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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베 유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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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데카베 유니어.jpg
Junior

1. 개요2. 상세
2.1. 데카베 유니어 (1959~1963)2.2. 데카베 F11 / F12 (1963~1965)
3. 여담4. 둘러보기5. 참고자료


DKW Junior[1] / F11 & F12

1. 개요

독일의 자동차 브랜드였던 아우토 우니온의 계열사였던 데카베에서 1959년부터 1965년까지 생산했던 소형차.

2. 상세

2.1. 데카베 유니어 (1959~1963)

파일:데카베 주니어.png

데카베의 이륜차 사업부에서 개발하던 버블카 프로젝트가 전신이었으며, 이를 승용차 사업부에서 받아들여 스티어링 휠이 중앙에 있는 1열 3인승 레이아웃에 파이버글라스 바디를 적용한 사륜차 "STM II"를 개발했다. 하지만 데카베 딜러들의 시큰둥한 반응에 토션 빔 서스펜션, 플라스틱 차체, 세로배치식의 공랭식 2행정 2기통 엔진이 탑재된 4인승차 "STM III"로 계획을 변경했다.[2] 하지만 STM III도 충돌 테스트 성적, 그리고 당시 아우토 우니온의 개발팀장 로베르트 이베란 폰 이버호스트(Robert Eberan von Eberhorst)의 퇴사로 인해 아우토 우니온 이사회가 1956년 가을에 개발을 취소했다. 이렇게 5년간 투자한 개발경험을 거울로 가능한 한 빠르게 개발을 거쳐 강철 바디를 얹은 신규 소형차로 개발된 것이 데카베 유니어였다.

1957년 3월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데카베 600으로 선공개되었으며, STM III의 디자인 요소들을 일부 간직하되 강철 차체를 채택했다. 모터쇼 현장의 호응에 힘입어 아우토 우니온이 다임러-벤츠 AG로 인수된 이후에도 양산화 작업을 거쳐 차체 구조를 단순화하고 엔진도 2기통에서 3기통으로 교체했다. 이 차를 위해 생산공장도 신설했는데, 당시 아우토 우니온이 생산하고 있었던 데카베 3=6과 아우토 우니온 1000을 생산중인 서독 뒤셀도르프 소재의 기존 공장에는 투입하기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오자 1958년 6월부터 잉골슈타트에 공장을 지어 1959넌 7월부터 생산을 시작했다.

1959년 9월에는 양산형이 데카베 유니어라는 이름으로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공개되었다. 기존의 주력 승용차였던 데카베 3=6, 그리고 업데이트 사양인 아우토 우니온 1000보다 아랫급으로 포지셔닝되었다.

유니어는 2도어 세단으로서 바디 온 프레임 설계의 플랫폼에 1950년대 미국차의 영향을 받아 테일 핀을 적용한 현대적인 3박스 디자인을 채용했으며, 인테리어에는 충돌사고시 충격을 흡수하는 구성의 계기판과 스티어링 휠, 방향지시등과 하이빔/로우빔 칼럼, 케이블식 변속기 링키지를 사용하는 칼럼 시프트식 변속기 레버[3]를 적용했다. 파워트레인의 경우, 프로토타입이었던 데카베 600에는 최고출력 30hp의 2기통 660cc 2행정 엔진을 사용했으나 양산형에는 최고출력 34bhp의 3기통 741cc 2행정 엔진이 모든 단수에 싱크로메시가 적용되는 ZF의 4DS6-3 4단 수동변속기, F&S제 180mm 건식 클러치와 맞물려 탑재되었다. 스티어링은 아우토 우니온 1000같은 상급모델을 따라 랙 앤 피니언을, 브레이크는 4륜 드럼브레이크, 서스펜션으로는 4륜 토션 바[4]를 채용했다.

시장에서는 동 시기 경쟁차였던 폭스바겐 비틀보다 넓은 실내공간과 적재공간, 그리고 수랭식 엔진과 히터 옵션을 무기로 삼았으며, 유니어에 들어가는 2행정 엔진도 4베어링 구성에 밸런스가 좋은 크랭크축을 탑재하고 주철제 실린더 블록과 크랭크케이스, 나일론제 냉각팬을 사용해 동 시기 트라반트바르트부르크의 2행정 엔진 대비 소음과 진동이 적었다. 반면 사다리형 프레임 위에 차체를 올려 볼트로 체결하는 바디 온 프레임 구성을 채택하면서 매 7,500km마다 총 40곳에 윤활유를 발라야 하는 까탈스러운 유지보수, 연료계와 보닛 잠금장치의 부재, 칼럼 시프트의 위치 등은 단점으로 지적받았으며, 이에 대응해 1959년 10월부터 연료 부족 경고등을 대신하는 연료계가 적용되었다.
  • 1960년 3월에는 크롬도금된 창문 몰딩, 라디오가 들어가는 신규 대시보드, 도어 카드의 팔걸이를 적용하는 부분변경과 함께 베바스토(Webasto)가 제공하는 강철제 슬라이딩 루프를 옵션으로 제공했다. 이어 4월에는 자동화 클러치 Saxomat도 선택옵션으로 추가되었다.
  • 1961년에는 고급형 사양인 딜럭스(de Luxe)가 라인업에 합류했다. 엔진 배기량이 796cc로 확장되었고 같은 출력에 토크가 소폭 상승, 휠도 12인치에서 13인치로 커졌으며 메이커 공식 최고시속도 114km/h에서 116km/h로 소폭 높아졌고 가속시간은 80km/h까지 16초를 기록했다. 이때 엔진을 업데이트하면서 윤활유 공급장치인 "Lubrimat"[5]도 탑재되었다.

