데다 효율적인 공장 보안 부서가 있었으며, 지역 햄트래믹 소방서와 직접 연락할 수 있는 잘 갖추어진 소방 부서가 있었다. 이 공장에는 근로자의 사회적 요구를 돌보는 '복지 부서'가 포함되어 있었으며, 닷지 형제의 혁신적인 성격이 반영된 '플레이펜'이라고 불리는 기계 공장이 있었다. 이 기계 공장은 수리하거나 발명하고 싶은 직원들이 근무 시간 외에도 아이디어를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지원하였다. 이외에도 고위 공장 및 기업 관계자들을 위한 임원 식당과 사무실 및 공장 직원들을 위한 식당이 있었으며, 완전히 갖춰진 주방이 완비되었다. 공장 4의 작은 시설에서는 작은 트롤리를 통해 공장 지역으로 직접 유통할 뜨거운 음식을 준비하였다.
1970년대에는 차량 생산 수요가 줄게 되면서 시설 주변의 몇몇 건물들이 철거되었고 연구 및 기록 보관과 같은 용도로 활용되었다. 1979년에 봄에 경영악화로 위기를 겪은 크라이슬러가 해당 공장의 폐쇄를 발표[1]했고 1980년 1월 4일자를 끝으로 공장이 사라졌다.
이후 해당 공장은 1981년까지 휴면 상태로 부지만 방치되다 제너럴 모터스 측에서 여러 주변 토지를 포함한 대규모 공장 단지 계획과 함께 1달러에 부지를 매입하였고, 그 과정에서 폴란드계 미국인들이 모여 살던 폴타운 일대가 철거되며 논란이 발생했고 그 과정에서 여러 소송이 이어졌으나 결국 제너럴 모터스가 승소하면서 그 지역에 공장이 설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