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07 12:39:00

대니 윌리엄스

미국의 前 축구선수
파일:0_JS169934659.jpg
<colbgcolor=#024> 이름 대니 윌리엄스
Danny Williams
본명 다니엘 찰스 윌리엄스
Daniel Charles Williams
출생 1989년 3월 8일 ([age(1989-03-08)]세) /
서독 카를스루에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신체 182cm | 체중 79kg
직업 축구선수(미드필더[1] / 은퇴)
소속 유스 카를스루에 SC (1998~2004)
SC 프라이부르크 (2004~2008)
선수 SC 프라이부르크 II (2008~2011)
SC 프라이부르크 (2010~2011)
TSG 1899 호펜하임 (2011~2013)
레딩 FC (2013~2017)
허더즈필드 타운 AFC (2017~2019)
파포스 FC (2019~2020)
국가대표 파일:미국 축구 국가대표팀 엠블럼.svg 23경기 2골 (미국 / 2011~2017)
SNS 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clearfix]

1. 개요

미국의 前 축구선수.

2. 클럽 경력

2.1. SC 프라이부르크

서독[2] 카를스루에 출신으로, 주독미군인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3]와 독일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1998년 카를스루에 SC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2004년 7월에 프라이부르크 유스팀에 입단하였다.

이후, 유스 팀을 거쳐 리저브 팀에서 활약하다가 2010년 1월 22일 슈투르가르트를 상대로 분데스리가 데뷔전을 치렀다. 그는 2011년 여름에 팀을 떠날 때까지 16경기에 출전하였다.

2.2. TSG 1899 호펜하임

2011년 8월 31일, 호펜하임으로 이적하였다. 열흘 뒤 마인츠전에서 첫 경기를 치루었고, 어시스트를 기록하며 4:0 대승에 일조하였다.

호펜하임에서 두 시즌 동안 유틸리티 자원으로 쏠쏠한 활약을 보여주었다.

2.3. 레딩 FC

2013년 6월 25일, 챔피언십으로 강등된 레딩과 4년 계약을 맺었다. 8월 3일 입스위치 타운을 상대로 데뷔전을 치루었으며, 이듬해 2월 1일 밀월전에서는 데뷔골을 신고하였다.

2016-17 시즌, 주전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며 레딩의 승격 플레이오프 결승 진출을 이끌었으나 팀은 허더즈필드에게 승부차기 끝에 패하며 아쉽게 승격의 문턱에서 고배를 마셨다.

2.4. 허더즈필드 타운 AFC

2017년 7월, 승격 플레이오프 결승 상대였던 허더즈필드에 자유계약으로 입단하였다.

첫 시즌에는 제법 많은 기회를 받으며 24경기에 출전하였으나 다음 시즌에는 부상 악령에 시달리며 6경기 출전에 그치고 말았다. 결국 시즌이 끝난 뒤 방출되었다.

2.5. 파포스 FC

2019년 9월 6일, 키프로스 팀인 파포스와 계약하였다. 11경기를 출전한 뒤 2019-20 시즌이 끝나고 계약만료로 방출되었다.

이후 한동안 무소속이었다가 2021년 3월 5일 현역 은퇴를 하였다.

3. 국가대표 경력

유스 시절에는 독일 U-15 대표팀에서 활약하였으나 프로 데뷔 후에는 철옹성같은 독일 성인 대표팀[4]에 합류가 어려울 것으로 판단하여 2011년 9월 미국 여권을 취득한 후 미국 대표팀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10월 A매치 2연전을 앞두고 대표팀에 소집된 뒤 온두라스와의 친선전을 통해 미국 국가대표팀에 데뷔하였다.

2015년 6월 5일, 암스테르담에서 치러진 네덜란드와의 친선경기에서 A대표팀 첫 골을 기록하였고, 미국은 4:3으로 승리하였다. 9월 8일에는 브라질을 만나 다시 한번 골을 기록하였으나 이번에는 1:4로 패하였다.

4. 우승 경력

  • 분데스리가 U-19 남서부 지구 (1): 2007-08
  • DFB-포칼 U-19 (1): 2005-06


[1] 수비형 미드필더, 라이트백, 오른쪽 미드필더 등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였다.[2] 그가 태어난 당시에는 독일이 아닌 서독이었다.[3] 아버지는 캘리포니아 출신이며, 주독미군으로 있는 동안 헤이델베르크에서 복무하였다.[4] 당시 독일에는 그의 자리에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사미 케디라, 토니 크로스, 라르스 벤더 등 기라성의 선수들이 즐비해있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기 쉽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