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000><colcolor=#fff> 빅터 플레밍 Victor Fleming | |
본명 | 빅터 론조 플레밍 Victor Lonzo Fleming |
출생 | 1889년 2월 23일 |
미국 캘리포니아 라카냐다플린트리지 | |
사망 | 1949년 1월 6일 (향년 59세) |
애리조나 코튼우드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직업 | 영화 감독 |
활동 | 1910년 – 194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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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영화감독.대표작으로 <오즈의 마법사>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가 있다.
2. 생애
1889년 미국 캘리포니아의 라카냐다플린트리지에서 태어났다. 독일계 혼혈인으로, 어머니가 독일계였다.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사진 관련으로 복무했으며, 프랑스 베르사유에서 당시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의 수석사진사로 활동했다.
영화 대부분은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같은 서양인을 주연으로 하는 액션 영화였다. 야외 스포츠에 대한 사랑과 강한 태도 때문에, "남자 감독"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여성 배우로도 영화를 잘 만들어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성 출연진인 비비안 리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고, 해티 맥대니얼는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으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후보로 올랐다.
1932년에 MGM에 입사해 MGM 최고 유명작들 중 일부의 감독을 맡았다. <보물섬>(1934)과 <용감한 선장들>(1937), <붉은 먼지>(1932), <폭탄 껍질>(1933), 그리고 1939년, 같은 연도에 최고 대표작인 <오즈의 마법사>와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같이 찍었다. 두 영화 모두 흥행과 평에서 대박을 거뒀지만 이후론 내리막길을 걸었다. <조라고 불리운 사나이>(1942)에 이르기까지 겨우 제작비만 회수하는 흥행에 그치며 연출 작품 수도 팍 줄었다. 이 영화는 1989년에 스티븐 스필버그가 <영혼은 그대 곁에>로 개작했다.
1949년 1월 6일, 잉그리드 버그먼이 주연을 맡은 영화 <잔 다르크> 제작을 마친 후 갑자기 병원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이 유작인 <잔 다르크>는 흥행에서 참패했다.
3. 배우 학대 논란
30년대 할리우드를 풍미한 인기 감독 중 한명이었으나, 뛰어난 능력과는 별개로 굉장히 마초적인 성격이라 배우나 제작진들과 사이가 좋지 못했다는 얘기가 있다.주디 갈런드의 소속사였던 MGM에서 시골 소녀 도로시를 연기하기엔 갈런드가 너무 토실하다며 메스암페타민을 먹이고, 하루 식사는 닭 수프 한 그릇으로 제한하고, 심지어는 담배를 하루에 80개비씩 피우게 했는데 이를 방임했다. 갈런드가 사자 역할을 맡은 배우의 코를 찰싹 때리는 장면에서 계속 웃음을 참지 못하고 NG를 내자 뺨을 때렸다고 한다.[1]
[1] 자세한 내용은 오즈의 마법사(영화) 문서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