1962년 12월까지 유니어 118,986대, 1961년 6월부터 1963년 10월까지 유니어 딜럭스 118,619대가 생산되었으며 한때 서독에서 가장 잘 팔리는 소형차 중 하나로 기록되었다.

2.2. 데카베 F11 / F12 (1963~1965)

파일:데카베 F12.jpg

1963년 1월, 유니어 딜럭스의 후속차종이자 일부 개수를 거친 발전형으로 데카베 F12가 출시되었다. 아우토 우니온의 4개 고리형 엠블럼과 부드러운 전면부, 대형화된 앞뒤 창문과 후미등, 루프라인을 높인 각진 C필러가 적용되는 부분변경과 함께 휠베이스가 75mm, 전고가 50mm 늘어났으며, 파워트레인도 업데이트되어 배기량이 889cc까지 커졌고 최고출력은 40bhp, 최고시속은 약 125km/h로 상향되었다. 이외에도 4행정 엔진 대비 떨어지는 2행정 엔진의 연료효율을 항상시키고자 액셀러레이터 세팅을 손보았고, ATE-던롭의 디스크브레이크를 장착하며 동급차종 최초로 전륜 디스크브레이크를 채택했다. 외장컬러 옵션으로는 투톤컬러가 합류했다.

F12는 언론매체로부터 동급 소형차 대비 고성능의 스펙, 높은 신뢰성, 쾌적한 정숙성, 높은 편의장비 수준 등으로 호평받았다. 반면 매 1만 km마다 섀시 40곳에 윤활유를 발라야 하는 유니어 시절의 손이 많이 가는 유지보수는 단점으로 계속 지적받았으며, 이에 데카베는 주요 구동계(엔진, 변속기, 구동축)의 2년/주행거리 무제한 보증을 포함한 각종 보증수리정책으로 대응했다.

같은 해 8월에는 796cc 엔진 사양이 데카베 F11이라는 이름으로 합류했다.
  • 1964년 초에는 F12 컨버터블이 출시되었다. 1963년 9월에 최초로 공개되어 889cc 엔진에 출력을 항상시킨 45bhp 사양이 탑재되었으며, 슈투트가르트 소재의 코치빌더 바우어(Karosserie Baur)를 통해 1965년 초까지 소량생산했다.
  • 1965년 2월부터는 F12 세단에도 45bhp 엔진을 제공했다.

F11과 F12는 데카베 유니어의 발전형으로서 아우토 우니온 1000의 후속차종인 데카베 F102와 함께 판매되었으나 2행정 엔진 자체가 4행정 대비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가격경쟁력, 2행정 엔진 자체의 떨어지는 정숙성과 연료효율 등의 단점들이 1960년대부터 발목을 잡았다. 따라서 F11과 F12의 인기는 막대한 가격할인이 따라와도 유니어 시절에 미치지 못했다.

이후 1965년 초여름에 폭스바겐이 아우토 우니온을 인수하면서 데카베의 2행정 엔진과 함께 단종되었다.

3. 여담

  • 유니어와 F11, F12는 2도어 세단 위주로만 나왔으나 뒤셀도르프 경찰이 4도어 세단을 경찰차로 운용한 적이 있었다. 아우토 우니온이 4도어 사양을 제작했다.

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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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참고자료



[1] 모델명을 영어로 읽으면 주니어로, 문서명인 유니어는 Junior의 독일식 발음을 반영했다.[2] 한편, 데카베의 제 2차 세계대전 이전 기술력과 유산을 물려받은 동독의 트라반트는 이 기획과 비슷한 신차를 트라반트 P50으로 양산했으며, 후속차종인 트라반트 601에도 반영해 1990년대 초까지 생산했다.[3] 데카베의 파워트레인 설계를 이어받은 트라반트에도 비슷한 변속기 레버가 들어간다.[4] 전륜에는 더블 위시본 + 세로배치 토션바를 텔레스코픽 쇼크 업쇼버와 결합했으며, 후륜에는 경량구조의 튜브형 차축을 채용하고 세로배치 암 2개와 파나르 로드, 텔레스코픽 쇼크 업쇼버, 가로배치 토션 바를 결합했다.[5] 1961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공개한 데카베 2행정 엔진의 윤활유 공급장치. 기존의 2행정 엔진 차량은 주유를 할 때 휘발유에 윤활유를 직접 섞어서 넣어야 했으나, 엔진룸의 별도 탱크에 저장된 윤활유를 보쉬가 개발한 벨트식 펌프로 공급해 이런 노고를 줄이면서 휘발유를 연소시키기에 앞서 윤활유를 정확한 비율로 주입시켜 2행정 엔진 특유의 유독한 푸른빛 배기가스를 줄이고자 했다. 하지만 1962~1963년 사이의 혹한기 속에 윤활유가 제대로 주입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 마찰력이 높아지며 엔진의 크랭크축에 손상을 입는 결함으로 이어져 데카베와 2행정 엔진 자체에 악영향을 주었다.