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펄 벅의 소설 대지를 영화화한 것. 한국에서는 1988년부로 50년이 지났기에 판권이 만료됐다.2. 영상
3. 상세
1937년에 미국에서 흑백 영화로 만들었다. 빅터 플레밍과 시드니 프랭클린이 공동 감독을 맡았으며 왕룽은 폴 뮤니, 오란은 루이제 라이너가 연기했다. 백인 배우들이 주연을 맡았으나 나머지 조연들은 중국계 및 한국계 배우들[1]이 연기했고, 복장이나 배경은 꽤 원작처럼 중국풍 고증을 잘 따른 편이다[2]. 유명 배우였던 제임스 스튜어트가 이름없던 시절, 이 영화에서 엑스트라인 중국 농부로 나오려고 반나절을 분장해 잠깐 촬영했지만 도저히 중국인같지 않다고 해서 나오던 분량이 삭제되는 통에 울분을 참아야 했던 일화도 있다. 당시 할리우드에서 그나마 제일 잘 알려졌던 동양계 여배우 애너 메이 웡에게 여주인공이 돌아가지 않고, 첩인 롄화 역을 제의하자 그녀는 동양인의 이미지를 그렇게 소비할 수 없다고 거절하여 이 역은 유태인인 틸리 로쉬[3]에게 돌아갔다. 영화 <그렘린>에서 모과이를 팔던 가게 주인으로 나온 중국계 배우 키이 루크(1904-1991)가 여기서 왕룽의 장남 왕이로 나왔었다. 제작사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맡은 MGM/UA. 참고로 음악을 아르놀트 쇤베르크에게 맡기려 했는데 그가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다가, 도중 하차[4]하여 에드워드 워드(1900-1971), 허버트 스토사트(1885-1949)가 맡았다.영화는 원작을 좀 간추리긴 했지만[5] 흥행한 편이나 제작비가 많이 들어가 수익을 내는 데 실패했다. 평도 꽤 괜찮았다. 참고로 영화에선 오란이 죽자, 왕룽이 울면서 "당신이야말로 진정한 대지였어." 대사를 하면서 끝난다.
단, 벅은 이 영화를 상당히 싫어했다. 중국 이야기인데 주연 배우들만은 왜 죄다 백인으로 바꿔버린 것이 문제였고, 원작의 이야기인 농부의 삶을 왜곡하여 왕룽과 오란 사이의 멜로드라마로만 만들어 버린 것도 문제였다. 화이트워싱이야 당시 시대상 어쩔수 없었기에[6] 이 문제는 어떻게든 넘겼지만 굴곡있는 삶을 사는 농부 가족을 그린 것이 아닌 서로의 멜로로맨스나 하는 한심한 가족으로 만든 것은 벅 자신이 그냥 넘기기 힘든 문제였던 것이다. 오죽하면 영화 프로듀서[7]인 앨버트 르윈(1894-1968)도 이 영화의 완성본을 보고는 어이없어 했다고 한다. 만약 멜로를 넣지 않고 굴곡있는 삶을 살면서 힘든 시대를 살아가는 농부들의 모습을 그렸다면 희대의 명작으로 남았을 것이다.
4. 한국 상영
한국에서도 광복 이후에 개봉된 바 있다.[1] 하지만 한국계 배우들 중 이름이 남은 사람은 오란의 백치 딸 역을 맡은 수재너 킴 뿐인데 이후 그녀가 어떻게 되었는지는 기록이 없다.[2] 당시 중국이 군벌이나 일본의 침략등으로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미국의 황무지에서 세트를 지어 촬영했다. 관련 소품은 중국에서 주문해서 가져왔다고.[3] 오스트리아계 유태인으로, 30-40년대 헐리우드에서 스캔들메이커로 유명했다.[4] 쇤베르크의 하차 이유에 대하여 90년대에 삶과 꿈이라는 잡지에서는 제작자인 르윈이 여기서 폭풍우를 느끼는 음악을 넣어달라는 황당한 조건과 이것저것 넣어달라는 조건을 걸면서 심한 간섭을 하자 쇤베르크가 "그냥 폭풍우 치는 소리를 넣으면 되잖아요!" 라고 짜증내며 하차했다고 소개한 바 있다.[5] 그 바람에 몇몇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행보도 바뀌었다. 첩인 렌화랑 눈이 맞는 것도 장남이 아닌 차남이고, 비적단의 부두목인 숙부도 여기선 그냥 백수건달. 욕심많고 뻔뻔한 숙모는 아예 캐릭터가 확 바뀌어서 오란을 걱정하는 좋은 사람이 되었다.[6] 예를 들어 당시 인기 있었던 시리즈인 찰리 챈이 있다. 이 경우도 원작에서는 중국인이었으나 영화에서는 대부분이 백인이다.[7] 공동 제작자이던 어빙 솔버그는 1936년 9월 촬영한지 한 달 만에 37세 나이로 요절했다. 참고로 이 사람은 배우들이 죄다 백인으로 바꿔버린 것에 대해서는 굉장히 안타까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